〈 97화 〉3학년.
시간이 지나, 우리는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나와 다연이가 앉고, 태오와 지훈이가 같이 앉았다.
저기는 엄청 좁아 보이는데 우린 아주 여유롭고 편안하다.
강의를 듣던 다연이가, 내 귀에 꽂혀있는 무선 이어폰을 발견했다.
"시유나, 뭐 들어?"
나는 따로 설명하지 않고, 내 귀에 꽂혀있던 무선 이어폰을 뽑아 다연이의 귀에 꽂아주었다.
끈적한 그루브를 부르는 음률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울리는 목소리.
Yeah, you fucking with some wet ass pussy
Bring a bucket and a mop for this wet ass pussy
Give me everything you got for this wet ass pussy
카다비의 노골적인 가사에, 다연이가 급하게 이어폰을 뽑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시유나?"
다연이의 얼굴이 심각하게 빨개졌다.
아마도 뜻을 유추한 거겠지...
"그...그런 거 들으면 안 돼!"
내가 씨익 웃으면서 음을 흥얼거리자, 방금 들은 가사를 떠올렸는지 다연이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빨개진 얼굴을 가리는 다연이를 보고 있으니 살짝 죄책감이 들었지만 귀여웠다.
내가 노래를 못 듣도록, 내 귀에서 이어폰을 뺏어간 다연이가, 자신의 가방 어딘가에 꼭꼭 숨겼다.
"껌 먹을래?"
"....."
나는 껌 하나를 까서 다연이 입에 넣어줬고, 뒤에서 박지훈이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나도."
"먹는 거는 시이팔, 뭐든 입에 넣고 보려고 하네 개새끼."
"아니 뭔, 껌 하나 가지고 존나 너무하네."
"안 준다?"
"죄송합니다. 하나만 주세요."
나는 지훈이에게 껌 하나를 넘기고 옆에 있는 태오에게 한통을 넘겼다.
얼굴을 붉히는 태오.
"많이 먹어라."
"응."
"와 씨발, 내가 달라고 했는데."
"응 꺼져."
갑자기 박지훈 쪽에서 '퐁!' 하는 소리가 나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익숙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내가 돌아보자, 박지훈은 들고 있던 콧수염 과자를 들어보였다.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는 지훈.
"내놔."
"이거? 쉬룬뒝?"
"두 번 얘기 안 해."
"두 붠 얘귀 안 홰~~~"
"...?"
그대로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키자, 몸을 숙이며 콧수염과자를 바치는 박지훈.
결국 박지훈이 가져온 콧수염과자는 내 손에 들려있었다.
"진짜 쓰레기네. 지 입만 입이지? 내가 달라할 땐 존나 뭐라 하면서."
"뭐라 했냐?"
"아. 아니아니, 혼잣말 혼잣말."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한테 3대 가량을 얻어맞고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박지훈.
"진짜... 내가 사왔는데... 지는 껌 하나 주고... 존나 너무하네..."
"괜찮냐?"
옆에서 태오가 껌을 씹으며 박지훈을 위로해줬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가장 먼저 밥을 먹었다.
뷔페식으로 되어있는 식당이었기에 박지훈은 당연하게도 산을 쌓고 있었고,
옆에 있는 태오도 만만치 않게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에게 중요한 말이라도 하려는 듯 다가오는 지훈.
"뭐,"
"좋은 소식. 이번에도 술 가져왔다."
나는 박지훈의 말을 듣자마자 끄덕여 주고는 그대로손을 들었다.
"선생님!!!!"
"야!!!"
밥을 먹다 말고 급하게 내 입을 막는 지훈.
뿌리치기엔 이 새끼 힘이 너무 세졌다.
이젠 손가락을 꺾으려고 해도 힘으로는 비벼보지도 못할 정도로, 지훈이의 손은 꿈쩍도 안했다.
내가 째려보니 박지훈이 정색하면서 말했다.
"말하지...마라."
천천히 힘을 풀기 시작하는 박지훈.
나는 그대로 지훈의 조인트를 깠다.
"....."
하지만 아파하는 척만할 뿐, 전혀 고통을 받은 것 같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스테이크를 써는 용도인 칼에 시선을 두었고, 지훈이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미안."
박지훈은 과거에도 한창 까불다가 내 손에 무기가 들려있는 모습을 보기 직전에 사과를 했다.
그 모습을 태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며, 진행을 맡은 개그맨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혹시, 학생회장님 있나요?"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말로 인해서, 내가 등장할 것을 기대하는 동갑내기들이 환호했다.
"오?! 회장님이 인기가 많나보네요~?"
부회장이 급하게 내 눈치를 보았고.
내가 부회장에게 눈짓하자, 자연스럽게 부회장이 일어났다.
""우우우우우!!! 부회장이다~""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야유하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왔고.
부회장은 생각보다 큰 야유소리에 당황한 듯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휴..."
내가 천천히 일어나니 꼬맹이들은 열광했고, 내 얼굴을 확인한 MC가 당황했다.
"어...? 시윤 양... 아닌가요?"
나는 강당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넵! 이야... 유명 인사를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시윤 양이 학생회장이군요?"
갑자기 조용한 강당에서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
"춤춰라!!"
누가 들어도 처음 선동하는 목소리는 박지훈이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특징인 '물타기'가 시작되며 모두가 외쳤다.
""춤춰라~ 춤춰라~~""
처음에는손짓으로 그만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물타기.
"닥쳐."
"".....""
"너거들 다 존나게 맞고 싶은 거지? 어딜 회장이 말하는데 떠들어, 처음 말한 사람 누구냐? 박지훈 이 씨발새끼 너지?"
"".....""
장내가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나는 MC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계속하세요."
"...어... 음..."
원래 계획에 춤이 준비되어 있었는지, 빠르게 대본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우리 시윤 양 레크리에이션 시작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선생님들? 박지훈 술 가져왔어요. 박지훈 못 도망가게 잡으세요~"
이 상황을 즐기며 비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던 박지훈이 경악했다.
나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너네 물타기 하는 건 좋은데 사람을 봐가면서 해야지? 가장 먼저 시작한 3명, 내가 다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MC가 넘긴 대본을 뽑았다.
"뭐, 내가 분위기 망친 거 같으니까 살려는 줄게."
나는 한 곳에 이미 준비되어있던 피아노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마이크를 가져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약 18시간 전에 올라온 JSM소속 남성아이돌 노래.
아빠가 작사, 작곡한 노래다.
전부 영어로 되어 있는 가사에 밝은 분위기를 띄는 음률이 내 손을 통해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평소와 다른 발성을 내며, R&B 느낌을 늘씬 풍기는 목소리로 부르자, 금세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가사를 뱉으며, 내 짧은 공연은 마무리가 되었다.
"화부터 내서 미안했고, 중학교 마지막 여행인데 즐기자~"
""네!!!!""
나는 스스로를 시크하다고 생각하며, 휙 돌아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박지훈에게 다가가며,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다연이와 맞췄던 우정링, 중앙에 뾰족한 보석이 박혀있는 것을 본 박지훈의 동공이 심각하게 떨리더니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신나는 공연과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박지훈의 비명이 학생들의 환호성에 섞여 울려 퍼졌다.
"그거맞으면 구멍 뚫려!!! 미친년아!!!!!"
레크리에이션이 끝난 뒤, 얼굴이 부어있는 박지훈이 태오를 데리고 나와 다연이의 방에 찾아왔다.
"뭐냐."
"짜안~"
태오가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복도에서 눈치를 봤고, 나는 이들을 안으로 들였다.
박지훈이 가져온 봉투에는 각종 술과 과자들이 가득했다.
"너네끼리 마셔라."
박지훈이 나를 보더니 한 손에 사이다를 들고, 피식 웃으면서말했다.
"이건 술 못 마시는 우리 애긔 시유니꼬..."
그대로 내 하이킥이 박지훈의 안면에 적중했고, 박지훈은 옆으로 누워서 편안하게 자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는 태오를 봤다.
"여자 방에 술 들고 들어온 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미안하다. 나는 말렸었다."
"신나서 들어오던데?"
"아니다! 술을 처음 마셔봐서... 궁금함에..."
다연이를 바라보니, 다연이도 술이 궁금하긴 했나보다.
술병을 이리저리 쳐다보는 다연이의 옷차림은 너무 무방비해 보였다.
"일단 박지훈은 자니까 두고, 너는 나가 있어봐."
"알겠다..."
나는 빠르게 다연이의 상의를 지적했고, 깜짝 놀란 다연이가 얼굴을 붉히며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들어온 태오의 멱살을 잡자, 이 꼬맹이는 오랜만에 얼굴을 붉혔다.
"너, 요즘 박지훈 닮아가는 거 아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
"병신화가 이미 다 된 거 같아서 걱정돼서 말하는 거야."
"...미안하다. 지훈이를 보고 있으니,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 인지만 하고 있으면 되지, 편하게 앉아."
"알겠다..."
김태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화려한 외모를 가지게 되었다.
나와 다연이만큼은 아니어도 새하얀 피부를 가진 태오.
눈을 반짝이며 술을 쳐다보았다.
"...다양하게 준비했군..."
그때 박지훈이 잠에서 깼다.
"끄응~ 잘 잤다... 뭐야? 아직 밤이네?"
"병신..."
나에게 맞아서 한 쪽 얼굴이 2배가 됐지만, 개의치 않고 신나서 자리에 앉는다.
술은 못 마시더라도 안주를 다양하게 가져왔기에, 박지훈을 용서해준다는 마인드로 나는 사이다를 마시기 시작했다.
10시가 되어 불을 끄고 자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불을 끄고 커튼에 이불을 씌워서 완전 봉쇄를 한 뒤 핸드폰 플래시 위에 사이다 페트를 올려서 분위기를 냈다.
"우와... 이쁘다."
"원래 몰래 먹을 땐 이래야 돼."
나는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힘겹게 참아내며, 술 냄새를 맡았다.
내가 술에 취해 스스로 머리를 잘라버린 그날 이후, 나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기분 좋게 취하는 법을 알아냈다.
소주 한 잔에 1.5L 물을 타먹는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가성비 존나 좋은 이 몸은, 냄새만 맡아도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기에...
어디 가서 잠시 소주잔만 빌려서 코만 가져다 댄 뒤, 깊게 30초만 빨아들이면 만취다.
씨발거.
그 증거로 지금 잠깐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벌써 한 잔 마신기분이다.
다연이는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걱정 마 여기에 있는 사람 걸리면, 다 난리나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 걸?"
"응..."
다연이는 한 잔 들이키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윽... 맛없어..."
나는 다연이에게 안주를 바로 먹여주었다.
"음... 이래서 안주를 먹는 거구나..."
시간이 흐르고 꽤나 마셨지만 다들 쓰러지진 않았고, 의외인 것은 다연이는 완전 멀쩡했다.
새하얀 피부가 붉어지지도 않았고, 술은 마신적도 없는 것 같은 느낌.
이중에 가장 술이 약한 사람은 김태오 같았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어이가 없는 건 술에 입도 안댄 나 또한 취했다는 거지만...
어느새 내 옆에 앉아있던 김태오가 내 엉덩이를 만졌다.
처음엔 실수인가 했더니, 이 새끼가 갑자기 내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나는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분노와 술기운에 순간 필름이 끊겼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신을 조금이나마 차렸을 때는 박지훈과 다연이가 나를 뜯어 말리고 있었다.
눈앞에 쌍코피를 흘리면서,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태오.
내 손에는 술병이 들려있었다.
시윤이가 갑자기 태오에게 엘보를 꽂았다.
방심한 김태오가 안면에 엘보를 맞으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어느새 다가간 시윤이가 누워있는 김태오에게 주먹을 뻗었다.
김태오는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회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먹을 인지하기도 전에 맞고 있었다.
그리고 시윤이가 일어나자마자 찬 사커킥을 턱에 맞은 김태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온몸에 힘이 풀렸고, 김시윤의 손에는 자연스럽게 술병이 들려있었다.
3초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난 일에 기겁한 박지훈이, 김시윤의 팔을 잡고 앞을 막았다.
"나와."
"야!! 침착해 정신 차려! 너 술병 내려놔!!!"
시윤은알 수 없는 짜증을 느끼며, 자신을 말리는 박지훈의 얼굴을 만졌다.
"나오라고, 여자를 안고 싶으면 업소를 가 이 씨발럼아..."
"시유나!!!"
시윤에게 달라붙는 다연.
하지만 시윤이는 다연이의 얼굴을 싸늘하게 쳐다보았고, 그 눈빛을 마주한 다연이가 움찔하며 겁을 먹었다.
"내 몸에 손대지마..."
시윤이가 술병을 손에서 떨어트리자, 큰일은 나지 않을 것 같아 손을 놓아주는 지훈.
시윤이는 천천히 김태오에게 다가갔다.
"애새끼가, 벌써부터 손버릇이 안 좋네...?"
"미...미안하다."
침착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 다가가는 것 같지만, 박지훈은 빠르게 눈치 챘다.
김태오에게 다가가자마자 갑작스럽게 대뜸 꽂히는 하이킥에 박지훈이 뜯어말렸다.
"야!!! 애 잡을 생각이야?!"
"놔..."
박지훈은 다연이에게 빠르게 눈치를 줬고, 다연이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에 술을 담아서 넘겼다.
"일단 찬물로 머리 좀 식혀."
시윤이는 지훈이가 건네는 액체를 확인도 안하고 마시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
박지훈은 싸늘하게 김태오를 바라봤다.
"너 뭐했냐...?"
"...미안하다."
"뭐했냐고 씨발아..."
다연이가 심각한 분위기에 박지훈을 가로막으며 말렸다.
"하지마아... 나 무서워... 시유니도...무섭고..."
"하아... 그래... 일단 치우자..."
"응..."
박지훈은 무언가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고, 반사적으로 시윤이를 들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우웩..."
먹은 것을 토해내던 시윤이는 그대로 다시 기절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머리가 긴 것을 알고 있는 지훈이가 시윤이의 머리카락을 잡아줬고, 그 덕에 13살 때와는 다르게 시윤이의 몸은 깨끗했다.
상황은 그 때보다 더 최악이었지만...
전부 치운 뒤, 박지훈은 다연이에게 말했다.
"시윤이 한 번 토하면 더 안하거든? 너 2시간 뒤에도 안 자면, 시윤이 좀 깨워줘."
"응..."
박지훈은 김태오를 쳐다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야,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