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3학년. (98/99)



〈 98화 〉3학년.

어두운 밤 건물 뒤편에서 김태오는 죄를 지은 사람마냥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물론 죄를 지은 건 확실하다.

박지훈은 간만에 올라오는 빡침에, 김태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뭐했냐."
"미안하다..."
"뭐했냐고."
"취한 시윤이의 몸을 만졌다. 미안하다."
"와... 이거, 미친새끼였네...?"

태오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처음 마셔보는 술에 정신이 없었다.  스스로 조절이  됐던 것 같다, 정말로 미안하다..."

김태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빠르게 말했다.


"정확하게 그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마셨었다... 그래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고..."
"....."
"원래부터 좋아하던 감정이 있던 나머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정말 미안하다."
"그거 내일 시윤이한테 다시 말해."
"당연한 일이다."
"시윤이 기억 못하더라도 해라."
"그래..."







나는 속이 울렁거리면서 동시에 머리가 깨질  같은 힘든 아침을 맞이했다.
숙취가 너무 심하다.
머리를 반대편으로 돌려보니 다연이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다연아...?"

움찔거리던 다연이 눈을 떴다.

"이...일어났어?"
"왜 그러고 있어...?"
"아니야~"

다연이는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었고, 나는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연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누가 다연이 성추행했어?"
"아니!!!"
"그럼?"

다연이는 빠르게 고민을 하다가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는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제... 시유니 무서웠어..."
"어...?"
"막... 태오 술병으로 내리치려고 했어..."
"뭐?!"


나는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하고, 다연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진짜로? 내가?"
"응... 무서웠어."
"하아... 미안해... 정말로, 나  안마신거 같은데...  냄새 때문에 취한 거 같아..."
"...냄새로?"
"응... 변명이 아니고... 6방울만 마셔도 기절하거든... 그래서 술 입에도 안 댄단 말이야..."
"....."

나는 다연이의 말을 듣고 빠르게 태오에게 가서 사과하려고 했지만, 숙소 입구에서 태오와 지훈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시윤, 내가 미안하다..."


갑자기 머리를 박고 사과하는 태오.
다연이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
"내가  몸을 만져서 정말 미안하다, 취해서 그랬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어제의 상황을 듣고, 내가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게 되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게  다연이도 경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거구나."

나는 다연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끄덕였다.


"나도 기억이 없어서, 뭐... 됐어 들어보니까 나한테 엄청 맞았다며."
"....."
"일단 나 좀 씻게 방으로 돌아갈래?"
"알겠다..."

김태오와 박지훈을 보낸 뒤에 다연이에게 다가갔다.

"시유나...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다연이에겐 내가 술 마시고 미쳐서,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처럼 보였나보다.

"나도 놀랬어... 내가 아무리 다혈질이고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아무 이유 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보진 않거든..."
"응..."
"다연이도 많이 놀랐겠다... 일단 우리 술 냄새 너무 많이 나는  같으니까... 씻을까?"
"같이 씻자!"


나는 다연이와 같이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전부 사복으로 갈아입고 밥을 먹었다.
나와 다연이는 같이 맞춘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아침식사로 나온 뜨뜻한 국물이 속을 풀어준다.

'생각하면 할수록 술 조금 입에 댔다고 속을 풀어야 하는 게 어이가 없네...'


"하아..."


나는 김태오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내 허벅지랑 엉덩이 만진 소감이 어떤데? 아빠 말곤 처음인데."
""푸학!""
"컥... 쿨럭... 미안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다가갔다.

"왜, 허리도 만졌다며. 어떠냐고 소감이~"
"미안하다..."

그날 이후, 다연이는 태오를 조금 멀리하게 되었다.










나는 박지훈과 밤하늘을 보며, 은은히 비추는 가로등 아래에서 대화를 나눴다.
밤에 숙소에서 나올  있는 이유는... 난 학생회장이니까.
한 마디로, 다른 학생들을 관리한다는 명분하에 가능하다.

"너, 아예 조절이  되는 거야?"
"취하면?"
"어."
"나도 모르겠다. 술을  번이고 먹어봤어야 알지."
"옛날엔 술 마시면 분위기에 따라 변덕 심했잖아."
"그치, 지금도 그런 거 같기도 해."
"지금 21세기야. 술 마시다 기분 나쁜 상대한테 러시안룰렛 돌려주는 시대는 지났어."
"굳이 그 얘길 해야겠냐?"


지훈이가 말한 건, 예전에 내가 그림으로도 그렸던 에이미 엘런과도 관련이 있다.
그녀을 잃은 슬픔을 잊고자 오랜기간 지속해서 마셨던 술.
하필이면 그 술집에 마피아 집단이 있었고, 3명을 제외하고 전부 죽인 뒤, 딱 1명이 살 때까지 러시안룰렛을 시켰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상대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자주 하곤 했었다.

"암튼, 너 진짜 위험해... 언제 터질지 모르겠어, 솔직히 어제도 내가 안 말렸으면... 김태오 니 손에 죽었을 거야."
"하아... 술을... 씨발... 나 이제 안 마실 테니까 너도 가져오지 마. 내 앞에서 까지도 말고."
"진짜... 그래야겠다... 어떻게 냄새를 맡고 취하냐... 와..."
"나도 진짜 X같아... 하아..."
"다연이 엄청 겁먹었어,  무서워하더라... 처음 봤어.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 그 상황에서 다연이 정말 큰일날까봐 김태오한테 화도 못 내겠더라"

나는 박지훈의 말을 듣고 끄덕였다.

"...다연이한테 간다."
"그래..."







나는 다연이 침대에 잠시 누웠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다연이가 미소 지었다.


"다연아."
"응?"
"우리엄마 술 엄청 못 마셨대."
"진짜?"
"응, 어제 맥주 마셔봤지?"
"응!"
"그거 숟가락으로  번 떠먹고 기절했대."
"헐..."
"근데, 나도 그만큼 못 마셔, 전에 드리밍 이모들이랑 마셔봤는데, 나도 정신을 놓더라구..."
"아하..."
"내가 정신을 놓게 되면, 기분이 쉽게 업되기도 하고, 그만큼 쉽게 화를 내기도 해. 감정변화가 심해져..."
"....."
"어젠 진짜 미안했어... 다연이한테 안 좋은 모습 보여준 거 같아 가슴이 아파."
"난, 괜찮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진짜?"
"응, 어차피 시유니 맨날 지훈이 심하게 때리잖아."
"하하하..."
"근데 태오가 잘못을 했으니, 맞아도 쌌어."


나는 돌아서 누우며, 다연이의 눈을 맞췄다.


"만약... 그때 지훈이가 나 안 말렸으면 큰일 났을 거야..."
"....."
"가능한 피하겠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취하더라도, 절대 화내지 않게... 다연이가 도와줘야 돼."
"할 수 있어."
"술 못 먹어서 미안해..."

다연이가 나를 안았다.


"내가 시유니 지켜줄 거야... 걱정하지 마."
"진짜~ 믿어두 되지~?"
"당연하지~ 나만 믿어~"

나는 다연이랑 이불속에서 한참을 떠들다 잠에 들었다.
이번 수학여행은 김태오의 흑역사와 함께, 다연이와의 우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불이 꺼진 어두운 학생부 회의실, 햇빛이 살짝 들어오는 곳에 앉아 손톱을 만지고 있는 압도적인 미모를 가진 여학생.
그래, 바로 나다.


"학생회장님!"
"뭐."
"이번 체육대회 규정인데 확인 한 번만 부탁합니다."

나는 부회장이 주는 서류를 받았다.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네."

대충 훑고 돌려주는  같지만, 내가 내용을 전부 확인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회장.
나는 뒤에 있는 상자에서 콧수염 과자를 꺼냈다.

퐁!

내 눈치를 보고 있는 1, 2학년 대표.

"왜? 뭐, 할 말 있어?"
"아... 그... 저희 엄마가 사인 받아...달라고..."

나는 피식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사진도 찍어줄까?"
""정말요!?"“

보통 학생들의 이름표는 학년에 맞는 색깔 안에 이름만 적혀있지만,
우리의 이름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회장 김시윤.
부회장 이재성.
이런 식으로 앞에 직함이 적혀있다.
그리고, 회장의 명찰은 금테로 이루어져 있다.

"맞다, 이번에 동아리들이 납부하는 수수료 정말낮춥니까?"
"솔직히 그런 푼돈가지고 뭐하게, 다음에 학생부 선생님한테 말에서 지원금이나 달라 그래."
"네, 알겠습니다."


부회장 이재성은 나랑 동갑이다.
근데 왜 존칭을 하냐? 혼자 잔뜩 몰입해서 저러고 있는 거다.
진짜 유수의 대기업을 이끄는 회장, 부회장이라도 된 것 마냥...
나는 다리를 꼬고 과자를 먹으며, 회의를이어갔다.


회의가 마무리되고, 학생회실로 찾아온 민지.

"언니! 회의 끝났어요?"
"응."
"오늘 짜장면 먹어요! 지훈이 오빠가 배고프다고 그래서."
"무시하면 돼, 걘 원래 매일 배고파하거든."

동아리실로 들어가니 박지훈이 나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밥 먹자!"
"꺼져."
"응, 너꺼 안 시켜~ 먹고 싶어해도  줌. 수고~"
"결국 내 돈 아니냐? 돈도 없으면서 병신."
"...동아리... 복리후생ㅂ..."
"이 새끼는 처 벌어오는 돈도 없으면서 쓸 생각만 하고 있네, 넌 회비 따로내."
"아아아아~~ 왜애애앵~"

역한 모습을 본 내가 그대로 연필을 쥐고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 태오와 다연이가 들어왔다.

"시유나!  먹자!"
"그럴까?! 나도 배고팠는데~ 뭐 먹고 싶어?"

지킬 앤 하이두처럼극과 극의 반응을 보여주는 내 모습에 민지와 지훈이가 조용해졌다.

"음 글쎄... 시유니 먹고 싶은 거 있어?"
"흠..."

내가 고민하고 있자, 박지훈이 중국집에서 시켜먹자며 중얼거린다.
다연이가 어색하게 시선을 박지훈에게 돌리자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음 그러면~ 중국집만 빼고 아무거나 먹자~"
"응!"
"아, 왜!!! 양장피랑 깐풍기 먹자고!"
"존나 비싼 거만 말하네."
"지랄? 지갑에 5만 원짜리 40장 있는 거 봤는데? 1장만 빼도 두  시켜먹을  있다고!"
"미친 새낀가, 내 지갑이지 니 지갑이냐? 그리고 니 처먹는 거 생각하면 절반은 써야 돼, 돼지새끼야."

새끼돼지 지훈이와의 주먹다짐이 좁은 공간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다연이가 와서 중지가 되긴 했지만...
내가 저 새끼를 패려고 매일같이 치마 안에 체육복을 입고 다닌다.





나에게 맞더라도 반격은 하지 않는 지훈.
솔직히 이 몸으로 지훈이가 뻗는 주먹을 실수로라도 맞으면, 어디 하나 바로 나간다.

특히 내 피부색은 너무 하얀 톤이라 멍이 들면 눈에 띌 거고, 아빠나 주변 사람들에게 걸렸다가는... 지훈이는 앞으로 나와 얼굴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나에게 뒤지게 맞고 몸에 멍이 생기려는 기색이 보임에도, 반격 한 번 안한 지훈이가 중국집에서음식을 시키면서 실실 웃고 있었다.

'저걸 순진하다고 해야 되나... 진짜 빙신 같은 돼지새끼...'

"맞다, 수수료 줄인다며 5%로."
"왜?"
"그럼 축제 준비 같은 건 어떻게 해?"
"5%로도 동아리 유지는 충분해. 원래는 10%  학생회가 개인 사비로 썼어."
"와?"
"그리고 축제 비용 같은 건 따로 지원금 줘. 그것도 넉넉하게."

박지훈이 나에게 맞아서 땡땡 부은 얼굴로 짜장면을 먹고 있으니...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건 나랑 지훈이 밖에 없다.
만약 지금 생에 지훈이가 없었다면... 끝없이 사고가 터졌을 거다.
몇 명 조진 뒤에 사이코패스로 소년원에 안 들어갔다면 다행일정도로.

하지만, 다행히도 지훈이가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무조건 막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수학여행 때도 마찬가지고.
솔직히 내 옆에 있는 지훈이가 고맙기도 하다.
밥맛을 떨어지게 만드는 저 X같은 표정만 짓지 않는다면...



중국집 음식을 다 먹고 정리를 하던 중, 다연이가 휴지로 내입을 닦아줬다.

"립밤 다시 해야겠다."
"해줘."


다연이가 웃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발라줬다.
지훈이가 아무리 X같이 굴어도, 다연이만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잘래?"
"웅 완전 좋아!!"

우리는 잠시 쉬다가 수업을 듣기 위해 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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