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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백퍼센트 순혈인간-25화 (25/113)

< 담민우 (1) >

“10분. 어떻게 시간에 맞췄네.”

시계를 바라본 차대운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온갖 건물이, 물건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반으로 갈라져있다. 마음만 먹었다면 바닥에 쓰러져있는 인간들도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전혀 손이 닿지 않는다. 세한기전이라 해도 아직 학생 레벨일 뿐. 조금만 위쪽으로 고개를 올려보면 이런 세계다. 바닥에 쓰러진 호랑이굴의 보스가 상처를 부여잡고 헐떡였다.

“다, 당신 같은 분이 왜···.”

“정당방위. 능력을 이용해 선량한 학생을 여기까지 납치해 끌고 왔으니, 이 정도쯤은 보복을 당해도 불만 없겠지?”

최강의 혈통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산군 혼혈.

단련된 거체는 어떤 공격이든 튕겨내고, 우렁찬 포효 앞에서 큰 기술 따위 준비할 수도 없다. 저 아저씨 또한 고작 지나가는 불량배 보스 정도가 아니라, 차대엽과 진소란이 팀을 짜고 싸워도 압도하긴커녕 열세에 몰리는 괴물이었다.

‘더럽게 어려운 초반 수문장.’

하지만 차대운은 하품이 나올 만큼 쉽게 검 몇 번 슥슥 휘둘러 쓰러뜨렸다.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몇 초 만에 끝나버린 대치였다. 아마 차대운에게는 남자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죽지 않도록 간격을 조절하는 쪽이 어려웠을 것이다.

“어른들이 어떻게 더럽게 놀든 상관은 없는데, 학업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되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순간, 천장에서 파편 하나가 차대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날아들던 파편은 저절로 반으로 갈라져 차대운이 서있는 자리 양쪽을 굴렀다. 차대운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도 조금만 시간이 있었으면 개입하지 않았을 텐데. 성장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니까. 하지만 엽이랑 만나는 게 너무 빨랐어. 조사력이 뛰어난 이 친구를 원망하라고.”

차대운이 웃으며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방금의 그것. 내 눈에는 그냥 위에서 떨어지던 파편이 스스로 반으로 갈라져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저것이야말로 차대운의 트레이드마크, 눈에 비치지도 않을 수준의 고속검이다. 방어가 거의 불가능한 신검의 특성과 맞물려,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검격은 차대운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는 순간 양단당하는 참격의 결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남자에게 다가간 차대운이 그의 손을 꽈악 쥐었다. 웃는 얼굴인 채, 악수한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경고한다.

“이래 봬도 OB거든. 세한기전은 건들지 마.”

그걸로 끝이었다. 나나 차대엽이 본거지를 한껏 휘저었다면 체면 문제 때문이라도 어떻게든 보복하려 들었겠지만, 쓰러진 호랑이귀 아저씨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폭풍이 자기 집을 휩쓸었다고 폭풍과 싸우려는 인간은 없다.

“잠깐 사진 한 장만요.”

“인증샷이야? 좋지.”

나는 차대운의 옆으로 걸어가, 쓰러져있는 호랑이 아저씨까지 잘 나오도록 증거사진용 셀카를 한 장 찍었다. 차대운 또한 찰칵 신호에 맞춰 나와 함께 브이사인을 들었다.

수많은 중상자들과 박살난 아지트를 남기고, 나와 차대운은 밖으로 나왔다. 나는 데려다주겠다는 차대운의 말을 듣고 조수석에 앉았다. 웃는 얼굴이지만 거부를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무서운데. 나는 자신을 강하게 다잡았다.

“사실 너랑은 한 번 만나보고 싶었지. 엽이는 말이 없어서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첫 주부터 재밌는 에피소드가 줄줄이 써있더라고. 감사를 표해두고 싶네.”

“아니, 제가 고맙죠.”

실제로 차대엽은 그냥 날 도와줄 뿐이고, 필요해서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 건 내 쪽이었다. 차대운은 그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동생의 성장을 바라는 이 남자는, 차대엽을 온갖 사건에 끌어들여달라 부탁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차대엽 쪽이 아니라 내 쪽을 도와주러 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 이상, 다른 조무래기들은 다 차대엽의 경험치통일 뿐이니까. 실전에서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검귀의 감각은 명확해지며 성장한다.

“그건 그렇고, 네가 보내준 이거. 꽤··· 아니, 기간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될 정도로 세세하던데. 딱히 입학 전부터 저 패거리랑 연이 있어 보이지는 않고. 조사 계통 능력인가?”

차대운이 옆에 둔 서류뭉치를 집어들며 말했다.

차대엽은 매일 학교애서 있었던 일을 본가의 가족에게 편지로 부쳐 보내는 효자였다. 마물의 씨앗을 발견했다는 일과, 주모자를 박살내려 한다는 것 또한 형에게 솔직하게 전했겠지. 나는 거기에 몇 가지 내용을 붙여 보냈을 뿐이다.

뒷배를 봐주는 조직의 실체와 본거지, 우두머리인 남자의 정보 등을 모조리. 받는 이는 그대로, 보내는 이만 내 이름으로 해서 옆에 첨부했다. 어렸던 차대엽이 동네 불량배들을 쥐어패던 것과 달리, 이번 건은 정말 제대로 된 폭력조직이 뒤에 얽힌 일이었다. 막 입학한 차대엽에게는 아직 이르다.

생각대로 바로 다음 날 내 핸드폰에 연락이 왔다. 너희로는 역부족이니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었다. 한 번 차대엽이 고집을 부리면 말이 안 통하게 된다는 걸 차대운 또한 알고 있었다. 대신 말이 통하는 나와 선수를 치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긴 했는데. 다시 봐도 이 남자는 너무 세다. 이런 걸 어떻게 이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침묵을 불편함으로 이해했는지, 차대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추궁하려던 건 아니고. 시간 있으면 주말에 엽이랑 같이 집에라도 놀러 와. 어머니도 너 한 번 보고 싶대.”

차대운은 자신의 명함을 내게 건네주었다. 세한의 캠퍼스 앞에서 내린 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차대엽에게 아까 찍은 사진을 전송했다. 벌써 다 끝났지롱. 하는 메세지는 덤이었다.

곧바로, 차대엽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푸하핫 웃어제끼며 전화를 받고 걸어갔다.

* * *

다음 날. 나는 1학년 건물의 옥상에 앉아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 해야 되나? 배은호 선배.”

“······.”

“선배는 이쪽 뒷조사 많이 했을 텐데 이렇게 얼굴 보니 반갑죠? 나 보고 싶다고 납치까지 하려고 했잖아.”

내가 앉은 곳은 옆에 놓여있는 벤치가 아니었다. 바닥에 똑바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는 선배의 등이 위에 앉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담배연기를 연상시키는 거무튀튀한 잿빛 머리카락에 고양이 비슷한 도톰한 귀가 두 개 나있다.

산군 혼혈이자 호랑이굴의 후계자인 2학년생 배은호였다.

나는 고개를 처박은 선배의 머리 앞에, 쥐어서 박살낸 마물의 씨앗을 몇 개 튕겼다. 보지 않아도 눈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난 자판기에서 뽑은 콜라를 꿀꺽꿀꺽 마셨다.

“어제, 그쪽 큰집에 들렀다 온 건 알죠? 입은 열지 말고. 고개 끄덕이거나 옆으로 젓거나 해서 예 아니오 하세요.”

내가 말하자마자 호랑이 선배님이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한 번만. 내가 말하자 곧바로 선배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엎드린 선배의 이마에선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내 체중을 버티느라 그런 게 아니라, 순수한 식은땀이었다.

“이제부터 반말할 건데, 알겠으면 고개 두 번 끄덕.”

순순히 고개를 두 번 끄덕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일이 커져봐야 씨앗 몇 개를 선도부에 들키고 끝이라 생각했겠지만, 이미 그런 영역의 문제가 아니란 걸 이해했을 것이다. 뒷배를 봐주던 아버지의 조직이 하룻밤에 반 괴멸을 당했으니.

“그쪽이 보낸 인간들 때문에 친구가 다칠 뻔 했거든. 잘못했으면 팔다리 하나는 부러졌겠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똑같이 선배님 팔다리를 부러뜨려야 하나?”

아마 그 정도로 끝나면 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인간은 이미 반항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고, 내가 입 한 마디만 뻥긋하면 퇴학은 물론 아버지 조직까지 세한의 적으로 찍혀버릴 테니. 나는 손에 든 콜라캔을 저편으로 휙 던졌다.

영 다른 곳으로 날아가던 콜라캔을 염동력으로 한 번 더 튕겨내 옥상 쓰레기통에 깔끔히 넣는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바닥에 엎드려있는 선배 쪽을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맞다. 선배 집 심부름 센터 같은 거 한다며?”

나는 핸드폰을 툭 바닥에 던졌다. 화면에 떠있는 건 나와 차대운이 호랑이굴을 박살내고서 브이자를 내밀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번에는 몸에 느껴질 정도로 선배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나는 무릎 사이에 양손을 모은 채 선배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자. 선배는 이제부터 내가 부탁하면 누구 뒷조사도 좀 하고, 사람 몇 명 필요하다고 하면 인력도 좀 빌려주고 하는 거야. 주변엔 대충 아끼는 동생이라고 말해놓고. 괜히 귀찮은 놈들이 시비 안 걸게. 머리 좋으니 알아들었지?”

즉 그냥 까라면 까는 절대복종을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고개를 저었다간 이 사람은 퇴학에 집안까지 거덜날 테니 선택지가 없었다. 원래는 이럴 일 없도록 절대 물증이 남지 않게 수를 써뒀겠지만, 상대가 나빴던 걸 어쩌겠는가.

“좋아. 일어나서 옥상 문 나가면 친구인 척해.”

나는 선배의 등에서 일어나 옥상을 내려왔다.

나는 지금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학교 안에 마음대로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부하 한 명이 생긴 건 나쁘지 않다. 2학년 건물에서 돌아다닐 명분도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좋은 건, 퀘스트를 완료해 크레딧 부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선배와 복도에서 악수했다.

* * *

복도를 지나가던 자세빈은 눈썹을 찌푸렸다.

저쪽에서 같은 반 녀석이 누군가와 뭐라 얘기하며 악수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서있는 여자는 알고 있다. 질 나쁜 패거리를 끌고 다닌다고 소문이 난 2학년생이었다. 집안이 조직을 이끌고 있어, 벌써부터 자기 파벌을 만들기 시작했다던가.

문제는 다른 한쪽의 학생이었다. 수업에서 받은 귀중한 내단을 자신에게 팔겠다고 한, 또한 세한의 학식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다는 그 녀석이었다. 저번에 사소한 말실수를 한 것도 있어 조금 신경쓰고 있었는데.

저 여자는 한 마디로 말해 깡패 집안의 딸이다. 차석으로 들어온 우수한 학생이지만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는 송한솔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얼굴로 악수하고 있는 선배. 척 보기만 해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명백했다.

‘그렇게까지 돈이 궁하다고···?’

이름이 호랑이굴이라고 했던가. 산군 혼혈이 우두머리를 잡고 있는 조직. 졸부처럼 돈을 뿌리고 다니지만, 아랫사람을 쓰다 버리는 말 취급 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약을 취급한다는 소문까지 있다. 자세빈은 눈썹을 찌푸렸다.

‘어이가 없군.’

송한솔은 세한 차석이란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긴 놈이 저런 하찮은 조직 아래에 들어가는 건 자세빈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럴 바에 차라리 자기 밑에 들어오는 게 백 배는 이득이란 생각이었다.

성큼성큼 걸어간 자세빈이 악수하고 있는 두 사람 뒤에 섰다. 자세빈을 마주본 2학년생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자신이 마왕의 아들이라곤 하지만, 눈을 마주치자마자 저렇게 땀을 흘리다니. 그릇이 작은 것에도 정도가 있다.

진심으로 이딴 것 아래에서 일하려 했던 건가?

“길. 막지 말고 꺼져.”

일갈하자마자 선배는 고개를 숙이고 어딘가로 도망갔다. 돌아본 송한솔은 설마 방금 얘기 들었나, 하는 한심한 상판데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빈이 짜증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내단. 언제 팔 거냐.”

< 담민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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