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민우 (2) >
숙소로 돌아온 나는 책상에 앉아 스읍 숨을 들이켰다. 앞머리를 만지는 얼굴 앞에는 익숙한 알림창이 떠있었다.
<퀘스트 완료 : 호랑이굴의 흉행을 막아냈습니다.>
<추가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사전 저지 : 3,000 Credit을 획득합니다.>
<완전한 굴종 : 2,000 Credit을 획득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렸다.
너무 잘 풀려서 뭔가 잘못됐나 걱정까지 들 지경이었다. 크레딧도 왕창 벌고, 차대운과의 연결고리도 만들어냈고, 필요할 때 일 시킬 수 있는 부하도 하나 생겼다. 무엇보다 고취되는 점은 드디어 시스템 접근 권한이 올랐다는 것이었다.
[사용자 권한 인증에 성공하였습니다.]
[동기화를 완료했습니다. 현재 시스템 접근 권한 레벨은 2, 개발자(Developer)입니다. 추가 기능을 개방합니다.]
“좋아.”
나는 꽉 주먹을 쥐었다. 접근 권한이 0레벨인 손님에서 1레벨인 사용자로 올랐을 땐, 염력이라는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2레벨이 되었으니 더 이상 다른 초능력이 보이지 않던 마인드맵 확장의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먼저 마인드맵 확장을 열어보니, 과연 내 예상대로 새로운 항목이 나타나있었다. 하지만 익힐 수 있는 새로운 초능력이 나타난 건 아니었다. 마인드맵 확장의 맨 끝에 생겨나있는 것은, 그보다 전에 선택해야 할 갈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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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 개척>
당신의 정신 지도는 분기점에 다다랐습니다. 앞에 펼쳐져있는 세 갈래 길 중, 정신적 능력을 확장할 방향을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이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선 상위 권한을 포기하고, 마인드맵을 완전히 초기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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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이네.’
척 봐도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전직 시스템과 비슷했다. 한 쪽을 선택했다 해서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되돌리기 위해선 능력 자체를 완전히 초기화해야만 한다. 최악의 경우 다시는 염력을 얻게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알림창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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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 에스퍼(High esper)
어느 한곳에 특화되지 않고 순수한 염력과 초지각을 발달시킵니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대성하기 힘들지만 만능입니다. 전통적 초능력자가 하는 일 대부분이 가능합니다.
(예시 능력 : 염동력 세공, 초집중, 염력 증폭)
2. 맨서(Mancer)
외부와 감응해 여러 가지 초상적인 현상을 일으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불꽃을 일으키거나, 전자기력을 조작하는 등의 형태로 정신의 길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예시 능력 : 발화, 전자기 조작, 유수 조작 등)
3. 파라노말(Paranormal)
자신의 잠재력에 기반한 이능을 개발시킵니다. 극도로 한정된 용도지만 자신의 정신성이 구체화된 유일한 능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 길로 확장을 시도할 시, 특화의 영향으로 통상적인 염력이나 초지각은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예시 능력 : 동물화, 빙의, 생체 활성, 시간 조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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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스윽 읽고, 내가 놓친 점이 있는지 한 번 더 정독한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뭐, 이건 생각할 것도 없네.”
우선 두 번째 선택은 볼 것도 없이 폐기였다. 불꽃을 만들어내니 바람을 일으키니. 결국 마법 같은 걸 쓰는 화력 지향이란 말인데, 그런 부분에서 마력을 펑펑 쓰는 혼혈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일 혼혈들과 비등한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해도, 고작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첫 번째랑 세 번째 중에서 고민해야 할 텐데. 세 번째는 이른바 몰빵, 진짜 특수한 능력 하나만 가지고 나머지는 전부 포기하는 방향이었다. 다른 애들도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면 고려라도 해보겠는데 나는 염동력 없이 여기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꽝이 나오면 죽어야 한다.
소거법으로 남는 건 첫 번째 선택인 하이 에스퍼 뿐. 역시 이럴 땐 무난하면서도 왕도인 선택을 하는 게 맞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 선택을 눌러 마인드맵의 개척을 시도했고, 내 정신에 있던 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이 에스퍼의 길을 통해 마인드맵 확장을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상위 초능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가득 찬 물이 출렁이는 감각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나는 하이 에스퍼가 되었다. 그것만으로 정신이 가용할 수 있는 염력의 양이 배는 불어난 것이 느껴졌다.
슬쩍, 방 안에서 나를 띄워본다. 둥실 하고 역장에 감싸인 내 몸이 바닥에서 50cm 정도 떠올랐다. 이전까지는 발밑에 순간적인 발판을 계속해서 만드는 잡기술에 의존해야 했지만, 이제 급할 때는 이렇게 염력의 소모를 각오하고 내 몸 자체를 부유시킬 수도 있었다. 상당히 인상적인 발전이었다.
나는 떠오른 상태를 유지한 채로 마인드맵 확장 칸을 손가락으로 조작했다. 다른 작업을 하면서 내 몸을 계속 띄우고 있는 건 두 쪽 모두에 집중이 필요해 꽤 어려운 일이었지만, 제대로 싸울 수 있으려면 꼭 필요한 훈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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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 확장 : 염동력 Lv.4>
- 선행 능력 : 염동력 Lv.3
- 필요 크레딧 : 4,500 Credit
<마인드맵 확장 : 초감각 Lv.3>
- 선행 능력 : 초감각 Lv.2
- 필요 크레딧 : 3,000 Credit
<마인드맵 확장 : 사이코메트리 Lv.4>
- 선행 능력 : 사이코메트리 Lv.3
- 필요 크레딧 : 3,000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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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레딧을 다 털어서 기본기들을 전부 올리기 시작했다. 염력이 훨씬 많아진 지금, 나는 이 능력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염력 자체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지만 활용법이 투박하다. 지금 가진 능력들을 완전히 개발한 뒤 상위 능력에 손을 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슬슬 싸워 볼만한가?’
일단 도약이 아니라 공중에 부유할 수 있다는 건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는 놈들한텐 제공권을 쥘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 능력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거란 특수성을 감안하면, 차대엽이나 진소란 같은 에이스 수준은 무리더라도 같은 반의 평범한 놈들과는 맞상대가 가능할 법도 하다 싶었다. 어차피 끝까지 내 능력을 숨기면서 가는 것도 무리가 있고.
* * *
마왕이란, 한 마디로 말해 폭력의 기강을 잡는 자였다.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건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등록된 기사들 뿐. 기사 자격을 소지하지 않은 길거리의 성골들은, 하나하나가 걸어다니는 흉기이고 폭탄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민간인을 수십 명 학살할 수 있는 이들. 그들 사이의 질서를 유지하고, 크고 작은 소동들을 조정하는 게 바로 마왕이었다.
몽마의 왕이라는 의미에서 마왕이 아니라, 마력으로 다투는 자들의 왕이기에 마왕이다. 길거리의 거친 혼혈들은 결코 누군가의 밑에 순순히 복종할 인간들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모두가 마왕에게 있는 힘과 책무에 경의를 표했다.
즉 폭력의 세계의 맹주. 딱히 혈연으로 계승되는 자리는 아니지만, 가문이 쌓아온 위업이나 휘하 집단 등의 사정으로 지금은 거의 몽마 일족에서 선출되는 게 전통이 되어있었다.
그것은 이제 와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당연한 일이었다. 자세빈의 까마득한 조상님에 해당하는 학장, 천년서생이 아직 그 이름이 아니라 ‘혹한의 마왕’이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마왕의 자리는 몽마의 직계 혈통이 잇고 있었다.
자세빈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고, 자신이 마왕의 아들이라 떠들고 다니는 데에 부끄러움은커녕 자긍심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마왕의 아들인 것이 문제였다.
전후관계가 반대였다. 마왕의 아들이라면, 마왕의 아들이란 이유로 마왕의 자리를 이어선 안 된다. 마왕의 자리를 잇기 걸맞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왕의 아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세빈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왔다.
모르는 인간에게 목숨이 노려져 심장이 떨릴 때도, 누군가의 적이 되어 기쁘다고 웃어야 한다. 그는 마왕의 아들이니까. 싸우지 않는 것에 능력이 특화된 몽마이면서도, 정면 승부로 다른 혼혈을 압도해야 한다. 그는 마왕의 아들이니까.
어제, 내단을 언제 파느냐고 묻는 것과 동시에 송한솔의 의중을 떠보았다. 배은호라고 했던가. 저런 여자의 패거리보다는 자신의 파벌이 훨씬 유망하며,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래서 너도 나 도와주게?’
‘그래. 걸맞은 대가만 지불한다면 말이지.’
‘근데 부하 숫자가 적잖아. 세 명으로 뭘 하겠냐.’
송한솔은 그렇게 시큰둥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자세빈은 이를 꽉 깨물었다. 세 명이라는 숫자는 자신의 눈이 가진 높은 기준을 의미했다. 그걸 같잖은 조무래기들 뿐인 오합지졸보다 못하다 폄하하다니,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리고 세 명이 아니다. 송한솔이 들어오면 네 명이다.
“오늘 수업은 대련이다. 연습전 희망자는···.”
넓게 펼쳐진 강당, 한시혁 교수가 대련 수업의 안내와 함께 이런저런 안전 수칙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빈의 귀에 그런 건 들어오지 않았다. 단 세 명 뿐인 자신의 파벌이, 이 교실의 최대 세력이자 가공할 힘을 지닌 집단이라는 걸 저 불쌍한 자식에게 깨닫게 해주겠단 생각 뿐이었다.
가볍게 연습 대련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하자, 평소와 달리 수업에 나서기 싫어하는 송한솔이 손을 들었다. 씨익 웃은 자세빈은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 자신의 옆에 가만히 서있던 박쥐 혼혈 소꿉친구의 등을 찰싹 때렸다.
“아 왜···.”
“널 무시한 놈한테 본때를 보여줘라.”
자세빈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부하에게 참전을 지시했다.
< 담민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