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중매 (3) >
나는 새빨개진 볼을 손바닥으로 식히고 있었다. 이건 불공평했다. 똑같이 꼬집었지만 나와 달리 혼혈인 유매의 손가락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로 아파서 울 뻔했다. 저편의 책장에서 겨우 훌쩍어기를 그친 유매가 자기 이야기를 했다.
“···많은 어른들이 움직이고, 언니를 위해 훈련과 시설이 새로 짜여졌어. 거기에 대고 그냥 다시 내가 할래요 하고 끼어들 만큼 어린 나도 눈치가 없지는 않았던 거야.”
“그냥 힘들어서 좀 징징댔다 하면 되지.”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추임새를 넣자, 아직 눈이 붉은 유매가 죽일 듯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나는 안 끼어들 테니 이야기 계속 해주십사 항복 자세를 취했다. 차대엽은 영문을 모르는 채 난장판이 된 도서실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정말 후회하지 않을지, 끝까지 훈련을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었고. 역시 내가 계속 하겠다고 했다가 또 나는 못하겠다 해버리면 농담이 아니니까.”
한 마디로 말해 쫄려서 도망쳤다. 그리고 마녀골의 기대는 유매의 언니에게 옮겨갔다. 그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나도 자신 없으면 다 내팽개치고 냅다 튀는 게 특기였다.
유매가 품에 든 책을 한 권씩 다시 책장에 꽂으며 이야기했다. 한 살 터울인 언니와는 원래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만날 수 없었다. 마녀골의 집회날, 노파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저택 앞에 둘이 앉아 소꿉장난을 하곤 했었다.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때의 몇 시간 정도 뿐이었지만,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다음에 만날 날이 기다려져 어쩔 줄 몰랐다. 서로의 모습이 담긴 펜던트를 선물로 교환하고, 언젠가는 매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설이 유매의 자리에 들어가고부터, 유설은 약속장소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유매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사실은 마음 편해보이는 그 사람을 질투하고 있었어. 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음껏 잘 수 있어도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어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
유매가 마지막 책을 책장에 꽂아넣었다. 책등에 얹은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대단히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생각하는 차대엽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무언가를 참아내듯 목을 꿀꺽한 유매가 말했다.
“그 사람도 나랑 똑같았던 거야. 만날 때마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속으론 나를 질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 잠깐 동안 속상했다가, 이내 미움으로 바뀌었지.”
“야, 그건 척 봐도 네 언니가···.”
“뭐?”
고개를 돌린 유매가 나를 쳐다봤다.
“···아니, 내가 말할 건 아니다.”
나는 볼을 긁적였다. 뭐라고 할까. 주제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얘기만 듣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좀 그렇고.
결국 유매 말은 자기 언니가 괜히 신경 쓰이고 짜증나니까 이기고 싶다는 것이다. 편을 들어주겠다 말한 이상 거기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선전포고도 해버린 상태고.
‘일단 이기면 어떻게든 돼.’
소리를 빽 치다 연을 끊어버리든, 제대로 이야기하고 화해하든. 그것은 유매와 유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아니 그야 화해하는 편이 좋기는 할 텐데, 남의 가정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일 안 좋은 형태는 지금처럼 서로 말도 안 하고 신경 쓰면서 응어리만 쌓이는 것이다.
나는 미간을 꼬집었다. 떠올린 건 혈통시대의 시나리오였다. 유설에게 일방적으로 패배당한 유매는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게 되고, 유설은 아예 말도 걸지 못할 만큼 동생에게 미움받는다. 기다리는 건 최악의 결말이다.
초조해하던 유설은 결국 동생에게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매를 구해주고 눈앞에서 죽는다. 저 유매조차 고개를 돌려버릴 만큼 처참한 몰골로.
‘그건 어떻게든 막아야지.’
2학년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뽑히는 강력한 조력자인 유설 선배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아니, 퀘스트고 뭐고 이전에 아는 사람이 그런 꼴을 당하는 건 찝찝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뒤에 완전히 망가지는 유매도 무서워서 볼 엄두가 안 나고.
이미 상황은 대충 만들어졌다. 두 자매간의 싸움은 이를 테면 유매가 마력중재를 뚫을 수 있냐 없냐의 싸움이다. 뜨개질에만 성공하면 마녀골의 원조 최종병기인 유매가 유설을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유매는 이미 성공했다.
흥분한 상태에서 반쯤 기세를 타 해낸 것이다, 하는 사정 따윈 상관없었다. 유매는 의심할 여지 없는 천재였다. 특히 마력을 다룬다는 것에 있어선 천재라는 말조차도 부족했다. 한 번이라도 성공해냈다면 그 감각을 재현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차대엽과 유매를 데리고 도서실에서 나왔다.
유매가 지금 뜨개질을 어느 정도로 실제 전투에 활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차대엽은 연습 상대가 되는 것을 기쁘게 승낙했다. 화분 사건 이후로 내심 유매와 다시 한 번 붙어보는 걸 원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두 사람의 격돌을 지켜본 나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냥 바로 싸울까?”
* * *
며칠 뒤, 나는 대련장 한쪽에 서서 머리를 긁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될 일이었나···.”
내가 서있는 것은 1학년 단련실에 딸려있는 대련 연습장이 아니라, 조금 과장을 보태 운동장 만한 크기를 자랑하는 돔 형태의 건물이었다. 순위전 중에서도 준결승 이상부터나 사용하는, 전교생이 앉아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이다.
하기야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진소란과 금예린이 매일 벌이는 것 같은 단순한 친선전과는 다르다. 그녀들이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 해봐야 아직은 유망주일 뿐, 유설의 경우엔 이미 자신의 강함을 증명한 2학년의 빅네임이었다.
지난 학기 순위전의 마감 성적은 2위. 즉 세한 전체를 통틀어 같은 학년에서 유설을 이길 수 있는 건 한 명 뿐, 나머지는 전부 그녀 아래라는 이야기였다. 동급생들에게 눈의 여왕이라 두려움받는 마녀. 명실상부한 2학년 에이스였다.
그런 유설에게 막 입학한 신입생이자 동생인 유매가 도전했다. 학기초 캠퍼스의 화제가 되기엔 충분하고도 넘치는 해프닝이었다. 사실 모든 걸 떠나서 마녀 혼혈 두 명의 싸움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든 견학해두고 싶겠지.
관중석은 2학년과 3학년을 포함해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있었다. 선도부장인 민유리나 배은호 선배 등, 내가 알고 있는 얼굴들도 있었다. 그리고 위쪽의 감독석에는 차우진을 비롯한 다른 교수진들. 그리고 학장까지 직접 와서 앉아있었다. 1학년은 당연히 거의 전원이 참석이었다.
아마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마구 짓밟아댄 유매가 패배하는 걸 보고 싶어서 온 녀석들, 같은 1학년으로서 자존심을 걸고 지지 말라 응원하러 온 녀석들, 단순히 자신의 잠재적 경쟁상대를 분석하려고 찾아온 녀석들.
“대단한 열기군. 순위전도 아닌 단순한 친선전에.”
심판으로 서있는 한시혁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냥 조용히 둘이 싸우게 만들고 끝내려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일이 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한시혁 교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녀 혼혈끼리의 싸움을 감당하려면 시합장을 바꿔야한다는 충고에 넘어갔다.
신청서를 받은 학장은 재미있을 것 같다며 당연히 승인해주었고, 대형 시합장 정문에 당당히 붙은 일정 프린트에 전교생이 떠들다가 이렇게 몰려든 것이다. 자리에 앉은 인간들 중엔 아예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흑패를 받았다지?”
이쪽에 눈길을 주는 한시혁의 말에, 나는 슬쩍 안주머니에서 흑패를 꺼냈다. 내 흑패를 확인한 한시혁이 놀랐다.
“허. 여기저기서 난리 피는 걸 보니 그럴 것 같긴 했다만. 1학년 1학기에 흑패 소유자가 된 놈은 또 처음이군.”
후배라고 불러야 하나, 하고 한시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 흑패를 보는 한시혁의 눈은 어떤 그리움에 젖어있었다. 학창시절에 막 나가던 기억이라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난 2학년 때였지. 교수가 된 지금은 말하기 부끄럽다만··· 단련하겠다고 불량배들이랑 치고 박다 보니 어느새 손에 들려있더군. 꽤 도움이 되긴 한다. 너한테도 추천하지.”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한시혁 이 양반은 정의감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뒤탈 없이 팰 수 있는 연습 상대가 필요해서 온갖 불량배들을 그렇게 들쑤시고 다닌 거였다. 어떤 의미로는 불량배보다 이 남자가 더 무서웠다.
그리고 한시혁이 자리에 돌아가고, 대기실에서 뚜벅뚜벅 유매가 걸어나왔다. 유매의 상태는 명백하게 이상했다.
“송한솔···.”
“뭐야, 안색이 창백해져서.”
나는 당장 다가가 유매의 얼굴을 보았다. 유매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동자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모인 관중들이 역효과가 된 건지, 아니면 원래 실전에 약한 건지. 지금 유매를 지배하고 있는 건 실패해버린 자신의 이미지였다.
“나. 져버리면 어떡하지···?”
그렇게 언니를 박살내는 것만 생각하더니, 막상 눈앞에 오니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 그거냐. 나는 화가 난 얼굴로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혼란해하는 유매의 볼따구를 쭈욱 잡아당겼다.
놀란 유매가 손 떼라는 듯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어, 어하으 어야!”
“지면 지는 거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이번에 져도 어차피 결국엔 네가 이겨. 옆에 천재 코치가 붙어있으니까.”
<마인드맵 확장 : 텔레파시 Lv.4>
나는 접촉한 손을 통해 내 머릿속의 이미지를 유매에게 박아넣었다. 깔끔하게 이기고 승리 기념으로 비싼 식당에서 저녁을 쏘는 유매의 모습이었다. 이기면 밥 쏘는 거다. 이기면 밥 쏘는 거다. 이내 유매는 조금쯤 편안해진 듯 싶었다.
“오케이?”
뺨에서 손을 놓자 유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보지 않고 걷는 유매는 평소처럼 당당하게 등을 펴고 있었다.
시합장 맞은편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던 유설이 고개를 들었다. 앞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아마도 몇 년 만일 것이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양측, 준비해라.”
한시혁이 입을 열자, 앞으로 한 걸음 나선 두 사람이 같은 자세를 취했다. 손으로 머리 한쪽에 달린 모자를 잡고. 9, 8, 7···. 1, 2, 3···. 조용히 입술을 달싹이며 잠든 모자를 깨우기 위해 감응시킬 마력의 주파수를 조심스레 맞춘다.
“저녁놀.”
“아침해.”
서로 자신의 분신, 모자령의 이름을 호명했다. 머리 한쪽에 달려있던 작은 모자를 휙 돌리자, 유매의 고깔이, 유설의 왕관이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커다랗게 형태를 변화시켰다. 큰 고깔을 푹 눌러쓴 유매의 눈가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왕관에 박힌 커다란 보석과 고깔에 생긴 커다란 단추는, 마치 살아있는 모자의 눈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모자령과 감각을 연동하는 것을 통해, 마녀는 모든 방해물을 무시하고 오직 마력의 흐름만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다.
‘적외선 카메라 비슷한 감각인가.’
그렇기에 속도와 기습으로 승부를 내는 타입은 마녀에게 힘을 쓸 수 없었다. 어떤 기술을 사용하려고 하든, 내부의 마력이 비쳐보이는 이상 한 박자 빠르게 대처당해버린다.
모자령의 능력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녀는 모자를 쓰는 것으로 그들이 축적해온 지식체계에 접속할 수 있다. 마녀들 스스로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 모자령의 잠재능력에 따라 접속할 수 있는 전통의 넓이나 깊이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유매한테는 그런 게 없지.’
유매의 모자령인 저녁놀은 넓이도 깊이도 한계가 없었다. 다시 말해 마력만 있으면 마녀들이 쌓아온 모든 비의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내 마인드맵 확장으로 비유하자면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종류의 초능력이 해금되어 있는 것이다.
‘아기 때부터 단련시켜야 한다 미칠 만도 해.’
마녀들의 최종병기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재능이었다. 유매가 가볍게 팔을 한 번 휘두르자, 마력은 바람이 되어 폭풍같은 기세로 유설을 집어삼키기 위해 쇄도했다. 유설이 손바닥을 들자, 폭풍은 방향을 꺾어 위쪽에 날아갔다.
상승하던 폭풍은 그대로 천장에 부딪힌 듯했다. 쿠우우웅! 충격은 결계가 흡수했지만, 폭풍과 충돌한 여파가 건물 내부를 진동시키며 사방에 흩어졌다. 그러한 주변의 마력 주도권 싸움이, 가만히 서있는 둘 사이에서 몇 번이고 이어졌다.
“저 정도라고···?”
관중석에 앉아있는 면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지간한 혼혈들과는 싸움의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이것도 저 둘에겐 딱히 공격 따위가 아니라 인사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력통치. 마녀의 싸움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
마녀들은 자기 몸 안만이 아니라 주변에 흐르는 마력도 조작한다. 이것에 능통하면 상대방의 마력 공격을 도중에 꺾어버리거나, 상대방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마녀 혼혈이 대부분의 혼혈에 대한 카운터라 불리는 이유였다.
마력통치를 무시하고 마녀에게 상성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몸뚱아리의 튼튼함으로 우직하게 전진하는 이들이나, 애초에 기본적인 스펙 자체가 규격외인 용족 정도다.
그리고 마녀끼리 싸우게 될 경우, 이런 식으로 중립 마력의 주도권 싸움을 하다 이겨서 통치하는 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쥐게 된다. 하지만 둘 모두 마력통치의 완성도는 완벽했다. 결국 주변에 마력이 남지 않을 때까지 폭풍이 몰아친다.
남은 것은 서로 몸 안에 가지고 있는 마력 뿐.
“인사가 끝났군.”
시합장이 조용해졌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세한의 두 마녀를 지켜보았다. 유매와 유설에 대해 모르는 녀석들은 드디어 난리가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었다. 저 두 자매는 양쪽 다 마력통치를 넘어선 것을 갖고 있다.
유매는 당연하게 마력독재를 사용했다. 하지만 상대 또한 마력 조작의 전문가. 외부에서 자기 몸 안의 마력을 억지로 조작하려는 걸 막아내는 정도는 간단했다. 같은 마녀의 마력에 간섭하기 위해선 일방적인 수준의 격차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주 잠깐 마력독재에 저항하느라 생긴 틈이면 충분했다. 유매는 한쪽 손으로 세 자루 폭열의 창을 만들어내, 자연스레 주문 발현의 속도 싸움에서 선공을 차지했다.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창들을 날려보낸다. 화력에 맞지 않는 주문 발현 속도에 모두가 놀랐지만, 유설 만큼은 이 정도의 속도는 당연히 상정했다는 듯 손바닥을 폈다.
순간, 붉게 빛나던 창들이 새하얀 가루로 터져나갔다.
“마력중재···.”
남의 마력에 먼저 싸움을 거는 유매의 마력독재와는 정반대로, 남이 건 싸움을 거절하는 평화주의자의 능력.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마력적인 투사체를 한 순간에 분해해 증발시키는, 유매조차 따라할 수 없는 유설만의 혈통능력이었다.
그렇게 흩어져 떨어지던 빛의 가루는, 유설이 손을 돌리는 것과 함께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일제히 냉기를 머금었다. 몇 천 몇 만 번의 반복 훈련으로 체화된 반사적인 전환. 그대로 휘몰아치는 눈바람이 유매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매는 아랑곳하지 않고 냉기에서 몸을 지키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순식간에 장전된 폭열의 창. 그 뒤로 계속 이어진 것은 방금 있었던 일의 반복이었다. 창을 쏜다. 눈이 내린다. 창을 쏜다. 눈이 내린다. 창을 쏜다. 눈이 내린다.
서로 몸에 지닌 마력만으로 싸우게 된 뒤. 유매가 주문을 발할 때마다, 유설이 마력중재로 상쇄한 다음 거기에 자신의 마력을 얹는다. 이것이 유매의 필패 공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격하는 유매만 일방적인 손해를 보게 된다.
유설의 무서움을 아는 2학년생들이 뒤에서 쑥덕였다.
“그냥 슬슬 항복하지.”
“계속할 건가···?”
상쇄하는 데에도 한계는 있을 터. 몇 번이고 쏘다 보면 마력중재를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가 찾아올 것이다. 그런 추측으로 미련하게 공격을 계속하던 2학년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박살이 났다. 마력중재는 거의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
형세는 절망적이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싸움이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여기까지, 완벽하게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유매가 점점 더 빠르게 폭열의 창을 쏘아댔다. 초조함의 구현화처럼 더욱 빠르게 쏘아지는 창들을, 유설은 한 자루도 빠짐없이 눈꽃으로 바꾸었다. 모두가 싸움의 결말을 이해했다. 유매는 꼴사납게 패배할 것이다.
그리고 거의 괴로워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유설이 유매를 쳐다본 한 순간. 기묘하게 비틀린 창 하나가 날아갔다. 유설이 방심하지 않고 그것 또한 즉시 분해해버렸을 때에.
“깜짝 상자 등장.”
나는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안에 감싸여있던 불꽃이 증발했다. 유설은 놀라서 급히 마력으로 방어막을 쳤지만, 충격을 다 지우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고깔을 쓴 유매는 두 번째 뜨개질을 장전했다. 틈을 주지 않고 사출.
당황한 유설이 재빨리 손바닥을 올려 창을 분해했고,
“펑.”
눈꽃 속에서 또 한 송이, 매화가 피어났다.
< 설중매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