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1/80)

60화

희림이 그 방면으로는 신경 쓸 것 없다며 저만 아는 웃음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오후를 기점으로 안온마을에 화투 금지령이 해제되었다는 것은, 굳이 새 회장님이 알 필요는 없는 사실이었다.

“다들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놀고 계실걸.”

“그런 거면 진작 말했어야지. 한 번 더 할 수,”

“쉬잇!”

희림이 자나 깨나 그쪽으로만 화살이 돌아가는 인하의 입을 막았다. 넌 도대체 무슨 애가, 가볍게 발을 굴렀지만 제 손 위로 씩 휘어지는 그의 눈에 가슴이 덜컹이고 말았다.

이런 쓸모없는 심장 같으니, 이젠 남을 욕할 처지도 못 되는 희림은 마지못해 따라 웃었다.

“……들어가. 얼른.”

“응, 그래야지.”

먼저 가보라며, 웬일로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면서도 희림은 막 덫에서 풀려난 토끼마냥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만큼 당했으면 이런 때 얼른 도망쳐버려야 하는데, 이미 눈이 삐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달밤의 맹수가 이렇게나 쓸쓸해 보이는 걸 보면.

“강인하 넌 왜 안 가? 달 보고 소원이라도 빌게?”

“…….”

결국 걸음을 떼지 못한 그녀가 머리 위로 커다란 보름달을 가리켰다. 달이야 늘 차오르고 진다지만 오늘따라 크기도 컸다. 이렇게 인하를 놓고 싶지 않은 미련이 담겨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넌? 소원 빌고 싶은 거 있어?”

“나는…… 뭐, 어린애도 아니고.”

“그래?”

“응. 유치하게 소원은 무슨. 난 원래 그런 거 안 믿거든.”

희림의 새침한 목소리에 인하는 묘한 미소로 답했다. 오늘은 마지막인가 했던 짓궂은 웃음이 다시 그녀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하긴, 너는 고상하니까 목련나무에나 매달아야지.”

“이잇.”

결국 희림이 가슴을 떠밀어내고서야 인하는 뒤로 물러났다. 그녀를 피한다기보다는,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보내기 힘들어 핑계를 찾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집에서 골목 끝까지, 그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백 번쯤 돌아본 인하가 사라지고야 희림은 천천히 고개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음…….”

오늘만 같기를.

기다린 듯 감은 눈 아래로 그녀의 붉은 입술이 보일 듯 말 듯 움직였다. 비록 인하 말처럼 흐드러진 목련나무 앞은 아니지만……. 가만, 그런데 내가 매달아야 한다는 것도 말을 했던가.

◇ ◆ ◇

청연에서 가장 봄이 만개하는 곳은 청연고의 아담한 중정이었다. 안 그래도 하얗고 큼지막한 꽃봉오리가 가득한 나뭇가지에 들뜬 소원들까지 군데군데 자리를 잡으면, 그 향기가 끝도 없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내게는 그 향기가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나의 소원이 저 가지 어디엔가 없다는 상실감보다는, 그 사실조차 알아서도 안 된다는 무력함이.

‘겨울’, 삭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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