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12화 (12/78)

〈 12화 〉 트라우마 (2)

* * *

난 분명…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서 무서워졌던…

어느새 난 소파에 앉아 홀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나 VR 게임을 하고 있었지 않았나?

홀로그램에선 나와 똑같은 모습인 테일리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적이지만 대단하군. 421번이나 죽고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어.’

‘그것도 얼마 못 갈 것 같습니다. 이제 멈춰야 합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흥미롭군.’

‘예?’

‘이제 정보는 필요 없다. 좀 더… 자극해봐.’

‘하지만…영웅인 테일리가 죽으면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겁니다..!’

‘아직도 모르겠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런 세부적인 스토리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조금 그렇네.

이 일은 단순히 게임 스토리가 아니니까.

물론 다른 세계의 일이라 그런지 딱히 별다른 느낌은 없지만.

TV에서 나오는 사건·사고도 우리는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무려 다른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니 무감각해진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거 같네.

‘제..발… 눈…은..’

그래도 보고만 있으려니 안타까웠다.

부디 편하게 갔기를 바라.

“끄…윽…끽.. 눈은…제발..”

갑자기 자리에서 쓰러져 뒹굴었다.

그녀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얘 뭔데 갑자기 왜 이럼??]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초코돈까스님의 1,000원 후원!

테일리님 테일리님

[뭔데]

[누가 빨리 얘들 불러]

“흡…흐흡.. 컥..”

하나밖에 없는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고 과호흡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컥컥거리고 있었다.

“그만…톱…톱은…. 왜..?”

[ㅁㅊ 방종 해야 하는 거 아님?]

[빨리 신고해]

[?]

[??????????]

“끄으윽…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미동도 없이 조용해졌다.

****

[님들 빨리 와야함 큰일남 님들 빨리 와야함 큰일남 님들 빨리 와야함 큰일남 님들 빨리 와야함 큰일남 님들 빨리 와야함 큰일남]

[매니저에 의해 메시지가 삭제됨]

[뭔데 갑자기 도배 심하네;]

[빨리 벤 ㄱㄱ]

[예지 죽는다고 빨리! 초야님!]

[??? 기지 뚫렸어?]

[뭔데 어떻게 들어왔누]

갑자기 심해진 도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얘들아! 멈춰! 갑자기 채팅창 왜 그래.”

예지가 죽어?

아까의 전투를 잠시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지가 진다는건 생각도 못하겠는데.

오늘 알게 된 사이였지만 예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프로 선수라도 데리고 와야하지 않을까?

[다른 애들 멀다고 시발]

[매니저에 의해 메시지가 삭제됨]

[멍초야아 예지한테 빨리 가자]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긴 한데…

다른 애들은 이번 전리품들 마을에 가서 정리하고 온다고 멀리 있는 상태였다.

“너희 별거 아니기만 해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급하다니까 빠르게 뛰어갔다.

[심문실에 있음]

[와;; 진짜 죽는 거 아님?]

[뭔데 얘 지병 있음?]

점점 심상치 않은 채팅들에 서둘러 심문실로 달려갔다.

[다시 발작함;]

“예지야!”

문을 쾅 하고 여니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바닥을 기고 있는 예지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왜? 이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그…극…ㄴ…ㅜ…ㄴ..”

“정신 차려!”

뺨을 두들겨보지만, 예지는 정신 차리지 못하고 난동을 피웠다.

잔뜩 충혈된 눈은 초점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얘 왜 이래? 누가 알려줘!”

[얘 트라우마 있는 거 같음;]

[갑자기 심문실에 들어오니 누가 어깨랑 눈 뽑는다고 발작함]

[야야야 숨 넘어가겠다 어어]

[ㅠㅠㅠㅠ]

“예지야! 야! 야!”

몸을 붙잡자 갑자기 확 안겨 오는 예지에게 깜짝 놀랐지만 다른 의도는 없어 보이기에 잠시 가만히 있었다.

분명 나보다 덩치가 클 텐데 왜 작게 느껴지는 걸까.

예지의 몸은 엄청나게 떨리고 있었다.

“무..무서워… 하지 마..”

“착하다. 괜찮아.”

조심스레 등을 다독여주니 다행히 떨림이 조금씩 잦아졌다.

훌쩍이며 점점 품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예지에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애처로워…

“언니야. 응?”

“응…”

한참을 그렇게 있으니 애들이 급하게 들어왔다.

다행이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좀 아쉬운 이 감정은 왜 일까?

****

예지를 직접 본 첫인상은… 귀엽다?

자신이 뒤에 있는지도 모르고 눈 밭에 몸을 던져 뒹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싱글벙글 순수하게 웃으며 눈 위를 구르는데 분명 동갑임에도 한참이나 더 어리게 느껴졌다.

얘가 정란이과인가?

들키지 않으려 간신히 웃음을 참았지만 이미 눈치챘는지 누운 채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본다.

저 키에 저만한 귀여움은 어쩔 거야.

외모는 진짜 이기적이다.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예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일으켜 세우면서 그녀의 어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너무 큰 상처였다.

자신의 주변에 이 정도로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지에게 실례니까.

예지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오니 정란이와 예화가 짓궂은 장난을 하길래 다른 곳으로 쫓아냈다. 오늘은 예지랑 같이 다니면서 친해져야겠다.

[저게 외모 설정 안 건든 거라고? ㄷㄷ]

[예지 진짜 예쁘네]

[그래도 우린 냥형이 최고야~]

[ㅋㅋㅋㅋ]

[예지는 냥지 안무서워하네]

“나 무서운 얼굴 아니라니까 확 진짜”

예지를 바라보니 예지는 PMC랑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유저인 줄 아는 건가?

진짜 게임 한 번도 안 해봤구나.

얘만 보면 진짜 웃게 되네.

채팅창에서 말해줬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예지의 얼굴을 찬찬히 감상하며 생각했다.

외모…설정.. 안 건드린 거 맞지..?

예지를 데리고 밭의 호박을 수확하며 평화로운 데이트를 즐겼다.

지금 나온 VR 게임들은 너무 전투로 쏠려있단 말이지.

이렇게 평화로운 힐링 게임 하나 만들어줘도 좋잖아?

그런 게임은 돈이 안 되나?

한쪽 팔로 호박을 들어 올려 건네주는 것을 받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전투보단 힐링 게임을 더 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건 스캐빈저 콜에서 대리 만족 해야 했다.

물론 FPS 좋아하니까 스캐빈저 콜을 접지는 않는다.

“ㅅ..려줘!!”

이 목소리는 예화 목소리다.

나무 벽에 올라가 머리만 빼꼼 내밀어 확인하니 예화가 정란이를 팔에 끼고 달리고 있었다.

태평하게 예화한테 실려서 오는 정란이의 얼굴을 보니 예화가 열 좀 받겠네.

수양이랑 초야 언니는 언제 오지?

“예지야.”

예지의 얼굴을 보니 잔뜩 흥분한 상태로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이런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

나무 벽에 설치된 무기 보관함에서 자동 소총을 꺼내서 예지에게 주려다가 망설였다.

얘 한쪽 팔 없어서 이런 총은 못 쏘지 않나?

권총은 약한데…흠…

털썩

뭐야?

뒤를 돌아보니 예지는 보이지 않았다.

“야! 뭐야!”

말도 안 하고 뛰어가는 예지를 말려보지만 들리지 않는지 숲속으로 훌쩍 사라지고 말았다.

와 달리기 진짜 빠르다.

“야! 정냥지! 문 열어!”

예화가 바닥에 정란이를 냅다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꾸엑.”

문을 열어주니 격발음과 동시에 벽에 탄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탕 탕 팅 푸슉

“으에엑. 나 죽었어!”

예화가 후다닥 들어오면서 문을 급하게 닫았다.

정란이는 죽었구나.

문을 닫자마자 탄환들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어! 뭐야! 정신없어!”

“와 근데 총소리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아.”

수양이랑 초야 언니 왔구나.

수양이랑 초야 언니가 합류하고 한참 교전하던 중 수양이가 총을 맞고 정란이의 옆으로 떨어졌다.

“구와악!”

“어, 왔어?”

“어이가 없어 진짜!”

아주 꼬맹이들끼리…

막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둘이서 사이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두두두 탕 탕

팅 팅 팅 팅

“아이고 맞아버렸다!”

교전이 점점 지속하면서 초야 언니가 한쪽 팔에 피격 됐는지 구급상자를 꺼내 치료하고 있었다.

그렇고 고전하던 중 폭발음과 함께 사라졌던 예지가 보였다.

스캐브 무리 속에서 춤추듯 총알을 피하며 단 한발도 허용하지 않고 스캐브를 밀치며 죽이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예지는 스캐브 무리 속에서 나비처럼 우아하고 느긋한 몸놀림으로 농락했다.

[와…]

[총알이 눈에 보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 사람 맞음?]

같은 사람이 맞나..?

사실 특수부대원이나 그런 쪽 아니야?

모든 스캐브를 처리하고 드럼통에 앉아 손으로 땀을 훔치는 예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앞으로 같이 게임을 하면 진짜 재미있겠다.

저 정도로 잘하면 나중에 랭크 모드 같이 돌려도 되는 거 아닐까?

나중에 꼬셔봐야겠다.

어느새 예지가 수양이랑 정란이를 한쪽 팔로 끌어안아 데리고 왔다.

전리품을 정리하며 나와 예화, 정란이, 수양이랑 도시에 가서 전리품을 처분하기로 했다.

초야 언니가 기지에 가서 정리 좀 하겠다고 해서 빠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초야 언니와 예지가 마치 소개팅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서 불안하긴 한데 괜찮겠지…?

바가지 씌우는 상인에게 흥정하지도 않고 물건을 그냥 덥석 줘버리는 정란이에게 살짝 꿀밤을 놓아주고 다시 흥정했다.

수양이도 움찔하더니 다시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것 보면 얘도 똑같다.

예화는 앞뒤 안 가리고 물건을 이것저것 사려고 하고 있고…

[예지 위험함 예지 위험함 예지 위험함 예지 위험함 예지 위험함]

[애 죽는다 빨리;]

[갑자기 뭐야]

[게임에서 죽는게 아니라 진짜 죽는다고;]

[애가 갑자기 거품 물고 쓰러짐]

뭐?

다급히 예지의 방송을 확인하니 처절하게 뒹구는 예지가 보였다.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의 모습이 이러할까.

초점 없이 흔들리는 눈에 미친 듯이 떨고 있는 몸.

과호흡으로 진정하지 못해 숨을 헐떡이며 바닥을 기는 모습은 누가 봐도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냥지 : 얘 지금 왜 이래요?]

[심문실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이럼;]

[팔이랑 눈 뽑지 말라면서 발작하던데 빨리 와;]

다급하게 도착하니 예지는 초야 언니의 품속에서 아이 마냥 안겨 웅얼이고 있었다.

아까보단 나아졌지만 딱 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오래 앉아있었는지 다리를 조금 떠는 초야 언니에게서 예지를 데려가려고 했다.

“괜찮아.”

“언니도 오래 앉으셨잖아요.”

“내가 달래고 있을게.”

싱긋 웃으며 손길을 슬쩍 피하는 초야 언니의 웃음이 뭔가 이상했다.

호..오… 이 언니 봐라…?

<오늘 진짜="" 예지="" 죽는="" 줄="" 알았다=""/>

난 진짜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어디에 누구냐니까 할 말이 없더라.

이름 알려주긴 했는데 출동했는지 모르겠음.

ㅇㅇ : 민중의 곰팡이 ㄷㄷ

­뚜아 : 출동했겠지 ㅋㅋㅋ 예전의 그런 경찰이 아님;;

­민초단 : ㅇㅇ 근데 진짜 트라우마 무섭더라… 난 그거 심각하게 안 봤었는데

­금태양 : 트라우마 치료도 안 받은 거 아니냐; 진짜 심함;

­새싹 : 예지 쉬라고 보내고 다들 방종하더라

<예지 특수부대원="" 아님?=""/>

애초에 예지가 한국인 맞음?

외형이 순수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애초에 일반인이 어떻게 총알을 피함

총 쏘고 심문하는 폼이 일반인은 절대 아닌데

꾸아악 : 혼혈이래

­ㅇㅇ : 맞음 예전에 합방에서 그렇게 말함

테일단 : ㄹㅇ 그쪽에서 일하다가 고문 당하고 은퇴했나;

Sadfz : 갑자기 톱 왜 가지고 오냐는 소리 보니 톱에 어깨 썰린 거 아님???

­ㅋㅋ : 맞는 듯 심문실에서 갑자기 트라우마 와서 쓰러진 거 보니 100%

<왜 행복하질="" 못하는="" 거야…=""/>

힘내라 서예지!

루왁 : 파이팅!

욥 : 파이팅!

이이잉 : ㅍㅇㅌ

흑우 : 근데 예지 팬 카페 여기 존재도 모르는데 파이팅 한다고 의미 있음?

­ㅇㅇ : 그냥 하는 거지 ㅋㅋ..

<무슨 고문을="" 당했길래="" ㅅㅂ=""/>

중얼거리는 내용 조금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그 나라 사라지고 요즘 세상 제법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런 게 있구나

용파리 : 저기 러시아 푸딩이 가끔 우크라이나에 분탕질 좀 하잖아

­쑥쑥 : 푸딩 새끼 ㄹㅇ

테일단 : 푸딩말고 다른 나라도 가끔 그런 거 있음 그 나라만 없어졌을 뿐이지

꾸아악 : 그 나라가 없어진 것만으로 엄청 평화롭게 느껴지네

날강두 : 그래도 친구들이 멘탈 케어 잘해주고 있자너

<예지 과거가="" 궁금하긴="" 한데…=""/>

반면에 너무 무서워진다.

근데 진짜 어디 스파이에 특수부대원임?

ㅁㄹ : ㅁㄹ

병신을보면짖는개 : 근데 솔직히 합리적 의심 아닌가

­마볼 : 그렇긴 하지

<그동안 노력이="" 허사가="" 되었네=""/>

그동안 멘탈 케어 좀 돼서 요즘 좀 헤헤 웃던데 ㅅㅂㅋㅋㅋㅋ

지금 와르르 무너졌겠네;;

모코단 : 스토커도 잊지 말라구

­쑥쑥 : 세상에 나쁜 놈 천지;

테일리회장님 : ㅋㅋㅋㅋㅋ 밸보 얘네들은 공지 또 썼네

­밸보 : 사실 밸보가 잘못한 건 없지 않냐

­믓시 : 그렇긴 한데 ㅋㅋㅋㅋ

­못시 : 지금 대가리 박고 예지 연락 기다리는 핵무새 스트리머들이 잘못했지

­얍시 : 얍시는 진작에 사과하려고 하는데 봐줘라 ㅅㅂㅋㅋㅋ

­트럼보가발 : 얍시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핵….…/>

핵무새 대가리를 깬다는 뜻

(펀치 하는 개구리)

테일단 : 요샌 없더라 ㅋㅋ

­새싹 : 튀어야지 ㅋㅋㅋㅋ

­쭈아압 : 지금 걸리면 뒤지게 맞게 생겼는데 나오겠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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