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53화 (53/78)

〈 53화 〉 아버지의 죄

* * *

“고스트라…”

정체도 모를 사람들이 대뜸 와서 접촉했던 그때를 회상해봤다.

친구들은 각자 선물을 고른다고 흩어졌는데 무서운 인상의 외국인 그것도 조직 폭력배처럼 생긴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길래 기겁하며 도망갔었지.

오해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당시 그 상황에서는 심장이 터질 듯이 펄떡거렸다.

평화롭게 친구 생일 선물을 고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웬 날벼락인가 싶어서 백화점 곳곳을 도망 다니고 사람들한테 피해를 줬었지.

결국 경비들이 뛰어오고, 오해임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건 맞지만, 인상이 너무 무서워.

그 외국인들은 일반인의 외형이 절대 아니었기에 특히 더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가득한 몸에 키는 2m로 언뜻 보면 거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체구의 곰 같은 사내.

이상한 알로하 셔츠를 입고 인상이 푸근해 보이지만 체구가 워낙 거대해서 그런지 무서워 보였지.

그 옆에 있는 사내도 180은 되어 보이는 키였는데 온몸에 흉터가 가득하고 특히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그의 험상궂은 인상을 좀 더 무섭게 보이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원래 인상도 무서운 편이었는데 검은 정장이 한층 더… 하여튼 무서웠다는 소리다.

더 길게 생각해봐야 겉모습 보고 차별한 건 맞으니까.

어쨌든 오해가 풀리고 그들이 미국의 특수한 요원이라고 경찰서에서 인증을 한 후 경찰서 내부의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가려고 했지만, 예지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에 홀린 듯 자리에 앉았었다.

친구들이 전화하면 바로 가겠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보였다.

“친구들은 백화점 이벤트 할인으로 바쁠 겁니다.”

“네? 그런 건 없었는데…”

이벤트를 했었다면 사전에 공지하거나 직원이 알려줬을 텐데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는데 무슨 이벤트…

그때서야 앞의 사람들이 이벤트를 만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쪽 친구들은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듯 보여서… 아무래도 예지 씨 과거가 좋지 않거든요. 듣고 싶지 않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제게 예지의 과거를 알려주려는 이유가 뭐죠?”

예지랑 미국의 특수요원들이랑 무슨 관계인지도 모르겠고 그들이 굳이 예지의 과거를 내게 알려주는 저의도 모르겠다.

과거를 알고 있고 자신에게 설명해주겠다는 것부터 무슨 관계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런데 굳이 내게 알려줄 이유도 없을뿐더러 지금 어느 정도 나아져서 괜찮아진 예지를 건드리는 이유가 뭘까?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제가 생각한 사람이 맞는다면 사과하고 싶습니다. 우린 가해자니까요.”

가해자?

단어 그 자체의 의미인 걸까?

예전에 예지의 컴퓨터에서 봤던 그 영상이 기억났다.

끔찍하고 무서운…. 설마..?

“설마… 당신들이 그 영상에 고문을…!”

이 자리가 두렵게 느껴져 자리에서 벌컥 일어나 문으로 뒷걸음질 쳤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경찰들한테 어떻게 알려야 하는 거지?

“다 설명하겠습니다.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봐. 말 좀 골라서 했어야지. 오해하시잖아.”

“사실이잖나.”

“골 때리는 새끼.”

그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양손을 들어 올려 내게 보여주었다.

곰 같은 덩치의 남자가 욕을 하길래 깜짝 놀랐지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님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슬금슬금 자리에 다시 앉자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설명했다.

“고스트 부대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고스트 부대요?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부대…? 숨겨졌던 미국의 특수부대?”

“다들 거기까진 잘 아는군요. 그렇다면 게임에서 고스트 부대가 어떻게 훈련하는지 또 어떻게 생활하는지 다루는 게임이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느낌인가요?”

대부분 고스트 대원들은 FPS 게임 스토리에서 잠깐 등장하는 강력한 아군들이었지?

게임에서 깊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의 아군이거나 희생하는 선역 또는 피해자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게임도 그들의 훈련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았고 사람들의 질문에 개발자들은 역사 왜곡이 아닌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과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들 때문이라고 답했다.

묘사해도 대부분 잠깐의 영상으로 언급하고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

“희생하는 선역? 주인공 캐릭터의 강력한 아군? 적어도 제가 해본 게임들은 그렇네요.”

“대부분은 그렇게 표현하곤 하죠. 사실이기도 하고. 실제로 고스트 대원에게 도움을 받은 군인들도 다수 존재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는지 알 방법이 없지만 말이죠.”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주춤하던 남자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턱을 연신 쓰다듬었다.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또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태도.

그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두려울 것 없어 보이는 남자를 이토록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왠지 예지랑 관계가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고스트 대원은 인간을 병기로 만드는 실험과 개조를 거칩니다. 대부분 갈 곳 없는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 사람들을 섬에 가두고 세상에서 기록을 말살해버립니다. 더 들을 수 있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어쩌면 안 좋을지도…. 아니, 일단 개조는 이쯤이면 예상할 수 있겠지만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며 이에 항의한다면 교관에게 사살됩니다. 사기 저하를 명분으로 말이죠… 어.. 거기서 제 친구… 이 이야기는 상관없지… 어쨌든 몸의 뼈를 바꾸거나 약물을… 흠…. 흠! 크흠!”

설명하면서도 온몸을 떨던 그는 이내 토기를 참지 못하고 기침을 했고 당연하게도 하던 설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쯤 해. 내가 설명해도 되니까.”

“닥쳐… 닥..! 아니, 내가 계속 설명하지… 진정했어. 지금까지도 고스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증거는 사라지고 저 같은 고스트 대원이었던 사람만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합중국은 이 일을 살아있는 피해자들한테 사과하기로 했습니다.”

“생존했다면 말이죠. 그들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연고자라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원에 대한 정보를 존 크로우가 모두 지워버렸고요.”

설명을 듣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면 그도 대원이었으니 피해자가 아닌가?

근데 왜 피해자가 굳이 사과하러 다른 나라까지 건너온단 말인가?

“그쪽도 고스트 대원이었으면 피해자 아닌가요?”

“그것이… 이런… 항상 생각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는 좀 두..두렵군요. 진실에 대해 말하는 일이 쉽지 않은지라. 일반적일 때였다면 저도 피해자겠지만 저는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그 프로젝트를 존 크로우한테 제안한 사람이 제… 아버지입니다. 그 빌어먹을 인간 병기... 인간을 괴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만든 것이 제 아버지란 말입니다.”

“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버지 일에 가담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자신이 가해자라는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미합중국은 당시 오랜 전쟁으로 상당히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생각과는 다르게 우열을 가릴 수 없었고요. 그래서 그 전에 전쟁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인간 병기들을 투입했습니다. 약물과 인체 개조를 거친 비인륜적인 인간 병기들이 수뇌부들을 한 번에 제거하기 위해서요. 물론 그전에도 가끔 투입되긴 했습니다만…”

“제 아버지는 애국심이 투철하다 못해 광기에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자기 생각을 현실에 실행시킬만한 능력과 권력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광기는 점점 심해지고 결국 국가를 위해서 자기 자식마저 사지로 밀어 넣었죠.”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서예지 즉 테일리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겁니다.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말이죠.”

“그럼 예지와 아는 사이라는 건가요?”

“섬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테일리는 다른 섬에서 받았겠죠.”

“그럼 예지는 고스트 대원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고스트 대원은…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우웅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에 정란이의 이름이 나온다.

이제 선물을 사고 나를 찾고 있는 모양이네.

“가볼게요. 사과는… 기회가 된다면 예지한테 물어보고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는 한시름 놨다는 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축 늘어뜨려 기댔다.

그저 대화를 나누기만 했음에도 그는 고된 노동을 하고 온 사람처럼 몹시 지쳐 보이고 땀에 절어있었다.

나도 오늘의 일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경찰서를 나오며 정란이의 전화를 받았다.

“어딨음? 어딨음? 어딨음? 어딨음? 20분이나 찾았는데 안 보이는데 어딨음?”

“아, 미안. 다른 물건 찾느라.”

“엥? 거짓말 하지마셈! 우리가 1층에서 5층까지 다 찾아봤는데!”

“화장실 갔어! 화장실! 지금 갈게!”

“아하! 아랏엉! 몇 층?”

“1층.”

“어디 있다고?”

“1층 화장실에 있었다던데!”

옆에 예화가 작은 목소리로 질문하자 정란이가 대답해주는 것을 듣고 끊었다.

아까 같이 갔던 백화점에서 가까워서 다행이네.

1층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서 눈에 띄는 붉은 머리를 염색한 예화가 보였다.

보이지 않지만 바로 옆에 정란이가 있겠지.

내가 다가가자 예화가 눈치챈 듯 나에게 뛰어왔다.

그 옆에 있던 정란이도 같이.

“아니, 선물은 왜 안 샀어!”

“같이 좀 골라줘. 못 고르겠단 말이야.”

“에에엥? 아직도 못 골랐어?”

그 후 같이 선물을 급하게 고르며 서둘러 집에 갔다.

우리는 집에 도착한 뒤 다급하게 예지의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장식을 천장에 달기도 하며 사 온 거대하고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식탁 중앙에 올려두고 손수 만든 음식들을 만들며 말이다.

사실 절반은 음식점에 연락해 주문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직접 만든 요리도 많으니까 상관없겠지.

문제는 예화에게 예지를 붙잡아두라고 보냈는데 자고 있던 애를 깨워서 거실로 데리고 나오는 사고를 쳤었다.

그때는 깜짝 놀라 정란이를 번쩍 들어 올려 식탁에 앉혀서 위기를 피하긴 했지만 몰래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가 들킨 줄 알고 식겁했었지.

예화는 다시 붙잡아두는 두 번째 임무는 어떤 의미로는 훌륭하게 수행하긴 했다.

우리 둘은 열심히 음식을 만드는 동안 예지랑 같이 태평하게 침대에 누워서 코까지 골았다는 점이 골때렸지만 붙잡아둔 건 맞으니까.

몰래 들어왔던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예지의 생일을 축하하자 예지는 기대 이상으로 감동을 한 듯 눈물을 흘렸었다.

준비한 우리도 보람을 느낄 정도로 격한 반응이었지.

그렇게 행복하게 선물을 받으며 재미있게 놀던 예지를 보며 내 머릿속은 점점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무리 사과를 한다지만 이렇게 행복해하는 애를 굳이 과거의 일을 들쑤실 필요가 있을까?

예지의 말투가 나아진 것도 불과 얼마 전이었을 정도로 충격적인 과거를 굳이…?

“예지야. 혹시 고…”

“응?”

행복한 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예지의 얼굴을 보고 꺼내려던 말을 도로 집어넣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 이야기를 굳이 오늘 할 필요는 없지.

이 일은 좀 더 생각해보고 말해보자.

“아니야. 행복해?”

“응. 고마워.”

“다행이네.”

다행이네.

우리들이 너를 위해 준비한 일이 의미가 있어서.

그리고 그 끔찍한 과거를 어느 정도 떨쳐내서 다행이야.

내가 잇지 못했던 말이 궁금했는지 찝찝한 표정을 짓던 예지는 친구들한테 불려갔다.

오늘은 나도 즐겨야지.

이런 좋은 날에 이런 우중충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손해잖아?

은초향이 사실 예지를 숨덕하고 있었다는 말을 고백하며 한번 팔에 매달려봐도 되냐고 물었고 예지는 흔쾌히 받아들여 초향이를 팔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정란이도 흥미가 동했는지 같이 매달렸고 나와 예화도 매달려봤지만, 예지는 끄떡도 하지 않고 우리를 매단 채 돌아다녔는데 이것도 혹시 개조….

아니야! 이런 생각 그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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