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불쌍한 사람 아니라고-67화 (67/78)

〈 67화 〉 이상한 행동

* * *

일찍 방송하려고 했지만, 예화도 일어난 김에 밥 먹고 해야지.

저녁은 간만에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웬일로 서로의 뜻이 통해서 볶음밥을 먹자고 결론 났고 이제 어떤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지 고민했다.

“김치볶음밥.”

“소시지도 넣어야지.”

“엥? 스팸이지!”

친구들도 나름 도우려고 했지만 정말 기본적인 요리라 사실 도움이 필요한 요리는 아니었기에 거절하고 세 명 전부 거실로 밀어냈다.

지난번에 같이 요리하자고 내버려 뒀다가 누군가 멸치볶음에 버섯과 두부 같은 걸 첨가하는 이상한 짓이 있었기 때문에 평화로운 저녁 식사를 위해서 나 혼자 만들기로 했다.

요리를 못하는 초보들의 특징이 레시피대로 만들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만드는 게 문제다.

이걸 넣으면 더 맛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종이 탄생한다는 거지.

휴, 살았네.

자칫했으면 김치볶음밥이 아니라 고구마 김치 오이 볶음밥 같은 혼종을 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냉장고에 조금 오래된 김치, 양파, 참기름을 꺼냈다.

안타깝지만 소시지를 넣자는 예화의 의견은 물 건너갔다.

스팸 햄만 있거든.

만드는 방법은 정말 별거 없다.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부은 다음 대파를 볶는다.

그다음 스팸을 넣고 볶다가 김치를 넣는다.

다시 볶다가 밥을 넣고 볶으면 그게 김치볶음밥이다.

위에 잘 구운 계란 후라이까지 올리면 끝.

너무 쉬워서 수많은 자취생의 단골 메뉴 중 하나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고…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뭐 먹을지 생각이 안 나면 그냥 냉장고에 있는 아무 재료나 꺼내 냥지랑 같이 볶음밥이나 볶아먹었다.

자꾸 시켜 먹다 보면 한 번씩 집밥이 당길 때가 있으니까.

차려두고 식탁에 각자의 몫을 올려놓았다.

정란이가 먹을 볶음밥은 다른 사람보다 적게 담아줬다.

정란이한테 섭섭한 일이 있다거나 싸운 것이 아니라 정란이는 일반인의 반도 못 먹기 때문에 적게 담아주는 것이다.

똑같이 담아줬다가 남겨서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거면 그냥 다른 사람이 먹으면 되겠지만 이런 밥류는 입을 대니까.

냥지 몫의 그릇에 약간 공간을 비워두고 볶음밥을 담고 다른 밑반찬을 조금씩 덜어 그 공간을 채웠다.

방송하면서 먹어도 상관없겠지.

친구들은 밥 먹으면서 방송을 자주 하는 편이라.

문을 똑똑 두드려 노크하고 냥지에게 그릇을 건네주었다.

“고마웡~ 음츄~”

냥지는 입으로 뽀뽀하는 시늉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가끔 냥지는 방송에서 상당히 대담해지고는 하는데 가끔 시늉만 할 뿐 실제로는 허세에 가까웠다.

실제로는 부끄럼이 많아 스킨쉽에 상당히 약한 성격이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갑자기 장난기가 동했다.

냥지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빠르게 이마 쪽으로 입을 가까이하니 냥지는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음….”

얼굴을 붉히며 왠지 모르겠지만 눈을 꼭 감은 냥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밀어낸다.

“뫄…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거겠지?”

이런 장난에 굉장히 약하다는 뜻이지.

나도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끔 장난기가 생길 때마다 이렇게 놀린다.

반응이 꽤 좋아서 재미있단 말이지.

한껏 커진 눈을 똥그랗게 뜨며 눈만 끔벅이는 냥지.

앰버처럼 예쁜 눈…. 잠깐 앰버 같은 색?

한국인답지 않게 원래 밝은 황갈색이긴 했지만 눈 색깔이 좀 달라진 기분이다.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하니 냥지의 얼굴이 갑자기 터질 듯 붉어지더니 벌떡 일어나 나를 밀어낸다.

“나가! 나가~ 나가아아아아!”

힘차게 내 등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밀어내는 손길에 문밖으로 쫓겨났다.

음… 적당히 놀렸어야 했나.

눈이 좀 달라진 것 같아서 궁금한데… 나중에 다시 확인해야겠네.

“오! 뭐야! 계란 진짜 이쁘게 구웠어!”

정란이가 감탄하며 자리에 앉는 것을 시작으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아까 안색이 안 좋아서 걱정됐는데 해맑게 웃으며 밥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나.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오니 정란이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문을 살짝 열어 머리만 빼꼼 내민 채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나를 빤히 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

“아니. 그냥 봤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오늘따라 왜 저런데?

방송하려는 순간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기분에 뒤돌아보니 정란이가 문을 살짝 열고 다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노란빛의 눈동자… 얘도 눈 색이 달라졌네.

이 정도의 큰 변화면 진작 난리가 났어야 할 텐데 다들 아무 일 없다는 태도라서 묘하게 헷갈린다.

이게 델리가 말하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인가?

하여튼 아까부터 이상행동을 하는 이유를 정란이에게 알아내야겠다.

“아까부터 왜 그래?”

“아? 응? 아니, 나한테 무슨 할 말 없나 싶어서… 그런 거 있잖아. 음… 뭔가 고민이 있다던가? 아니면 내가 도와줄 일이 있다든지?”

“없는데?”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무언가 바라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내 대답을 듣자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정란.

“나중에는 있을 수도?”

“진짜지? 약속했어? 나랑 약속한 거야!”

“알았어. 근데 진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없는데?”

“분명 있는데.”

“아닌데? 아닌데?”

“맞는데? 맞는데?”

우리의 유치한 말싸움은 정란이가 문을 열고 나가면서 끝이 났다.

이제 진짜 방송해야겠다.

더 늦으면 시청자들이 난리 난다.

“안녕.”

[ㅡㅡ]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밥 먹고 다시 한다며!]

[ㄹㅇㅋㅋ]

[이러다 또 방종함 ㅇㅇ]

“무슨 소리래?”

밥 먹고 다시 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님 휴방 전에 아침에 밥 먹고 다시 온다고 1시간 만에 방송 꺼 놓고 결국 그날 안 왔잖음 ㅋㅋㅋㅋ]

[밥 오래 먹기 기네스북 ㄷㄷ]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네.

며칠 전 이야기지?

“아, 쏘리. 까먹었어.”

[?]

[???]

[오늘은 좀 오래 해줘.]

[세계 최초 기습 방송 ㄷㄷ]

[어림없지. 조금 뒤에 바로 방종해 버리기.]

“아~ 오늘은 오래 할 거야.”

사실 조금만 하고 끄려고 했는데 반응을 보니 방종했다가 폭동이 일어날 기세였다.

요즘 방종이 빠르긴 했지…?

“맞다. 휴방 하고 3일 동안 초야 언니랑 차향 언니 만나고 왔지롱. 마지막 날에는 수양이 집에 자고 왔어.”

[구라 ㄴ]

[인싸 코스프레 ㅋㅋ]

[님 친구들이 방송으로 누누이 말했었지만, 님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지경이라고 하던데]

[제발 나가!]

[이제는 망상까지…]

“아닌 거든! 이번엔 진짜 나갔어! 냥지한테 가서 물어봐.”

요즘 시청자들이 나를 자꾸 놀리는 기분이야.

언제 우리 착한 시청자들이 이렇게 바뀌었담.

“너희들 많이 바뀌었어. 예전에는 좋게 말해줬으면서!”

[님도 많이 바뀜]

[아ㅋㅋ 스트리머가 바뀌는데 시청자도 바뀌지ㅋㅋ]

[그래서 놀러 갔는데 뭐 어떻게 놀았음?]

“별거 없어. 그냥 놀았지. 아, 근데 초야 언니 거실 끝내주더라. 난 무슨 섬에 와있는 줄 알았어.”

[거실? 아, 최근에 샀다고 했지.]

[ㅋㅋㅋㅋㅋ]

휴일에 있었던 일을 썰로 풀며 시간을 보냈다.

초야 언니랑 뒹굴기, 수양이와 테니스, 로봇 화분, 뭐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특별한 점 없는 일상이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시청자들도 이야기하는 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늘은 결국 늦게까지 방송을 하고 방종했다.

그리고 폰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나를 협박하는 장문의 문자가 와있었다.

내 예상대로 그 사진으로 협박하고 있었는데 신고하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신고하면 사진을 뿌리겠다는 문자가 있었지만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몸 사진이 뿌려진다면 내 입장에서는 좀 그렇지만 본인들은 확실히 끝장인데 너무 남발하면서 나를 하지 않는 편이 저쪽에게도 좋을 텐데.

언제 한번 직접 만나야겠지.

폰을 던지듯 탁자에 내려놓고 문을 열고 나가니 애들이 잠도 안 자고 퀭한 눈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깜짝이야. 얘들아, 안 자고 뭐 해?”

“너 기다렸지… 하암.”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던 냥지는 건조한 태도로 정란이와 예화에게 가위바위보를 이기고 내 팔에 팔짱 끼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 시간이면 항상 꾸벅꾸벅 졸던 냥지인데 좀 오래 버티긴 했네.

“피곤하면 먼저 잤어야지.”

“싫..어~”

지금도 졸린 지 인사하듯 고개를 꾸벅거리는 냥지를 침대에 눕혀주고 옆에 나란히 누웠다.

처음에는 그렇게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금세 눈을 감고 잠든 냥지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키와 덩치가 조금 줄어든 기분.

살 빠졌나?

바뀐다더니 갈아엎듯 바뀌는 모양이다.

이것도 델 리가 돌아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없으니 참 불편하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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