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처음에는 너를 미워했지.
* * *
마리안느에게 악몽 같던 밤이 지났다.
아침이 찾아왔다.
[구더기짱~ 아침이야~]
조셉은 마리안느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보이지 않았다.
[어라? 구더기짱이 안보이네?]
조셉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구더기짱이 어디있을까?]
조셉은 마리안느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 밑에서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구더기짱이 안보이네? 그냥 나가야겠다.]
조셉은 나가는 척 하다가 침대 밑을 바라봤다.
침대 밑에 숨은 마리안느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구더기짱? 좋은 아침이야.]
조셉이 웃으며 말했다.
마리안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무리 구더기짱이라지만 그런 더러운데 숨어있음 안되지.]
조셉이 마리안느를 잡아서 꺼냈다.
[내려놔!]
잡힌 마리안느는 바둥거리며 발버둥쳤다.
[구더기짱 아직 화장실 안갔지?]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아주며 말했다.
[화장실부터 갔다가 밥먹자?]
조셉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려놔! 알아서 할테니까!]
마리안느는 창피해하며 말했다.
사실 오줌이 마려워서 꾹 참고 있었다.
[넌 가서 요강이나 가져와!]
[요강말이야? 요강을 왜 써? 화장실에 가서 누면 되잖아.]
[...........그냥 가져와.]
마리가 화를 삭히며 말했다.
[변기에 앉혀줄테니 같이 가자?]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고 화장실로 갔다.
가면서 마리안느는 바둥거렸다.
[그냥 요강이나 가져오라고!]
조셉은 마리안느의 속옷을 벗겼다.
[변태싸이코새끼야! 뭐하는거야!]
속옷을 벗기려하자 마리안느는 미친듯이 바둥거렸다.
[속옷을 입고 볼일 볼 수는 없잖아 가만히 있어봐.]
하반신이 벗겨진 상태로 변기에 앉혀진 마리안느가 저항했다.
[자 급할텐데 어서 누렴?]
조셉은 변기에 앉은 마리안느를 붙잡으며 말했다.
[나가! 변태새끼야! 나가라고! 뭘 훔쳐보려는건데!]
마리안느가 소리쳤다.
[그치만 구더기짱을 혼자 냅뒀다가 변기에서 떨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어제 그렇게 때린 새끼가 할말이냐!)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볼일보렴]
마리안느는 분노에 떨었다.
그렇게 변기에 앉혀진지 몇분이 지났다.
고요한 화장실에서는 쪼르르 거리는 물소리만 울려퍼졌다.
마리안느는 눈을 꾹 감고 수치심에 부들거렸다.
조셉은 마리안느의 가랑이를 티슈로 닦아주고
속옷을 다시 입혀주었다.
[착하다 착해. 잘했어요.]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아서 거실 소파에 앉혀주었다.
[죽일거야...........죽일거야.........]
마리안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침 먹어야지?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죽일거야..........]
[또 죽 먹고 싶다고? 알겠어.]
조셉은 다시 죽을 끓여주었다.
밥을 먹고나자 조셉은 나갈 준비를 했다.
[집에 뭐 제대로 있는게 없네 어떻게 생활한거야?]
조셉은 집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세제, 비누는 떨어져갔고
락스나 키친타올 같은건 아예 없었다.
[나 장보고 올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어 구더기짱? 최대한 빨리 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고는 조셉은 나갔다.
마리안느는 그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조셉이 나간 걸 확인하자 마리안느는 재빨리 소파에서 내려왔다.
저 미친놈이 집에서 나갔다.
이틈에 재빨리 탈출하거나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그러나 이런 몸으로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도움을 청해야한다.
그치만 어떻게?
마리안느의 폰은 안쓴지 하도 오래되어서 어디있는지 생각도 안난다.
컴퓨터가 있지만 이런 몸으로 써본 적도 없다.
부모님과 연락은 항상 전담 간호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지난다.
마리안느는 초초해졌다.
마리안느에게는 손과 발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없었다.
마리안느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조셉은 차를 끌고 마트로 갔다.
마리안느가 사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는 차를 타고 20분은 가야했다.
조셉은 마리안느와의 생활에서 필요할거 같은 물품을 샀다.
그러던 중 애완용품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펫샵이 없어서 그런지
이 마트는 애완용품 코너가 제법 컸다.
조셉은 애완동물 코너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몇가지를 골라담았다.
담은 것들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은 사모님이 주신 카드로 계산했다.
생활비는 이 카드로 하라며 카드를 주시고 가셨다.
[아. 이것들은 따로 계산해주세요.]
조셉이점원에게 말했다.
이건 마리안느에게 주는 선물이다
선물이라면 내 돈으로 사줘야하지 않겠는가.
조셉이 나간동안 마리안느가 내린 결론은
연락이 아닌 탈출이었다.
지금 이 집에서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컴퓨터는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지만 마리안느는 갈 수 없는 2층에 있었다.
게다가 마리안느가 기억하길 컴퓨터는 높은 책상위에 있었다.
마리안느가 그걸 어떻게 쓴단 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탈출이다.
이몸으로 나가봤자 얼마 못갈것이다.
그러나 저 앞에 차도 까지만 간다면
지나가는 차가 있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운좋게 사람이라도 지나간다면
그 미친 싸이코의 만행을 폭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문 손잡이를 돌릴 방법이 마리안느에게는 없었다.
마리안느는 거실창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거실 창문으로 나가면 정원이 있었다.
거실 창문이라면 바닥에 붙은 마리안느도 밀어서 열 수 있었다.
마리안느는 거실창문으로 기어갔다.
창문은 다행이 잠겨있지 않았다.
잠겨있다면 열 방법이 마리안느에게는 없었다.
마리안느는 창문에 볼을 대고 옆으로 밀었다.
볼이 쓸려서 아팠지만 겨우겨우 창문을 열었다.
마리안느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뒤 정원으로 내려갔다.
정원에는 잔디가 깔려있어서 아프지는 않았다.
마리안느는 정원을 데굴데굴 굴렀다.
기어가는 것보다 이게 더 빨랐다.
굴러가던 마리안느는 겨우겨우 집 대문앞에 도착했다.
대문 밑은 틈이 있어 몸집이 작은 마리안느라면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마리안느가 문틈을 지나가려는 순간
대문이 열렸다.
[어! 구더기짱?]
조셉이 장을 보고 돌아왔다.
[구더기짱이 왜 여기 나와있어?]
조셉을 본 마리안느는 얼어붙었다.
[아! 혹시 나를 마중나온거야?]
마리안느는 어버버거리기만 했다.
[..........아니면 혹시 멋대로 나가려고 했던거야?]
마리안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겁에 질려 말이 잘 안나왔다.
[그렇구나! 착한 구더기짱이 그럴리가 없지. 같이 들어가자.]
조셉은 한손으로 마리안느를 안았다.
다른 손으로는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세상에나 꼴이 말이 아니네? 목욕해야겠다.]
마리안느는 땀과 먼지로 지저분해져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에 옷을 벗기고 따스한 물을 뿌려주었다.
물은 따뜻했지만 마리안느는 너무 춥게만 느껴졌다.
마리안느는 덜덜 떨었다.
[이건 간호활동이니까 어쩔 수 없는거야 그러니 부끄러워할 필요없어.]
조셉이 몸을 씻겨주며 말했다.
[자 그럼 머리랑 몸 말리고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자?]
조셉은 마리안느에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었다.
[구더기짱 옷장 좀 열어볼게?]
마리안느는 가만히 있었다.
마리안느는 큰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겨우겨우 탈출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바로 잡혔다.
공포에 떨지 않았다면
슬픔으로 엉엉 울었을 것이다.
조셉은 마리안느에 옷장에서 새 속옷과 옷을 꺼내서 입혀주었다.
마리안느는 저항할 힘도 없이 입었다.
오랜만에 긴박하게 움직이며 대탈출을 시도했더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냥....그냥 침대에 눕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처럼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바탕 울고 싶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구더기짱을 위한 선물을 사왔어!]
조셉은 장바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구더기짱은 개가 아니지만 그래도 어울릴거 같더라고.]
조셉이 꺼낸것은 개목걸이였다.
마리안느는 개목걸이를 보고 경악했다.
[미...친...새...끼...]
지금까지 조셉을 보고 겁먹었던 거라면
이번에는 달랐다.
공포
아주 제대로 미친놈을 만났다는 공포심이
마리안느를 장악했다.
[어때? 맘에 들어? 이것 뿐만이 아니야. 이것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꺼낸 건 스테인리스 개밥그릇이었다.
[구더기짱 전용 밥그릇이야. 어때?]
조셉은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런 마리안느는 눈이 뜨거워졌다.
그러더니 눈물이 나왔다.
한번 나온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줄테니까..............]
[응? 뭐라고?]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테니까..........제발 여기서 나가줘..........]
마리안느가 남아있는 힘을 짜내서 말했다.
[내 통장 비밀번호 알려줄께...........내 반지도...........목걸이도............다 줄께..........그러니까.........]
바닥은 마리안느의 눈물로 물들었다.
[제발 그냥 떠나줘..........신고도 안할게..........신고 안할테니까..........여기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 안한테니까............그냥 조용히 떠나주라............제발 부탁이야.........]
마리안느가 고개를 숙이고 빌었다.
그런 마리안느를 보며 조셉은 웃었다.
그러더니
[저기 구더기짱?]
조셉에 말에 울던 마리안느가 고개를 들었다.
[구더기짱은 혹시 내가 돈 때문에 이짓한다고 생각하는거야?]
조셉은 클클거리며 웃었다.
[돈이라. 물론 돈 좋아하지 그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니?]
[근데 구더기짱이 오해하나 본데 나는 돈 때문에 구더기짱을 돌보는게 아니야.]
조셉의 목소리는 광기가 섞여있었다.
[나 말이지 몇년 전에 마리안느를 본 적이 있어.]
자신을 봤었다는 말에 마리안느는 깜짝 놀랐다.
[마리안느를 처음 봤을 때 정말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단다?]
마리안느는 덜덜 떨었다.
[그때에 마리안느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
[사지가 멀쩡한 것도 있지만 아주 결정적인게 달랐어.]
조셉은 뭔가 그리워하는듯이 말했다.
[그 당시의 마리안느는 아주 밝고 활기차고 잘 웃는 사람이었지.]
[그 미소를 본 이후 나는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일을 하든 오직 한가지.]
[마리안느에 대한 생각 뿐이었어.]
마리안느는 무서워서 고개를 숙였다.
그저 이 모든게 악몽이길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밝은 아침이 찾아오길
사실은 두팔도 두다리를 잃은 것도 꿈이길
눈을 꼭 감고 빌었다.
[그래서 나는 마리안느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했단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조셉의 목소리가
광기서린 목소리가
마리안느의 어여쁜 귀로 들어왔다.
손만 있었다면!
나에게 손만 있었다면!
두 귀를 꼭 막을 수 있었을텐데!
그럼 저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텐데!
마리안느는 두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러던 중 마리안느는 사고가 났지. 그리고 팔다리를 잃었네?]
그래서
그래서 조셉이
Akro의 오너와 절친한 동창이 원장으로 있는 병원에 취직한것도
원장의 추천을 받으려고 어떤 환자도 화내지 않고 돌본 것도
일부러 거동이 불편한 환자만 자원해서 맡은 것도
그런 작은 행동이 쌓이고 쌓여
아주 작은 확률일지 몰라도
그것이 마리안느를 만날 가능성이 되어줄지 모르니까 말이다.
신이 조셉의 기도를 들어준 것일까?
조셉이 산 복권은 적중했다.
[그 덕분에 너무나도 높이 날고있던 마리안느가 지금은 내게 떨어졌지.]
[나만의 구더기짱이 되어서 말이야.]
마리안느는 보면 안된다는 걸 알았다.
보면 안된다는 걸 온몸이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호기심이 마리안느의 고개를 들어 바라보게 했다.
조셉의 눈을 말이다.
바라본 조셉의 눈은
광기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 앞으로 잘지내보자?]
마리안느는 사지를 잃었을 때
지옥
삶이 지옥 그 자체로 변했다.
그러나 지옥에도 더 밑바닥이 있다는 걸
이때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가 그 밑바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