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5화 (5/47)

〈 5화 〉 그러나 네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보면서

* * *

[꼭…돈 많이 벌어….]

처참한 꼴이 된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말을 남겼다.

[나 같이….살지마……]

그것이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죠셉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악몽을 꾸었다.

아주 기분 나쁜 악몽이었다.

조셉은 두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 자신은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조셉은 화장실로 가서 씻었다.

꿈이 남기고 간 것들을

물로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마리안느를

마리안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마리안느가 정신차려보니 침대였다.

어제의 일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꿈을 꾼것 같았다.

조셉의 눈을 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정신차리고 보니 침대였다.

[구더기짱 좋은아침!]

방문이 열리더니 조셉이 들어왔다.

마리안느는 흠칫했다.

[구더기짱은 잘 잤어?]

조셉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나는 어제 제대로 못 잤단다.]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너 때문에 말이지.

마리안느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아주 기분 더러워지는 꿈을 꾸어버렸거든.]

(나한테는 네가 악몽 그 자체야. 미친놈아)

[그래서 왜 그럴까 생각해봤거든.]

조셉은 마리안느가 덮은 이불을 들어올렸다.

[덮고 있는 이불 마지막으로 빤게 언제야?]

이불은 머리카락과 먼지투성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얼룩투성이었다.

[구더기짱! 아무리 구더기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지!]

[이불은 냄새나고! 베개커버도 때에 찌들었잖아!]

[이런 쓰레기 같은 이불을 덮고 자니까 더러운 꿈을 꾸는거야!]

[구더기짱이 구더기에 소질이 있다지만 이게 뭐야!]

[더러워! 불결해! 꼬질꼬질해! 구더기같아!]

조셉이 마구잡이로 소리쳤다.

마리안느는 그런 조셉을 애써 무시했다.

[구더기짱? 근데 왜 나혼자만 말하고 있는거야?]

마리안느는 흠칫 놀랐다.

조셉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구더기짱 혹시 나 무시하는거야?]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무시할 수 있다면 마리안느는 무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힘이 마리안느에게는 없었다.

[그렇지? 역시 그렇지? 착한 구더기짱이 그럴리가 없지.]

다시 조셉에 목소리가 올라갔다.

[난 또 먼지가 많아서 귓구멍이 막힌 줄 알았잖아?]

하지만 오히려 말하는게 무서워졌다.

[그랬다면 이불이랑 같이 세탁기에 넣고 돌릴려고 했는데 말이지.]

마리안느는 아침부터 울고 싶었다.

[그러기 전에 바로바로 대답하자?]

[........네.]

마리안느가 힘없이 대답했다.

마리안느는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달라져 있었다.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굴러다니던 먼지투성이 공간이

말끔하게 치워져있었다.

[어제 구더기짱이 자는 동안 내가 청소 좀 했지.]

조셉이 말했다.

[아무리 구더기짱의 집이라지만 너무 지저분한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좀 치웠어. 쓰레기랑 잡다한 건 싹다 버렸거든.]

[청소기도 돌렸고 말이지.]

[이제 바닥만 좀 닦으면 끝이야.]

[그래서 구더기짱이 좀 도와줘야겠어.]

나보고 도와달라고?

마리안느는 깜짝 놀라며 조셉을 쳐다봤다.

내가 뭘 도와준다는 말인가?

이런 몸으로 뭘 도와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전에 내가 왜 도와줘야 하지?

[뭘.....도와달라는건데. 애초에...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마리안느는 조심스래 물었다.

[내가 다 생각해서 준비했으니까 구더기짱은 걱정말고 도와주기만 하면 돼.]

[애초에......애초에 내가 왜 도와야 하는데......내가 돈 주는 사람이잖아.....]

마리안느가 용기를 짜내어 겨우겨우 말했다.

[그치만 구더기짱. 어차피 할일도 없잖아?]

그렇게 용기낸 한마디는 가볍게 박살났다.

[나는 밀린 빨래를 싹 다 세탁기에 돌려놓고 그 동안 화장실을 청소할거야.]

[화장실에 곰팡이가 장난아니더라고.]

[우리 귀여운 구더기짱에게 그런 화장실을 쓰게 할 수는 없지.]

[그동안 우리 구더기짱은 바닥을 닦아줘.]

내가? 마대자루는 커녕 펜 하나 못잡는 나보고 말인가?

조셉은 머리 뿐만 아니라 눈도 문제가 있는듯 했다.

[이런 내가 어떻게 닦아……]

마리안느는 조심스래 항의했다.

[걱정하지마! 그런 구더기짱도 닦을 수 있도록 내가 다 준비했지!]

조셉은 의자에 걸려있던 것을 들어올렸다.

마리안느는 그걸 처음 봤을 때는 걸레와 누더기 뭉치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제작자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걸 알아챈 마리안느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기는 것 밖에 못하는 구더기짱을 위한 걸레옷이란다?]

그건 낡은 셔츠에 걸레를 붙여놓은 누더기였다.

[아! 오해하지는마렴? 걸레들이나 입는 옷이란 소리가 아니야.]

[구더기짱이 걸레가 되란 소리지.]

조셉이 하는 말이 사람이 하는 말인가

아니 악마도 이런 말은 안할거라고

마리안느는 생각했다.

[구더기짱은 이걸 입고 열심히 바닥을 기면서 돌아다녀. 그럼 어떻게 되냐. 세상에나!]

[놀랍게도 저절로 바닥이 닦이네요?]

[지금이라면 특가에 모십니다!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조셉은 알수없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 혼자 쑈를 하는 조셉이 무서워서 마리안느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저기 구더기짱....그런 반응이면 기껏 농담한 내가 처량해지잖니.]

조셉이 서글프게 말했다.

이 상황은 마리안느에게 홈쇼핑도 코미디도 아닌 호러였다.

[자 그럼 이제 이걸 입고 열심히 기어보자.]

그 말을 들은 마리안느는 재빨리 기어서 도망쳤다.

도망쳐봤자 어차피 붙잡힌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저새끼의 수준높은 미친짓에

뇌를 거칠 것도 없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리안느는 필사적으로 기었다.

[아! 구더기짱! 이걸 입고 기어야한다니까?]

마리안느는 죽어도 저걸 입기 싫었다.

그러나 기어봤자 마리안느가 따라잡히는건 시간 문제였다.

그래서 마리안느는 식탁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기어들어갔다.

[구더기짱! 아무리 구더기라지만 왜 자꾸 그런 음습하고 구석진 곳에 숨는건데.]

식탁 위에서 조셉의 말이 들렸다.

마리안느는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구더기짱 이제 그만 놀고 나와서 일하자. 할 일이 태산이야.]

식탁 밑으로 조셉이 손을 뻗었다.

마치 쥐굴에 들어온 뱀 같았다.

마리안느는 붙잡히지 않으려고

손이 들어오는 반대쪽 방향으로 도망갔다.

[구더기짱! 술래잡기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이따 하면 안될까?]

조셉이 자리를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안느는 조셉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였다.

[구더기짱. 그만 놀고 청소하자니까?]

조셉이 화난듯 말했다.

[놀고 싶으면 청소 끝나고 얼마든지 놀아줄께.]

조셉은 의자를 식탁 밖으로 뺐다.

마리안느의 바리케이트가 무너져갔다.

[그니까 지금은 같이 청소하자?]

조셉이 식탁 밑으로 들어와 마리안느를 끄집어냈다.

[싫어!!!!!!!!!!!]

마리안느는 뱀에게 붙잡힌 생쥐처럼

조용히 끌려나갔다.

[이런 건 로봇청소기를 사다가 닦으면 되잖아!]

강제로 걸레옷이 입혀진 마리안느가 항의했다.

[이미 주문했지. 근데 배송하는데 좀 걸린다고 하더라고.]

[그 때까지 이런 더러운 바닥을 구더기짱이 기어다니게 냅둘 수는 없잖아?]

강제로 걸레옷을 입혀진 마리안느에게

조셉이 말했다.

[그동안 나는 화장실 청소하고 있을게. 열심히 닦고 있어?]

마리안느는 힘없는 걸레처럼 축 쳐저있었다.

진심으로 도망쳤더니 온몸이 지쳐있었다.

[아 그리고 내가 청소 끝날 때까지 거실 다 안 닦아놓으면]

조셉은 화장실로 가면서 말했다.

[그럼 뭐.....벌을 받아야겠지?]

조셉은 그렇게 말하곤 화장실 청소를 하러 가버렸다.

그 말을 듣고 마리안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바닥에는 걸레질을 위해 물을 뿌리는건지

눈물이 한두방울씩 떨어졌다.

잠시 그렇게 있던 마리안느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거실이 아주 깔끔해졌네?]

이런 저런 얼룩들이 묻어있던 거실은

제법 얼룩이 사라졌다.

[역시 구더기짱이야! 해낼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런 조셉의 칭찬에도 마리안느는 가만히 있었다.

열심히 바닥을 기느라 마리안느는 지쳐있었다.

[청소하느라 더러워졌으니 같이 샤워하자?]

마리안느는 그냥 아무래도 좋으니

이 누더기나 벗고 싶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구석구석 깨끗이 씻겼다.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알몸을 보여도 상관이 없었다.

알몸을 보이는 것 보다 걸레옷을 입은게 더 창피했다.

그런 옷을 입고 난 뒤라면

알몸을 보이는 것 정도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구더기짱 오늘 수고했어~ 많이 피곤하지?]

마리안느는 대꾸할 힘도 없었다.

그냥 따스한 물에 몸을 맡겼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씻긴 뒤

몸을 말리고 깨끗한 옷으로 입혀주었다.

[구더기짱 일하느라 배고프겠다. 얼른 식사 준비할게?]

조셉은 식빵에 계란과 우유를 적셔서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었다.

[오늘은 구더기짱이 열심히 했으니 특별히 먹여줄게?]

조셉은 프렌치 토스트를 잘게 잘라서

마리안느에 입에 넣어주었다.

마리안느는 영혼이 나간 것 마냥

말없이 씹었다.

[맛있어? 구더기짱?]

마리안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리안느가 식사를 마치자

조셉은 마리안느를 소파에 앉혀놓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 구더기짱!]

조셉은 그렇게 말하곤 혼자 어디론가 갔다.

마리안느는 깨끗해진 거실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그냥 자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전부 꿈일 것 같았다.

그렇다. 이건 꿈이다.

걸레옷을 입고 기어다니며 청소라니

그게 어떻게 현실이란 말인가.

이 좆같은 꿈에서 깨어나면

손도 발도 사실은 잃지 않았고.

아니 적어도 저새끼만이라도

저 좆같은 새끼만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그렇게 생각하며

지친 마리안느는 눈을 감고 졸았다.

[........구더기짱!]

그러던 중 좆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구더기짱! 졸리면 침대에서 자자! 방으로 옮겨줄게 ]

눈을 떴는데 좆같은 새끼가 보였다.

아직 꿈인가.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고 방으로로 들어갔다.

침실로 들어가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

마리안느의 방은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구석에 쌓여있던 먼지도 치워져있었고

더러웠던 이부자리도 깨끗이 빨아져있었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금방 마르더라고.]

조셉은 깨끗이 빨아서 햇볕에 말렸던 이불에

마리안느를 눕혔다.

[어때? 이불에서 태양의 향기가 나지?]

눕혀진 마리안느에게 조셉이 물었다.

정말이었다.

전에 쓰던 곰팡내가 나던 이불과 달리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이불은

따스한 햇살이 스며든 것 같았다.

이불에서는 기분좋은 햇님의 냄새가 나고있었다.

마리안느는 뽀송뽀송한 이불의 감촉을 느꼈다.

베개도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고

마리안느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부드러운 섬유유연제의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어때? 기분좋지?]

[기분좋은 침대에서 자야지 행복해지는거야.]

미친새끼 주제 맞는 말도 할 줄 안다고

마리안느는 생각했다.

뽀송뽀송한 이불에 누운 마리안느는 눈이 스르르 잠겼다.

그렇게 기분좋게 잠을 자려던 중

조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말이야. 나도 행복하게 해줄래 구더기짱?]

그 말에 마리안느의 잠이 확 달아났다.

(이새끼! 설마!)

마리안느는

방심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번 알몸을 보이고

이런 몸에 욕정할리 없다 생각했지만

이새끼는 대단히 미친새끼였다.

침대에 눕힌 것도

이불을 깨끗이 빤 것도

그런 짓을 하려고 준비한거였나!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손을 뻗었다.

마리안느는 조셉에 손을 피해 침대 밑으로 떨어지려 했으나

바로 붙잡히고 말았다.

[금방 끝날거야. 구더기짱. 금방이면 끝나니까 가만히 있어.]

마리안느는 온힘을 다해 조셉의 품에서 바둥쳤다.

그러나 조셉에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들어서 이부자리 가장자리에 눕혔다.

이딴 녀석한테......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한테....

첫 경험을 뺏기다니.....

마리안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하나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꼭 감은 마리안느에게 조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지금부터! 구더기 김밥을 만들겠습니다!!!!]

엥????????????????????????????????????

마리안느는 놀라서 눈을 떴다.

[김밥을 만들기 전에 재료가 있어야겠죠!]

[...........저기요?]

[오늘 갓잡은 싱싱한 구더기짱입니다! 미리 깨끗이 씻겨놓았습니다!]

[우선 구더기짱을 햇볕으로 양념한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올려놓습니다!]

[저기……뭐하는거야?]

마리안느는 조셉이 지 혼자 뭐라고 떠드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리고 구더기짱을 손질해줍니다! 구더기짱을 마구 주물러주세요!]

조셉은 마리안느를 마구 주물렀다.

[뭐! 뭐하는거야!! 아하하하!!!!! 간지럽잖아!!!...아하핫!!.....그만! 그만해! 멋대로 만지지마!]

[이렇게 주물러주면 구더기짱에 육질이 연해집니다!]

마리안느는 마구 간지럼이 태워져 호흡이 가빠졌다.

[그럼 이제 구더기짱을 이불로 돌돌 말아주겠습니다]

[뭐!! 야! 야! 잠깐! 그만둬!]

마리안느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마리안느는 조셉의 손길에 빙글빙글 돌았다.

[이렇게 빈틈없이 꼭꼭 말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구더기짱이 탈출하지 못합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이불로 꽁꽁 싸맸다.

[자! 이러면 구더기 김밥 완성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조셉을

마리안느는 돌돌 말린 이불에서 머리만 쏙 내밀고

뭐하는 새낀가 생각하며 쳐다보았다.

[자! 그럼 나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해서 이만 나갈게! 잘자! 구더기김밥짱!]

그렇게 말하곤 조셉은 나갔다.

방에서 나가는 조셉을 지켜보던 마리안느는

정신이 들었다.

[야! 이건 풀어주고 가야지!!!]

조셉이 꽁꽁 싸매서 마리안느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구더기김밥이 대체 뭔데 미친새끼야!!!!!]

마리안느는 목청껏 외쳤다.

마리안느에게 오늘은 꿈 같은 하루였다.

걸레옷도 입었고

구더기 김밥 재료도 되었다.

마리안느는 이런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둘둘 말린 이불에서도 못 나가지만 말이다.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며 탈출하려던 마리안느는

그대로 지쳐 잠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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