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20화 (20/47)

〈 20화 〉 너와 함께 해변가를 거닐었다.

* * *

잠시 시간이 지나고

마리안느가 울음을 그치자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고 모래사장에서 나갔다.

그리고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들어간 카페는

해안가에 하나 쯤은 있을 법한 그런 곳으로

말린 산호라던가 이상한 조각품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취미로 그린 것 같은 풍경화가 가게 한쪽에 걸려있었다.

평일인데다 성수기도 아니어서 그런지

가게에 손님은 아무도 없었으나

밝은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흘러서

가게 분위기는 그렇게 썰렁하지 않았다.

카페 사장으로 보이는 여성 분은

나이 좀 지긋하신 여성분으로

기다란 목걸이를 주렁주렁 걸고 있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바닷가에 카페를 차린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흘렀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자리에 앉혀주고 카운터로 가서 주문했다.

[여기 코코아는 우유 넣어서 만드나요?]

[물론이죠.]

[그럼 코코아 한잔 너무 뜨겁지 않게 주시고 아이스커피도 한잔 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물 좀 줄 수 있나요?]

조셉은 따뜻한 물을 얻어서 자리로 돌아갔다.

마리안느는

엉엉 울었던 탓에

눈가가 빨갛게 부어있었고

기껏한 화장도 엉망이 되어있었다.

조셉은 가방에서 수건을 꺼냈다.

따뜻한 물로 수건을 적셔서

마리안느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얼굴을 닦아주면서도

마리안느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잔뜩 울었더니 기운이 빠져서 지친 것 같았다.

마리안느의 얼굴을 닦아주자

기껏한 화장이 지워졌다.

그러나 화장을 하든 안 하든

마리안느의 얼굴은 예뻤다.

깔끔히 얼굴을 닦아주자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조셉은 카운터로 가서

주문한 코코아와 아이스커피를 가져왔다.

코코아는 뜨겁지 않고

적당히 따뜻한게 딱 좋았다.

빨대가 좆같은 종이빨대 밖에 없었지만

코코아에다 종이빨대를 꽃아서

마리안느 앞에다 놓았다.

코코아에 빨대를 꽂아서 주자

마리안느가 조용히 코코아를 마셨다.

코코아를 마시자

마리안느의 표정이 좋아졌다.

달달한 걸 마셨더니 기운이 좀 나는 듯했다.

우는 여자한테는 달달한 것을 주는게 좋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서

코코아를 주문했는데 정답이었던 것 같다.

조셉도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좆같은 종이빨대는 치우고

컵에다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셨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15분 쯤 앉아있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온다.]

조셉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가게 밖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조셉이

카페 안을 들여다보니

카페 여주인과 마리안느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내용은 알 수 없으나

카페 여주인이 뭔가 말을 건네자

마리안느는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마리안느의 얼굴은 빨갛게 되어있었다.

가게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뭔 대화를 한 거야?]

[그냥 별거 아니에요…..]

마리안느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업고 카페를 나왔다.

[잘 가요 아가씨.]

카페 여주인이 마리안느에게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마리안느가 조셉의 등에 업힌 채로 인사했다.

카페를 나온 조셉은

마리안느를 업고 해변을 거닐었다.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세상이 멸망한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해변을

여자를 업고 거닐고 있으니

이 세상에 오직 두사람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런 해변을 걷고 있으니

어쩐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해변을 거닐고 있으면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여자를 업고 걷는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안 힘들어요?]

등에 업혀있는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물었다.

마리안느의 몸무게는 25kg이다.

거기다 의족의 무게와 옷가지 같은 것들의 무게를 합치면 10kg은 나갔다.

총 35kg의 무게는

무겁지는 않지만 가벼운 무게도 아니었다.

[이까짓게 뭐가 힘드냐? 나는 80kg 넘는 남성을 업고 아파트 8층에서 걸어서 내려온 적도 있어. 그때에 비하면 하나도 안힘들지.]

마리안느를 업고 걸어 다니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만 고통스러운 점은

해변가를 걷고 있는데

파도소리는 들리지 않고

여자의 숨결소리만 들려왔다.

마리안느의 부드러운 숨결이

자꾸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그게 너무 고통이었다.

마리안느를 업고

해변을 거닐면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밀려오는 파도

파도에 밀려온 해초조각들

누군가 놓고 간듯한 소라껍데기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려해도

오직 등에 짊어진 것만 신경이 쓰여서

눈앞이 아른거렸다.

눈앞이 흐려져서 그런지

세상 끝자락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던 중

해변 옆 도로를 소방차가 지나갔다.

[어디 불이라도 난 걸까요?]

[그냥 별거 아닌 걸로 출동하는 차량일꺼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사이렌도 안키고 천천히 달리는데다가 펌프차에 탄 소방관들은 방화복을 안입고 있잖아. 보나마나 시답잖은 걸로 출동하는 거겠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아요?]

[예전에는 나도 저 차를 타고 다녔으니까.]

[진짜로?]

소방관이었다는 조셉의 고백에

마리안느가 화들짝 놀랐다.

[간호사 아니었어요?]

[간호사로 있다가 경력 쌓고 특채로 들어갔지.]

[근데 왜 그만둔거에요?]

[그냥...어쩌다 보니...]

조셉은 말을 꺼낸 걸 후회했다.

조용한 해변은 사람을

너무나도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술술 말하고 말았다.

[어쩌다 그만두었는데요?]

등에 업힌 마리안느가

재차 물었다.

[닥치고...집에나 가자.]

조셉은 마리안느의 질문을 무시하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리안느는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잠든 마리안느가 새근새근 내뱉는

가냘픈 숨소리만 들렸다.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저물어있었다.

조셉은 조수석에서 자고있는 마리안느를 깨웠다.

[다 왔다.]

[..응...으응...]

마리안느가 잠에 취한 채로 꿍얼거렸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씻고 자라.]

조셉이 마리안느를 씻기고 이불에 눕혀주었다.

이불에 누운 마리안느는 곧바로 잠에 들었다.

혼자 남은 조셉은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서 거실로 갔다.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봤는데

참 희한했다.

바다에 갔다왔는데

파도소리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파도소리 대신

마리안느의 목소리만 떠올랐다.

고마워...요...

조셉은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더 꺼내다 마셨다.

고맙다 말하는

마리안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만 들려와서

그래서 괴로웠다.

그렇게 술을 마시던 조셉은

소파에서 잠들었다.

인어의 목소리에 홀려서

심해로 끌려가듯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조셉이 잠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남자친구분이 자상하네요?]

카페 여주인이

혼자 남은 마리안느에게 말을 건넸다.

[남, 남자친구 아니에요...]

갑작스런 여주인의 질문에

놀란 마리안느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그래요? 저 남자가 아가씨한테 아주 지극정성이길래 나는 애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여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마리안느는 얼굴만 빨개지고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셉이 들어와서

마리안느를 업고 카페를 나갔다.

남자는 마리안느를 업고 해변을 걸었다.

남자에게 업혀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배에 올라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카페 여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더니

또다시 부끄러워져서

남자의 등에다가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타고있는

이 배의 선장이 될 수 있다면

그러면 좋을텐데

키를 잡을 손은 없지만

그래도 될 수 있다면

그러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배와 운명을 함께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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