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살아서 행복한지 답을 찾고 싶었고
* * *
마리안느를 돌본지도 반년 가까이 지났다.
요즘들어 조셉은 마리안느가 부담스러웠다.
마리안느를 돌보는 게 힘들다.
그런 뜻이 아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마리안느는 뭔가 애기처럼 변했다.
갑자기 어리광이 많아졌다.
바닷가에 갔다 온 이후로
뭔가 굉장히 살가워졌다고 해야 하나
치근덕거린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서
조셉을 귀찮게 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원래 마리안느는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마리안느는 조셉을 보기 싫어서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이불 속에서 꽁꽁 숨어 있었다
그렇게 이불 속에 있으면
조셉이 방문을 열고
‘구더기짱! 좋은 아침!’
이렇게 인사하며 들어와서
마리안느를 붙잡아서 거실로 데리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게 여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혼자 방문을 열고 먼저 거실로 나와서
‘좋은 아침이네요. 잘잤나요?’
라고 먼저 인사를 한다.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낯선 광경이라
꿈인 줄 만 알았다.
달라진 모습은 그뿐만이 아니다.
조셉이 마리안느의 곁으로 가면
마리안느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갑자기 다가와서 때릴까 봐
아니면 또 이상한 장난을 칠 까 봐
그런 걱정을 하며 두려운 눈길로
조셉의 눈치를 보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조셉이 곁에 다가와도
무서워 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리안느가 조셉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다.
조셉이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마리안느가 기어와서
옆에서 쫑알쫑알 말을 걸었다.
뭔가 갑자기 살갑게 행동하는 마리안느가
조셉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귀찮아서 저리 가라고 밀쳐내도
어느샌가 다시 쪼르르 다가와 곁에 붙어서
쫑알쫑알 거리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왜 자꾸 사람 귀찮게 따라다니는데?]
참 웃긴 게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마리안느를 쫓아서 이 집에 들어 온 건
조셉 본인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들어 온 목적은
이미 명목상만 남아있었지만
명목적으로 남아있는 그 목적이
조셉을 괴롭게 했다.
왜 자꾸 쫓아다니냐는 조셉의 말에
마리안느는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할게 없으니까요…]
마리안느가 침울해져서 말을 이어나갔다.
[TV를 보거나...이불로 기어들어 가서 자거나...아니면 그냥 멍하니 있거나...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뭐 나 보고 어쩌라고.]
[....나랑 좀 놀아주면 안 되나요? 같이 대화 좀 했으면 해요...]
[나 일하는 거 안 보이니?]
조셉은 자꾸 끈덕지게 붙는 마리안느가 짜증 났다.
이런 결과를 바라고 마리안느를 찾아온게 아니고
정 반대 결과를 바라고 찾아온 것인 데
마리안느가 자꾸 달라붙는 게
조셉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래서 화를 내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태도에도 마리안느는 곁을 떠나지 않고
조셉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뭔가 일을 할 수 있다면...일하고 싶어요...]
[네가 뭔 일을 하는 데?]
[그냥 간단한 거라도 좋으니까...나도 뭔가 하고 싶어요...]
마리안느가 서글픈 눈빛으로 그런 말을 하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 네가 일을 한다 치자. 네가 뭘 할 수 있는 데?]
그 말의 마리안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마리안느 본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마리안느를 본 조셉은
노트북과 실리콘 포크를 가져 왔다.
실리콘 포크를 마리안느에게 물려 주면서
조셉은 말했다.
[한번 이력서를 써봐. 그리고 나에게 가져와봐.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같이 알아보자.]
마리안느는 노트북을 열고
터치패드를 턱으로 문지르며
마우스를 움직여서 문서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리고 실리콘 포크를 입에 물고
키보드를 누르면서
천천히 이력서를 적어나갔다.
이름이나 나이 같은 신상정보를 적은 다음
학력, 자격증, 어학능력, 수상경력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자기도 잊고 지냈던
과거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마냥 즐거웠던 학창 시절
1학년 만 다녔던 대학교
음악대회에서 입상했던 순간
외국어를 익힐 수록 세계가 넓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들
그런 것들을 떠올렸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구더기짱, 다 썼어?]
조셉이 갑자기 다가오자
마리안느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눈물을 닦아낼 손이 없어서
눈을 비빌 수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조셉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울보구더기 같으니라고.]
그렇게 말 하는 조셉은 수건을 가져와서
마리안느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너는 왜 맨날 울기만 하냐?]
그렇게 말 하면서도
눈물을 닦아주는 조셉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곁에서 눈물을 닦아줄 사람만 있다면
눈물을 감출 수 없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를 다 작성해서 조셉에게 가져다주자
이력서를 바탕으로
면접을 보는 상황극을 하기로 했다.
조셉은 면접관 역할을 보고
마리안느가 면접자를 맡기로 했다.
[모의면접 같은 상황극은 왜 하는 건데요?]
[면접을 봐야 너를 어따 써먹을지 알게 되니까.]
[굳이 왜 그런짓을?]
[너 심심하다며, 그냥 놀아주는 김에 하는 거지 뭐.]
진지하게 하기 위해서
조셉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었다.
조셉은 마리안느에게도 정장을 입혔다.
팔 부분만 덜렁덜렁 남아서
뭔가 엄마 양복을 입은 어린애 같았다.
조셉은 탁자 위에
마리안느의 이력서와 볼펜
그리고 이면지 몇장을 가져다 놓고
면접 상황극을 시작했다.
[면접자분 들어오세요.]
조셉이 들어오라 말 하면서
상황극의 시작을 알리자
마리안느가 기어서 탁자 앞으로 갔다.
[질질 기면서 들어오다니. 태도불량 감점.]
조셉이 가차없이 감점을 매기었다.
[아니...이건 어쩔 수가…]
[면접자분 조용히 하시고요. 면접 진행하겠습니다.]
마리안느가 항의했으나
면접 상황극은 진행되었다.
마리안느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면접 한 번 본 적 없는
부잣집 아가씨로 자란 마리안느가
이번 상황극에서
면접관 역할을 맡은
조셉의 냉혹한 질문을 받고
그만 엉엉 울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