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나는 그 답을 찾았다.
* * *
면접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놀이치고 너무 진지한 분위기였다.
우선 조셉은 학력사항을 보았다.
[어디 보자. 학력을 보니까 좋은 대학을 졸업하셨네요. 경영학과를 나오셨군요.]
[사실...그게요...대학은 1학년 만 다녔고 졸업은 못했습니다...]
[1학년 만 다니셨다고요? 어째서인가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그래서 다니지 못했습니다.....]
마리안느가 짧은 팔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이유야 어쨌든 그렇다면 옆에다 중퇴라고 적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셉이 냉정하게 질문하자
마리안느가 당황했다.
[학력사항에다 중퇴했다고 기입하지 않아서 대졸자라 착각했는데 혹시 그럴 의도로 이렇게 작성한 건가요?]
[아, 아니요...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그렇게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가차없이 질문이 날라오자
마리안느는 당황하며 사과했다.
[일단 이건 넘어가겠습니다.]
조셉은 면접을 계속 진행했다.
이쯤에서 마리안느는
생각한 거와는 너무 다른
진지한 면접놀이라고 생각햇다.
조셉은 이번에는 어학능력을 보았다.
[어학능력이 좋으시네요. 지금도 유창하게 하실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자신 있는 곳을 물어보자 마리안느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뭐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조셉은 깊게 물어보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면접자분이 아까 교통사고를 당했다 하셨는데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나요?]
조셉은 다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았다.
[...네...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본인이 지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시나요?]
[....잘...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면접자분은 본인 몸 상태도 모르시나요?]
[...하하...그러게요...]
마리안느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상황극치고는 너무 진지했다.
[그럼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조셉은 이번에는 수상경력을 살펴보았다.
[수상경력을 보면 음악 쪽 입상 경력이 많군요. 이게 일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아...그러니까요...]
갑작스런 질문에 마리안느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내었다.
마리안느가 대답을 늦게 하자
조셉은 감점요인에다 체크를 했다.
[저는 음악적 감성을 가졌기에...그러니까...그...발달 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감각을 살린다면 제가 하는 일을 섬세하고....또...세밀하게 수행할 수 있을 거라...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다음 질문 드리겠습니다.]
조셉은 이번에는 장래 희망을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뭐였나요?]
장래 희망이란 말에
마리안느는 당황했다.
꿈이라니
꿈이란 게 나에게 있었던가
[어렸을 때 제 꿈 말인가요…?]
팔다리를 잃어버리면서
어렸을 때 꿈 따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꿈이라니
어렸을 때...
난 뭐가 되고 싶었더라...
[저는 말이죠...사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마리안느의 말에
조셉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마리안느에게 질문했다.
[면접자분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교육학과 대신 경영학과에 들어간 이유가 뭔가요?]
마리안느는 자신의 집안을 떠올렸다.
집안의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마리안느의 정해진 미래였다.
그렇기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안에서 정해준 대로 경영학을 배워야했다.
그러나 그렇게 정해져 있던 미래도
자신의 팔다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었어요...그렇지만...가업을 물려받아야해서 경영학과에 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안느의 대답을 들은 조셉은
이면지에다가 교육계열이라고 적었다.
[그렇군요. 잘 들었습니다.]
조셉은 그다음에는
마리안느의 경력사항을 보았다.
[면접자분은 경력이 전혀 없으시네요?]
마리안느는 대학을 다니다 사고를 당했기에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집이 부자라서 파트타임으로 일 해 본 경험도 없었기에
경력사항에 쓸 게 단 한 줄도 없었다.
[예...그렇습니다.]
마리안느가 자신없게 대답했다.
그러나 조셉은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경력을 못 쌓으신 건가요? 안 쌓으신 건가요?]
그 대답을 듣자 마리안느는 어질어질해졌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제가 몸이 안 좋아서...못 쌓았습니다...]
겨우겨우 대답한 마리안느의 대답을 듣고도
조셉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몸이 안 좋다라...그러면 그냥 집에서 쉬지 뭐 하러 일하려 하나요?]
조셉의 질문에
마리안느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가혹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면접자분 대답 안 하세요?]
조셉이 눈도 깜짝 안 하고 대답을 재촉하자
마리안느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조셉은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자 마리안느가 입을 열었다.
[저도...뭔가 일이 하고 싶습니다...]
[어째서인가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돈이 차고 넘친다
게다가 일할 수 있는 몸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지
조셉은 그걸 알고 싶었다.
마리안느는 눈에 힘을 꽉 주고
겨우겨우 대답했다.
힘을 풀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집에서 가만히만 있으면.....
제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하찮은 존재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이런 나라도...
뭔가...일을 해서......
쓸모 있다는 걸...증명하고 싶어요...]
마리안느는 질문을 마치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질문 좀 받았다고 울 것 같은
그런 약해빠진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그런 필사적인 마리안느의 모습을 본
조셉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렇군요...그럼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조셉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 전 보다
훨씬 가혹하고
지나치게 잔혹한
마리안느의 마음을 후벼파는
너무나 끔찍한 질문이었다.
[그런 사고를 겪고도...살아서 다행히라고...생각하시나요?]
그 질문을 듣자
마리안느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나 잔인한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을 듣자
마리안느의 눈에서
기껏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물을 참아내기에는
너무나 깊고 무거운 질문이었다.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생각하면 할 수록
마리안느의 마음속을 휘젓는 것 같았다.
사지를 잃었지만
목숨만은 남아있는 게
행운인지
사지를 잃었는데
목숨만 남은 게
불행인지
사실 그 대답은 알고 있다.
누구에게 물어도 그 대답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생명은 존귀하다는 이유로
그 대답을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그러면서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을뿐이었다.
그래서 마리안느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터지자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기껏 차려입은 셔츠가 눈물로 젖었다.
이 눈물이 어찌 보면
마리안느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셉은 모의면접을 마치려 했으나
마리안느가 입을 열었다.
울면서 겨우겨우 입을 열고
대답을 꺼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마리안느의 대답이었다.
[살아서 다행히었는지...아니었는지...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음 속을 마구 헤집어가면서
그 안에서 겨우 찾아낸 대답은
겨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잘 모르겠으니...생각해 보겠습니다...
살아서 다행인지 아닌지...
살아가면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 말을 마치면서
마리안느는 엉엉 울었다.
살아남아서
다행히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살아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마리안느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마리안느의 대답을 들은 조셉은
표정을 죽이고
짧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면접놀이를 마치고
조셉은 마리안느의 얼굴을 세수시켜주었다.
마리안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이걸로 몇 번째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얼굴을 씻긴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마리안느는 한참 울어서 그런지 피곤했고 졸렸다.
마리안느를 이부자리에 눕힌 다음
조셉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간 조셉은
방문을 닫고
벽에 기대고 앉아
천장만 바라보았다.
살아가면서 답을 찾아보겠다니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헛웃음이 나오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그저 먼지탓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2층은 어제 청소했었다.
그저 멍하니
천장 구석을 바라보면서
조셉은 떠올렸다.
마리안느를 사고현장에서 끄집어내서
병원으로 보냈던
그 날의 기억을 말이다.
조셉이 아직은 소방관이었던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소방관으로 있으면서
제일 많이 출동하는 일은
교통사고였다.
수 많은 자동차만큼
수 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져서
자동차 앞유리에 박혀서 죽어 있는 운전자를 봐도
저 사람 꺼내면서 옷에 유리 조각 묻을 텐데 귀찮겠네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교통사고는 흔한 일이었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게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몇몇 사건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 사건도 그랬다.
반파 된 고급승용차에서
사지가 짓이겨진 여자아이를 꺼냈던 일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소방관을 하고 몇 년 쯤 지나면
웬만 한 사고를 봐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날은 많이 참혹한 사건이었다.
교통사고 지령을 받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더니
고급세단이 덤프트럭에 치여서
제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운전기사로 보이는 사람은
즉사가 확실해 보였다.
몸이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뒷자리에 타고 있던
여자아이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살아만 있고
팔다리가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다.
여자애의 팔다리는 너덜너덜해져서
근육의 단면들이 들어나 있었고
부러진 뼈가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머리와 몸통은 멀쩡한 채
사지만 참혹하게 뭉개져 있었다.
다른 대원들과 함께
유압장비로 찌그러진 차를 펴고
여자애를 꺼냈다.
여자애는 기절해있었다.
얼굴은 다치지 않았으나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여자아이의 팔다리를
다른 대원들과 함께
조심스럽게천천히 옮겼다.
혹시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완전히 망가진 팔다리를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렇게 꺼낸 여자애를
구급차에 태워 보내면서
저 여자아이가 살아남은 게
과연 행운이라 말할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여자애가 정신을 차렸을 때
팔다리가 없는 자신의 몸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것도
그냥 저 애가 감당할 일이었다.
내가 감당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다른 사람의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모른 체하고 넘어갈 일이었다.
얼굴이 피범벅이라 생각이 잘 안 나지만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여자애를
그렇게 잊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다 얼마후 뉴스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대기업 Akro 사장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여자아이가
Akro 사장의 딸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운명이란 게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말이 안되었다.
그래서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살아남은 여자애를 만나서
잊고 지냈던 복수를 하라고
그렇게 말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너를 찾아갔고
그 날의 사고에서 살아남은 너는
나에게 괴롭힘 당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날 네가 살아남은 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 날 네가 죽었다면
너도 이런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었고
나도 널 괴롭히지 않을 수 있었겠지
너는 죽고
나는 죽은 것 같이 지내고
그렇게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으나
살아남은 너는
살아남아서 다행히냐고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살아보겠다고
살아서 답을 찾아보겠다고
울면서 대답하는 너를 보면
나는 그 날 너를 구할 수 있어서
그 안에서 너를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한다.
그 때 네가 죽지 않은 게 다행인지
그 때 내가 죽지 못 한 게 불행인지
너의 행운인지 나의 불행인지
너의 불행인지 나의 행운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냥 우리 둘 다 살아있으니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네가 대답한 것처럼
살아가면서 알아볼 수밖에 없겠지
며칠 후
마리안느는 거실에 앉아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상대는
조셉이 아니었다.
마리안느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노트북 화면 속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온라인 수업으로 가르치는 일을 찾아주었다.
화상통신을 이용해서 일주일에 2번씩
어린 학생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조셉은 마리안느가 팔다리가 없는 걸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서
마리안느의 목 윗부분만 화면에 나오도록 했다.
버는 돈은 얼마 안 되고
짧은 파트타임 일이지만
사지가 없는 마리안느도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조셉은 마리안느가 수업을 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화면 속 여학생은
마리안느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마리안느는
그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지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
그런 사실 덕분에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마리안느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 밖에 없다.
그러니 부디 살면서
기어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살아서 행복했는지
그 답을 찾아보렴.
그리고 염치없지만
만약 그 답을 찾는다면
부디 나에게도 좀 알려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