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 섬의 심장 (1) ­ 사막 (45/85)

〈 45화 〉 섬의 심장 (1) ­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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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도 같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길 약 10여분. 모래의 냄새가 나는 곳을 따라가보니, 어느순간 렉타우스의 눈 앞에는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전하가 말씀하신 사막이군요......」

사뿐히 바닥에 착지힌 뒤, 손으로 고운 모래를 만지작거려본다. 허나, 한줌의 모래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곧바로 손가락 틈틈 사이로 쏟아지는 모래들. 그를 바라본 렉타우스는 무뚝뚝한 표정과 함께 손을 턴 뒤, 다시금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다.

「......」

레반하워즘의 제1구역, 사막.

환영을 사용하는 신전관이 지키는 영혼없는 불모지.

동시에, 옥시안의 명을 받들은 렉타우스 본인이 반드시 해결해야만하는 곳.

「분명 심장 조각이라 말씀하셨죠...」

옥시안이 요구한 것은 신전관을 쓰러뜨리면 나오는 레반하워즘의 심장 조각. 얻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신전관을 쓰러뜨려야 했으니, 우선 그를 찾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

잠시 고민을 한 렉타우스가 손을 펼치자, 그의 손바닥 위로 생성되는 다섯개의 구슬. 사악한 아크 데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들어낸 구슬들에게 속삭인다.

「이 사막내에서 살아숨쉬는 것들은 전부 찾아 보고하세요.」

그의 말에, 마치 알겠다는 답이라도 하는 듯 츠츳, 소리를 낸 뒤 재빨리 산개하는 구슬들. 주인이 명령한 '생명체'를 찾기 위해 서둘러 넓디넓은 사막내로 퍼져나간다.

「......」

구슬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렉타우스.

이내 마지막 구슬 하나마저 완전히 사라지자, 그 또한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뚜벅뚜벅,

온몸의 신경을 기울인채 앞으로 걸어가는 그.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정장 구두 안으로 흘러들어와 적지 않은 불쾌감을 만들어낼때마다, 렉타우스의 얼굴에 한층씩 인상이 쌓여나갔다.

「......」

그렇게 구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인간의 형체. 눈을 찡그리고 자세히 바라보니, 렉타우스는 그것이 인간이 아닌 악마임을, 그것도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하프 데빌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핑크색의 단발머리,

관자놀이에서 자라난 매혹적인 두개의 뿔,

공허함을 담은 듯 한 붉은 눈동자와 귀여운 외모.

「옥시안님...?」

자신이 모시는 주인, 옥시안이 눈앞에 서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그녀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렉타우스.

"렉타우스."

무뚝뚝하지만 약간은 미소가 머금어져있는, 평소와 같은 얼굴과 함께 옥시안은 렉타우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뒷짐을 쥔 채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

"아직 신전관을 찾지 못한거야?"

「송구스럽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옥시안의 질문에,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아마도 빠른 시간내에 일의 해결을 원하기에 사역마인 자신을 파견했을 터인데, 30분이 넘도록 일이 지체되니 가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수준.

허나, 늘상 그랬듯이, 이 아크 데빌의 작은 주인은 환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젓는다.

"아냐, 괜찮아, 천천히 해."

「......죄송합니다.」

옥시안의 선처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이는 렉타우스. 사역마로써, 그것도 완벽을 추구하는 렉타우스에게 주인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괜찮대두."

「......크흠.」

하프 데빌의 두번째 만류에야 겨우 고개를 드는 렉타우스. 그는 흐트러진 정장의 옷매무새를 고쳐잡으며, 자신의 주인에게 묻는다.

「헌데, 옥시안님은 어째서 이런 곳에 계십니까?」

"응? 나?"

렉타우스의 물음에 턱을 긁적이며 자기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옥시안. 그런 그녀를 향해 렉타우스는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건넨다.

「예, 이곳으론 저를 보내셨으니 굳이 오실 필요는 없어보여서 말입니다.」

옥시안 본인이 올것이었으면 애초에 렉타우스를 사막으로 보내지 않았을 터이고, 걱정되서 왔다기엔 설원으로 간 세리아나를 지원해주러 가는게 더 현실적일 터. 헌데 구태여 자신에게 올 필요가 무엇이 있으랴.

"으음, 그, 그게 말이야......"

「......」

그의 말에, 옥시안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베베꼬기 시작한다. 한층 수줍은, 처음보는 표정으로 심히 말을 더듬는 그녀.

"그, 그게 말이지......"

「예, 말씀하십시오.」

"그, 그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는 렉타우스에, 옥시안은 깊은 심호흡을 들이내쉰다. 이어서, 입고있던 원피스의 어깨끈을 그대로 끊어버린다.

옷을 고정해주던 지지대가 사라지자, 힘없이 땅바닥으로 흘러내려버리는 새빨간 민소매 원피스.

"......"

그 서슬에, 늘 베일에 가려져있는 옥시안의 속살이 차가운 바깥공기와 마주한다.

「무, 무슨...!」

주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렉타우스. 모시는 주인의 알몸을 보았다는 온갖 수치감과 부끄러움이 그의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왔다.

"렉타우스......"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매혹적인 몸으로 천천히 렉타우스에게 다가오는 옥시안. 그녀는 이어서 얇디얇은 팔을 뻗고, 그의 목을 껴안는다.

"나랑 놀아줘......"

「......」

옥시안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온 끈적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휘감는다. 렉타우스는 자신에게 안긴 주인의 앙탈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안경을 고쳐쓴다.

「진심이십니까.」

"응......"

동시에, 렉타우스의 아랫도리로 손을 뻗는다.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사역마를 올려다보는 하프 데빌 소녀.

"재밌는거, 해보자."

「......」

옥시안의 말에, 잔뜩 표정을 일그리는 렉타우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

순간, 옥시안의 복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녀는 렉타우스의 왼팔이 자신의 명치를 관통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크, 크아아아아앜!!"

「......」

피가 철철 흐르는 복부를 움켜쥐고는 모래바닥에 나뒹구는 옥시안.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과 함께 렉타우스를 노려본다.

"주인한테 이게 뭐하는 짓이야아아아!!"

「......주인?」

옥시안의 말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렉타우스. 이어서 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스킬 하나를 전개한다.

「안티 베일(Anti veil).」

"......?!!"

상대방의 스킬, 그중에서도 환각 계열의 스킬을 제거시키는 기술, '안티 베일'을 발동하자, 옥시안의 모습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씨발!"

그리고, 그곳에 앉아있는 것은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금발의 젊은 남성. 그는 한껏 당황한 얼굴로 변신이 풀려버린 자신의 모습을 둘러본다.

"말, 말도 안돼, 7중으로 덮어 씌운 모습이었는데...!"

「......」

애써 공들여 만든 허상이 고작 손가락 튕김 한번에 무너져내린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해보이는 레반하워즘의 중간보스, 희망의 신전관 하메스 루드비히.

「환각술도 그렇고, 상황설정도 그렇고, 왜 옥시안님이 공략하기 쉬운 보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군요.」

허접한 환각술.

옥시안이 갑자기 사막에 등장하여 발정했다는 머저리같은 상황설정.

정장의 옷깃을 다잡으며, 렉타우스는 마치 길거리의 쓰레기를 보듯이 루드비히를 바라본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3류 연극에 놀아주느라 토악질이 날뻔했습니다.」

"어......"

이어서, 간단히 몸을 풀고, 손바닥을 펼쳐 거대한 붉은색의 화염구를 생성해내는 그.

「재밌게, 아주 재밌게 죽여드리도록 하죠.」

옥시안을 모욕한 죄,

감히 그 모습을 흉내낸 죄,

사역마인 렉타우스로써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요소들이었다.

「조금 아프실겁니다.」

"야, 야! 자, 잠깐!!"

...곧이어, 드넓은 사막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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