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섬의 심장 (2) 호수(上)
* * *
[끄아아아아아악!!!]
「......!!」
어디선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길을 걷던 아드레나인의 귀가 자동반사적으로 쫑긋거려진다. 익숙한 목소리가 아닌 처음 들어보는 음성인 것을 보아, 아마도 그 신전관인지 뭔지의 비명이겠지.
「흐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아하니 렉타우스가 향한 곳인 것 같은데, 벌써 일을 끝냈나보네. 옥시안의 비서를 자처하는만큼, 여러모로 유능한 아크 데빌이었다.
「나도 빨리 끝내야 되는데에......」
곰곰히 턱을 긁적이며, 자신의 앞에 펼쳐진 커다란 호수를 바라보는 아드레나인. 자신만 일처리가 늦어 타 사역마들이 옥시안의 칭찬을 독차지하는 꼴은 결코 눈뜨고 볼 수 없었다.
「......」
그녀가 맡은 구역은 '호수'.
듣자하니 해룡으로 변신할 수 있는 신전관이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
"......"
그리고 아마도 저기 호수 한가운데에 서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성이 그 신전관이겠지. 어깨춤을 따라 허리까지 흘러내려온 푸른 머리칼이 상당히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해룡......」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아드레나인.
해룡이라 하면은 바다를 지배하는 블루드래곤에서 파생된 하위계열. 따지고보면 다크드래곤인 아드레나인의 머나먼 친척뻘이 되는 것이었다.
「흐음......」
멍한 눈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보다 더욱 더 빨리 끝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
저 해룡은 어찌됐든 자신의 사촌동생쯤.
그렇다면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드래곤의 습성을 이용, 모든 드래곤들의 로드인 자신의 말 한마디면 굳이 귀찮게 싸우지 않더라도 레반하워즘의 심장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좋아......」
나름 머리를 쓴 것이 자랑스러운 듯,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어서 목을 가다듬고는, 맹한 목소리와 함께 호수 한가운데에 서있는 여성을 불러본다.
「저기......」
"......"
「야......」
"......"
「......」
분명 목소리가 닿았을 터인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해룡. 그런 그녀의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드레나인은 땅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그녀에게 던져본다.
「......」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성의 이마에 적중하는 돌멩이. 이후 추진력을 잃은 조그마한 조약돌은 그대로 호수에 빠져들었다.
"......"
돌멩이와 부딪힌 충격으로 인하여 뒷쪽으로 젖혀진 여성의 머리.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의 목소리가 호수에 울려퍼져 나갔다.
"아......"
마치 막 잠에서 깬 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여성의 머리가 다시금 정면을 향한다. 동시에 별처럼 푸르른 빛을 발산해내기 시작하는 몸.
"감히 누가, 이 몸을 깨웠는가."
「아, 일어났다......」
이어서, 그 여린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웅장한 톤의 목소리와 함께, 해룡, 망각의 신전관 레이비어가 눈을 떴다. 환히 뜬 달빛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호수 건너편의 아드레나인을 쳐다보는 레이비어.
"감히 어떤 건방진 녀석이 나를 깨웠는가."
「......건방진 녀석?」
중우한 기운을 내뿜으며 소리치는 레이비어에, 아드레나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저 여자가 일어나자마자 일컬은 건방진 녀석이 자신을 지칭하는것인가?
「그거 설마 나보고 하는 말이야......?」
"그럼 여기 너말고 누가 있겠느냐!"
아드레나인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레이비어.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발산된 기(?)에, 호수 주변 풀숲들이 술렁거린다.
"아무리 어린 소녀라 하더라도 날 깨웠으면 그만한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이겠지."
「......」
마치 맛난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그녀에, 아드레나인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나 누군지 몰라...?」
아리송한 목소리로 묻는 아드레나인.
고작 미천한 해룡 주제에 지금 누구 앞에서 저런 말을 뱉는거지?
「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섬의 심장, 그거나 나한테 줘......」
아드레나인은 자신이 누군지 설명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 소리치는 레이비어.
"섬의 심장? 설마 위대하신 지모신의 심장을 말하는거냐?"
지모신.
다섯 신전관들이 숭배하는 여신으로 레반하워즘의 수호신이자 그 자체.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소녀가 다짜고짜 자신이 지키고있는 신의 심장 조각을 내달라하니, 레이비어는 얼터구니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가만히 있는 나의 머리를 돌덩이를 마춘것부터,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하다니,"
점점 하늘로 솓구쳐오르며 빛을 발산해내는 레이비어. 그녀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아드레나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는 블루드래곤 로드의 후계자이자,"
"위대한 지모신을 모시는 희망의 신전관,"
"동시에 '호수'를 수호하는 전설의 해룡,"
폴리모프를 풀고 인간의 모습에서 용의 모습으로 변하려는 것인지, 점점 자신의 몸을 팽창시키는 그녀. 아드레나인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하아......」
그리고는 한쪽 눈을 살짝 치켜들고는 레이비어를 쳐다본다. 폴리모프가 풀려 거의금 해룡(?)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녀. 아드레나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뛰쳐올라 그녀에게 덤벼든다.
「......」
"......? 자,잠깐!!"
이어서 변신 도중인 레이비어의 몸체의 그대로 정권을 날린다. 그 충격에 변신이 풀려버리며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고마는 레이비어.
"쿨,쿨럭 쿨럭,"
아무래도 급소를 정확히 타격당한 듯,
명치를 움켜쥐고는 한참을 쿨럭인다.
「......」
그런 그녀의 앞에 사뿐히 착지하는 아드레나인. 고작 일격에 나가떨어져버린 그녀를 한심히 쳐다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개약해......」
"닥, 닥치거라...!!"
레이비어는 아드레나인의 비웃음에 기분나쁘다는 듯 얼굴을 붉힌다. 이어서 억울하다는 듯 격하게 소리를 치는 그녀.
"폴리모프를 푸는 중에 공격하는게 어딨느냐! 비겁하느리라!"
「......?」
마치 폴리모프만 했다면 이길 수 있겠다는 말투로 얘기하는 레이비어에, 아드레나인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억울하면, 기다려줄게에......」
"치잇..."
뒷짐을 지고 한걸음 물러서주는 아드레나인에, 자존심 상한다는 듯 입술을 깨무는 레이비어. 허나, 일반 해룡인 그녀가 인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많지 않았기에, 그녀는 굴욕을 무릅쓰고 다시금 변신을 시작한다.
「오......」
푸르른 불빛들이 레이비어의 몸을 감싸는걸 신기로이 쳐다보는 아드레나인. 이번엔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자, 이윽고 레이비어의 형체는 하나의 거대한 용으로 변하였다.
"......"
10여m의 몸길이,
푸른 빛을 내뿜는 아름다운 뱀의 몸과 머리에 달린 두개의 사슴뿔. 딱히 특출날 것 없는 전형적인 해룡의 모습이었다.
"이 나에게 굴욕을 준 것, 용서치않겠다."
「......」
마치 기계음과도 같은 변질된 목소리로 아드레나인에게 말하는 레이비어. 그녀의 경고에 아드레나인은 딱히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으며, 깊은 하품과 함께 되물었다.
「변신, 끝났지.....?」
"......뭐?"
「이제 내 차례야아......」
"......?"
짤막하면서도 단호한 한마디.
이어서 뻐근한 몸을 몇번 풀고,
아드레나인은 자신의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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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
집나간 독자들 돌아와아아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날 버리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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