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단서 (1)
* * *
"시연씨."
"응?"
중국 상하이 외각.
아리아 길드의 캠프.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시연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갈색 머리칼의 맹인 여성. 라이린 쉬옌.
"옥시안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
어느새 찾아온 랭킹 5위 길드, 화양연화의 부길드장이 이시연에게 묻는다. 그녀의 물음에 딴청을 피우기 시작하는 이시연.
"글쎄요? 잊은게 있어서 한국에 갔다 온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
적당한 거짓말로 옥시안의 행방을 둘러댄다.
만약 한시바삐 링 메이의 처리를 원하는 그들이 옥시안이 그녀를 위해 레반하워즘을 공략하러 갔음을 알게 된다면 꽤나 귀찮아질 터.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깨를 으쓱이며, 이시연은 자신이 맡은 부를, 옥시안이 명한 바를 성실히 시행한다.
"......장난치지 마십시오."
"......?"
허나, 이시연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라이린 쉬옌.
그녀는 몹시 불쾌하다는 몸짓과 함께 자신의 지팡이를 꽉 움켜쥔다.
"분명 옥시안님께서는 오늘 이내로 링 메이를 처리한다 약속 하셨습니다."
"......"
스릉,하고 그녀의 지팡이 칼이 약간 뽑아져나오며 바깥공기와 마주한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시연에게 말하는 그녀.
"헌데 왜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셨겠습니까. 시공간적으로도 너무나도 낭비되는 일이고, 옥시안님 또한 링 메이를 빨리 처치하고 볼일을 보러 가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실터인데요."
"......"
개인적 사정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이시연의 말을 믿지 못하는 라이린 쉬옌. 그녀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눈빛으로 이시연을 쳐다본다.
"하아......"
그런 라이린의 의심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시연. 그녀는 짜증난다는 투로 라이린에게 말한다.
"쓸데없는 망상 좀 하지 마세요. 금방 곧 오실겁니다."
"......"
이시연이 말하자, 라이린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자신의 지팡이로 이시연을 겨누며 얘기한다.
"오해하는게 있는데, 저희가 필요로 하는 건 당신네 아리아 길드가 아니라 옥시안님입니다. 만에 하나 사기라도 치다 걸리시면,"
"......걸리면?"
"링 메이보다 그쪽을 먼저 처리할겁니다."
"......자신은 있고?"
"제 기억상 아리아 길드가 화양연화를 이긴적은 없는것 같네요."
계속해서 날카로운 말들을 쏘아뱉은 뒤, 천천히 등을 돌린다. 이후 "내일까지만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걸어가는 라이린 쉬옌.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이시연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쉰다.
"볼때마다 꼰대같냐 쟤는......"
틀에 박힌 사고만 하는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어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녀.
"......빨리 좀 오세요 옥시안님."
부디 쓸데없는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레반하워즘을 끌고 나타나달라고, 이시연은 마음 속 작게 빌었다.
***
.
.
.
......후회의 신전관 베를레히리가 지키는 레반하워즘의 '정글'구역.
[......뭐?]
"......"
나의 사소한 한마디 이후,
갑작스레 분위기가 얼어붙기 시작한다.
[죽는다고...?]
"응."
[쟤네 전부 다...?]
"응!"
울먹이는 표정으로 TV화면을 가리키는 베를레히리.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연거푸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러자 망연자실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그녀.
[말도 안돼......]
자신이 생각한 결말과 꽤나 달라서인건지, 아니면 좋아하는 캐릭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어서인지, 그녀의 얼굴은 점점 분노로 찌들어갔다.
[이 나쁜년아!!]
"응...?"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베를레히리.
이어서 그녀의 손바닥 주위로 보라색의 구체들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갑자기 기어들어온것도 봐줬는데 감히 결말을 얘기해?]
"......"
마치 탄환처럼 그 구체들을 나에게 겨눈 채 이를 악무는 그녀.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이게 베를레히리지."
독을 사용하여 침입자들을 잔혹히 살해하는 감정없는 '후회'의 신전관 베를레히리. 흐리멍텅했던 그녀의 눈동자가 드디어 내가 알고있던 날카로운 눈동자로 변하였다.
[죽어.]
"......"
재밌게 보던 드라마의 결말을 알게 된 것이 상당히 화나는 듯, 곧바로 시작되는 그녀의 공격. 독기를 머금은 보라색 구체가 마치 탄환처럼 빠른속도로 날아온다.
"......"
그리고 가벼운 몸동작으로 그녀의 공격을 피하는 나. 베를레히리도 나름 보스몹이긴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중간 보스일 뿐, 정식 시즌 보스인, 그것도 EX급 난이도인 나를 상대하기엔 상당히 벅찬 감이 있었다.
[내가,]
"어?"
...허나,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을 터에도 계속해서 무리한 공격을 해오는 그녀.
[저 드라마 구하려고,]
"......"
[뭔짓을 했는데!]
"......"
이어서, 이번엔 집채만한 크기의 독구슬을 생성해내어 내쪽으로 던진다. 단순한 몸짓으로는 피하지 못 할 크기에, 나는 서둘러서 방어막을 만들어 공격을 막는다.
"혈벽......"
내 앞에 생성된 커다란 붉은색 방어벽.
날아오던 독구슬은 방어벽에 부딪힌 뒤, 마치 물풍선 마냥 터져버리며 여기저기로 흩뿌려 나가졌다.
"어우야......"
...베를레히리가 만들어낸 독액에 닿자, 여기저기 타들어가기 시작하는 신전의 벽들. 생각보다 강력한 독의 위력에 나는 넋두리를 내놓았다.
[......]
자신의 공격이 안통하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 베를레히리. 날카로운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 마치 자신에게 '스포일러'라는 불쾌감을 알려준 나를 어떻게 처벌할지 고민하는 듯 한 모습이었다.
[......그래,]
"응?"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는 그녀.
[너도 똑같이, 무언가 결과를 미리 알아봐.]
"......결과?"
의미심장한 베를레히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결과? 내가 알아야할 것이 있나? 난 드라마도 딱히 안보는데?
[흥.]
코웃음을 치는 베를레히리.
그녀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내게 한마디 말을 건네었다.
[방금, '설원'으로 간 네 하찮은 사역마 하나가]
"......"
[죽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