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단서 (2)
* * *
[죽었다.]
결코 희귀한 단어도 아니었고, 일상생활에서 쉬이 들을 수 있는 단순한 단어였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내 표정이 굳어진다.
"......죽었다고?"
방금전까지 있었던 웃음기를 싹 빼고, 사뭇 진지한 어조로 베를레히리에게 묻는 나. 그러자 정글을 지키는 후회의 신전관은 더벅한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였다.
[그래.]
...들려오는 간단명료한 답변.
분명, 설원으로는 서큐버스 퀸, 세리아나가 향했었다. 비록 사역마 중 최약체라고는 하지만 1300레벨인 그녀가 고작 일개 중간보스한테 죽지는 않았을 터.
"뭔 소릴 하는거야. 걔가 죽긴 왜죽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베를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두고 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
[글쎄?]
"흥."
약을 올리려는 심상인지, 희미한 비웃음을 머금는 베를레히리. 단순한 심리전에 말리는 듯 한 기분이 들어, 나는 태연한 얼굴과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 일부러 과장스러운 몸짓을 해보인다. 허나,
[띠링!]
"응?"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내 앞에 생성되는 붉은 화면. 평소 보던 푸른색의 화면이 아닌, 무언가 위험함을 알리는 듯 한 빨간색의 화면에, 내 몸이 경직된다.
[WARNING]
사역마 세리아나가 사망하였습니다.
※리스폰 쿨타임: 24H
"......"
알림창에 적힌 말도 안되는 글자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내용들에, 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도 안돼."
내 심정을 정확히 표현해주는 4글자.
수십명을 학살해대던 그 옥시안의 사역마가 고작 일개 중간보스한테 죽었다고? 랭커들조차 쩔쩔맸던 그 세리아나가? 고작? 만약 신전관한테 죽은게 사실이라면 이건 사표 쓰라고 해도 그녀 입장에선 할 말이 없는데?
[......진정해라. 신전관한테 죽은게 아니다.]
"......뭐?"
한창 심오한 고민에 빠져있는 그때, 베를레히리가 하품을 쩍 하며 내게 말을 건넨다. 잘록한 허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
[이 넓은 섬 안에 외부인이 너만 있는건 아니다.]
"외부인?"
리모콘을 집어들며 무심한 듯 말을 던지는 베를레히리. 별 문제 아니라는 듯 한 반응을 내보이는 그녀였지만, 듣는 내 입장에서는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사항이었다.
'누구야......'
세리아나를 이길만한 외부인.
그렇다면 최소 1300레벨 이상의 소유자.
어라이징 내에서 그정도 레벨을 지닌 자는 극상위 랭커들 혹은 S급 이상의 시즌보스들 뿐.
무지성 시즌보스들이 하늘에 떠있는 레반하워즘으로 올 리는 없었으니, 아마도 범인은 랭커 혹은 지성을 지닌 시즌보스일 것.
"누구야 대체......"
나는 머리를 감싸안고 생각을 이어나간다.
이어서 차오르는 것은 당혹감보다는 분노.
"...웃기네."
세리아나는 그 아름다운 외모로 인하여 옥시안만큼이나 유명한 몬스터. 어라이징을 플레이해봤던 사람은 모를수가 없는, 마스코트격의 인물이었다. 랭커 혹은 지성 시즌보스들은 어라이징 유저가 변화한 것이었으니, 이것은 명백히 나에 대한 도발인 것.
"야."
나는 옆에 서있던 베를레히리의 멱살을 잡고는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말한다.
"똑바로 말해,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
멱살이 잡힌 채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베를레히리. 그녀는 무뚝뚝한 목소리와 함께 진정하라는 듯 내 손을 잡는다.
[설원을 지키는 '강인의 신전관'이 방금 일제히 타 신전관들한테 염문(?), 즉 텔리파시를 보냈다.]
"뭐?"
[제3자한테 네 사역마가 죽었고, 자신도 곧 뒤질 예정이라고 하더군.]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베를레히리.
나는 입술을 깨물며 멱살을 잡은 손을 놓아준다.
"씨발."
정말 간단히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레반하워즘 공략이었지만, 갑작스레 일어난 예상밖의 일에 나는 얼굴을 찡그릴 수 밖에 없었다.
"하."
짧은 탄식과 함께 곧바로 뒤돌아서서 신전 밖으로 발을 옮기는 나. 심장 조각도 얻었겠다, 더이상 이곳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다.
"......"
그밖에 베를레히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타 사역들로부터 딱히 보고도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아 아마도 나머지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을터. 서둘러 설원으로 가 사건을 조사해보는게 우선인 것 같았다.
겨우겨우 만난 베를레히리를 더 괴롭혀주지 못한게 아쉽긴하다만, 그건 좀 나중으로 미루지 뭐.
......헌데,
"왜 따라오냐."
[심심해서.]
"......"
신전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베를레히리. 방금전까지는 죽어라 나를 공격하더니,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버린 그녀를 나는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전하,」
"......!!"
......신전 바깥으로 나가자, 무릎을 꿇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리아나를 제외한 3명의 사역마.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이며 내게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보고한다.
「저희 셋 모두, 명하신 섬의 심장 조각을 갖고 왔습니다.」
"......"
렉타우스의 말과 동시에 일제히 자신들이 획득해 온 심장 조각을 내놓는 사역마들. 나 또한 품 속에서 베를레히리가 건네준 심장조각을 꺼낸다.
"......!!"
그러자 웅장한 소리를 내며 두둥실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레반하워즘의 심장 조각들. 그 새빨간 보석들은 허공에서 하나로 뭉쳐져 하트 모양의 형태를 생성해낸다.
"......"
심장 모습을 구현해낸 후, 다시금 나의 손바닥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는 섬의 심장. 움푹 들어간 한 부분, 세리아나가 갖고 왔어야 했을 조각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파츠가 맞춰졌다.
"......"
거대한 다이아몬드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심장을 요리조리 살펴본 뒤, 나는 다시금 나의 사역마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리며 말하는 나.
"세리아나가 죽었데."
타 사역마들에게, 서큐버스 퀸 세리아나가 죽었음을 알려준다. 허나, 24시간 후에 부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건지, 별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 그들.
「세리아나, 한심......」
「전하께서 내리신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다니, 이건 소환수의 자격 박탈 사유입니다.」
오히려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세리아나를 헐뜯기 시작한다. 그런가, 얘들은 그녀의 죽음보다는 내 명령을 수행했는지 못했는지에 더 초점을 두고있는건가.
「......어째서 염문으로 보고를 올리지 않았는지 의문이군요.」
"......"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듀랑발이 입을 연다.
궁금증이 뒤섞인 목소리로 내게 묻는 그.
그의 말에 나 또한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게말이다."
본디 사역마들과 그 주인은 텔리파시로 항상 소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있다. 헌데 목숨을 잃을때까지도 내게 아무런 보고가 없었다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
「그거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사옵니다만,」
"응?"
...나의 의문에 대하여 답하는 렉타우스.
동그란 안경을 고쳐쓰며, 그녀는 손가락 2개를 치켜든다.
「첫번째로는 죽는 순간까지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겠죠. 옥시안님이 내려주신 임무를 실패한다는 것이.」
"흐응......"
그런가.
나에 대해 과도할정도의 충성을 바치는 사역마들이었으니,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임무를 실패했다는 염문을 보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 두번째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렉타우스에게 묻는 나.
그러자 그는 이번엔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보고를 할 틈도 없이 죽어버린겁니다.」
"......"
그의 말에 '정글'의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다.
매우,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나.
지금껏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만한 자가 누가 있다는거지 렉타우스."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긴 하죠. 가능성만 보자면 첫번째 확률이 더 높긴 하다만,」
"세리아나를 일격에 죽일정도의 인물이 있음도 배재할 수는 없다는건가..."
「......맞습니다.」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는 렉타우스. 그의 답변에 나는 말없이 입술을 깨문다.
'기분 나쁘네...'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세리아나에 대한 실망감도 실망감이지만, 그녀를 죽여놓고 '옥시안 사역마도 별거 아니네?'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을 누군가를 생각하니,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일단 설원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사역마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이것이 나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일 가능성도, 이미 도주했을 가능성도 적잖이 있었지만, 만약, 혹여나 만난다면 반드시 죽여버려주겠다는 다짐을 해준다.
"......"
내 사역마를 죽인 것은,
나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다름 없었으니까.
***
.
.
.
"......"
...그렇게 3명의 사역마, 그리고 우리를 따라온 베를레히리와 함께 도착한 '설원'. 눈덮인 새하얀 신전 앞에는, 엄청난 양의 붉은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하."
어이없는 헛웃음을 내뱉는 나.
아마도 저것은 세리아나의 피.
좋게 쳐줘서 신전관과 누군지 모를 적의 피를 합쳤다 하더라도, 저정도의 눈밭을 적시려면 거의 온몸의 혈액을 쥐어 짜내야 할 것.
"......"
상당히, 아니, 아주 많이 치열한 혈투가 일어났음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응?"
......그리고, 새빨갛게 물든 그 눈밭 한가운데에 놓인 붉은색의 보석 조각. 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레반하워즘의 심장 조각이었다.
"......"
더불어, 심장 조각에 테이프로 붙여져있는 곱게 접힌 편지 쪼가리 하나.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눈에 젖어 눅눅해진 그 꾸깃한 종이를 펼쳐본다.
......손바닥 크기의 편지지를 가득 메운 새빨간 글자들.
[옥시안 사랑해 사랑해 내가 항상 지켜주고 도와줄게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
...내 표정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