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상하이 공방전 (1)
* * *
"......"
한껏 표정을 찌푸리며 심장 조각에 붙여져있던 쪽지를 바라보는 나. 편지에 적힌 글씨체에서부터 느껴지는 광기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만 봐서는 전형적인 사생팬 스토커인데......"
쪽지를 한가득 메운 사랑한다는 내용.
저정도의 과도한 집착은 극성팬, 혹은 스토커가 아니면 보이지 않을 행동들이었다.
"......"
뭐, 워낙 인기가 많은 옥시안이었으니, 별난 팬 한 두명이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할게 없었지만, 그 팬이 내 사역마를 죽이고 다니는 싸이코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렉타우스."
「예, 전하.」
내가 옆에 서있던 렉타우스를 부르자,
그 정장 차림의 아크 데빌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아직 섬을 못벗어났을거다. 샅샅이 뒤져봐."
「알겠습니다.」
새빨간 글씨가 가득한 편지지를 그에게 건네주며 명을 내린다. 세리아나가 죽은지 채 30분이 되지 않았으니, 아직 섬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단서라고는 눈밭에 묻은 뒤섞인 혈흔과 편지뿐이었지만, 뭐, 렉타우스라면 어떻게든 알아오겠지.
「그럼,」
내 명령에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해본 뒤, 자신의 몸을 모래 입자로 분해시켜 허공으로 사라지는 렉타우스. 이제 이 설원에 남은 사역마는 아드레나인과 듀랑발, 둘이 전부였다.
"......"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양옆을 지키는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설원에 놓여있던 마지막 레반하워즘 심장 조각을 집어든다.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웅장한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솓구치는 그 붉은색의 보석. 덩달아 이미 맞춰놓았던 나머지 심장 조각들도 내 품 속을 비집고나와 허공으로 띄어오르기 시작한다.
"......"
아름다운 빛을 발산해내며, 마침내 온전한 심장의 형태를 구현해내는 보석 조각들. 이어서, 정글, 사막, 호수, 평야, 설원, 다섯군데의 보스를 물리치고 얻어낸 레반하워즘의 심장이, 천천히 내 작고 고운 손에 쥐어졌다.
[Info.]
시즌보스 레반하워즘의 소유권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반하워즘의 모든 신전관들이 복종합니다.
※타인에게 심장을 양도하지 않는 한, 소유권은 영구적으로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동시에 내 앞에 생성되는 푸른색 화면.
레반하워즘 공략에 완전히 성공했음을 알려주는 상태창이었다.
"......신전관들이 복종한다라,"
턱을 긁적이며 천천히 홀로그램 화면에 적힌 글자들을 읽는 나. 레반하워즘의 소유권을 획득했음과 그 중간보스들이 복종한다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딱히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래도 뭐,"
나는 알림 화면을 닫은 뒤, 내 뒤에서 오들오들 추위에 떨고있는 베를레히리를 쳐다본다.
"꿇어."
[......]
그러자 놀랍게도 아무 군말없이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는 그녀. 나와 달리 추위에 대한 내성이 없는데다가, 돌핀팬츠와 런닝 한장밖에 입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상당히 차가울텐데도 묵묵히 내가 내린 명을 따른다.
"......좋아."
활짝 미소를 짓는 나.
최애캐 베를레히리가 내 심복이 되었다.
그거 하나로도 충분한 소득이 있는 이번 원정이었다.
사역마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타 신전관들도 리스폰되면 한번 만나봐야겠군.
"레반하워즘, 방향 돌려. 상하이로 가라."
......이어서, 나는 섬의 심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섬의 소유권까지 획득한 이상, 더이상 이 어디일지 모를 항공에 머무를 필요는 없겠지. 서둘러서 링 메이와 인외변화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상하이로 향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쿠구궁.]
"......"
나의 말에, 레반하워즘은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이 땅에서 굉음을 내뿜더니, 이내 섬을 회전시켜 목적지를 바꾼다.
"흠......"
슬슬 터오는 해를 바라보며 심오한 표정을 짓는 나.
"...별 일 없겠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턱을 긁적거린다.
내가 없는동안 무슨일, 그러니까 예컨데 화양연화가 아리아 길드를 무시하고 급발진을 했다던가, 링 메이가 갑자기 폭주를 했다던가, 그런일은 없겠지?
"에이, 설마."
레반하워즘에 도착하고, 공략하는데 채 1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상해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합치더라도 오후 안에는 도착할 터. 하긴, 이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꽤나 힘들겠지.
"좋아!"
상쾌하게 터오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난이도 A+의 시즌보스, 천공섬 레반하워즘은 천천히 상하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
"길, 길드장님!!"
"으,응...?"
......간이 텐트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아리아 길드의 길드장 이시연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이른 새벽.
정해진 기상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깨운 길드원에, 그녀는 아리송한 목소리로 텐트 밖을 향해 소리친다.
"왜, 무슨 일인데."
"그, 그게......"
말하기를 주저하는 길드원.
무언가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 듯, 그는 떨리는 말투로 이시연에게 말을 올린다.
"잠깐, 나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
부하의 보고에,
이시연은 심각한 표정과 함께 서둘러 외투와 롱소드를 챙겨 나간다. 텐트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니, 아직은 차가운 새벽공기가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왜, 무슨 일이야."
추위에 몸을 떨며, 자신을 부른 길드원에게 묻는 이시연. 그녀의 질문에, 흰색 제복을 걸친 남성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아리아 길드가 세운 캠프의 입구. 그리고 그곳에는 검정색 스카프를 두른 한명의 여성이 서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화양연화의 부길드장, 라이린 쉬옌.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그녀를 확인한 이시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새벽부터 웬일이에요?"
불쾌함을 팍팍 담아서 보내는 삐딱한 인사.
그녀의 말에, 라이린 쉬옌은 별거 아니라는 듯 한 투로 대꾸하였다.
"그냥 아침 인사입니다. 밤은 잘 보내셨나요."
"하."
그 맹인 여성의 답을 들은 이시연은 어이없는 웃음을 내뱉는다. 그 뒤, 손가락으로 라이린을, 아니, 라이린의 뒤편을 가리키며 말하는 그녀.
"......아침인사치고는 데리고 온 인원이 조금 많은데요?"
"......"
라이린 쉬옌의 뒤로, 최소 5천은 넘어보이는 화양연화의 길드원들이 중무장을 한 채 서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아리아 길드의 캠프를 덮쳐버릴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 이시연은 천천히 자신의 무기로 손을 가져다대었다.
"설마 새벽부터 한판해보자는건 아니겠죠?"
"......글쎄요."
비아냥거리며 묻는 이시연에, 아리송한 답을 내놓는 라이린 쉬옌. 그녀는 자신의 검정색 스카프를 고쳐 매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건 지금부터 시연씨의 행동에 따라 달린거죠."
"제 행동이요?"
"네."
들려오는 간단명료한 답변.
알수없는 그녀의 답에 이시연이 표정을 찡그리자, 라이린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이 찾아온 용건을 얘기한다.
"......저는 지금부터 상해를 총공격할겁니다."
"......!!"
예상밖의 말에, 이시연의 얼굴이 굳어진다.
레반하워즘으로 떠난 옥시안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으로, 절대로 화양연화가 상하이를 공격하게 놔두어서는 안되는 상태.
"갑, 갑자기요? 굳이? 지금?"
"네, 지금요."
설상가상, 당황하며 묻는 이시연에, 라이린은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내비친다. 이어서 자신의 지팡이검을 빼들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동맹으로써, 같이 상하이를 공격해주었으면 합니다. 옥시안님이 부재중인게 아깝지만, 한없이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씨발."
나지막한 욕설이 자동반사적으로 이시연한테서 튀어나온다. 지금 화양연화의 총전력으로 상해를 공격한다면 지칠대로 지친 링 메이와 인외변화자들은 무너질 것이 분명할 터. 최소한, 최소한 옥시안이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저들을 지연시켜야됐다.
"어, 음, 저 그게,"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이시연. 그녀는 자신들의 캠프를 손으로 가리켜보이며 말하였다.
"정 그러면 아침이라도 먹고 가죠? 역시 배가 든든해야......"
"안됩니다."
"......"
자신의 말을 단호히 커트해버리는 라이린 쉬옌.
이시연은 조급함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으며, 서둘러서 다른 핑계를 생각해본다.
"그럼 무기라도 점검하고 가는게......"
"필요없습니다."
"......"
역시나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을 끊어버리는 그녀. 꼼짝않는 철벽을 보는 듯한 기분에, 이시연은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하아......"
아예 그냥 작정하고 왔구먼.
무슨 핑계를 대든지 저들은 상하이로 진격할 것이다.
그렇게된다면 링 메이는 죽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죽기 직전 천사의 심장에 대한 비밀을 발설할지는 미지수겠지. 꽤나 여러모로 골치 아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천천히 자신의 롱소드를 빼드는 그녀.
애초에 옥시안이 자신한테 맡긴 임무도 긴급사태시 화양연화를 저지하는 것이었으니, 딱히 상관은 없어보였다.
"죄송하지만,"
이시연은 앙칼진 미소를 지어보이며,
라이린 쉬옌을 비롯한 화양연화의 길드원들에게 소리친다.
"그냥은 못보내주겠네요."
"......"
이시연이 무기를 빼들자,
어느새 그녀의 뒤로 집합한 3천여명의 아리아 길드원들도 일제히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는 라이린 쉬옌.
"역시나, 어제 그 요괴년과 무슨 말이 오갔군요."
"......"
라이린 쉬옌이 자신의 검으로 이시연을 가리키자, 이번엔 화양연화의 길드원들이 모두 자신들의 검을 뽑아들었다. 상하이 외각의 고속도로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나돌기 시작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생각 고쳐먹고 길 비키십시오."
"미안한데 중국년 얘기는 안들어."
"......죽고싶으십니까."
"그러는 너희야말로 자신은 있고? 곧 옥시안도 올텐데?"
비등비등한 전력이지만,
혹여나 자신들이 패배하더라도 옥시안이 도착하면 화양연화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옥시안과 동맹인 아리아 길드를 공격한다는건 자살한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었다.
......허나,
"상관없습니다."
"잉?"
의외의 답을 내놓는 라이린 쉬옌.
그녀는 자신의 검을 빙글빙글돌리며 이시연에게 말한다.
"저희 화양연화의 자본력은 아리아 길드보다 압도적으로 높죠. 옥시안님이야 당신들을 죽인 후 저희편으로 정식으로 캐스팅하면 될 노릇입니다."
"......뭐?"
아리아 길드가 제시했던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불러 옥시안을 매수할 예정이다? 자본력만 믿고?
"그게 가능하다 생각해?"
"......글쎄요, 적어도 지금까지 저희 자본에 넘어오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검으로 아리아 길드를 가리키는 라이린 쉬옌. 그러자 화양연화의 길드원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아리아 길드를 향해 덤벼든다.
"그래, 자신있으면 덤벼봐."
이시연도 미소를 머금으며 화양연화를 칼로 겨누었고, 그녀의 길드원들 또한 자신들의 무기를 치켜든 채 돌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이곳, 상하이 외각 고속도로에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퍼져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