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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 후퇴 (1) (55/85)

〈 55화 〉 후퇴 (1)

* * *

"데스나이트하고 서큐버스라......"

"쫄지마, 데스나이트는 그렇다치더라도 서큐버스는 튜토리얼에 나오는 잡몹이야."

"그래, 우리도 언제까지나 2자리수 레벨에 머무를 수는 없지."

"......"

나를 빽빽이 둘러싼 화양연화의 길드원들이 무어라 쑥덕거린다. 대화 중 태반이 틀리고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지만,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완벽한 계획을 세운 듯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하......"

다른것도 아니고 서큐버스라는 소리를 듣다니,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 어라이징 내 유일한 하프 데빌한테 감히 천박한 서큐버스라니 원, 악마와 음마의 구별법도 모르는 것인가.

「주군, 저 극악무도한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응?"

그들의 대화를 들은 듀랑발이 자신의 커다란 대검을 움켜쥐며 내게 말한다. 손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저들의 태도에 상당히 열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음......"

그의 말에 곰곰히 생각해보는 나.

아리아 길드원 같은 제3자가 우릴보고 '옥시안이다!' 소리라도 질러주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

"......"

게다가 빈 틈 하나 주지않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필수로 치워버려야 될 요소들일 터. 결국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듀랑발에게 말한다.

"내비둬, 내가 알아서 할게."

「......알겠습니다.」

내가 명하자, 듀랑발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어서 나는 시선을 화양연화의 길드원들에게로 옮긴다.

"신호하면 일제히 치자!"

"그래!"

"데스나이트는 우리 넷이 맡을테니, 서큐버스는 너희 둘이 맡아."

"알겠다."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며 중얼거리는 그들.

마치 나를 하찮은 슬라임 보듯이 바라보며, 이내 엄청난 기합과 함께 일제히 덤벼든다.

"간다!"

"죽어라아아!"

"......"

누가 뉴비 아니랄까봐, 그 어떠한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엉성한 하급 무기만을 믿은 채 공격을 날린다.

"내가 다 창피하네."

정말 오랜만에 순수한 이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멋쩍어졌지만, 기어코 덤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격을 해줘야지 인지상정이겠지.

"......중력장."

나는 아무런 미동도하지 않은 채, 주변의 중력을 조종할 수 있는 스킬, 중력장을 발동한다. 물론 범위와 적용 대상은 뉴비들뿐만이 아닌 1000레벨 이하의 전부.

"뭐, 뭐야?"

"욱!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

스킬 발동과 동시에 일제히 땅바닥에 붙어버리는 사람들. 화양연화와 아리아 길드 가리지않고, 1천레벨을 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중력에 짓눌러져 움직임을 봉쇄당하였다.

"이제야 좀 깔끔해졌네."

수백, 아니,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엎어지며 그제서야 조금 트이게 된 시야. 기준을 1천 레벨로 잡았으니 아마도 라이린 쉬옌과 이시연을 빼고는 다 엎어진 상태겠지.

"몸, 몸이! 이거 네 짓이냐 서큐버스!"

"응?"

...그때, 중력장에 눌린 화양연화의 뉴비 하나가 버둥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나는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 진열대의 인형마냥 고정된 그와 눈을 마주치며 답하였다.

"어, 내가 한거 맞는데?"

"서큐버스 주제에 무슨 듣도못한!"

한낱 서큐버스한테 제압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온몸으로 불쾌감을 표출하는 그. 자꾸 서큐버스 운운하는 그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손바닥을 들어 그의 뺨을 강타한다.

"크, 크아악!!"

"...서큐버스 아니거든."

뺨에 적지않은 충격이 찾아왔는지, 괴성을 내지르는 남성. 그는 눈을 부릅뜨고는 내게 언성을 높여 따진다.

"서큐버스가 아니라면 무어라는거냐!"

"......나?"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는 화양연화의 뉴비. 그의 물음에 나는 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18/19 시즌의 보스이자 어라이징 내 유일한 하프 데빌, 거기다 너네들이 공략불가라고 판정을 내버린...

"옥시......"

"옥, 옥시안이다아아!!"

"......"

......그 순간, 내 말을 끊어버리며 울려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 곧이어 엄청난 웅성거림이 이 상하이 고속도로를 훑고 지나간다.

"옥시안?"

"진짜다!"

"너넨 이제 다 죽었다!"

"근데 같은편이라고 하기엔 우리도 깔려있는데."

"진짜 옥시안이다......"

"......대신 소개해줘서 참 감사하네요."

이제서야 내 존재를 인지한 사람들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그 뒤,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밑에 깔린 뉴비를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온몸이 경직되어 있는 화양연화의 말단 길드원.

"옥시안......?"

"응."

"당신이......?"

"응."

"말도 안돼......"

"말 되는데."

"......살려주세요."

"싫어."

그는 아까와는 180도 다른, 갑자기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간곡히 목숨을 애원해보는 그였지만, 내가 들어줄리는 만무.

"다음생에는 자신의 무지함을 반성해 봐."

한쪽 주먹을 치켜올린 뒤, 주먹의 강도를 한층 더 강화시켜주는 스킬, 혈권(血?)을 발동한다. 허공에서 핏방울들이 맺혀나더니, 이내 내 주먹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커다란 권투 글러브 모양을 생성해낸다.

"아, 제, 제발, 제가 잘못했어요, 높으신 분을 몰라 봤습니다."

"......"

"제가 아는 정보가 얼마 없어서 착각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

"원, 원하신다면 금전적 배상을 해드리겠습니다."

"......."

"그럼 노예라도 좋으니 목숨만... 으아아아악!"

"그냥 뒤져."

간절히 무어라 비는 그를 무시한 채, 강화된 붉은 주먹을 내리 꽂는다.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낙하하는 것을 보자마자 괴성을 내뿜으며 실신하는 그.

"......"

허나, 그의 머리가 아닌 바로 옆의 아스팔트를 강타하는 나의 주먹. 시멘트가 으깨지며 파들어 가는 느낌이 손끝을 따라 전해져왔다.

「......? 안죽이시는 겁니까?」

고의로 공격을 빗겨낸 나에게, 옆에 서있던 듀랑발이 아리송한 듯 묻는다. 그런 그의 물음에, 혈권을 해제하며 중얼거리는 나.

"불쌍하게 얘들 잡아봤자 뭐하냐."

겁먹어서 기절한 꼴사나운 모습 본 거로 만족하지 뭐. 아마 이정도만 해놓아도 다음부터는 절대 덤비지 않을거고 말이야.

「그렇군요. 역시 자비로우십니다.」

"그건 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듀랑발에,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웃는다. 자비롭기보다는 악랄한 거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은데 말이지.

"뭐,"

......주변 및 조무래기 정리는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았고, 나는 자리에 일어난 뒤 저 멀리 보이는, 유일하게 중력장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두 여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옥시안님......"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화양연화의 부길드장 라이린 쉬옌과,

"와! 옥시안님! 여기에요 여기!"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기는 이시연.

엉망진창인 상태를 보아하니, 아마 저 둘도 직전까지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넌 이제 뒤졌다 짱개년아!"

"......그 저급한 주둥아리 좀 다무십시오."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이는 그녀들.

내가 코앞까지 다가가고 나서야 서로간의 거리를 벌리며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옥시안님, 레반하워즘은요?"

이어서, 이시연은 후다닥 내게 달려오며 환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뒤편의 거대한 섬을 가리키는 나.

"공략 완료했고, 아마 지금쯤 도시의 인외변화자들을 옮기고 있을거에요."

"성공이네요."

나의 대답에, 그녀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이정도면 늦기 전에 임무 완료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옥시안님,"

"응?"

이시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엔 반대편에서 라이린 쉬옌이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네......"

갑자기 사라졌다 왠 거대한 천공섬을 끌고 나타난 나에게 적잖이 의구심을 느낄 법 한데도 무릎을 먼저 꿇는 그녀에게나는 적잖은 당황스러움 느끼며 황급히 손을 건네 일으켜 세운다.

"옥시안님."

"네?"

......허나, 오히려 손을 뿌리치고는 더 깊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 이어서 진지한 목소리와 함께 내게 말을 건넨다.

"또다시 타이밍을 놓치고 방해를 받을까봐, 얼굴을 마주 본 지금 서둘러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 말씀이요?"

"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이길래......"

한껏 긴장한 듯한 그녀에게 내가 묻자, 화양연화의 부길드장, 라이린 쉬옌은 마른침을 꿀걱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리아 길드를 버리고,"

"......"

"부디 저희 화양연화와 손을 잡아주십시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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