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 후퇴 (2) (56/85)

〈 56화 〉 후퇴 (2)

* * *

"......"

옥시안에게 무릎을 꿇어 보인 라이린 쉬옌은, 1주일 전 자신의 길드장 웡 치챠오가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라이린.]

[주석으로부터 모든 지원을 약속받았다.]

[1주일 뒤 옥시안이 온다면,]

[권력, 돈, 명예 모든 것을 팔아 그녀를 스카웃해라.]

"......"

어라이징 내 절대자로 평가받고 있는 18/19 시즌보스 옥시안. 어라이징의 그 모든 것이 현실에 뒤덮여진 지금, 그녀는 현재 핵무기보다도 더 강력한 전력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한낱 한국의 개미새끼들한테 뺏길수는 없지.]

[옥시안을 스카웃하여 우리는 다시 1위로 올라간다.]

"......"

다국적 길드 신세리아 르 메이, 영국의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 등, 허망급 아이템을 앞세운 강력한 신흥 길드들에게 1등의 자리를 내준지 오래. 물량과 인원수에 의한 길드전이 저물고 아이템 위주의 전략적 길드전이 도래하자, 물량의 대명사라 불리는 화양연화는 좀처럼 반동을 하기가 힘들었다.

허나, 옥시안의 등장은 자신들에게 있어 가장 큰 기회. 최강이라 불리우는 그녀가 만약 화양연화에게 협조해준다면 1위 길드 탈환은 물론 세계 패권국 또한 가능할 터.

[그녀도 아리아 길드가 자신을 품기엔 작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꼭 성사시키거라 라이린 쉬옌.]

"......"

고작 한국의 길드한테 빼앗기기는 너무나도 아까운 요소였다. 그래도 자본만큼은 어라이징 내 모든 길드들 중 최고인 화양연화였으니, 옥시안을 빼앗아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함,함께 하자고요? 갑자기요?"

"네, 저희 화양연화는 지금 공식적으로 옥시안님께 스카웃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워낙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한 듯 한 옥시안.

라이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도 말을 이어나간다.

"죄송합니다. 이후에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링 메이를 처리하고 상하이를 되찾은 뒤 천천히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이시연이 화양연화가 옥시안을 섭외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는 일.

이후 상황이 안정된 후에는 이시연이 필사적으로 자신과 옥시안의 접촉을 방해하려 할 것이었으니, 다소 난잡한 분위기더라도 얼굴을 마주 본 지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라이린으로서는 최선이었다.

"원래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 사항이었는데,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져서 말이죠"

그녀는 이시연을 바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중력장에 눌려 엎어져있는 수천의 길드원들, 전투중인 상하이 도심부, 저고도에 떠있는 레반하워즘을 차례로 훑어본다.

"그것도 조금 안좋은 쪽으로 말이죠."

지원을 왔다가 되려 적군을 도와주는 아리아 길드와 옥시안에 대한 일종의 원망을 드러낸 것.

"......아,"

그런 라이린의 행동에, 옥시한 또한 그 점은 무언가 말할게 있다는 듯 진지한 표정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그건 말이죠..."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여는 그녀.

갸녀린 목소리가 급격히 고요해진 고속도로 위에 울려퍼졌다.

"도시에 들어갔을 때, 링 메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상해를 불법 점거 중인 링 메이와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고,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인외변화자들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주며, 핍박받고 차별받는 인외변화자들의 현실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분명 몇달전만해도 일반 시민이었을 그들일텐데, 아무 죄도 없이 그냥 뚜드려 맞는 것은 도저히 못보겠더라고요."

이어서 자신의 뒤,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하늘을 부유하는 천공섬 레반하워즘을 손으로 가리켜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들 모두를 레반하워즘으로 이주시키는 것이였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상해는 비게 되고, 화양연화도 본래 원하던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인외변화자들을 레반하워즘으로 이주시켜버리면 화양연화는 그들을 죽일필요도 없어지고,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상해 또한 얻게 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굳이 전투를 벌일 필요도 없으니, 인명피해 또한 줄어들게 되겠죠."

무력으로 상하이를 탈환하려면 필수적으로 그곳을 지키는 SSS급 시즌보스 링 메이와 싸워야 될 터. 그렇게 된다면 분명 적지않은 인명피해가 생길 것이었으니, 기왕이면 피할 수 있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

"링 메이하고도 이야기가 끝난 상황입니다. 병사만 물러주신다면 지금 이순간 바로 상해는 중국의 손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

꽤나 길었던 옥시안의 말을 조심스레 곱씹는 라이린 쉬옌. 당황스러운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분명 체감상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시간인데, 대체 어디서 레반하워즘을 끌고 온 것이며, 그런 계획은 언제 생각한 것인가.

'그러면,'

어젯밤 잠깐 사라졌던 것은 레반하워즘을 찾으러 갔기 때문인건가. 이시연이 옥시안은 서울에 갔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은 혹여나 화양연화가 먼저 레반하워즘을 차지하거나 방해할 것을 방지했던 것이고 말이야.

"......"

애초에 화양연화의 의견은 개입할 수 없도록 계획을 세웠군. 아무런 피해 없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

"......꽤나 치밀하시군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옥시안에게 말하는 라이린 쉬옌. 자신을 속인 것은 불쾌했지만, 분명 옥시안이 제시한 절충안은 썩 나쁜 방법이 아니긴 하였다.

'아예 중국에서 사라져버린다면 굳이 무력으로 치울 필요는 없지.'

중국 내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하늘을 부유하는, 무인도와도 같은 레반하워즘으로 이주하는 것이면 구태어 무력으로 그들을 죽일 필요는 없어보였다. 골칫거리였던 링 메이 또한 알아서 사라져 줄 테니 결코 나쁘지 않은 제안.

......허나,

"그건, 조금 애매할 것 같습니다."

"......예?"

잠깐의 고민을 거친 라이린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고작 인외변화자들을 위해 '하늘 위의 요새'라 불리는 레반하워즘을 양보한다? 그녀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저 개미새끼같은 인외변화자들한테 넘기기에는 레반하워즘의 활용방도가 너무나도 무궁무진합니다."

당장 레반하워즘 내에만 해도 중간보스급의 전력이 다섯명, 쌓여있는 자원도 꽤 될테고, 무엇보다 항공모함같이 개조를 하여 군 기지로도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차라리 어서빨리 저 사회악인 변화자들을 죽여버리고 저희와 함께 하시죠 옥시안님."

"......"

"옥시안님과 저희 화양연화가 힘을 합친다면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는데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난이도 EX급의 시즌보스 옥시안,

한때 어라이징을 호령했던 초대형길드 화양연화,

그리고 천공섬 레반하워즘까지.

이 세가지가 버무려진다면, 현 랭킹 1위 길드 신세리아 르 메이를 꺾는 것은 물론이오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레반하워즘까지 들어오다니, 뜻밖의 횡재다.'

밝은 미소를 짓는 라이린 쉬옌.

본디 옥시안만 스카웃하여도 성공적일텐데, 레반하워즘까지 들어오다니, 주석과 길드장이 기뻐할게 분명하겠군.

"시연씨,"

"뭐."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서며,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이시연을 부른다. 몹시 불쾌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시연에게, 꽤나 발랄한 목소리로 묻는 라이린 쉬옌.

"......현 옥시안님과의 계약금이 어떻게 되죠?"

"뭐?"

그녀의 물음에 이시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한 그녀는, 곧이어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걸 왜 물어봐 씨발."

"......"

마치 예의에 어긋난 질문이여서 답하지 않는 듯한 이시연이었지만, 계약금이 만약 엄청난 액수거나,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감당못할 금액이었으면 당당히 이야기 했겠지.

...충분히 찔러 볼 만한 타이밍이었다.

"옥시안님."

"......"

이어서 붉은제복의 맹인여성은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있는 옥시안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주석님과 길드장으로부터 모든 허락을 받았습니다."

"......"

"계약금은 한화 가치로 약 187조원, 그밖의 금물과 부동산도 드릴 예정입니다."

흥분한 듯 얼굴에 잔뜩 홍조를 띄운채 말하는 라이린 쉬옌. 마치 기관총마냥 쉴세없이 계약 조건들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뿐이겠습니까, 주석님께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장의 자리도 약속하셨습니다."

"......"

점점 입꼬리가 올라가는 라이린과는 달리, 점차 표정이 어두워지는 옥시안. 허나, '느낄' 수는 있어도 표정을 '볼' 수 없는 라이린은,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또한 동시에 화양연화의 간부 직책도 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만."

"거기다 중국 내 원하시는 인물이 있다면 비서로 두실 수 있도록 저희가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만하세요."

"역시, 아리아 길드같은 하찮은 길드보다는 저희와......"

"그만하라고."

"......예?"

갑자기 들려오는 날카롭고 살벌한 목소리에, 이야기를 멈추며 몸을 흠칫떠는 라이린 쉬옌. 옥시안이 자신의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반응을 내비치자, '어?'라는 당황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혹여나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인가 서둘러서 되묻는 그녀. 곧이어 앞에서 매우 짜증에 가득 찬 문장들이 날아온다.

"다 필요없고,"

"네?"

"군사 후퇴시킬거에요, 아니면 계속 힘겨루기 하실건가요?"

"......크윽?!"

......들려오는 옥시안의 말과 함께, 라이린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무거워짐을, 무언가 무거운 추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느낀다.

"윽......"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레 무릎을 꿇게 되고, 주변 지면이 바스라져간다. 이 초자연적인 현상, 그러니까 아마도 옥시안이 시전했을 이 스킬은,

"중력장......!"

유저 랭킹 3위인 자신이 견디지 못할 정도면 그것도 아마 최대 출력의 중력장. 여기서 조금만 더 강도를 올리면 자신은 흔적도없이 뭉개질게 분명할 터.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논점 똑바로 잡으세요."

"......!!"

이어서 살벌하면서도 갸녀린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속삭여져온다.

"제가 물어본건 군사 후퇴 여부이지, 계약금이 얼마인지가 아니잖아요."

"......"

"제가 귀찮은 건 상당히 싫어해서 그런데,"

"......"

"제가 원하는 대답, 똑바로 해주실 수 있겠죠?"

라이린 쉬옌을 짓누르는 중력이 점차 거세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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