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사생팬 (2)
* * *
"......"
악질, 그것도 아주 심각한 악질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더불어 어이없다는 기분을 대변해주기라도 하 듯, 얼빠진 탄식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하."
무릎을 꿇고 앉아, 정말 희미하게 찍혀있는 신발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본다. 손 뼘으로 대강 길이를 재어보니 크기는 약 270 사이즈로, 건장한 성인 남성의 발자국으로 추측되었다.
"대담한 녀석이네."
발자국을 바라보는 입가에 황당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증거가 남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는 것은 들키지 않을 자신이 넘쳤던 것일까? 혹은 은근히 걸리기를 기대하는 변태적 성향이 있던 것일까?
"......"
정체모를 발자국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창문쪽으로 돌려본다. 평소와도 같이 너무나도 굳건히 잠겨있는 유리창. 그쪽을 통해 들어왔다기엔 어디 하나 깨진 흔적도, 낯선 손바닥 자국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현관문."
이어서 내 시야가 향한 곳은 현관문.
두터운 쇠로 이루어져 겉보기에는 철통같아보이는 현관문이었지만, 도어락 비밀번호만 안다면 가볍게 뚫리는 시스템 덕분에 아마도 들어왔다면 창문보다는 현관을 통해서 들어왔을 확률이 크겠지.
"......"
나는 턱을 긁적이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알아낼 정도라면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내 근처를 맴돌았었다는건데, 그렇다면 내가 알아채지 못할리 없었다. 비록 옥시안의 감각 스탯이 타 스테이터이스에 비해 떨어지긴 했어도,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었으니까.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옥시안의 뒤를 밟았다.
이건 자신의 은신 능력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거나 들켜도 신변을 보호받을만한 맏는 구석이 있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
"......"
세리아나를 죽일 정도로 강하고,
검정색의 우는 모양 가면을 썼으며,
은신, 혹은 추적 방면에 특화된 인물.
그리고,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은 내 머리속에 단 한명밖에 생각 나지 않았다.
"아우레키아."
14/15시즌의 난이도 SS급 보스, 아우레키아.
자신의 몸을 투명화 시킬 수 있는 그는, 은신에, 은신의, 은신을 위한 보스라고 표현될만큼 모습을 감추는데에 특화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더불어, 투명화 능력과 어우러진 강력한 속공은 수많은 길드들을 애먹이게 하기엔 충분하였고, 그가 SS급이라는 등급을 부여받게 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였다.
"......"
아직까지 내 추론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우레키아가 범인이라고 가정하면 세리아나가 눈 깜짝할 새에 죽은 것도, 내 집에 몰래 침입한 것도 현실성 있는 일들이지.
"렉타우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은 뒤, 지금 바깥 어딘가에서 순찰을 돌고있을 렉타우스에게 염문을 보낸다. 그러자 곧이어 들려오는 한 사내의 날카로운 목소리.
「예, 전하. 부르셨습니까.」
"응."
나는 창가쪽으로 걸음을 옮긴 뒤, 굳게 닫혀있던 유리창을 열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몇몇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조용한 서울의 야경.
"지금 바깥에 수상한 인물이나 흔적 같은거 있어?"
「음......」
나의 질문에, 렉타우스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이 뜸을 들인다. 그리고는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답을 건네는 그. 송구하다는 감정이 곳곳에 실려있는 것만 같았다.
「열감지 구슬들까지 풀어 반경 1km를 감시하고 있다만, 별달리 잡히는 건 없습니다.」
"아......"
하기야, 제정신이 박혀있는 녀석이라면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돌지는 않겠지.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시간차, 혹은 거리를 두고 주기적으로 스토킹 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 알았어. 일단 범위 넓혀서 더 꼼꼼히 살펴봐."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
자신만만한 렉타우스의 답을 끝으로 끊어지는 염문. 방 안에 또다시 침묵이 나돌자,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다시금 깊은 생각에 빠진다.
"정상은 아니야......"
골치 아프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젓는 나.
집착과 질투로 내 사역마를 죽이고, 속옷까지 훔쳐가다니, 백번 양보해도 결코 일반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아우레키아의 힘을 얻게 되어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대로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겠지.
"......"
거기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내 뒤를 밟고 후퇴하는, 나름 치밀하디 치밀한 녀석이었다. 웬만해서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터.
"그러면......"
재미난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싱글싱글한 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
"좋아."
......내가 찾지 못한다면,
본인이 와서 자수하게 만들면 될 일이었다.
***
.
.
.
.
.
"......"
다음날,
나는 아침 해가 뜨자마자 아직까지 격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잠실을 향해 길을 나섰다. 보통때 같았으면 전이문을 이용하여 단숨에 도달했겠지만, 오늘은 스토커에게 고의적으로 모습을 비추는 것이 목적인만큼, 일부러 내 모습을 곳곳에 드러내며 직접 두 발로 걸어서 가기로 결정하였다.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잠실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폭탄, 칼소리, 함성 등의 치열한 전투음이 내 귀를 찔러오기 시작하였다.
"잠깐 물러나!"
"공수 교대!"
"방패병 앞으로!"
서울내 몇안되는 위험지대로 선정되어서 그런 것일까, 수많은 군인들이 잠실대교를 비롯하여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각종 무기로 무장한 유저들 또한 틈틈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호오......"
오랜만에 보는 일반 유저들과 괴수들간의 전투.
흔치않은 풍경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전장터로 짐입하고자 했지만, 들어가기는 커녕 한발을 내딛기도 전에 주변을 지키던 군인들에게 저지당한다.
"멈추세요! 여긴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주세요!"
"......"
의기양양하게 전쟁터로 향하는 나를 기겁하며 막는 군인들. 걸음을 저지당한 나는 뾰루뚱한 얼굴과 함께 곧바로 불만을 표출했다.
"네? 유저도 출입금지인건가요? 기껏 도와주러온건데."
"유, 유저요?"
"아 변화자십니까?"
나의 말에, 그제서야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그들.
외형만 보고 어린아이라 착각했던건지, 그제서야 내가 일반 인간이 아닌 조금 특이한 외형,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뿔'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챈 듯 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유저시라면 저쪽에서 명부......"
"아니, 잠깐만."
"......"
...안경을 쓴 군인이, 나에게 무어라 설명하던 다른 한 군인의 말을 끊으며 얼굴을 내쪽으로 들이민다.
"......"
눈살을 찌푸리며 내 머리부터 발끝을 스캔하듯 훑는 그. 나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 군인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한다.
"설마......"
"네?"
"이름이......"
"이름이요?"
"옥, 옥......"
"옥시안인데요."
"옥시안......"
심히 말을 더듬으며 묻는 그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하자, 그 군인은 멍한 눈빛으로 몇번 무어라 웅얼거리더니, 이내 괴성을 내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옥시아아안??"
"에......"
안경 쓴 군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내 이름 세글자가 잠실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더불어, 모든 주변인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뭐?"
"옥시안이라고?"
"진짜?"
"걔가 여기를 왜 와?"
"......"
지나가던 유저들, 군인들 모두 희귀한 광경이라도 봤다는 듯 마치 구름처럼 내 주변으로 몰려왔다. 이어서 곳곳에서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반응들.
"와 찐이야?"
"거봐, 오늘 레이드오면 좋은거 볼거랬잖아."
"오크 처치 이후로 처음 나타나는거 아니야?"
"야, 사진, 사진!"
"......"
호기심과 기쁨에 가득 찬 시선들이 온몸을 콕콕 찔러온다. 하긴, 아리아 길드같은 대형 길드가 아닌 이상 시즌보스의 실루엣 조차 보기 힘들 그들일테니, 한층 더 신기하게 느껴지긴 할테지. 게다가 대상이 그 옥시안이니 말이야.
"사진 찍어주세요!"
"저기! 지금 바로 같이 레이드 가실래요?"
"여기 왜 오신거에요? 설마 지원?"
"아니 얘들아 일단 전투가 우선..."
"어, 그게......"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질문들과 외침에 삐질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때, 여러 물음들과 더불어 들려오는 렉타우스의 염문(?).
「전하, 들리십니까.」
"어? 어, 들려."
꽤나 다급한듯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뒤 텔리파시를 전달한다. 그러자 들려오는 그의 답변.
「왼쪽 대각선 뒷쪽 건물 옥상, 수상한자가 붙었습니다.」
"수상한자?"
「예, 인상착의는 말씀하신 검정색 코트입니다. 허나 가면은 쓰고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나는 나를 애워싼 사람들을 뒤로한 채,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살며시 왼쪽 대각선 뒤 건물의 옥상을 바라본다. 렉타우스의 말마따나, 작은 아파트 꼭데기에서 보이는 거무튀튀한 실루엣. 나는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돌린 뒤, 렉타우스에게 염문을 보낸다.
"......지금 뭘 하고 있지?"
스토커로 추정되는 그가 혹여나 도촬, 혹은 저격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렉타우스에게 묻자, 그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그게......」
"그게? 뭐?"
망설이는 듯한 그를 내가 재촉하자,
이내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한 답변이 내 머리속에 울려퍼져나갔다.
「별다른건 아니고,」
"아니고?"
「그냥 전하의 주변인들을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