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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 사생팬 (1) (59/85)

〈 59화 〉 사생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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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 스토커요?"

"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레반하워즘.

지상의 일을 정리하고 올라온 이시연에게 세리아나를 죽인 괴한의 일을 얘기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그거 완전 미친놈이네요."

눈살을 찌푸림과 동시에 땀에 흠뻑 젖은 제복을 벗어던지는 그녀. 그 옆에 앉아있던 링 메이 또한 괴한이 남긴, '사랑해'가 곳곳에 도배된 쪽지를 요리조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단순한 팬심보다는 오히려 광기에 가까운 것 같은데."

"하......"

이마를 감싸안던 나는 꽤나 부정적인 그녀들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나의 일을 끝낼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오는 또 하나의 일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이건 그냥 놔둘수도 없는 노릇이고......"

인기투표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옥시안이었으니 사생팬 한두명이 있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 사생팬이 내 사역마들을 도륙내고 다니는 극성 사이코패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 어떤식으로 내 앞길을 가로막을지 모르는 노릇이었으니까.

"......거기다, 레반하워즘까지 쫓아왔을 정도면 이미 옥시안님의 개인정보 몇개는 털었을 가능성도 있어요."

"아."

자신의 긴 검정색 머리칼을 넘기며 말하는 이시연에, 나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하기야, 하늘에 떠있는 레반하워즘까지 따라왔을 정도면 집주소같은 개인정보 몇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려나.

"도대체 언제부터......"

나는 엄지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사태 이후 별다른 일이 없어 주변 경계에 너무 허술했다. 변화 대상이 옥시안이었던 만큼 스토커, 사생팬, 도촬 등등은 한번 생각해보았어야 될 점인데 말이다.

"뭐, 잡아 죽이면 그만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마."

"......"

안절부절한 나와 달리, 링 메이는 뭘 그런걸 걱정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

"난 그것보다 누군지가 더 궁금한데."

'사건'보다는 '인물'이 더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는 링 메이. 싱글싱글한 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질문에, 이시연 또한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저도 누가 그랬는지가 궁금하네요. 인상착의가 어떻게 된다고 했죠? 검정색 코트에 우는 모양의 가면?"

"네, 아마 그럴거에요."

재소환된 세리아나의 말에 따르면,검정색 코트에 가면으로 얼굴을 뒤덮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 순식간에 자신을 죽였다고 했다. 반응조차 하지 못할 빠른속도로.

"저는 이름있는 랭커 혹은 시즌보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들에게 내 의견을 전달한다. 1300레벨의, 그러니까 하급 시즌보스의 강함을 지닌 세리아나를 일격에 죽일 정도의 인물이면 적어도 랭커 혹은 지성을 지닌 시즌보스일 터.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날린 인물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가면 쓴 애면 아우레키아가 유명하지 않아?"

"아우레키아?"

심오한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모호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하는 링 메이. 나와 이시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야를 그녀에게로 돌리자, 그 붉은 치파오의 요괴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왜, 그 14/15 시즌 보스 있잖아. 간지나게 생긴 애."

"흐음......"

링 메이가 추측한 것은 14/15시즌의 보스, 아우레키아였다. 아우레키아는 187cm의 큰 키, 검정색 코트, 검정색 가면을 착용한 광대 캐릭터로, 그 특유의 포스 덕에 어라이징의 남성 캐릭터들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인기와 비례하여, 어라이징 내에서 가면과 롱코트의 상징과도 같은 그였지만, 나는 섣불리 속단할 수는 없다는 제스쳐를 취해보였다.

"그래도 아직 단정하기는 이른 것 같은데."

"맞아요. 가면과 코트로 커스터마이징 한 사람들은 꽤나 있으니까요."

애매하다는 얼굴을 한 나의 말에, 이시연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생각나는 인물들이 있는지 손가락을 펼치며 직접 세어보는 그녀.

"당장 알슈타인의 길드장 엘빈도 코트들만 몇벌을 모을정도로 폐인이고, 그밖의 상위권 랭커들도 가성비 좋은 보호구인 가면을 밥먹듯이 쓰고 다니니까요."

이시연은 가면과 코트로 외형을 꾸민 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여럿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링 메이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듯,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허나, 범위를 세리아나를 죽일 정도의 인물로 줄여보면 아우레키아가 범인일 확률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죠."

"......"

"범인이 누가됐든, 분명 꽤 하는 놈인건 분명하니 당분간은 조금 주변을 살피는게 좋을 것 같아요."

"네......"

가볍게 스토킹을 포기할, 그러니까 툭 치면 톡 떨어져나갈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이시연에, 나는 시무룩한 표정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불안해서 잠은 잘 수 있으려나......

"......렉타우스."

「예, 전하.」

"지금부터 24시간 한시도 빼놓지말고 내 주변을 감시해. 수상한 녀석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고."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해결책을 생각해 본 내가 옆에 서있던 사역마 렉타우스에게 명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나름 1800레벨대의 렉타우스였으니, 아무리 그 아우레키아가 온다 하더라도 쉬이 처리하지는 못하겠지. 스트레스 받게 괜시리 신경쓰지말고, 당분간은 그에게 경호를 맡기는거로 하자.

"후우......"

다시금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레반하워즘의 밑으로 펼쳐지는 야경을 바라본다.

"......"

그 어느때보다 집에 가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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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는 신음을 내뱉으며 침대에 대(大)자로 뻗었다. 매트리스의 푸근함이 마치 구름처럼 내 몸을 감싸 안아오기 시작하였다.

"힘들다 힘들어."

......워낙 튼튼한 옥시안이었기 때문에 신체적 피로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만, 짧은 기간에 여러 일을 해결하느라 정신적 피로는 상당히 쌓여있는 상태였다.

"......"

난데없는 옥시안으로의 변화.

자취방을 부숴버린 기간토피아 처리.

도움을 요청한 아리아 길드.

서울을 위협하던 시즌보스 렉카챠 공략과

갑자기 발행된 피의 진주 획득 퀘스트.

그를 얻기 위한 아벨리아와의 전투.

이어진 상하이의 분쟁 해결까지.

소설의 한챕터를 장식할만한 굵직굵직한 일들이 두달도 안되는 기간에 연달아 일어났으니, 정신이 피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해보이는 상태였다.

"......"

나는 몸을 180도 빙글돌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 채, 앞으로 남은 고민거리들을 천천히 짚어나가 본다.

"레반하워즘......"

먼저, 서해상에 머물도록 놔둔 천공섬 레반하워즘.

아리아 길드가 내일부터 캠프를 설치해주기로 했고, 아드레나인과 듀랑발을 남기고 왔으니 혹시모를 공격에도 문제 없을 것이었다. 내로라하는 시즌보스인 링 메이 또한 상주하고 있으니 더더욱 말이다. 골칫거리였던 이동수단 또한 부활한 세리아나의 전이문을 사용하면 되니, 레반하워즘 쪽은 별 눈에 띄는 문제는 없어보였다.

"스토커......"

그다음은 난데없이 들러붙은 스토커.

질투와 집착으로 내 사역마까지 죽이는 미친놈 같았지만, 렉타우스가 상시 순찰을 돌며 경비를 맡고 있으니 그래도 한시름은 놓을 수 있을 터였다.

"...샤워나 해야겠다."

대강 큰 문제들은 없다는 걸 인지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근 이틀간 씻지 않아 찝찝함이 느껴지는 몸을 씻기 위해 조용히 샤워실로 걸음을 옮겼다.

"......"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

목욕 후 갈아입을 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 맨 밑의 서랍을 연다. 살짝 힘을 주니, 나의 새로운 몸, 그러니까 옥시안의 몸 사이즈에 맞는 잠옷과 속옷들을 모아둔 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덜커덕 열렸다.

"어?"

그리고, 이틀전에 비해 무언가 허전해진 서랍 안을 보자 굳어지는 나의 표정.

"뭐야."

...2벌뿐인 속옷 중, 레이스가 달린 속옷 한장이 온데간데 없어져있었다. 갑작스레 사라진 속옷에, 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옷장의 다른 칸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다른데 넣어놨나...?"

빨래 후 정리 중에 실수로 다른칸에 넣어뒀나 하고 재빨리 다른 옷장들을 뒤져보았으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는 그 수수한 핑크색의 속옷.

"......"

이어서 빨래통 속도 살펴보았지만, 나를 반겨주는 것은 블랙홀마냥 텅 빈 바구니일 뿐, 여전히 속옷의 행방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씨발."

난데없이 증발해버린 속옷에, 나는 표정을 일그린다. 분명 멀쩡한 속옷을 쓰레기통에 버렸을 리는 없을 것이고, 대체 어디간거지? 누가 훔치기라도 한건가?

"......훔쳐가?"

...그때,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가설.

"설마."

나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서둘러서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

굳게 닫혀있는 창문과 철통같은 현관문.

여느 때와 똑같은 방 안의 풍경이었지만,

"......!"

집 구석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찍힌 발자국은,

누군가가 이 집에 들어왔었음을 명확히 나타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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