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격투대회 (4)
* * *
[쟤 누구야?]
[몰라 처음보는데?]
[귀엽긴하네.]
"하아......"
관중석을 가득 메꾸는 야유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시작하기도 전에 심리전에 말려들면 안되는데 말이다.
[......]
"......"
허나, 다행히도 아드레나인은 고개만 두리번두리번 거릴 뿐, 별 신경쓰고 있지 않는 듯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에게 전해져오는 하나의 염문(?).
[주군, 지켜보고있어라아...]
".....!!"
여전히 맹한, 그러면서도 잔뜩 기대에 부푼 듯 한 아드레나인의 목소리가 머리속에 울려퍼졌다. 만에 하나의 패배 따위 고려도 안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래, 열심히 해봐."
나는 피식 웃으며 응원의 말을 전하였다.
폴리모프 상태에서 싸워야된다는 패널티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드레나인은 옥시안의 사역마이자 다크드래곤 로드. 겨우 1천레벨을 살짝 넘는 젠시야한테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흐음....."
염문을 끊은 후,
나는 VIP석의 태블릿을 들어, 그녀의 상대인 젠시야의 자세한 정보를 조회해보기 시작한다. 그러자 화면에 펼쳐지는 프로필 사진과 기다란 텍스트들.
"이름 젠시야 슬레이니브, 키 148cm."
키도 150을 넘지않고, 겉으로 보이는 외모도 그렇고, 대충 신체 조건 만큼은 아드레나인과 비슷한 듯 싶었다.
"다음... 소속 길드는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 직위는 부길드장, 레벨은 1031, 직업은 비공개."
랭킹 2위 길드,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의 부길드장인건 이미 알고있었던 정보이고, 정작 중요한 직업을 비공개로 해놓다니, 조금 답답할 노릇이군.
"흐음......"
뭐, 그래도 여기까지만 보면 큰 어려움 없을 상대나 마찬가지였지만, 바로 그 밑에 적힌 한 문장이, 자신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인물임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소유 무기, 허망급 아이템 '해신의 우산'."
...해신의 우산.
7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허망급 아이템 중 하나로, 현존하는 모든 무기들 중 가장 강력한 내구도를 지녔다고 했다. 게다가 하루 1번에 한하여 그 어떠한 스킬이든 캔슬 시켜줄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범용성 만큼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었다. 당장 내 궁극기인 공간 붕괴마저 취소시켰었지 않았는가.
"......"
...아무리 맷집이 좋은 아드레나인이라 하더라도, 폴리모프 상태에서 과연 해신의 우산을 막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살짝은 들기 시작했다.
[......자 그럼 양선수 모두 준비하시고,]
아래를 바라보니, 어느덧 시합을 준비시키고 있는 사회자. 배경음악이 꺼지고, 관중들의 함성소리마저 조용해졌으며, 오지 엄숙함과 긴장감만이 장내를 훑고 지나갔다.
......약간의 침묵 후, 마침내 사회자의 강렬한 외침이 들려왔다.
[4강 2차전, 시합 시자아아악!]
이윽고 개시되는 시합.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나 젠시야였다.
그녀는 푸른색의 장우산을 치켜들고, 망설임없이 아드레나인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
도움닫기를 하며 하늘로 힘차게 뛰어오른 그녀.
곧이어, 온 힘을 실은 채 해신의 우산을 아드레나인을 향해 내리쳤다.
[젠시야, 선제 공격을 날립니다!]
"......"
묵직한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는 푸른색의 우산. 소리로만 들었을때의 위력은 아까 에데르타인의 망치와 별 차이가 안 날 정도의, 아주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하암......]
허나, 그런 위협적인 공격에도 피할 생각 하나 하지않는 아드레나인. 오히려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꼿꼿이 자신의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흥.]
아드레나인이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자, 젠시야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음을 내뱉으며, 거침없이 우산으로 소녀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김용용! 공격 적중! 위험합니다아!]
"......"
다급하듯이 들려오는 사회자의 외침.
관중들 또한 '한방에 끝내라!', '죽여버려!'라며, 한껏 젠시야의 공격을 응원하고 있었다.
날아오는 허망급 아이템과 피하지도 하지 않는 선수.
일반 유저들 같았으면 그자리에서 일격패하는 것이 정상이었겠지만,
[.....?!!]
저기 서있는 것은 일반 유저가 아닌 내 '사역마'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뽑히는 다크드래곤 로드, 아드레나인이었다.
[약해...]
...해신의 우산이 정확히 머리를 가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자리에 서있는 아드레나인. 심지어 발자국 또한 단 일보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단하네."
그녀의 내구가 단단한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해신의 우산까지 견딜 정도라니, 나조차도 입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돼...]
[사기다 사기!]
[해신의 우산을 맞고 버텼다고?]
...관중들 또한 자신들이 본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바탕 술렁거림이 객석을 훑고 지나간다.
[말,말도 안됩니다! '해신의 우산'으로 직격당했음에도 상처 하나 없는 김용용!]
['대신 인형'의 내구도가 하나도 줄지 않았습니다!]
사회자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목소리를 잔뜩 떨며 상황 중계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아드레나인의 HP게이지는 단 1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무, 무슨...?]
완전히 적중한 자신의 공격이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하자, 젠시야의 표정이 순식간에 당혹감으로 물들어간다. 반면 아드레나인은 아무런 감흥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주먹을 내질렀다.
[내 차례...]
[.....!!]
크기는 작았지만, 마치 오함마처럼 묵직히 휘둘러져 오는 그녀의 주먹. 젠시야는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서둘러서 우산을 펼쳐 날아오는 주먹을 막는다. 다급해보이는 움직임이었긴 했지만, 그래도 듣던대로 공수교대 만큼은 능숙하고 재빠르게 이루어졌다.
[크윽?!]
허나, 그래도 워낙 힘이 강력했던 것인지, 공격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밀려나가기 시작하는 젠시야.
이윽고, 아까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한참을 날아가 그녀 또한 경기장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으윽......]
순식간에 20%가량이 줄어든 젠시야의 HP게이지.
관중석에서 뽑아져나오던 환호는 점차 술렁거림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젠시야! 김용용의 정권 한번에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잔뜩 흥분해서 소리치는 사회자.
허나, '김용용'이라는 기가 막힌 이름이 계속해서 내 귀를 찌르는 탓에, 내 얼굴은 어정쩡한 웃음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이시연, 이년이 진짜......"
이 말도 안되는 가명을 지어 준 장본인을 생각하며, 나는 두 주먹을 불끈쥔다. 그녀 또한 내일 결승전 만큼은 관람하러 온다 하였으니, 그때 제대로 한마디 해야겠군.
[무,무슨, 말도 안된다...]
"......"
...다시금 시야를 돌려 경기장을 쳐다보니, 젠시야가 우산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는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젠시야! 젠시야!]
[화이팅!]
[이길 수 있다!]
...뭐, 대다수의 사람들이 젠시야에게 배팅을 했을테니, 싫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응원 해야겠지. 자칫하면 큰돈이 날아가는데 말이야.
[......]
그런 관중들의 응원에 힘이 나서일까, 젠시야는 이를 악물고는 다시 한번 더 아드레나인에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여전히 가소로이 바라보는 나의 사역마. 마치 다음번은 무슨 공격을 해올지 내심 궁금해하고 있는 듯 하였다.
[...해신의 눈물.]
아드레나인에게로 달려오는 와중, 우산을 하늘 위로 치켜든 채 무어라 중얼거리는 젠시야. 그러자 허공에 거대한 물방울 같은 것들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기관총마냥 그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물방울?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공격인거시와요?」
...해신의 우산도 말끔히 견뎌내는 아드레나인인데 고작 물방울 따위를 소환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세리아나가 한심한 눈빛으로 젠시야를 쳐다보았다.
「...아니다 세리아나, 저걸 보아라.」
허나, 렉타우스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날아가는 물방울들을 가리켰다. 이어, 그는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세리아나에게 말하였다.
「저 물방울, 날아가면서 은으로 변환되고 있다.」
"......"
그의 말에 나 또한 눈을 찡그리고 자세히 쳐다보니, 정말로 발사된 물방울들이 점차 은으로 바뀌며, 말그대로 은 '탄환'이 되어 아드레나인을 향해 발사되고 있었다.
[......]
...꽤나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공격을 맞는 아드레나인. 결국 수십, 수백발의 은탄환이 그녀에게 적중하였고, 이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죽어라.]
그리고, 젠시야는 그 흙먼지들 사이로 뛰어들며 또다시 거세게 우산을 휘두른다.수백발의 은탄환 세례와 허망급 아이템의 참격. 도저히 살아날 구멍 따위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따가워어.......]
[......!?]
아드레나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로 그 흙먼지 속을 헤치고 뛰쳐나와 젠시야의 앞에 마주섰다. 이어서, 해신의 우산이 휘둘러지기도 전에 그 청발의 소녀의 목을 잡고 땅에 내려꽂는 아드레나인.
[크으으윽...!]
...옅은 신음과 함께 지면이 무너지고,
젠시야의 HP가 눈 깜짝할 새에 바닥까지 치달았다.
[젠시야아아! 단 두번만에! HP가 레드존까지 떨어집니다아아!]
마치 모세의 기적이라도 본 듯, 잔뜩 흥분을 하며 소리치는 사회자. 반면 관중석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의, 아니, 믿기지 않는다는 의미의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