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 격투대회 (3) (76/85)

〈 76화 〉 격투대회 (3)

* * *

"오."

순식간에 40%가량 줄어든 사무엘의 HP게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인형의 내구도가 40% 닳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일격으로 저정도까지 몰아붙이다니, 상당한 괴력의 소유자인가 보군.」

...옆에서는 듀랑발이 흥미로운 듯 에데르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역마들 중 힘과 접근전에 가장 자신있어 하는 그였으니, 아마도 한번쯤 그녀와 대련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사무에엘! 단 한번의 공격으로 엄청난 데미지를 입습니다!]

"......"

아래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

꽤나 치명적인 공격이 터지자, 관중석 또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월드컵을 방불케하는 분위기.

[웃기지마......]

허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사무엘은 얼굴을 잔뜩 일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통은 있겠지만 상처는 '대신 인형'이 받아주고 있었으니, 역시나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보였다.

[...간다.]

비장한 표정과 함께 자신의 무기를 고쳐 쥐고는, 다시 전속력으로 에데르타인을 향해 달려가는 그. 에데르타인은 그런 사무엘을 가소로운 눈빛으로 쳐다 볼 뿐이었다.

[어림도 없지.]

그녀는 기다란 금발의 트윈테일을 흩날리며, 한번 더 망치로 지면을 거세게 강타한다. 그러자 또다시 지진이 난 것 마냥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기장.

[.....!]

허나 같은 공격에는 두번 안당한다는 듯, 사무엘은 그 진동이 자신에게 도달하기 전 힘껏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그 뒤, 매서운 속도로 에데르타인을 향해 낙하하는 그.

[공명파(???).]

이어서 자신의 손에 들린 두개의 검날을 맞부딪힌다.

그러자 괴상한 금속음이 장내에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알슈타인이 전개중인 결계마저 뚫어버리고 관객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 소리. 마치 칠판을 긁어대는 듯 한 기괴한 소리에, 관객들은 괴로워하며 양손으로 귀를 막아댔다.

[으으윽...!]

[뭐, 뭐야?]

[귀, 귀가...!]

"......"

나야 이러한 공격에 대한 기본 내성이 있어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일반 관객들은 버티기 꽤나 힘든 것인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크으윽...!]

그리고 그것은 에데르타인도 마찬가지.

더군다나 그녀는 소리의 근원지에 제일 가까이 있었으니 타인에 비해 받는 충격이 더 클 터였다.

[이 미친놈이...]

망치마저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귀를 막는 그녀. 데미지가 상당한 것이었는지, 균형조차 잃으며 비틀거림을 보였다.

[잡았다!]

사무엘은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자신의 날붙이를 그녀의 목을 향해 휘두른다. 복부나 팔다리를 노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목을 노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일격에 끝을 보고 싶다는 그의 마음. 고급진 두개의 칼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에데르타인을 향해 휘둘러졌다.

[꺼져.]

허나, 두 손이 묶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데르타인은 오른발을 들어 날아오는 사무엘을 정확히 가격하였다.

[.....?!]

'공명파'로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 탓에 그다지 강력한 위력은 내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의 공격을 벗겨내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크윽!]

사무엘은 서둘러서 손을 들어 방어를 하였지만, 상대는 그랜드 버서커의 에데르타인. 그녀는 그대로 힘으로 몰아붙여 사무엘을 날려버린다.

쾅.

자신만만하게 공격을 날렸던 자유를 위하여의 대표는 또다시 구석탱이로 날아가 처박혔고, 전광판의 HP는 서서히 줄어들어 어느새 40%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

허나, 이번엔 HP, 즉 대신 인형의 내구도가 줄어든 것은 사무엘 혼자가 아니었다.

[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허벅지에 박힌 검을 천천히 뽑는 에데르타인. 처음으로 그녀의 HP게이지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게르나 에데르타인! 처음으로 데미지를 입습니다!]

사회자가 잔뜩 흥분하며 그 모습을 전달한다.

사무엘 피치스, 발차기에 맞아 날아가는 순간 검을 박아넣다니,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건가.

[.....]

약 15%가량 줄어든 에데르타인의 HP게이지를 보며, 사무엘은 히죽거린다. 품 속에서 새로운 검 하나를 더 꺼내 장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짜증나네.]

반면 에데르타인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한 것인지, 얼굴을 잔뜩 구기며 불쾌감을 온몸으로 표출하였다. 떨어뜨렸던 거대한 망치를 다시 집어드는 그녀.

계속 질질 끄는 것이 맘에 안든다는 듯,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 뒤, 범상치않은 스킬 하나를 준비한다.

「소규모 타격 마법이군요.」

「재밌는거시와요.」

금빛의 마법진을 전개하는 에데르타인을 보며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사역마들. 그들의 말마따나, 에데르타인의 뒤쪽으로 거인처럼 생긴 기괴한 무언가의 형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인? 골렘?"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홀로그램과도 같은 그 거대한 거인을 쳐다본다. 상반신만 모습을 드러내고있는 그 거인은 에데르타인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었으며, 플라즈마와도 같은 푸른색 에너지를 온 몸에서 발산해내고 있었다.

"......"

무슨 스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건, 마법진으로부터 생성된 저 거인의 망치에 스치기만해도 죽을 것이라는 거.

[흥.]

...사무엘도 그걸 느꼈는지, 그 또한 들고있던 검을 내려놓고는 두 손을 가슴에 모은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펼쳐지는 천사의 날개. 점차 하늘로 떠오르는 그를 보잖니, 마치 진짜 천사가 강림한 듯이 보였다.

"한계돌파 스킬? 흠......"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사쿠라 요코. 희귀한 것을 보았다는 듯 그녀의 표정에는 심오함이 가득 차있었다.

...한계돌파 스킬이란 하나의 스탯을 가득 채웠을때만 개방되는 기술로, 잠시지만 그 스탯을 2배의 위력으로 올려주는 엑스트라 스킬. '민첩'에 스탯을 올인한 사무엘 같은 경우는 이미 빠르던 그 스피드를 훨씬 더 높여주는 것이겠지.

[죽어어어어!]

[간다!]

천지를 쪼갤듯한 망치를 든 거인의 품 속으로 천사가 돌격했다. 이윽고 울려퍼지는 거대한 굉음. 결계안에 연막탄을 흩뿌려놓은 듯, 뿌연 흙먼지가 모든 것을 가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먼지가 걷혔을 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흥!]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에데르타인과,

[......]

그녀의 발밑에 밟혀있는 사무엘.

곧이어 약간이나마 남아있었던 사무엘의 HP게이지가 0으로 줄어들었다. 즉, '대신 인형'의 내구도가 0이되었다는 것.

[4, 4강 1경기 승자, 게르나 에데르타인!]

[그녀가 결승에 진출합니다아!]

......그 모습을 본 사회자가 서둘러서 에데르타인의 승리를 선언하였다. 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난 싸움이었습니다.」

「천사의 날개를 뻗은 후 돌격할게 아니라 최대한 도망다니며 상대의 체력을 빼놓는게 더 좋았으려늘......」

승부가 끝나자, 렉타우스와 듀랑발이 각자의 소감을 말해보인다. 확실히,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이나, 수치상으로나, 에데르타인이 사무엘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

듀랑발의 말처럼 한계돌파 스킬을 사용한 후 에데르타인에게 돌격할 것이 아니라 '공명파'등을 사용하며 깔짝대는 것이 더 효과적일 터였다.

허나 이런것이 경험의 차이였고, 승부는 돌이킬 수 없는 법. 밑에서는 사회자가 벌써부터 다음 경기에 대한 안내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 그럼 4강 2경기이자 오늘의 마지막 경기!]

알슈타인의 길드원들이 서둘러서 경기장의 복구를 하는동안, 사회자는 관객들의 흥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시선을 끌고 있었다.

"......"

나 또한 아까보다 한층 더 집중된 눈빛으로 경기장을 바라본다. 사실상 이번 경기를 보러 오늘 이곳을 찾은것이니 말이다.

[선수 입장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전 경기로 인하여 훼손되었던 필드가 대충 복구가 되자, 사회자는 곧바로 선수들의 입장을 진행시킨다.

불빛이 점멸되고, 동쪽 게이트를 비추는 푸른색의 스포트라이트.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그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었다.

[......]

그리고, 한 소녀가 그곳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완전히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장내를 메꾸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멋있다!]

[우승하자아아!]

"......"

에데르타인, 사무엘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환호. 사회자 또한 이정도까지의 반응은 상상치 못하였는지, 조금은 당황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의 부길드장!]

[무려 그 '허망급' 아이템의 소유자!]

[우와아아아아아!]

...사회자의 설명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함성 소리가 더 크게 울려퍼진다. 그에 맞추에 필드 한가운데에 도착한 2경기의 첫번째 선수.

[......]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그 소녀는 인상적인 푸른색의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으며, 멋들어진 검정색 제복을 걸치고 있었다. 거기다 손에 들린 푸른색의 장우산까지.

[젠시야 슬레이니브 입니다아!]

[와아아아아아!!]

"......"

......영국을 연고지로 한 랭킹 2위 길드,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의 부길드장, 젠시야 슬레이니브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다.

"좀 너무한데."

너무나도 열광적인 관중들의 반응에, 나는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가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정도일지는 몰랐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참가자아!]

"......"

사회자는 관중들의 환호를 겨우 진정시킨 뒤, 오늘 시합의 마지막 참가자를 소개한다. 이번엔 새하얀 스포트라이트가 경기장 서쪽 게이트를 비췄으며, 다시금 배경음악이 장내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소속은 길드 아리아!]

[그 어떠한 기록도없는 수수께끼의 소녀!]

[......]

사회자의 멘트에 맞추어, 검정 똑단발머리의 소녀가 천천히 필드로 걸어나온다. 소녀는 어깨에 걸친 흰색 제복이 불편하다는 듯, 자꾸 뒤척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으며,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그 어떠한 무기도 들고있지 않았다.

[이번 대회 유일한 무투파!]

[김용용!]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오늘의 마지막 참가자, 그러니까 내 사역마 '아드레나인'을 소개하는 사회자. 폴리모프를 통해 외형도 바꾸었고, 이름 또한 가명을 쓰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은 없어지만 말이다.

[훗.]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필드의 한가운데에 도착한 아드레나인. 무언가 젠시야 못지않은 환호성을 기대한듯한 그녀였지만,

[우우우우!]

[넌 누구냐!]

[듣보!]

[집에 가라!]

[젠시야 압승!]

"......"

현실은 개차반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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