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달빛 아래의 여왕-2
하연이는 나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하연이가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방 자체는 굉장히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침대와 책상, 옷장이 끝이었다.
"방이 좀 삭막하죠?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아직 가구를 못 채워 넣었어요."
"아냐 예쁜데 뭐."
가구는 적어도 방의 분위기가 산뜻했다. 조금 휑한 감이 있긴 하지만 사람 사는곳이라는 느낌은 충분히 들었다.
"오라버니랑 자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하연이는 나를 끌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 강하지 않은 힘이었지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아. 오라버니 너무 좋아."
내 가슴에 머리를 박고 중얼거리는 하연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무리 컸어도 동생은 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거야, 아무도 못 가져, 내거라고."
"하연아?"
심상치않은 분위기에 몸이 굳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하연이가 애정이 많이 고팠나 보구나.
그렇게 하연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암흑가에 잠입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무기를 챙기고 돈이나좀 챙기는 것 정도였지만.
"근데 능력을 숨길 수 있는 거였어?"
"어느 정도 고위 각성자가 되면 자신의 기세를 줄일 수 있어요. 마나를 조금만 사용해도 바로 들통 나긴 하는 데 안 쓰면 그만이니까요."
그와 동시에 하연이의 몸에서 풍기던 기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핏 봐서는 비각성자로 보일 정도였다.
"자, 이러면 됐죠?"
"진짜 일반인 같은데?대단해."
"헤헤, 이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건데요 뭘, 자 이제 13구역으로 가요."
준비는 끝났다는 듯 손을 내미는 하연이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왜요?"
진짜 뭐가 문제인 걸지 모르는 걸까?
"머리카락이랑 눈동자 색 때문에 사람들이 다 알아보지 않을까?"
순백이라는 말이 어올릴 정도로 찬란히 빛나는 하얀색 머리카락과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각성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연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일반인 나랑은 다르게 너는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잖아. 아마 암흑가에 가자마자 유명인사가될걸?"
"그것도 그렇네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방에 들어가더니 두꺼워 보이는 로브를 걸치고 복면으로 하관을 가리고 나왔다. 커다란 모자를 푹 눌러 쓰니 머리카락은 잘 보이지 않았고 하관까지 가려져서 하연이랑 닮았다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하연이라고 확신을 할 수 있는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되겠죠?"
"괜찮은 거 같은데? 근데 잠입이라고 하기엔 너무 느슨한 거 같아. 너무 대충 대충이야"
"그럼 그냥 경비대장의 나들이라고 하죠. 뭐. 중요한건 오라버니랑 같이 데이트를 하는 거니까요."
"데이트를 암흑가로 가는 남매가 어딨냐?"
"어릴 땐 몬스터 밭에서 데이트했는데 암흑가라고 못 하겠어요?"
그게 데이트냐 생존이지.
"암흑가에 데이트할만한 장소가 어딨다고 그래."
"오라버니랑 같이 걸으면 어디를 가던 데이트죠. 아무튼, 이제 출발해요."
"아레나는 밤에야 열린다며?"
"미리미리 가서 탐사도하고 그러는 거죠. 자, 빨리 가요."
나를 향해 내밀어 진 손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째릿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숨을 푹 쉬고 손을 잡으니 하연이가 손에 깍지를 껴왔다.
"야!"
"남매 사이에 손도 못 잡아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잡아오는 손길에 더 이상 거부 할 생각을 접었다.
하연이는 들뜬 표정으로 걸음을 걸었다. 서로의 보폭이 비슷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중앙구역을 지나 상업구역을 지나치고 있을 때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이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먹고 싶어? 오빠가 사줄까?"
"네!!"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걸어가니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이었다.
"하나에 얼마에요?"
"만원."
반죽을 밀가루로 만드나 왤캐 비싸?
아깝다는 생각이 잔뜩 들었지만, 옆에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하연이의 눈빛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못 산다거나 하연이 보고 사달라고 하면 오빠로서의 신뢰가 떨어지는 거니까.
"두 개 주세요."
눈물을 머금고두개를 샀다.
솔직히 가격 값은 못 한다고 생각하지만 크기도 크고 도톰해서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히잉."
"왜 그래? 맛이 없어?"
"보통 이런 걸 남녀가 같이 사면 연인이 같이 왔네, 여자친구가 예쁘네!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단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여자친구로 고정시키는 건 둘째로 치고 지금 자기 모습이 무슨 모습인지는 알고 말하는 걸까?
"얼굴을 꽁꽁 싸매고 예쁘단 소리를 듣고 싶은 거야?"
"아. 그것도 그렇네요."
시무룩해져서 복면을 내리고 붕어빵을 앙 깨무는 하연이가 귀여워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헤헤, 오라버니 너무 좋아요."
그렇게 쓰다듬으며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붕어빵을 다 먹었다.
하연이도 붕어빵을 다 먹고 복면을 다시 썼다.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암흑가의 입구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하연아, 암흑가 들어갈 때 형님들이 입장료 뜯거든? 너무 기분 상해 하면 안 된다? 절대 때리려고 하지도 말고 알았지?"
"알았어요. 오라버니."
입구로 다가가니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 보였다. 아직 이른 시간 이다 보니 우리 말고 달리 왕래하는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 둘, 암흑가를 지배하는 달빛 아래의 여왕님께 입장료를 내고 지나가라."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고도 멀쩡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다.
옆에서 이가 까득하고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대한 빨리 통과해야지.
"얼만데?"
"10만…. 커헉!!"
일단 오른쪽에 있는 놈의명치를 강하게 쳤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약골인 건지 일격에 거품을 흘리며 쓰러진 놈을 내버려두고 바로 옆으로 달려가 옆에 있는 놈한테 헤드 킥을 날렸다.
암흑가의 입구를 지킨다는 놈들이 이렇게 약한 걸 보면 암흑가도 세가 기운 건가싶었다.
"오라버니? 저 보고는 때리면 안 된다면서요?"
"내가 치면 기절로 끝나는데 네가 치면 죽잖아. 우린 여기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니라고."
"저도힘 조절은 할 수 있거든요?"
"아무튼, 들어가자고."
다행히 한산한 시간대라서 문지기를 쓰러뜨린 우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호다닥 암흑가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초임이라 텅텅 빈 거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래서, 아레나가 시작하기 전까지 뭘 할 생각이야?"
"딱히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에요. 그냥 뭐 하는 데인지 구경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도박장이라도 갈래? 암흑가에서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고."
"오라버니…. 도박해요?"
하연이가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괜한 오해를 사는 건 싫었기에 바로 정정했다.
"난 도박 안 해."
"근데 도박장을 왜 그렇게 잘 알아요?"
"옛날에 도박장에서 일한 적 있어."
"무슨 일이요? 언제 했는데요?"
하연이가 바짝 붙어서 나를 바라봤다. 일부로 고압적인 분위기 형성을 위해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쳐다보고 있어서 압박감이 대단했다.
"너랑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그냥 호위 일을 한 거야. 그리고 그렇게 보지 마 오빠 무섭다."
"아 죄송해요."
하연이가 떨어져서평소의 순둥한 얼굴로 돌아왔다.
"근데 누구 호위였어요?"
"네 또래 여자애."
하연이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기세를 감춰야 한다는 것도 까먹었는지 아니면 나를 압박하고 싶어서인지 강한 기세가 나를 짓눌렀다.
"지금 여자애라고 하셨어요?"
하연이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강렬한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는 걸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른데보지 마요."
하연이가 내 턱을 잡고 내 시선을 하연이의 눈으로 고정했다.커다란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꿰뚫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위험한데.`
절대적인 공포가 몸을 지배했다. 당장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고 온몸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이성은 하연이가 나를 죽일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람이 그러하듯 나는 본능에 따랐다.
"ㅁ…. 미안해."
겨우겨우 내뱉은 나의 목소리는 잔뜩 떨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고 나약해질 수 있나를 알게 할 정도로 연약한 목소리였디.
나의공포심을 느낀 걸까? 하연이의 기세가 약해지는 걸 느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들을게요."
하연이가 어깨와 턱에서 손을 놓자 실이 끊긴 인형처럼 털썩하고 쓰러졌다. 요즘 따라 이 자세로 쓰러지는 일이 많은데 무릎에 쿠션이라도 달고 다녀야 하나 싶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동생한테 쫄아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놀린다면 할 말이 많았다. 일반인의 몸으로 S급 각성자의 기세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정신도 많이오락가락 한지 하연이가 어깨를 걸쳐서 일으켜 주는 모습이 3인칭처럼 보였다.
그런데 하연이가 웃고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 거다. 하연이는 남의 고통을 보고 즐기는 나쁜 아이가 아니니까.
"오라버니 귀여워."
절대, 절대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