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달빛 아래의 여왕-1
그렇게 얼마나 쓰다듬고 있었을까? 하연이가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었지만 오래 앉아있다 보니 슬슬 다리가결리기 시작했다.
"하연아? 오빠 슬슬 다리 아픈데…."
"그래서요?"
하연이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내가 다리 아픈 건 신경도 안 쓴다는 듯한 어투였다.
"오라버니는 지금 벌을 받는 중이시라고요! 조금 더 죄책감을 가지세요."
"그래, 오빠가 미안하다."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늘 공허했던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나는경비대에서 뭘 하면 되는 거야?"
"아까 얘기했잖아요? 각성자가 못 하는 일이요."
"아니, 그런 게 어딨어?"
"있어요. 당장 내일부터 일하셔야 해요."
응? 내일부터?
"무슨 일인데?"
"잠입이요."
"잠입? 어디를?"
당장 내일부터 일한다는 소리에 손이 느려지자 바로 일갈이 날아왔다.
"어허! 계속 쓰다듬으세요."
아니, 지금 잠입의 지읒자도 모르는 연약한 비각성자를 위험한 일에 집어넣으려 하는데 어떻게 쓰다듬는 게 중요….
-고오오오
암, 중요하고 말고, 절대로 하연이의 눈빛에 쫄아서 그런 건 아니다. 지금은 벌 받는 중이니까 열심히 해야지.
"13구역으로 잠입할 거에요."
"13구역?"
13구역이 뭐지? 우리 도시에 그런 게 있었나?
"아 오라버니는 모르시지? 지도가…."
하연의 시선 끝엔 집무를 하기 위한듯 보이는 고급스러운 책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책상 서랍 안에 지도가 있는 모양이다.
"꼭 지금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 알려주면 안 돼?"
하연이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지도 가져오는데 30초도 안 걸릴 텐데 그렇게 떨어지기 싫은가?
15년만에 만난 거니까 떨어지기 싫긴 하겠지.
"... 한 번만 더 말 해 주세요."
"응?"
"빨리요!!"
급하다는 듯 소리치는 하연이의 모습에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소근거리 듯 말했다.
"지금 알려주면 안 돼?"
"꺄아아, 오라버니 너무 좋아요."
애가 완전 응석쟁이가 됐네.
술이라도 마신 듯 헤실헤실 거리며 지도를 향해 일어나걸어갔다.
`저러다 넘어지는 거 아닌가 몰라.`
다행히 하연이는 멀쩡히 지도를 들고 와 펼쳤다.
지도에는 우리 도시 전체가 보였는데 도시의 정가운데를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구역에 숫자가 붙어있었고 다시 동서남북으로 소구역으로나누어지며 건물마다 숫자가 하나씩붙어있었다.
우리 총포상을 예시로 들면 19구역 1소구역에 있는 15번 건물, 이런 식으로 모든 건물에 숫자가 붙어있었다.
"경비대에서 쓰는 지도에요. 도시의 모든 건물과 모든 구역을 나누어 놨어요."
"13구역에 잠입한다고 했지?"
지도 위의 13구역은 굉장히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옆에 14구역이 내가 살고 있는 빈민가였기도 했고 13구역으로 구분되어있는 부분은 이 도시의 암흑가라 불리는 곳이었으니까.
`아, 이제는 빈민가에서 안 사는구나?`
"어딘지 아시겠어요?"
"응, 암흑가잖아. 힘쓰는 형님들 돌아다니는 곳."
굳이 힘쓰는 조폭들 외에도 홍등가나, 돈 가지고 장난질하는 놈들 대부분이 모여 있는 곳이다.
도시에서 가장 어두운 곳, 도시의 모든 어둠을 품은 곳 어쩌면 도시에서 가장불필요한 곳이지만 나는 암흑가의 존재가 이 도시에 굉장한 이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장 옆 도시만 해도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상당하고 조직간 전쟁도 일어난다던데 우리 도시는 그런 거 없으니까.
"네, 그리고 달빛 아래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통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달빛 아래의 여왕, 도시의 암흑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여자, 태양길드가 지배하는 도시의 암흑가의 수장이란 의미로 사람들은 그녀를 달빛 아래의 여왕이라 불렀다.
`사실그냥 이름이 월하라서 그런 거지만.`
암흑가 내에서만큼은 여왕이라불리며 모든 조직 위에 군림하고 있다. 암흑가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도 그녀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봐도 되겠지.
하연이는 뚱한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히 이 도시는 태양 길드의 소유하에 있는데 그 년은 이 구역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니까요?"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신입 경비 대장님은 달빛 아래의 여왕의존재가 영 거슬렸나 보다. 하긴 경비대장 입장에선 도시 한 귀탱이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암흑가를 좋게 볼 순 없을 테니 하연이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게 잠입이랑 무슨 상관인데?"
"주제를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하연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저도 알아요. 그 여자가 있으니까 암흑가가 제어되는 거고 그게 우리 도시에 크게 이득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길드장님이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고 당부했겠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에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진정 좀 해봐."
"아우…. 아무튼, 죽이진 않더라도 한 번 밟아주고 오려고요. 자기 위치가 어딘지는 깨닫게 해줘야죠."
성격이 많이 거칠어졌구나 하연아. 오빠는 네가 잘 자란 거 같아서 기쁘단다.
"근데 나는 왜 필요한 거야?"
"일주일 후에 그년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고 해요."
"거의 매년 열지 아마?"
빈민가에선 꽤 유명한 얘기다. 암흑가의 지배자가 매년 자신의 최측근들을 모아 놓고 파티를 벌이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그 파티에서 그년을 짓밟아 버릴 거에요."
"아니 그래서 나는 왜 필요하냐니까?"
"그야 그 파티에 들어가려면 그년의 최측근이어야 하는 데 저흰 아니죠?"
"근데 그냥 당당히 들어가서 밟아주고 오면 되는 거 아니야?"
하연이가 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봤다.
아니 왜 그렇게 보는데?
"그러면 소문이 퍼지잖아요? 달빛 아래의 여왕이 경비대장한테 처참하게 밟혔다고, 진실이긴 하지만 그녀에 대한 암흑가의 지지가 떨어질지도 모르죠. 그러면 안 되니까 정당하게 들어가서 몰래 밟아주려는 거라고요,"
"근데 못 들어간다면서?"
"내일 밤부터 그년이 아레나라는 걸 개최한대요. 각성 능력 없이 가장 강력한 사람을 뽑는 행사라는 데 우승자랑 준우승자는 그년이 주최한 파티에 들어갈 수 있고 독대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유명한 이야기다. 어릴 적 자신을 구해줬던 비각성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레나라는 대회를 연다는 얘기는 빈민가뿐만이 아니라 도시 사람 전부가 알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약자들이 아둥바둥 싸우는 걸 구경하는 악취미가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내가 아레나에 참여하라고?"
"네."
하연이의 눈빛은 굉장히 담담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전장에 자기 오라비를 보네는 표정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로.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인데?"
"아니요. 위험하지 않아요."
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오라버니는 제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니까요. 그런 오라버니가 죽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요."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저도 능력을 숨기고 참여할 거니까요. 진짜 위험할 것 같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마 제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될 것 같지만요."
"S급이라는 애가 엄살은…."
"오라버니에 비하면 모자라기만 한걸요."
하연이의 기억 속의 나는 어떤 이미지인 걸까?
"뭐, 어차피 내일부터 해야 할 일이니까 지금은 머리나 계속 쓰다듬어줘요. 벌은 계속 받아야죠?"
"그래그래 알았다."
하연이의 머리를계속 쓰다듬었다. 벌이라는 하연이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는지 장장 5시간이 지나서야 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그만 둘 수 있었다.
"오늘은 저희 집 가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자요!"
"손님 방 같은 데서 자면 안 돼?"
어릴 때야 방이고 자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 잠들었지만, 훌쩍 커버린 여동생과 같이 자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좀 간다.
"네?"
하연이의 고개가 갸웃하고 꺾이며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냐!! 같이 잘게!!"
그래 동생이 오랜만에 같이 자자는데 그것도 못 해 줄 수는 없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로 쫄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 업무는 안 봐도 돼? 5시간 동안 앉아만 있었잖아?"
"머리 쓰는 일은 아래 애들이 다 알아서 해요. 저는 힘 쓰는 일, 그것도 S급 각성자가 필요한 일만 나서는 거고요."
"날로 먹는 직업이구나?"
"지금까지도 저 없이 잘 해왔을 테니 지금 당장은 제가 할 일이 마땅히 없는 거죠. 제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일이 많아질 거에요. 그때까지는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도 해보고 여가도 즐겨야죠."
다 컸네 다 컸어. 기특한 마음에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 그러면 이제 슬슬 집으로 가볼까요? 오랜만에 오라버니 요리를 먹고 싶어요!"
"요리를 해주는 것까지 벌이야?"
"당연하죠!"
경비대 본관에서 나와 하연이의 집으로 향했다. 경비대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도시의 최중심부, 경비대 지도로 치면 1번 구역 중에서도 중앙에 있는 집이었는데 혼자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으리으리하고 커다란 집이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고급 식재료 천지였다. 몬스터 고기가 아니라 동물의 고기가 있었고 구하기 힘들다는 채소들도 채소 칸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좋아,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솔직히 잘 요리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한 요리라곤 고기에 향나는 식물들을 올려서 굽는 정도뿐이니까.
하지만 하나뿐인 동생의 부탁인데 못 한다고 뺄 순 없겠지.
최대한 노력해서고기를 구웠다. 요리를 잘하진 못 하지만 맛있는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있었기에 맛있어질 때까지 조절하면서 구웠다.
"맛있어요!"
진짜로 맛있는 건지 아니면 오빠가 해서 맛있다고 해준 건지는몰랐지만, 하연이의 미소는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힘이 있었다.
`그래 네가 좋다면 좋은 거지.`
그거면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