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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사현이의 시점-5 (24/265)



〈 24화 〉사현이의 시점-5

다신 협박을 하지 않겠다는 아리의 다짐을 받아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니니까. 대신 간간히 이렇게 말을 해놓으면, 한동안씩은 괜찮겠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예지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 방에 찾아온  예지님이 아니라 수현이 형이었다.
무슨 일로 왔나 싶었는데 앞으로 같이 살자고 그런다.
하얀머리 누나가같이 살자고 했다는 데 나야 땡큐였다.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아리도 누나랑 같이 사는 걸 좋아할 테고, 나도 어느 정도는 수현이 형한테 기댈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여왕님이랑 아가씨까지 같이 산다고는  했잖아요…."

내가 들어오자마자 저 새끼 쫓아내라고 화내시는걸 수현이 형이 겨우 말렸다.
차라리 쫓겨났으면 좋았을걸….

"야, 제대로 안 닦아?"
"죽고 싶어?"
"노예 주제에 지금 앉아있으려고 하는 거야?"


아가씨는 수현이 형이 없거나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나를 엄청나게 갈궜다.
여왕님이 있을 때는 별로 신경 안 쓰고 마음껏 갈구던데 수현이 형이 있을 때는 조금 잠잠해지는 걸 보니 수현이 형이 따로 얘기라도 해줬나 보다.


이 집에서  포지션은 그냥 노예였다. 같이 살고는 있지만 여기서 계급이 제일 낮다 보니 어지간한 집안일은 다 내가 했고 수현이 형이랑은 어느 정도 친해졌지만, 여왕님과 하연이 누나랑은 대화도 잘 나눠보지 못했다.
아리와의 관계는 그대로였지만 아가씨한테는 하루 동안 욕을 먹고 맞다 보니 본능적으로 공포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루 정도 같이 사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하더라.

이 집에서 살게 된 것도 오늘로 이틀째,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나를 꼭 끌어안고 자고 있는 아리를 겨우 때어난 다음에 거실로 나오니 수현이 형이 아침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원래 내가 해야 했을 역할이지만 내가 요리를못 해서 당분간은 수현이 형이 대신하기로 했다.


"일어났냐?"
"네, 형."

식탁에서 의자 하나를 빼서 수현이 형이 요리하는모습을 구경했다. 당장은 형이 하고 있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아주 기특해."
"저는 노예잖아요. 일찍 일어나서 일할 준비도 하고 그래야죠."
"이 집에서 너를 노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연이 밖에 없을걸? 걔도 진심으로 노예라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고."
`그건 형이 아가씨랑 나랑 단둘이 있는 걸 못 봐서 그래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를구해준 은인인데 괜히 말해서 걱정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아침  됐으니까 다른 사람들 좀 깨우고 와줄래?"
"... 알겠어요."


일단 여왕님부터 깨우기로 했다. 가장 높으신 분이니까.


-똑똑

"여왕님, 아침 준비됐다고 합니다."


노크를 하고 30초 정도 뒤에 문이 열렸다.

"그래 일어났다."


여왕님은 나를 굉장히 한심하다는  바라보시더니 식탁으로 걸어가셨다.
또 뭔가 잘못 했구나 느끼면서 이번엔 하연이 누나의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하암…. 벌써 아침이야?"

누나가 여왕님 방에서 나왔다.

`뭐지? 두 분 사이가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던데?`
"네…. 근데 누나 방은 저기 아니에요?"
"어제 누가 오라버니랑 잘까 내기하다가 결국 그냥  같이 잤거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식탁으로 걸어가셨다.

`수현이  힘내요!`


이번엔 우리 방으로 가서 아리를 깨웠다.

"아리야, 아침이야."
"헤헤, 오빠다."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달라붙는 아리를 끌어안고 식탁까지 데려다줬다.
이제 남은 방은 하나뿐

-똑똑

"아가씨,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가연이는 아침잠이 많아서 안에 들어가서 깨워야  거야."


여왕님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크게 한 번 호흡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커다란 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아가씨가 보였다.

`자고 있으니까 진짜천사 같네.`


성격이 나빠서 그렇지 입만 다물고 있으면 진짜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ㅇ…. 아가씨…. 일어나셔야 해요."
"으으, 더  거야."
"아가씨!"

조금 소리를 높여서 불러 봤지만, 아가씨는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실 뿐 일어나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두려움을 꾹 참고 아가씨의 몸을 살짝 흔들었다.

"아가씨, 일어나세요."
"으으, 조금 더 잔다니까."

아가씨가 이불을 걷고 허리를 일으키셨다.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시다가 나를 보더니 잠이 확 깨신 듯 눈이 번쩍 뜨였다.

"네가 왜 여깄냐."

화가 잔뜩 나신 듯한 어투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ㄱ…. 그게요, 아침 드셔야 해서…."
"그러니까  네가왔느냐고."

아가씨가 침대에서 내려와서 내 쪽으로다가오셨다.
어제 하루 동안  몸에 각인 된 공포감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뒤지고 싶어?"


-퍽!!

아가씨의 주먹이  배에 꽂혔다.

"커흡!!"
"아침이라 한 대로 끝내는 거야."

아가씨는 땅에 쓰러진 나를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나갔다.

`겁나 아프네….`


계속 쓰러져 있을 순 없었기에 배를 부여잡고 밖으로 나갔다.


"오빠! 나  좀 떠줘!"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리가 말했다. 자기가 떠도 될 텐데 꼭 나한테 시켜야 하는 걸까?

"응, 잠시만!"

그래도 귀여운 여동생의 부탁이니 물을 떠서 식탁에 내려놨다.

"당연히 내 것도 떠와야 하는 거 아니야?  바보야?"
"죄송합니다."


재빨리 물을 떠서 아가씨한테 드렸다.
아가씨는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살짝 찌푸리시더니 남은 물을 내 머리 위에 부으셨다.

"너무 차갑잖아. 다시 떠와."

차가운 물이 머리를 타고 흐르는 감각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아무리 노예여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닐까?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아 올랐지만, 밖으로 표출할 순 없었다.
지금 화내봤자 이따가 또 맞기나 하지….


"...네."

이를 악물고 정수기에서 새로 물을  왔다. 이번엔 뜨거운 물도 조금 섞어서 따뜻하게.

"이번엔 너무 미지근해."

-촤아악!


다시  번 내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말없이 컵을 받아서 다시 물을 떴다.
첫번째랑 다름없는 찬물이었지만 아가씨는 그제서야 만족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날 괴롭히고 싶었을 뿐이었잖아….`

길고  물심부름이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밥을 준비하는 사람이 수현이 형이다보니  밥까지 챙겨주긴 했는데 식사자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노예 처지인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 아가씨는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째려봤기에 솔직히 밥이 잘 안 넘어갔다.
반찬은 많았지만 정작 내가 먹어도 무사할  같은 반찬은 없었기 때문에 맨밥만 깨작거렸다.
분명 아무것도 없던 내 밥 위에 고기반찬  개가 올라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니 수현이 형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형."


역시  챙겨주는 사람은 형밖에 없구나. 무의식적으로 아가씨를 살펴봤지만 내가 가져간  아니라 수현이 형이 준 거라 그런지 당장 나에게 위해가 가해지진 않았다.
그러면 즐겨야지, 이런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고기를 아주 조금씩 뜯어서 밥이랑 같이 먹었다.
입안에 감도는 감칠맛에 무심코 눈물이 날 뻔했다.

"저희 오전에 잠시 외출하고 와도 돼요? 아리 옷 사주려고요."



아리 옷? 하긴 수련복이랑 잠옷 정도를 제외하고는 예쁜 옷이 없긴 하지, 수련복이든 잠옷이든 밖에 나갈 땐 입을  없는 옷이기도 하고.



"그래, 다녀와."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한 뒤에 아가씨와 아리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아리야, 내가 예쁜 옷 사줄게!"
"으응..."


3일 만에 본 광장의 모습은 이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 많고 북적거리고, 복잡했다.
아가씨가 하이텐션으로 아리를 끌고 빨리 걸어가셨기에 둘을 놓치지 않게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다행이 금방 광장을 빠져 나오긴 했지만.


"짐꾼이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하자는 거야? 제대로 안 따라다녀?"
"죄송합니다."

빠른 걸음으로 걷던 아가씨가 멈춰선 곳은 커다란 옷집이었다.
지나다니면서 몇  본 적은 있다. 유리안으로 비춰 보이는 가격표를 보고  정도 돈이 있다면 몇 달은 걱정 없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아마 돈을 제대로 쓰기 전에 두들겨 맞고  뺏겨 버리겠지만.


`여기서 아리의 옷을 사주시는 건가?`


동생이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무리 노예여도 이런 옷을 입고 이런 가게에 들어갈 수는 없는 법,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밖에서  때리고 있길 30분, 옷 하나 고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지, 벽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 때쯤이 돼서야 아가씨와 아리가 나왔다.
그리고 새 옷을 입은 아리를 본 나는 옷 고르는  30분이나 사용한 아가씨에 대한 충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오빠?"


전체적으로 하늘색 계열의 원피스, 하얀색으로 포인트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 아리는 정말정말 귀여웠으니까.

"귀엽네."
"진짜? 다행이다."

사이 좋게 대화하는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가씨가 우리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이거 들어!"


아가씨가 고급스러운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안을 슬쩍 훑어보니 옷 몇 개가 더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아리의 옷인 모양이다.
괜히 즐거워서 마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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