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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사현이의 시점-6 (25/265)



〈 25화 〉사현이의 시점-6

아리의 옷은 모두 구매했지만 그렇다고 쇼핑이 끝나지는 않았다.
아리와 아가씨는암흑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군것질거리들을 사 먹기 시작했다.

"아리야 아~ 해봐."
"아아~"

지금 아가씨가 아리한테 먹이고 있는 건 타코야키라는 음식이다. 대격변이전에는 문어라는 해양생명체로만들었다는 데 지금은 그나마 가장 맛이 비슷한 몬스터의 고기로 만든다고 한다.

"맛있지?"
"응, 맛있네."

아리가 나한테도 주고 싶었던 것인지나를 잠시 쳐다봤지만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아가씨가 저런  나한테 주실 리가 없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밖에 나온 지도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쯤 멀찍이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쾅!!!

대지가 진동하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ㅁ…. 뭐야?"

폭발 소리가  건 광장 근처였다.

"여왕을 몰아내자!"

암흑가의 거리 이곳저곳에서 여왕을 몰아내자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건가?`

여왕님을 몰아내? 어떻게?
진짜 그게 가능할 거로 생각하고 일을 저지르는 건가?

"ㅁ…. 뭐야 진짜.  장난이지?"

아가씨를 바라보니까, 울먹이며 떨고 계셨다.

"오빠, 무서워."

아리도 많이 무서웠는지 나에게 바싹 다가와 붙었다.

"일단 피하자. 아가씨!"
"싫어…. 전쟁은 싫어."

이 아가씨는 무슨 트라우마라도 터진 걸까? 자리에 주저앉아 주절주절하고 있길래 일단 손목을 잡아끌고 뛰었다.
확실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지 그토록 경멸하던 내가 손목을 잡아끌어도 별다른 반항은 없었다.
몸에는 아리를 매달고 왼손에는 아가씨의 손목을 잡은 채 내가 아는 적당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들이 가까이에 배치되어있어서 어린아이가 아닌이상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골목길 심지어 건물들도 상가가 아니라 민가이니만큼 굳이 이런 데 까지 노리진 않겠지.
어느 정도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을때쯤 자리에 멈춰 섰다.

"오빠, 여긴 안전한 거야?"
"아마도."

역시 아무리 강해졌어도 아리는 아리였다. 떨고 있는 아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으니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아가씨가 보였다.

"전쟁은 싫어…. 전쟁은 싫어…."

평소엔 무섭기만 한 존재였는 데 저렇게 떨면서 앉아 있으니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전쟁은 싫어…. 전쟁은 싫어."

반응이 없다. 일단 안전한 곳인 것 같으니까, 기다리고있으면 이 소동도 곧 잠잠해지겠지.

"진짜 본 거 맞아?"
"내가 여기로 가는  봤다니까? 분명히 여왕년이랑 똑같은 머리카락이었어."

지근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제발 다른 길로 가길 바랐지만 두 사람분의 발소리는 천천히 가까워졌다.

"여왕년한테 동생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본데? 후환이 될지 모르니까 잡아 죽이자고."
"아리야."
"왜, 오빠?"
"아가씨 데리고 뒤로 뛰어."
"오빠는?"
"상대가 각성자가 아니면 뒤따라 갈게."

패닉 상태에 빠진 아가씨한텐 전투 능력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아리는 겁을 좀 먹었을 뿐 충분히 싸울  있을 거다.
비각성자가 상대라면 아리 정도로 충분히 감당할  있겠지.

"아가씨? 제 말 들려요?"
"전쟁은 싫어…. 전쟁은 싫어…."

솔직히 평소에 나한테 했던 짓을 생각나면 그냥 버리고 싶었지만, 여왕님의 후환이 두렵기도 했고 일단 나보다 어린 동생이라는 생각에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아가씨의 볼을 잡고 들어서  눈을 바라보게 했다.

"전쟁 나쁜 거 알고 싫은 거 아는 데요. 일단 도망가야 하거든요? 일어나세요."
"ㅇ... 어어."

아가씨를 일으켜서 아리한테 맡겼다.

"어 저 꼬맹이들 아니야?"

반대편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성들은 일단 비각성자는 아닌  보였다. 지난 3일간 각성자들이랑만 같이 다니다 보니 마나가 있는지 없는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됐는데 확실히 마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맞는 거 같은데?"

일단 시간이라도 끌겠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솔직히 셋 중 제일 약한 내가  앞으로 나섰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생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이 꼬맹이는 뭐야?"

남자의 주먹이 다가오는  보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나에게 가해지는 충격은 없었다.

"꼬맹이, 생각보다 용기 있는데?"

눈을 살짝 떠보니 하연이 누나가 내 앞에 있었고 남자들은 어디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누나의 공격을 받았으면 피를 흘리든 시체가 있든 해야 할 것 같은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아리 너는 오빠를 지켜줄 생각을 해야지 숨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오빠가도망치라고 했으면 제대로 도망쳤어야지."

아리에게 꾸중을 하는 하연이 누나를 보니 긴장이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았다.`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세 명 전부 살았으니까  거겠지.
아리도 멀쩡해 보이고 아가씨도 뭔가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멀쩡해 보였다.

***

"아 해!"
"ㅇ…. 아아…."
`슬슬 배부른데요. 아가씨.`

빵 하나가 적정용량인 내 배는 이렇게 많은 음식을 담을 수 없단 말이에요.
 사러 나갔다가 반란에 휩쓸린 다음 날 어제랑은 180도 달라진 아가씨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때리고 괴롭혔던 모습은 어디  듯 나한테 너무 상냥하게 대해주셨다.

"우으, 내 것도 먹어 오빠!"
"ㅈ…. 저 아리야, 오빠 배부른데…."
"가연이 건 받아먹고 내건 안 받아먹겠다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아리가 내미는 것도 받아먹었다.
누나랑 형한테 SOS 표시를 해보았지만 둘 다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평소에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시던 여왕님 조차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니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었다.

결국, 꾸역꾸역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식기를 정리해서 싱크대로 가져갔다.

"오빠 내가 도와줄게!"
"나도!"

이틀 전까지 설거지하는 나를 잡고 놀아달라며 졸라대던 아리가 이틀 만에 철이 들었다.
어제 나가야 하니까 빨리 설거지를 하라고 나를 발로 차던 아가씨가 하루 만에 나를 도와준다고 나섰다.
뭐지? 여긴 천국인가? 사실 나는 어제 죽었고 지금은 천국에 있는 건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솔직히 이 둘한테 설거지를 맡겼다간 순식간에 접시를 깨먹을 것 같았다.
접시를 깨뜨린  애들이어도  애들을 관리 못 한 건 나니까 아마 내가 혼나겠지. 그런 꼴을 보기는 싫었기에 혼자서 설거지를 마쳤다.

"옷 사러 갔다 와도 돼요?"
"그래 다녀오렴."

어제 옷을 사 놓고는 오늘 옷을 또 사러 가다니, 아리 옷은 어제 샀으니까 아가씨 옷을 사러 가는 것일 텐데, 차라리 어제 아리 옷   같이 사는  낫지 않았을까?

어제 옷을 산 곳으로 다시 갔다.
어제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오늘 바로 장사를  것을 보니 역시 큰 가게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처럼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아가씨가 나를 불렀다.

"너도 들어와!"
"네?"

아무리 봐도  같은 노예한텐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지만 아가씨가 들어오라고 하시는 데 노예는 말씀을 따라야지.
가게 안에는 수많은 옷이 전시 되어있었는데아가씨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동용 옷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지나 티셔츠를 중점으로 보고 계시는 걸 보고 확실히 어제 예지가 산 옷들은 전부 치마나 원피스 계열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바지 사주려고 오신 거구나.`

아가씨는 옷 몇 개를 고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탈의실 가서 갈아입고 와."
"... 네?"
"얼빵하게 있지 말고 갈아입고 오라고!"

아가씨가 화내시길래 일단 후딱 뛰어가서 갈아입고 왔다.
확실히 비싼 옷이 좋긴 좋은지 피부가 쓸리지도 않고 움직이기도 편했다.
이 옷 하나의 값이 길거리에 있었을 때 몇 달 치 생활비와 맞먹는다고 생각하면 역시 아깝긴 했지만,

"입었어요."

그렇게 이상한 걸까? 하긴 나 같은 꼬마애가 좋은 옷을 입어봤자 어색하기만 할 뿐이겠지.
아가씨랑 아리 모두 무슨 말도 안 하고 이리저리 눈만 굴리는 게 엄청 어색한 모양이다.

"역시 어색하죠? 그냥 다시 갈아입고 올게요."
"아냐! 엄청 잘 어울려!"
"맞아 오빠, 귀여워!"

둘 다 거짓말을 너무 못한다. 얼굴을 붉히면서 열심히 말해봤자 어색한데 일부로 거짓말을 해주는 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알았어요. 안 어울려도 입고 다닐 테니까 억지로 칭찬해줄 필요 없어요."
"진짜 귀여운데…."
"맞아, 잘 어울려."

진짜 잘 어울리나? 조금 기분이 들떴다.

"이것도 입고 이것도 입어봐."
"이것도!"

 갈아입히기 인형이 된 기분으로 각종 옷을 입었다 벗었다.
결국, 사게 된 옷이  벌이 넘었는데 종이 가방 하나에서 끝난 아리와 다르게 가방만 세 개가 나왔다.

"내가 들게! 힘 약한 오빠보다는 내가 들어야지."

뭐지? 어제는 내가 더 힘이 셌던 건가?
하루 만에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했다. 아무렴, 매일 맞고 괴롭힘당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나를 위해주는 게 천만 배는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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