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이수현-2 (37/265)



〈 37화 〉이수현-2

하연이가 갑자기 덮쳐 오는 바람에 침대에 엎어져 버렸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연이가 내 양손을 위쪽으로 올린  한 손으로 눌렀다.

'완전히 제압됐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S급 각성자인 하연이가 제압하고 있는 것니까 무슨 수를 써도 빠져 나올  없겠지. 굳이 버둥 거리지 않았다.

"쯧, 피가 안 통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럼 이렇게 협박도 안 하지. 오빠 자살 안 할테니까. 이제 진정해봐."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연이의 눈에 가득 차 있는 욕망이 보였다.
뭐야, 진짜 저지를 생각이야? 아무리 피가 안 섞였어도 지금까지 남매로 살아왔는데 그런 눈빛을 하면 안 되지.


"하연아?  번 말하지만 나는 네가 아는 오빠가 아니다?"
"아까는 기억을 잃었어도 오라버니는 오라버니라면서요? 정조가 위험해 지니까 말을 바꾸는 거에요?"

정조라니, 남자한테 쓰기엔 굉장히 어색한 말인 것 같은데, 보통 여자한테 쓰는 말이잖아.


"아무리 친남매가 아니더라도 성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끼리 하는 거 알지?"
"제가 어린 애인줄 알아요?"
"오빠를 강간한 미친년이 되고 싶은 거니?"
"제가 오라버니를 왜 강간해요? 오라버니도 좋아하실 텐데."

강제로 제압하고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관계를 하는 것, 강간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장이다.
지금 하연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연이의 손길이 내 가슴부근을 쓸어왔다.

"좋아하는 건 기억이 있는 오라버니 쪽이고,  입장에선 여동생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이 강제로 하는 데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그래서요? 불만 있으면 저항을 해보시던지요."

아니 어떻게 저항을 하냐, 격이 다른 사람한테...


그래도 짧은 대화에서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얘네 둘은 실제로 관계를가진 적이 없다. 있다면 좋아하실 텐데, 라는 추측 보단 좋아하신다, 라고 확실하게 표현했겠지.
그럼 파고들 구멍이 있지.


"너, 이 몸이랑 첫 관계를 기억도 없는 상태로 하고 싶은 거야? 기억이 있는 상태에선 좋은 말도 많이 해줄  같은데, 지금 덮쳐봤자  밖에 못 듣는다."

아주 살짝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진짜로 첫관계를 애틋하게 즐기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오빠가 아니야. 그냥 네가 내 여동생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이수현을 연기하는 이수현 비슷한 무언가지. 이런 거한테 네 처음을 주고 싶어?"

까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하야 뭐하냐 언니 말려라."
"하연 언니? 일단 진정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라버니 말처럼 아직 기억도 온전하지 않으시고, 지금 한가롭게 섹스나 하고 있을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잖아요."


하연이가 내 손목을 잡은 손을 놔줬다. 뻐근하게 아파오는 걸 보면 상당히 세게 모양이다.

"좋아요. 지금은 넘어가 드릴게요. 대신 약속해요. 오라버니의 기억이 돌아오면 오라버니의 동정을 저한테 바치세요."

바쳐? 하연아 단어가  센 거 아니냐? 그리고 오빠한테 바치라고 하면 안되지.

"아니, 기억이 돌아오면 네 처녀를 오빠한테 바쳐야지, 오라버니한테 내놓으라고 하면 쓰나."
"좋아요. 기억이 돌아 온 이후엔 각오하세요."


괜찮아, 어차피 기억이 돌아 왔을 때는 이 기억은 아마 사라져 있을 테니까. 고통 받는 건 이수현이지 내가 아니야.

'근데  몸, 동정인 건 맞나?'

하연이의 말로 추리해보면 동정인 것 같긴 한데 오래 떨어져 있다고 하니확신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입으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이수현이라는 남자는 꽤 멋진 남자다.
외모도 이 정도면 중상위 권은 되고 이런 막장 세계에서도 잘 살아남을 있을 정도로 무력도 뛰어난 편이다.
솔직히 이 정도 살면서 여친  명 없었을까? 여친은 없었더라도 관계 한 번 가져본 적이 없을까?

기억을 잃어서 그렇지 지금도 여친이 있는 상태가 아닐까?


'내 알바 아니지 뭐.'

동정이고 아니고를 구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라도 동정이 아니어도 내 잘못은 아니잖아? 어차피 모든 이수현이 해결할 일이다.

"괸장히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많이 오갔네요... 둘 다 이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단체로 미치기라도 하신건가요?"
"내가 보기엔 둘 다 오래 전에 미쳐있던 것 같은데?"
"더더욱 미쳐버렸다는 뜻이죠."

대화가 산으로 가는 군 확실히 텐션이 미쳐서 날뛰고 있긴 했다.  수 없는 흥분이 몸을 지배하고 있어서 정상적인 텐션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진정 좀 해야지.

"혹시 시간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고,내가 이수현을 연기하는데도 도움이 될테니까."
"꼭 연기라는 표현을쓰셔야 해요?"
"연기인 걸 어떡하냐. 내가 진짜 오빠는 아니잖아? 최대한 오빠처럼 느껴지게 해줄 순 있는 데 아무래도 오리지날에 비해서는퀄리티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침대에 앉아서 하연이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설명 좀 해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설명 해 드릴까요?"
"그래주면 좋고,"
"일단 제가 오라버니를 처음 만난건 제가 8살이고, 오빠가 10살때의 일이었어요."

엄청 어릴  만났구만.


"어쩌다가 만났데? 부모님 소개로? 비각성자랑 각성자를 친구로 소개 시켜 주진 않았을 테니까 그 때는 각성을 못 했었나 보다?"
"아니요. 오라버니랑 저 둘 다 고아였어요."

앗, 나도 모르게 패드립을 박아버렸군, 여기 있는 세 사람 전부한테 패드립을 박은 셈이 되었으니까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저는  때도 각성을 했었어요. 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그 때도 A급 각성자 였다고요."
"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면 A급이나 되는 각성자가 비각성자랑 의남매를 맺지? 설마 어렸을 때의 나는 겁나게 잘 생기기 라도 했던 건가?

"아니 그렇게 대단한 애가 뭐하러  같은 애랑 남매가 됐는데,"
"오라버니는 기억 안 나시겠지만 오라버니가 저 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담담하게 나를 보는 하연이의 눈에는 거짓따윈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대단해 봤자 10살짜리 애인데 대단해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어?"
"몬스터의 고기에서 먹을 수 있는 부분과 먹지 못하는부분을 구분 할 수 있었고 불도 없는 밤에 어떻게 하면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지도 알고 계셨어요. 몬스터의 습성도 잘 알고 계셨고 능력이 없는 순수한 싸움은 저보다 훨씬 강하셨어요."

... 뭐? 열살짜리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무조건 거짓말일  밖에 없는 말이었지만 하연이의 눈동자가 너무 당당해서 거짓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열살 짜리 어린애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닐텐데?"
"저를 만나기 이전에 오라버니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저도 몰라요. 오라버니는 자신의 과거사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도 저에게 알려주시지 않으셨으니까요. 제가 아는 오라버니의 모습은 언제나 강하고 아는 것도 많고 대단하시다는 것 밖에는 없어요."

머리가 근질근질했다. 무언가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머리를 간질였다.
도대체 무슨 인생을 살아 온 거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히 알게   이수현이라는 인간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배는 대단한 놈이라는 것 뿐,

"성격은 어땠어? 오만했어?"
"아니요. 자신감은  가지고 계셨지만 오만하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어요. 늘 저를 배려해 주셨고 성격도 엄청 착하셨어요."


뭐지? 진짜 뭐야? 성인인가? 내가 맞나?


나에 대한 하연이의 설명만으로도 이렇게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이런 성격 그대로라면 아무리  살 때라고 하더라도 으스대기도 하고  잘난 맛에 살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겸손하게  거지?

아마 나는 알 수 없는 10살 이전의 기억 때문이겠지.
무슨 일이었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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