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 대삼림­1 (47/265)

〈 47화 〉 대삼림­1

* * *

"그런 기억이 있었다고?"

"응, 그렇던데?"

내 기억 속의 공간,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1호라고 전혀 기억 안 나는데?"

"아니, 네 기억 속에 있었다니까?"

"넌 그 기억을 어떻게 찾은 건데?"

"그냥, 재밌는 거 없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찾아냈지,"

아, 머리 아프네...

"설마, 진짜로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그건 모르지, 애초에 네가 기억이 돌아왔는지 아닌지, 1호가 알 방법이 없잖아."

"네가 설명한, 1호의 무위 정도면 충분히 알아 내고도 남을 것 같은데..."

아마 알아 낸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당장 오진 않을 것이다.

"중원이라고하면 중국 말 하는 거 아니야? 대격변 이전에야 왕래가 있었지, 대격변 일어난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랑 비슷하게 살고 있겠지. 몬스터 밭에서 겨우겨우 생명을 연장해 가면서, 악착같이 살고 있을 거야."

"그러면 절대 못 찾아 오는 거 아니야? 중원을 제패한 다음에야 찾아 온다고 했는데 설마, 몬스터들이 지배한 땅에서 그 큰 땅덩어리를 전부 지배할 수 있겠어?"

이수현의 말대로 중원이라는 거대한 땅을 전부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슬슬 일어나야지, 너 아침에 약속있다면서?"

"응, 연하가 휴가 가기 전에 길드장님이랑 마지막 식사를 한다는데 나도 데려간 다길래 가기로 했지."

"원래 저녁에 먹는 다고 하지 않았어?"

"일정이 바뀌어서 말이야. 점심도 먹기 전에 출발한 다고 해서, 아침으로 바뀌었어."

"그럼 슬슬 일어나, 난 아직 봐야 하는 기억이 많거든? 오늘 처럼 잊혀진 기억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래 열심히 해라?"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후, 눈을 감았다.

분명 의식속이었지만 엄청난 졸음이 몰려왔다.

푹 자고 일어난 듯한 개운한 감각과 함께 눈을 뜬 내 시야에 보이는 건, 어색하긴 하지만 처음 본 건 아닌 천장이었다.

다행이 나와 같이 자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 사람은 강하게 살아야 하는 법, 내 방에서 잔다고 싸우는 애들한테 한 번 호통을 치니, 깨갱하고 포기해 버렸다.

'컨셉 플레이를 각오하라는 듯 바라보는 월하의 눈빛은 좀 무서웠지만...'

샤워를 하고옷장을 열었다.

고급진 나무로 만들어진 옷장에는 두 종류의 옷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솔에 올 때 입고 왔던 옷, 그리고 솔의 지배자이자 태양길드의 길드장을 만나러 가는 건데 너무 격의 없는 복장으로 가면 괜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애들의 말에 급하게 맞춘 정장.

하루만에 정장이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걸 보면 역시 세상에는 별의 별 각성자들이 다 있구나 싶었다.

기본적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옷이었지만, 미묘하게 푸른 빛이 나는 정장이었다.

짙은 남색이냐고 물으면 또 아니고, 굉장히 오묘한 색이었다.

잠옷을 벗고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어제 몇 번씩이고 입어봤던 옷이라서 입는데 크게 어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역시 남자는 수트빨인가.'

정장을 잘 차려 입은 나의 모습은, 솔직히 내가 봐도 멋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복을 입은 나의 모습보다 훨씬 더 멋졌다.

평상복을 입으면 멍, 해 보이는 청년인데, 이렇게 갖춰 입으면 뭔가 스마트 해 보인달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옷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약속시간 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아무리 태양길드의 길드장과의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아침 식사인 만큼 너무 일찍 가서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오라버니, 준비 다 됐어요?"

문을 열자마자 연하와 하연이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 마자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옷이 좋긴 한 모양이다.

"나는 다 됐는데 너희는 준비 안 해?"

나한테는 길드장을 만나러 가는 것이니 격식있게 입어야 한다고 말했던 애들이었지만 정작 애들이 입고 있는 옷은 어제 입었던 옷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상복이었다.

뭔가 뒷골이 쎄하게 당겨왔다.

"저희는 준비 다 됐는데요?"

"나보고는 격식있게 입으라면서 너희는 평상복이야?"

"저희는 길드장님이랑 친하거든요!"

감이 잡혀왔다. 이것들, 나한테 정장 입히려고 일부러 이런 거구나?

조금 화가 솟긴 했지만 사소한 일이고, 나 스스로도 만족하는 옷이니까 굳이 더 말을 잇진 않기로 했다.

"하아... 알았다. 그래서, 언제 가면 돼?"

"지금 가면 돼요. 약속시간은 8시지만, 미리 가서 앉아있는다고 문제될 건 없으니까요."

앞장 서서 걸어가는 하연이와 연하를 따라갔다.

길드장쯤 되면 뭔가 대단한 곳에서 밥을 먹을 줄 알았는데. 백씨 자매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길드 내의 작은 식당이었다.

"오늘 하루 전세 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거에요."

"글쌔, 길드장님이랑 밥을 먹는 데 과연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말이 좀 많긴 한데, 착한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마요."

"우리랑도 밥 잘 먹잖아요? 우리도 엄청난 거물이라고요."

연하가 엣헴! 하면서 가슴을 내밀었다. 그렇게 있어봤자 안쓰러워지기만 하는 데 말이지.

"어머, 벌써왔어?"

뉴스를 통해서만 들어왔던 목소리가 현실의 소리로서 내 귀에 들려왔다.

다른 점이있다면 늘 진중 하고 엄중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기쁜 듯 밝은 목소리였다는 걸까?

"이쪽이 하연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오라버니?"

"그래, 괜한 관심 가지지 말고, 닥치고 있으렴."

"에이, 하연이 오라버니인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무시무시한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차갑고 오만한 하연이를 어떻게 여동생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는지, 또 어쩌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평범한 소시민으로서는 차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최대한 풀어서 설명했다.

"어머, 내가 너무 내가 할 말만 했나?"

"응."

하연이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즉답했다.

"미안미안, 밥 먹자 밥."

정신 없는 여자네, 어릴 때 봤던 길드장 아저씨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역시 유전이 만능은 아닌모양이다.

4각형의 테이블에 앉았다. 당연하게도 나와 길드장은 대각선으로 떨어져 앉았고, 내 앞으로는 연하가 왼쪽으로는 하연이가 앉았다.

"너희 오라버니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 맞지?"

음식이 천천히 채워져 갈 때 길드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휴가 신청한다니까 일 얘기하려고?"

"어려운 일 아니야. 그냥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시간을 내주면 돼."

내가 들어도 되는 이야기가 맞나?

지금이라도 귀 막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너희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냥 여기서 말할게, 내가 최근에 게이트 탐사 갔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거짓말, 게이트에 들어간 놈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와?"

"맞아 거짓말이야. 나는 게이트에 들어간 게 아니었거든."

점점 대화가 무서워지는 데요? 도시의 최고위층들의 은밀한 비밀을 엿듣는 거 같은데...

"그럼 어디 있었는데? 휴가 놀러가서 띵가띵가 하고 노셨나?"

"대삼림에 갔다왔어."

분위기가 일순간에 굳어졌다.

'대삼림이면 1호가 나를 데려다 줬다는 곳 아니야?'

"흠? 대삼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아, 그냥 지나가다가, 들었습니다..."

길드장이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걸 하연이가 막아섰다.

"그래서, 우리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요즘 외곽의 몬스터들의 활동이 잠잠해져서 무슨 일이 발생했나 싶어 대삼림의 외곽순찰을 좀 돌았지, 근데 너희도 알다시피 내 능력이 이런 탐색에는 영 힘을 못 쓰잖아? 큰 수확없이 시간만 쓰고 있을 때, 솔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 거야."

온몸에 불길한 감각이 치솟았다.

"그래서, 너희에게 대삼림의 탐사를 맡기려고 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어, 너희는 뛰어난 인재인데다가, 옆 도시는 솔보다 대삼림에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니까, 연하의 속도로도 왕복에 30분 정도 밖에 안 걸릴거야. 하루에 3시간 정도만, 탐사를 부탁할게."

"하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시급은 두둑히 주시는 거겠죠?"

"해줄거지?! 고마워 연하야!"

길드장이 연하의 몸을 갑작스럽게 껴안았다.

"꺅!하지마요. 이 인간아!"

소란스럽지만 나름 화목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본능에 각인된 위기 경보가, 머리를 가득 울리고 있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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