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사이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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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른 도시의 광신도들이 감히 태양길드 산하의 도시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기술자들을 납치했다는 거지?"
"줄여서 말하면 그렇게 되겠네요."
길드장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이수아라는 년, 일단 S급 각성자로 추정 중이라고 했지?"
"네, B급 각성자까지 세뇌 시켰는데 오랜 시간 접촉이 없었다는 걸 미루어 보아 S급 각성자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왜 우리 도시의 기술자들을 납치해 가면서 무기를 만들어 냈을까?"
"그걸 알아 낼 수가 없습니다. 기술자들은 일정 범위안에 갖혀서 지내와서 아는 게 없는 듯 하고, 납치범들은 세뇌 당해 있어서 제가 직접 고문을 가했는데도 입을 열지 않더군요."
"그러면 이수아라는 년이 S급 각성자인건 확실하네, 정신계 능력을 각성한 S급 각성자라,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 같아."
길드장의 눈빛이 깊어졌다. 눈에서 엄청난 적개심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하연언니의 걱정처럼 그냥 넘어 갈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쪽 도시에도 새로운 S급 각성자가 나왔다고 했지?"
"네, 무력화 계열의 각성자인데 납치범들의 세뇌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으니 그에 상응한 대가를 요구한다고 하더라고요."
"쯧, 그래 S급 각성자쯤 대면 그만한 대우가 필요한 법이지, 지금 당장 찾아가자. 급한 일이니까 일일이 약속을 잡을 여유는 없어."
주변의 풍경이 쐑 하고 바뀌더니 어느새 월하씨의 집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저항하려면 저항 할 순 있었지만 언니와 길드장만 가버리고 나만 남아있어도 의미가 없으니 순순히 따라서 이동했다.
"불청객들인가요?"
"이렇게 갑자기 찾아 봬서 죄송합니다만, 사안이 아주 급해서 말이에요. 월하씨라고 하셨나요? 자세한 건 아마 연하께 들으셨으니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지금 월하씨가 지배하고 계신 이 도시의 암흑가에 대한 자치권을 드리겠습니다."
"... 네?"
아무리 월하씨라고 해도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 앞에선 평정을 유지 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자치권을 준다는 말은 암흑가가 공식적으로 월하씨의 것이라는 이야기니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세금을 걷을 권리도 월하씨한테 있고 법을 제정할 권리도 월하씨 한테 있다. 암흑가와 외부를 오가는데 통행세를 걷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다 이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크니까, 월하씨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군침이 도는 제안이겠지.
"고작 세뇌를 푸는 것 치고는 너무 과한 제안인데요?"
"앞으로 태양 길드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조건이에요."
월하씨가 생각에 잠긴 듯,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을 더 해볼 필요가 있는 제안이네요. 일단 납치범들에게 걸린 세뇌는 지금 당장 풀어드릴게요."
다시 눈앞이 홱 하고 변했고, 납치범들이 쓰러져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어두운 연기가 납치범들을 휘감았다.
"... 꽤 수준이 높네요. 상대도 전력으로 세뇌를 건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꽤 까다로워요."
"일단 한 명만 먼저 풀어주시겠어요?"
"네."
검은 연기가 한 사람한테 집중됐다. 리더역할을 했던 B등급 각성자, 이 중에선 가장 수준이 높은 만큼 세뇌도 조금 약하게 걸렸겠지.
"세뇌는 풀어냈어요."
"야, 일어나."
쾅!!
하연 언니가 세뇌가 풀린 각성자를 발로 차서 벽으로 날려 버렸다.
어느 정도 화가 풀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화나 있구나.
"으으... 뭐야..."
"이수아라는 여성이 누구지?"
"여신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뭐지? 분명 세뇌는 풀렸다고 하지 않았나?'
당황해서 월하씨를 쳐다보니 월하씨도 마찬가지의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다.
"쯧, 꽤 능숙한 능력자인 모양이야. 순수하게 능력만 사용하는 세뇌가 아니라 적당한 환경을 조성하면 이렇게 세뇌 능력이 풀려도 어느정도 세뇌와 비슷한 능력을 볼 수 있거든. 각성자가 대격변 이전에도 광신도들은 간혹 나타났다던 모양이니, 작정하고 관리했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거야."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제 고문하면 되지, 고작 B급 각성자 주제에 네 고문을 견딜 수 있던 건 세뇌 덕분이야. 지금 고문하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못 버틸걸?"
"바로 진행할게요."
내 능력을 발휘해 녀석의 고통을 안겨줬다. 입으로는 여신님 여신님 거려도 신경을 태우는 고통은 견디지 못하겠는지 비명을 질러댔다.
"이제 좀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구만."
"다시 한 번 물을게, 이수아가 누구야?"
"ㅇ... 여신님이야!! 그것 말고는 딱히 알고 있는 게 없어."
다시 한 번 신경을 지져줬다. 개구리 처럼 펄떡 거리면서 땅을 구르는 모습이 정말 우스웠다.
"ㅈ... 진짜 몰라요. 위대하신 신의 존재를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럼 어디서 처음 만났는데?"
"직접 뵌 적은 없어요. 늘 목소리로만 나타나셔서 의사를 전달하시니까요."
"목소리 밖에 없는 신인데 잘도 믿었다?"
"저 말고도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영리한 년일세. 사람 다루는 법을 알아."
길드장이 자신의 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곧 이수아가 온다고 하던데, 그것은 무슨 의미지?"
"당연히 비유적인 의미죠. 하나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으니, 여신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너희가 맡은 임무가 뭔데?"
"위대한 성전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거요."
위대한 성전? 듣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리게 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단어였다.
"위대한 성전이라고?"
"감히 여신님을 믿지 않는 악의 무리들을 모두 처단하는 위대한 전쟁이에요."
미쳤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그 위대한 성전이라는 거, 설마 우리 도시로의 침공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요. 저희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른 도시를 공격하는 건 그 이후의 일이 되겠죠."
"그러니까 이수아라는 썅년이 지들 도시에서 내전을 일으키려고 우리 도시 기술자들을 납치해서 무기를 만들었다 이거지?"
방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하연 언니와 월하씨가 길드장의 기세를 제어하고 있는지 정도 이상 온도가 치솟진 않았지만 10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땀이 주륵주륵 흐를 정도로 대단한 열기였다.
"그래서, 그 년이 언제 온데?"
"ㅈ... 저도 곧이라는 말 밖에 안 들어서... ㅅ.. 신의 마음을 어떻게 한낯 인간이 알 수 있겠어요."
"연하, 이 놈들에게 걸린 세뇌가 풀린 거, 이수아라는 년이 알 수 있을까?"
"길드장님은 길드장님이 대삼림 반대편에서 피워낸 불이 꺼졌는지 켜져있는지 아실 수 있어요?"
"모르고 있겠군, 목소리라는 것도 근처에 와야 전달할 수 있을테니 한 번은 근처로 올게 분명해. 그리고 짐을 옮길 수하들도 이동시켜야 할 테고."
길드장님이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하연언니가 씨익하고 웃었다.
"하연, 너는 오늘부터 나랑 그 동굴에 잠복한다. 1주일 안에 안 오면 이수아가 있는 도시로 침공해 들어가고 그 안에 오면 일단 제압한다. 정신계 능력자가 너랑 나를 이길 수 없겠지."
"좋아."
"연하, 너는 혹시라도 대삼림으로 향하는 인원이 없게 하도록, 상대가 정신계 각성자니까, A급 이하의 각성자들은 방해만 될 뿐이야."
"알겠습니다."
이렇게 일할 때는 정말 멋진 사람인데 말이지. 자기 휘하의 사람이 다른 도시에 납치되었다는 것에 이렇게 화낼 줄도 아시고.
'아니면 단순 쇼맨쉽인가?'
태양길드가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위에 불과한데 마치 도시를 위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걸까?
"월하씨,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일단 들어보고 판단할게요."
"대삼림에서 이수아가 갑자기 우리 도시로 순간 이동해 올 수도 있습니다. 저희도 금방 따라 붙겠지만 짧은 순간 능력을 펼친 것 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세뇌 시킬 수 있겠죠. 이수아가 나타나면 신호를 드릴 테니 도시 전체에 약한 권능을 계속 발현해 주실 수 있을 까요?"
"그 정도는 가능하지만... 일이 끝난 이후에 적합한 보수를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되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바로 이동하자.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
언니와 길드장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도 일을 마저 하러 갈게요. 연하씨는 굉장히 피곤하신 것 같은데, 조금 쉬시는 게 어때요?"
"아, 네."
'오라버니가 어디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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