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 사이비­7 (61/265)

〈 61화 〉 사이비­7

* * *

지금 내 앞에선 두 명의 여성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고 있는 중이었다.

한 명은 각성자고 한 명은 비각성자였지만, 각성자 쪽이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승부는 꽤 비등비등했다.

정확히 말하면 예지씨가 혜연씨를 봐주고 있는 것이겠지만.

괜히 월하의 경호대장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예지씨는 정말로 강했다.

격하게 싸우는 중임에도 제대로된 타격 하나 허용하지 않았고 유려한 움직임으로 야금야금 혜연씨를 공격해 갔다.

아무리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각성자의 육체는 튼튼하니까, 한 두 번 때리는 걸로는 어림도 없을 거다.

­철컥...

수련실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누구지?'

애들 전용 수련방으로 쓰고 있는 곳이라서 들어올 사람이 없을 텐데...

"오라버니..."

축처진 모습으로 방에 들어온 연하가 빠르게 달려서 내 품에 안겨왔다.

"이제 쉴 수 있어요."

"그래 수고 많았다."

지난 일주일동안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달려왔으니 힘들만도 하지, 아무리 각성자의 육체가 강력하다고 해도 만능은 아니니까.

특히 피로는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 동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왔으니, 이렇게 기운이 없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오늘은 이제 아무것도 안 하고 쉴 거에요. 하연언니도 오늘부터는 일 하시느라고 안 들어오실 테니까 오라버니 품에 꼭 안겨서 쉴 거에요."

"그래, 푹 쉬어라."

다리에 힘이 풀려 천천히 주저 앉는 연하를 따라서 자리에 앉은 후 무릎 위에 눕혔다.

"오빠! 나도 저거 해줘!"

"나도!"

예지씨가 갑자기 대련을 함에 따라 수련을 중단하고 있던 애들이 갑자기 사현이에게 안겨들었다.

'너도 고생이 많다.'

사현이에게 안부를 빌어주면서 연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5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으니 대련이 끝난 듯 예지씨와 혜연씨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언제 왔대?"

"방금 들어왔어요."

"처음 봤을 때는 엄청 날카로워 보였는데 이렇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꽤 귀엽네."

연하가 그렇게 날카로워보였나? 하긴, 다른 사람들한테 엄청 사무적이니까.

"그래도 여러분들 구하려고 일주일동안 잠도 안 자고 고생했어요. 나중에 깨어나면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정도는 해주세요."

"그래? 의외네."

"의외라뇨?"

"왠지 늦장 부리면서 천천히 일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줄 알았거든, 그도 그럴게 다른 사람 없이 고작 3명이서 쳐들어 왔잖아."

"S급 각성자 한 명에 A급 각성자 한 명이면 충분하고도 남는 전력 아니에요?"

"하긴, 그것도 그래."

혜연씨가 나와 연하를 번갈아 보면서 바라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안 닮았는데, 진짜 남매 맞아?"

"친남매는 아니에요."

"어쩌다 만난 거야? 네가 강한 건 인정하지만, 경비대장씩이나 하고 있는 여자가 너를 순순히 오빠로 인정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데?"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백하연씨랑 이 사람이랑 친 자매고 너랑 둘은 의남매 관계라는 거지?"

"아니요. 제가 알기론 둘도 의자매에요."

"무슨 관계가 그래, 너희가 무슨 유비, 관우, 장비야?"

"남매 사이의 우애만 있으면 되죠."

연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건 그렇고 즐겁게 싸우셨어요? 대충 봐도 엄청 밀리시는 것 같던대요."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었어, 너랑 싸운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솔직히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났으니까, 예지씨라고 했나? 저분도 강하시긴 한데 너처럼 배려 없이 싸우는 게 아니라 나랑 맞춰 주시더라고."

뭐지 이거? 나 멕이는 건가?

"그렇다고 봐드렸으면 봐 줬다고 난리 칠 거잖아요."

"당연하지!"

쾌활하게 웃고 있는 혜연씨의 얼굴에 주먹 한 대를 박아 주고 싶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건 좀 모양 빠지긴 하지만 상대는 각성자니까 괜찮지 않을까?

"근데 일은 잘 해결되고 있는 거야? 여기도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지만, 슬슬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여기 오신지 아직 하루도 안 되셨거든요?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여동생 말 들어보니까, 제대로 일을 시작한 것 같으니까, 아마 1주일이 안돼서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실 거에요."

"일처리 엄청 빠르네, 나는 제대로 일을 시작할 때까지 1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그러게, 분명 길드장을 만나러 간다고 한 것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결과가 나오다니.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거지.'

급하게 움직일 법한 사건이긴 했다.

다른 세력이 우리 도시의 인력을 납치한 거니까.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동생을 땅바닥에 눕혀 놓기는 싫어서요."

"그래, 들어가 봐라. 나는 여기서 애들 노는 거나 구경할란다."

"노는 거 아니거든요?!"

연하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작은 체구만큼이나 몸이 가벼워서 옮기는 데 그렇게 큰 힘이 들지는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직원들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받긴 했지만 애써 무시한 채 연하의 방에 연하를 옮겨 놓는데 성공했다.

"우으... 가지 마요."

'얘 안 자는 거 아니야?'

일어나려고 하니까 기가막히게 나를 잡아오는 연하의 손길에 바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빠도 잔다."

'그럼, 슬슬 이수아에 대한 대비를 해볼까?'

'능력도 없는 비각성자가 S급 각성자의 능력에 어떻게 저항을 하려고 그래?'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또 다른 인격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저항은 못 하지, 대신 몇 가지 대비책 정도는 세워 둘 수 있어.'

'한 번 읊어 봐.'

'이수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매커니즘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세뇌 당하면 너는 최대한 너의 존재를 숨겨.'

'그게 마음대로 되냐? 세뇌 당한 네가 나에 대한 걸 다 말해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세뇌되는 거지,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굳이 묻지도 않은 걸 이수아 한테 말할 것 같진 않아.'

'그래서, 내 존재를 최대한 숨기면? 그 다음은 뭔데?'

'내가 세뇌 당하면 월하랑 하연이가 아마 무슨 수를 써서든 내 정신을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쓸 거야.'

어쩌면 월하의 권능에 이수아의 권능이 허무하게 무력화 돼서 제 정신을 차릴 수도 있다.

일단 이수아는 월하와 하연이 모두를 상대해야 하니까, 내 세뇌를 유지 할 수 없을 가능성도 높겠지.

'아마 월하가 어떻게든 해줄거라고 생각하지만, 쉽게 못 풀려날 수도 있잖아?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틈이 났을 때, 내 몸의 제어를 뺏어 버려.'

'괴물들이 날 뛰고 있는데 틈이 나겠어?'

'틈이 안 나면 가만히 있으면 되지.'

'근데 너, 세뇌 당하는 걸 아예 전제로 깔고 있는데 이수아가 너를 세뇌 시킬 거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거야?'

'확신하고 있는 게 아니라 최악을 가정하는 거지. 그냥 이수아랑 나랑 만났을 때 깔끔하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면 다시 친구로 돌아가는 거고,'

'세뇌 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적다고 생각하나봐? 마음이 아주 평온하다?'

글쎄? 솔직히 내가 세뇌 당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이수아가 나를 완벽히 잊지 않은 이상, 나를 보면 간단한 세뇌 정도는 반드시 걸 테니까.

그런데 나는 믿는 구석이 아주 많다.

당장 월하만 해도 무력화 권능을 가진 S급 각성자고, 정 답이 없으면 천마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시겠지.

'스스로 해결할 생각은 없는 거야?'

'나 각성시켜 주면 스스로 해결할 생각을 해볼게. 능력도 없는 비각성자가 각성자한테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거잖아. 그리고 인맥도 엄연한 능력이라고.'

'이 새끼 뻔뻔한 거 보소.'

'아무튼 덕분에 생각 정리 잘했다.'

이수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월하도 있고 천마도 있으니까.

두근두근 뛰던 가슴이 비로소 조용해 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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