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 사이비­8 (62/265)

〈 62화 〉 사이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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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년이 올 때까지 가만히 대기만 타고 있어야 한다고?"

"당장은 그래야지,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건 부담이 크니까."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도 싸울 수 있게 허용해 준 게 어디야.'

저 년이라면 분명히 S급 각성자와 싸우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말로 해결하려고 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하연이 너, 도시 관리를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적이 도시로 침입해서 사람을 납치해 가는데 아무것도 모를 수 있어?"

"경비대가 완전 엉망이었거든, 경비대장으로 발령 받은 나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도시 경비같은 최소한의 일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았지만, 외부 침입자 같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전에 경비대장을 맡았던 애가 정신이 좀 박혀 있던 것 같은데, 내부에서 파벌 나누고 싸우는 새끼들 때문에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다 내 잘못이지.'

오라버니한테 정신이 팔려서 경비대장으로서의 업무를 소홀이 한 것은 맞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오라버니 보고 싶다.'

요즘 바빠서 얼굴도 잘 못 봤는데...

지금쯤 연하가 오라버니의 품속에서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질투심이 마구마구 차올랐다.

'일 끝나면 나도 해달라고 해야지.'

"하연이 너라면 경비대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그래도 거의 다 해결했어."

파벌 같은 거 강제로 찢어버리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굴리고, 대 전략부터 새로 세웠다.

솔에선 연하가 전략전반을 맡고 나는 군기와 훈련도를 담당했기에 혼자서 진행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이전 경비 대장이 이쪽으로도 생각보다 쓸만한 애라서, 그럭저럭 기틀을 잡아 낼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거야. 빈민가의 빈민 한 둘 없어지는 것 까지 전부 알아낼 순 없지만, 아무리 적재적소를 잘 노렸다고 해도 기술자들이 납치 당했는데 모르는 말도 안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네."

적막한 정적이 찾아왔다.

이 정도로 조용하면 말하길 좋아하는 길드장이 먼저 입을 열 법했는데도 길드장은 입을 꾹 닫은 채 허공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정적이 2시간은 지속 되고 나서야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의외라고 생각하지?"

"뭐가?"

"솔직히, 이렇게 격하게 반응할거라고 생각 안 했잖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 말 돌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이수아라는 새끼, 나타나면 내가 박살 내고 싶다고."

길드장의 눈빛이 이글이글하고 타올랐다.

얜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왜 이렇게 화가 나셨데? 납치된 기술자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화낼 만한 포인트가 있었나?"

"있지, 당연히 있지."

길드장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새겨졌다.

"아무리 그쪽 도시가 솔에 비해서 우리 길드의 영향이 적다고 해도, 엄연히 우리 길드의 소유란 말이지."

동굴 내부에 서서히 온도가 차올랐다.

이년 지금 우리가 잠복해 있다는 걸 기억하곤 있는 걸까?

"기술자들이 납치 당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동력은 결국 길드의 발전을 위해서 쓰였을 거야. 그런데 그런 노동력을 다른 도시에서 전쟁을 하기 위해 사용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이런 상황을 대화로 풀려해봤자 얕보일 뿐이니까."

'이년은 화가 났어도 말이 많군.'

주저리주저리 대사가 길다.

"미안한데, 이수아라는 년은 내가 박살낼거야.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 있거든."

감히 우리 오빠를 세뇌했으니까, 아무리 지금은 멀쩡해도 잠시나마 오라버니의 기억을 날렸던 루시아 조차, 반쯤 박살을 내놨는데, 어릴 때부터 세뇌를 해서, 근래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절대 용서 못해.'

너무 열이 받은 걸까? 동굴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단 둘 다 진정하자. 우리 지금 몰래 숨어있는 거야. 괜히 열받아서 우리를 들어냈다가, 그 년이 안 오면 안 되잖아? 사이 좋게 박살 내는 걸로 하자고."

"우리 둘 사이에 사이 좋다는 말이 어울리나?"

"당연히 어울리지. 길드장이랑 길드원의 관계니까."

활짝하고 웃는 얼굴에 주먹 한 방을 꽂아 줬다.

"지랄 하네."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월하씨를 제외하면 근방에서 둘밖에 없는 S급 각성자인데 괜히 사이가 나빠졌다가 도시 하나 말아먹으면 곤란하잖아?"

걔를 제외하면 안되는 거 아니야? 3명밖에 없는데 한 명을 왜 제외하는거야.

"네가 선을 넘지 않는 이상 그럴 리는 없어."

"우리 하연이는 왜 이렇게 차가울까 자매가 둘 다 얼음이 따로 없어요. 혹시 오빠 되시는 분도 성격이 차가우셔?"

"갑자기 오라버니 얘기가 왜 나와?"

"차갑기만 하던 하연하 자매의 오라버니 시니까, 나도 관심이 많지. 너희들 성격 엄청 세잖아.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니까?"

눈이 크게 뜨여진 걸 보면 진심인 것 같은데, 방금전까지 눈에서 열기를 내며 화내던 년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까 적응이 안된다.

'진정하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하긴 너무 티나게 화내긴 했어. 조금 진정하자.

"말 좀해줘."

"꺼져."

나에게 달라 붙는 길드장을 억지로 때어냈다.

***

"성전의 준비가 거의 다 완료 됐습니다. 여신님."

"내 두 번째 사도여, 정확히 언제부터 성전을 개시할 수 있지?"

"대삼림 근처로 파견나간 형제들이 생산한 무기를 가지고 오면 바로 성전을 진행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알겠다. 이만 들어가 보도록."

'때가 왔네.'

위험한 능력이라며 나를가두고 억압하던 도시에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

얼마나 힘들게 이룩해 낸 성과인가,

스스로 여신을 자칭 하면서 힘을 모았다.

A급 각성자 3명과 B급 각성자 10명을 비롯한 수많은 각성자들을 나의 종으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도시의 지배자에게 내 정체를 들키면 안 됐기에, 늘 암지에서 행동하며, 대규모 능력을 사용한 적도 없다.

'여신' 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 이 성전만 끝나면 내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도시의 여신으로 군림하며, 모두에게 칭송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았어.'

성전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야 했는데, 도시의 기술자는 전부 지배자가 독식하고 있다.

몰래 침입해서 세뇌를 시키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물자가 빠져나가면 금세 눈치를 챌 게 분명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발견한 것이 대삼림 너머에 있는 도시였다.

우리 도시에 비해 규모도 작고 침임에 대한 대비도 전혀 안되어 있었다.

S급 각성자의 기운만 느껴지지 않았다면 당장 수뇌부를 세뇌해서 내 손안에 넣었을 텐데...

그래도 쓸모가 많은 도시였다.

우리 도시처럼 기술자가 지배자한테 예속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몸을 가지고 움직였으니까.

적당한 상황만 잘 꾸미면 손쉽게 납치 해올 수 있었다.

물론 납치하는 상황까지 내가 손을 쓸만한 여유는 없어서, 부하들을 시켰지만, 가끔 들려오는 전보로는 일이 잘 풀려간다고 하는 모양이다.

기술자들의 납치도 순조로웠고, 무기도 잘 생산했다.

오래 전쟁을 진행하면 금방 동날테지만, 어차피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은 없다.

'슬슬 무기를 가지고 오라고 인력을 보내야 겠어.'

겸사겸사 나도 가서, 얼마나 품질 좋은 무기를 만들어 냈는지 확인을 해야겠다.

이젠 권능 없이도 나를 여신으로 여기는 신도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치고 있을 가능성도 아예 부정 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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