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혁명단1
* * *
"그런데 우리가 가면 뭘 하게 되는 거야?"
"일단 합동 훈련을 진행 할 거야. 너희들은 특히 비각성자인 것 같으니까,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때로는 제압하는 일을 훈련을하겠지."
"너희들은 비각성자가 아닌 것 처럼 말한다?"
내 말에 땅꼬마가 코웃음을 쳤다.
"나를 일반적인 비각성자라고 생각하지 마. 나는 어릴 때 부터 특수한 훈련을 받아 온 사람이거든, 마나 같은 거 없어도, 장비만 있으면 F급에서 E급 정도의 각성자는 잡아낼 수 있어."
오, 굉장한데?
"저쪽 누님은 강한걸 인정하겠는데, 너는 강하다는 건 인정 못하겠는데?"
"그렇게 궁금하면 혁명단의 본거지에서 한 번 붙어 볼래?"
"좋아."
땅꼬마와 나 사이의 묘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혁명단원들은 혁명단원 나름대로 땅꼬마가 이길거라는 확신을 가진채 나를 보고 있었고, 우리 쪽 애들은 우리 애들 나름대로 나를 전적으로 믿는 눈빛으로 저쪽을 바라봤다.
"빨리 안내해."
"거의 다왔어."
거의 다왔다는 말은 대체로 거짓말이다던데, 고작 3분도 더 걷지 않아 험난해 보이는 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가 본거지야? 무슨 산적들이냐?"
"이 산 안에 따로 시설이 있어. 예전에 어떤 실험을 위해서 사용된 장소인데 모종의 사고로 인해서 버려진 곳이 있어서 그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고 있지."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 장소가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시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 뇌가 멋대로 진행해 버린 탓이었다.
'아니 그럴리가 없어.'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이수아가 미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시설 또한 미르 안에 있거나 미르의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정확히 말하면, 가능성이 나름 높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미르는 좁은 도시였으니까, 연구 시설이 많이 존재하기는 많이 힘들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수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이 산으로 다가 올 때 이수아의 눈빛이 변했다. 아주 찰나의 변화였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S급 각성자들도 인간이라니까.'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모든 걸 속여 넘길 수 있겠지만, 일상의 가벼운 습관마저 제어하진 못 했다.
산을 타고 올라가다가 땅꼬마가 말한 시설의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이 내가 어릴 때 지냈던 시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개조를 하고, 시간이 흘러 노후화 된 곳들도 곳곳에 보였지만 이곳은 틀림없이 인공 각성 실험의 연구소였다.
"식스 왔냐?"
"그래 아저씨, 별 일 없었지?"
"이번에 새로 데려온 사람들이야?"
"응, 싹수가 있어보여서, 데려 왔어."
"안전한 사람들인거 맞지? 괜히 어디가서 소문 퍼뜨리면 곤란해."
"어차피 여기 밖으로 못 나가잖아."
식스와 경비원은 굉장히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는 방 없어? 저기 있는 저 남자가 나한테 결투를 신청했거든."
"식스한테? 간도 크구만, 이봐 형씨, 꼴사납게 뒹굴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어때?"
"싫은데? 내가 왜?"
"클클 오랜만에 재밌는 볼 거리가 생기겠구만, A3방에 가 있어, 금방 사람들을 모을 테니까."
"굳이 사람들을 모을 필요가 있어?"
"재밌는 장면은 여럿이서 보는 게 좋잖아."
'일단, 허세는 아닌 모양이네.'
경비원은 식스가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는 전재를 두고 말했다.
아무리 경비원과 식스가 친한 사이라고 해도, 저렇게 까지 깊은 신뢰를 보일 수 있는 건 식스가 진짜로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의미했으니까.
"우리 대단하신 S급 각성자님은 어디계셔?"
"지금은 도시 중심부 쪽으로 가셨어. 지배자가 사는 곳을 정찰하고 오신다고 하셨거든."
식스를 따라 거대한 방에 도착했다. 이전에는 수련실로 썼던 거대한 방이었는데, 지금도 수련실로 사용하고 있는 듯 거의 비슷한 모양을 유지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면 지금 빨리 끝내 줄까?"
"기다렸다가 해, 다들 재밌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잖아?"
자기팀이 이길거라고 확신 하는 상황에서 믿었던 이의 패배를 구경하는 게, 훨씬 더 재밌겠지?
사람들은 빠르게 모여 들었다. 할 게 없는 걸까? 아니면 빨리 끝내고 하던일을 다시 하려던 걸까?
"야, 식스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 겁도 없이 너한테, 대결을 신청했다면서?"
"정확히 말하면, 내가 먼저 싸움을 건 거긴 하지, 내가 일반인이랑 다르다는 점은 알려줘야 하니까."
식스에게 다가온 남자는 꽤 고위 각성자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못해도 B등급, 아마도 A등급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우리를 쑥 훑었다.
"확실히 너희들도 일반인들은 아닌 것 같네, 기세가 남달라. 그래도 아마 식스한텐 안 될거야. 얘는 각성자도 때려 잡는 괴물이거든,"
"됐고, 사람들 다 모였으면 빨리 싸우지?"
"아직도 허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방에 도착한 사람들이 우리를 중심으로 원형의 공간을 만들었다.
"식스!! 이겨라!!"
"너무 빨리 끝내지는 마, 오랜만의 싸움인데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없잖아."
순식간에 방안이 시끌시끌해졌다.
어릴 땐 늘 고요하기만 했던 공간이 이렇게 뜨거운 열기에 차오르다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상당히 오묘한 감정이 내 몸에 감돌았다.
"필요한 무기 있어?"
"단검 하나만 가져다 줘."
내가 쓰던 무기를 쓸 순 없다. 마나가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간 무기가 통째로 잘려 버릴 테니까.
관객석에서 적당한 길이의 단검이 하나 날아왔다.
쨍!!
바닥에 몇번 튕겨 날아오는 단검을 발로 차올려 손에 잡았다.
별 거 아닌 쇼 맨쉽이었지만 관중들은 엄청나게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작은 방이 떠나가나 울려 퍼지는 함성에, 나도 텐션이 올라갔다.
"너는 무기 안 써?"
"일반인을 상대하는 데 굳이 무기까지 필요하진 않아."
"나중에 졌을 때 무기가 없어서 졌다고 징징 대지 말고 빨리 들지?"
허접한 도발이고, 굉장히 보편적인 도발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도발에 걸려 든 건지, 아니면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식스는 주머니에서 작은 봉을 꺼내더니 몇 번의 조립으로 금세 기다란 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세를 잡는데, 굉장히 익숙한 자세였다.
식스는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창술의 기본 자세를 그대로 취하고 있었다.
우리한테 창술을 가르쳤던 교관도 결국 미르에 존재하는 누군가한테 배웠을 테니, 식스가 내가 배운 창술을 구사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면 내가 훨씬 유리하지.'
지금의 내 검술은 교관한테 배웠던 방식과는 판이 하게 달라져있으니까, 식스가 설령 검술도 배워 본적이 있다 해도 내 검술에 익숙하진 못할테니까.
"먼저 공격한다."
땅을 박차 식스에게 달려 들었다. 내가 식스의 근처 2미터까지 다다를 때까지 식스는 준비 자세를 유지했다.
내가 그의 근처 2미터 안쪽으로 들어 온 다음에야 자연스럽게 창을 들어 나를 겨눴다.
창 끝이 겨누는 곳은 나의 목, 창과 창의 대결이었다면 조금 더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이루어 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리치가 짧은 단검을 들고 있는 만큼, 굳이 승부를 길게 끌려고 하진 않겠지.
쐐액!
식스의 창 끝이 내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어떻게 대응할까? 창을 잡고 놈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을까?
적어도 완력 면에선 내가 녀석보다 더 뛰어날 것이 더 분명했으니, 충분히 의미가 있는 방법일 수 있었다.
아마 식스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창을 잡았겠지.
'사람들이 치켜세워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괜히 역공을 당할 수 도있어.'
빠르게 다가오는 창을 가볍게 피해냈다. 곧바로 놈의 창이 내 목 근처로 다가왔다. 아마 내 목에 창날을 걸어서 배려는 속셈이겠지. 놈의 다리가 나의 다리를 걸러 이동하는 걸 보면 아주 확실한 예측이었다.
놈의 창대를 단검으로 밀었다. 식스는 곧바로 자세를 바꿔 내 단검을 막아내고는 가볍게 흘려내며 내 힘을 이용해서 창의 반대편으로 내 목을 노려왔다.
'오랜만에 싸울 맛이 나는 상대인데?'
목으로 다가오는 창을 몸을 숙여서 피했다, 무리한 움직임에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 정도는 자주 하다보니 이젠 버틸만 했다.
막거나 흘려낼 거라곤 예상했겠지만 설마 이 자세에서 창을 피해낼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놈의 창이 크게 헛 돌았다.
비어있는 놈의 몸에 파고 들어, 목에 단검을 들이댔다.
식스도 빠르게 창의 궤도를 바꿔 내 몸을 노리려 했지만 아쉽게도 내가 훨씬 더 빨랐다.
"내가 이겼지?"
"쯧... 그래, 네가 이겼다."
식스가 창을 내 던졌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가 들렸다. 자기 편이 졌는데도 이렇게 큰 환호를 지르다니.
"신입 대단한데?!"
"식스를 이길 줄은 몰랐어."
이젠 나도 자기네들의 동료라는 건가?
"이렇게까지 빨리 승부가 날 줄은 몰랐는데?"
내 체감시간 속에서는 꽤 걸린 전투였지만, 실제로 흐른 시간은 30초도 채 되지 않았다.
"피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어, 상정해 두고 있다가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바로 반응하지 못했으니 바로 끝날 수 밖에 없지."
식스가 복기를 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 대단한 놈인데? 도대체 뭐 하던 놈이야?"
"그냥, 평범한 미르 시민이지."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너, 이름이 뭐야?"
식스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도 알 수 없는 신뢰를 받았지만 지금은 아예 굳건한 믿음으로 보일 정도? 왜 이놈이 나에게 이런 믿음을 보내는 지 알 수 없었다.
"이수현이라고 해."
"... 이수현?"
식스의 눈빛이 멍해졌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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