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4화 〉 이현수­9 (104/265)

〈 104화 〉 이현수­9

* * *

이수현은 참 여난이 많던 놈이다.

당장 하연과 월하, 그리고 루시아 정도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런 기센 여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수현이 터득한 여러 방법이 있다.

최대한 피해 없이, 여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이지.

누나는 내 품에 얼굴을 박고 계속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조금 그친 것 같아서 물러나려고 하니까 오히려 나를 꽉 끌어 안았다.

­어디 간다는 소리 하지 마.

"알았어. 안 할게."

­한 번만 더 그딴 얘기 꺼냈다가는 사지를 뜯어버려서 아무대도 못 가게 할거야.

정말 섬뜩한 말이었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일단 목소리가 울음기에 가득차있어서 두려움 보다는 측은함과 동정을 먼저 불러일으켰고, 정신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말 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내 팔다리를 뜯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 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진짜로 뜯어버리려 해도 천마가 나타나서 지켜주겠지.'

이 육체는 이수현 거니까. 내 잘못으로 이수현의 신체가 날아가는 걸 두고 보고 있을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귀여운 협박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절대로 어디 안 간다니까? 누나는 동생 못믿어?"

­... 믿어...

누나가 내 가슴팍을 팍 밀면서 떨어졌다.

"그러면, 이제 잘까?"

­안아줘.

누나가 하라는데 동생으로서 반항 할 순 없겠지?

게다가 나 때문에 예민해 지기도 한 상황이니까.

누나를 꼭 안고 누웠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온기가 내 몸에 맞다았다.

"그러면 잘자고, 내일보자."

­그래, 내일 봐.

자고 일어났는데 사지가 뜯겨 있거나 하진 않겠지?

***

"스승님, 계속해도 되는 거 맞습니까?"

"왜?"

스승님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마 최종보스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지?"

당연하게도 하기 싫었지만 내가 지금 우려를 표하는 건 단순히 내가 하기 싫어서 그런것은 아니다.

"이 몰카, 원래 현수가 세계에 정을 붙이게 하고 리우잉과 친해지게 만들기 위해 진행 한 거 아닙니까?"

"일단 우리 아해가 제안할 때는 그렇게 시작했지."

"보시면 아시다시피 이미 현수는 리우잉에게 정을 붙였습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끝낸다고 하더라도 리우잉을 만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빼달라고 수현에게 부탁하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반항적이고 정을 못 받은 아이라고 해도 본질적인 성격은 아해를 닮았으니까. 리우잉과 붙여두면 금방 친해질 거라 생각했어."

"그러면 지금 시점에서 몰카를 종료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천마님이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검마야.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야."

진지한 이야기를 하시려나 보네, 굳이 이렇게 나를 부르시는 걸 보면.

"설마 너는 본좌가 이현수 하나만을 위해 이 몰카를 계획했다고 생각하느냐?"

"..."

"아까 말했지 않느냐. 이현수가 가진 성격의 본질은 아해와 같으니 리우잉과 붙여두기만 해도 금방 친해질 것이라고, 굳이 몰카를 진행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리우잉 때문에 이 몰카를 기획했지."

천마님이 씨익 하고 웃으셨다.

그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같은 여자인 나조차 가슴이 철렁했다.

"폭주하는 리우잉을 보고 걱정이 드는 건 이해한다. 너희 둘은 자매 같은 아이니까. 당연히 걱정이 들겠지. 하나 뿐인 여동생이 정신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천마님은 처음 몰카를 시작하실 때부터 리우잉을 염두에 두신 걸까?

"하지만 그 시련을 이겨내야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다. 만약 지금 몰카를 종료시킨다고 해도 과연 리우잉이 괜찮아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똑같겠지. 밝은 티를 내면서 검마 너와 권마를 오가면서 즐겁게 놀고자 할 거다. 다른이들에게는 다시 다가갈 생각도 못하고 말이지."

천마님이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리우잉이 이번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할 거라 믿는다.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먼저 다가갈 수 있던 이현수와 좋은 관계를 이루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진전 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현수는 아해의 어린 모습이니까. 이현수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 알고 계셨으면, 지금까지는 왜 리우잉을 내버려 두셨던 겁니까?"

천마님이 모르실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웃고 있는 리우잉의 뒷면에 어두운 모습이 존재하고 늘 행복한 것 같은 모습엔 사실 불안함이 가득 깔려 있다는 사실을 천마님은 알고계실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리우잉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 내버려 두었느냐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천마님이 쓸쓸하게 말했다.

"중원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있더구나. 나는 리우잉의 부모와 같은 존재다."

리우잉의 부모시기만 말까. 나와 권마또한 사실상 천마님을 부모님 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를 줍고 키우신 건 천마님이셨으니까.

"때로는 부모의 입장으로서는, 가족의 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 특히 나같이 사춘기의 리우잉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고 내 할일만 하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극히 빈약하겠지."

"스승님."

"하지만 그런 문제도 친구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지. 그 동안은 리우잉의 친구로 데려올 만한 이를 찾지 못했기에 건드릴 수 없었지. 중원의 이라면 리우잉의 악명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아마 리우잉만 봐도 덜덜 떨테고, 리우잉 스스로도 상대에게 벽을 쌓겠지. 상대가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온다고 해도, 속으로는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을 할 수밖에 업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현수 처럼 외국인을 데려오는 건 어떨까? 리우잉은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 한국인으로 데려오면 참 좋겠지?"

고개를 저었다.

리우잉은 그렇게 보여도 낯을 꽤 가리는 애니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인을 데려온다고 잘 친해질 수 있을리가 없다.

'상대쪽도 문제고.'

갑자기 천마님께 납치돼서 다른 나라에서 눈을 떴는데 리우잉에게 마음을 열어줄리가 없잖아?

"원래는 아해에게 리우잉을 맡기려고 했어. 아헤는 참 착하고, 정을 주는 방법도 충분히 배운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저번에 아해가 몰카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겸사겸사 이현수도 세상에 정을 붙이게 할 겸 이현수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 너와 이현수가 있던일과 리우잉이 둘을 화해시켜 준 걸 듣고나니 확실히 이현수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님이 싱그럽게 웃으시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다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거니까."

내가 스승님을 못 믿었구나.

저렇게 깊은 생각을 가지고 실행하신 일인데.

"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최종보스, 잘 할 수 있겠지?"

... 리우잉을 위해서니까 열심히 하자!

***

거대한 몬스터가 우리 앞에서 자고 있었다.

자신들의 수족이 전부 없어졌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그 거대한 몸을 뉘이고 쿨쿨 잘만 자고 있었다.

­어디 안갈거지?

"누나, 벌써 열 번째야. 설마 내가 누나를 두고 다른데를 갈 것같아?"

­맞아... 다른데로 도망가면 내가 어떻게든 찾아내서 동생의 사지를 뜯어내 버릴 거니까. 현수는 절대로 못 도망가.

누누히 말하지만 정말 귀여운 협박이다.

이 누나는 그냥 사지를 뜯어낸다는 어감이 너무 강해서 하지도 않을 짓을 협박이랍시고 계속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그러면 잘 다녀와.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도망가야 한다?"

­위험하긴, 고작 B+정도 밖에 안 되는 몬스터 정도에 내가 위험할 거 같아?

어깨를 쭉 펴며 자랑하는 누나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어 줬다.

"누나 다치면 나도 누나 사지를 뜯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푸하하하하하하! 현수 네가 내 사지를 뜯는다고?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당연히 불가능하지. 일단 신체적으로 밀리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내가 누나의 사지를 뜯을 각오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몬스터 잡기 전에 우리 동생 농담 덕분에 크게 웃었네, 누나 일하고 올테니까. 잘 기다리고 있어.

"잘 다녀와."

누나는 몬스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솔직히 말하면 달려가는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누나는 이미 몬스터의 미간에 발을 내려찍고 있었으니까.

­쿠어어어어어어어!!!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잔뜩분노한 눈으로 누나에게 공격을 가하기도 전에 누나의 후속타가 몬스터에게 박혀 들어갔다.

'아무리 무공을 배웠다고 해도 저게 진짜 비각성자가 맞아?'

발차기 한 번으로 몬스터를 저 멀리 날려버린 각력을 보고 있노라면, 저번에 내가 맞았을 때 설마 전력으로 때린 게 아닐까? 싶었던 의문이 싹 사려졌다.

누나가 나를 전력으로 쳤다면, 한 방에 즉사해 버렸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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