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이현수8
* * *
아침이 올 때까지 누나를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새벽이 다가오자 누나가 멋대로 일어나더니 일어나서는 자기 무릎을 톡톡 쳤다.
너도 좀 자야지!
"아까 12시간을 뻗었다면서. 지금은 안 자도 괜찮아."
그래도 낮밤은 맞춰야지. 조금이라도 안 자면 이따가 낮에 졸린다?
"됐어. 안 자도 된다니까?"
누나가 나를 끌어다가 자신의 무릎 위에 눞혔다.
자장가라도 불러 줄까?
"됐어."
더 이상 반항 해 봤자 들어주지도 않을 테니 일단 눈을 감았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오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
눈을 간지르는 따스한 햇볕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누나는 왠지 모르게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설마 자는 내내 이러고 있던 건 아니지?'
진짜 그런거면 좀 소름 돋는데.
"누나, 나 일어났는데?"
응? 그래서?
누나는 내가 일어났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제 씻지도 못해서 기름도 많을 텐데 뭐가 좋다고 계속 쓰다듬고 있는건지.
허리를 들고 일어나니 그제서야 누나의 쓰다듬기가 멈췄다.
'와... 아직도 아프네.'
어제처럼 극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도 배가 욱씬 거리면서 아파왔다.
나도 모르게 배에 손을 올리니 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직도 아파?
"아냐, 괜찮아."
이 정도는 버틸만 하다.
움직일 때마다 배가 조금씩 아파오긴 했지만 나는 이 정도 고통도 참지 못할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슬슬 움직일까? 괜히 내가 기절해서 어제 하루 손해 봤잖아. 부지런히 움직여서 좀비도 다 잡고 도시도 좀 뒤져봐야지."
그래! 가자!
어제 밥을 먹었던 곳으로 이동해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여전히 더럽게 맛이 없었지만 어쩌겠어. 일단 살려면 먹어야 하는데.
밥을 다 먹고 어제봤던 트럭으로 이동했다. 멀쩡히 작동하면 오늘도 쓰려고 했는데 아무리 만져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같이 움직이자.
"떨어져서 움직이는 더 낫지..."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이 굉장히 처량하게 변해 있었으니까.
"그래, 같이 움직이자."
좀비들을 잡으면서 큰 소리로 좀비를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지를 계속 찾아봤다.
가끔은 다 무너가는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좀비를 유인하기도 했고 확성기를 찾아서 소리를 치면서 좀비들을 유인해 잡기도 했다.
더 이상은 소리로 좀비를 유인해선 안 될 것 같아, 도시 중심지에 있는 몬스터가 듣고 반응 할 수 있으니까. 이제는 일일이 주먹으로 때려잡자.
남아있는 구역자체는 넓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중심부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잡아왔던 좀비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좀비가 중앙에 몰려 있었다.
"한참 걸리겠네... 시간을 줄일 만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글쎄? 그걸 고민하는 시간에 좀비를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아냐 방법이 있을 거야..."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나의 시선에 건물안에 박혀 있던 걸로 추정되는 커다란 철근이 들어왔다.
"누나, 저거 휘두를 수 있지?"
저 철근 말하는 거야? 당연히 휘두를 수는 있지. 근데 왜?
"저걸로 한 번에 훅하고 쓸어버리면 주먹으로 잡는 것 보다 빠르지 않을까?"
누나가 나를 귀엽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동생 상상력이 풍부한데? 근데 지금까지 누나가 싸우면서 주먹 한 방에 좀비 한마리만 잡은 거 본적있니?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런적이 없었다.
일단 누나는 무공을 배운 무공인이었고 마나를 사용해서 주먹을 휘두르면 좀비들 열마리 정도는 우습게 터져나갔다.
주먹에 마나를 담고 휘두르는게 무거운 철근을 휘두르는 것 보다 훨씬 빨라!
"그렇긴 하네..."
그러면 진짜 저 많은 좀비들을 일일이 때려 잡아야 한다는 건가?
어차피 내가 잡는 좀비들은 극 소수이고 대부분의 좀비는 누나가 잡을 테지만 눈앞이 캄캄 해질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엔 내일 까지 좀비들은 다 처치 할 수 있을 거고 모래가 되면 저 몬스터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말은 없는데..."
지금까지는 같이 싸웠지만 앞으로는 좀비들이 너무 많으니까 동생은 나서지 말고 다른 곳에 숨어있어.
"알았어."
누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산 더미 처럼 쌓여있던 좀비들을 전부 처리하는 데에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고 다음날 노을이 질 무렾이 되니 멀쩡히 서있는 좀비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히 정리됐다.
몬스터 주변에 있는 좀비들은 안 건드렸어. 괜히 건드렸다가 몬스터가 덤벼들면 괜히 귀찮아지니까.
"나름 주변에서 좀비들을 사냥한 것 같은데 용캐도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았네?"
그러게? 잠이라도 자고 있는 거 아닐깡? 주변을 모두 지배한 고위급 몬스터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채우는 경우도 많거든.
오, 이건 처음 안 사실인데?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머릿속에 박아두도록 하자.
"내일 몬스터를 잡는 거지?"
그래야지.
지금까지 좀비를 잡고 있느라 잊고 있던 현실이 다시끔 다가왔다.
몬스터를 잡은 이후엔 뭘 하지?
맘 편하게 도시를 뒤지고 조사해서, 천마신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 일단 이 세계가 우리가 살던 세계가 맞나?
'당연히 맞겠지. 천마랑 이수현이 짜고 치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게 분명하니까.'
그래, 그게 맞을 거야.
그냥 좀 논다고 생각하지 뭐, 천마가 누나랑 같이 스릴 있는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줬다고 생각하면 무거웠던 마음도 금세 가벼워졌다.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저녁을 먹고 저번에 찾아둔 침대에 누워서 밤을 보내면 내일 아침이 찾아 올거다.
내일 몬스터를 잡고 주변을 뒤져보면 무언가가 나올테고 그걸 따라서 다음 무언가를 진행하면 되겠지.
설마 컨텐츠가 좀비랑 몬스터 밖에 없는 모험을 준비해 두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리고 계속 누나랑 붙어 다니겠지.'
며칠 동안 함께 움직여서 그런지 그녀와 나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친밀해 졌다.
진짜 친남매라고 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지만 이수현과 백하연, 백연하 처럼 의남매 정도는 충분히 될 정도라고 할까?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의 비해 서로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당장 나만 해도 누나를 대하는 태도가 엄청 유해졌다. 처음에는 틱틱대고 그녀의 모든 말에 대해 일일이 반박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무의식적으로는 진짜 누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누나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나만큼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친한 사람을 대하듯 행동하고 있다. 이전에는 나를 보살펴야 하는 어린애 정도로 봤다면, 지금은 진짜 동생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여기서 끝나면 참 좋을 텐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누나가 나에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보고 세상의 기쁨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누나도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나눠본 적이 없겠지.
그런 상황에서 나랑 둘만 남게 되자. 나에게 의존하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의존이라기 보다는 나랑 떨어지기 싫어 한다고 해야할까? 아주 잠시동안이라도 떨어지려 하면 울망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이 상황만 지나면 금방 다시 나을 것 같긴한데, 절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니까, 한 번 고쳐보자고 말이라도 해볼까?
왜 그렇게 보고있어?
"누나, 나랑 떨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
응?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연히 싫지. 여기엔 우리 둘 밖에 없고 너랑 나랑 떨어지면 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함부로 떨어져.
"지금은 좀비들도 다 없어졌으니까 몬스터한테만 안 다가가면 되는 거 아니야?"
... 너 나랑 떨어지고 싶어?
누나가 슬프면서도, 상당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떨어지고 싶다는 건 아닌데, 누나가 걱정돼서."
내가 걱정되다니? 도대체 뭐가 걱정되는 데?
"나랑 너무 떨어지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당장 저번만 해도 내가 떨어지려고 하니까 가지말라고 붙잡았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누나 옆에 붙어 있으라고 한거지!
"그러면 지금은 떨어져도 되겠네? 지금은 위험하지 않으니까."
누나가 입을 앙 다물고 나를 노려봤다.
눈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노기에 몸잉 떨려오긴 했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천마가 장난을 끝낼 때까지 고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봐봐, 지금도 화내잖아. 나랑 떨어지기가 그렇게 싫어?"
어, 싫어, 여긴 우리 둘 밖에 없잖아. 네가 어디 간다고 하고 영원히 나에게 다시 찾아 오지 않는 게 두려워. 혹시라도 어디 다쳐서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그냥 둘이서 있으면 되지 왜 굳이 나가려고 하는데?
"누나가 걱정돼서 그러지, 분명히 처음엔 누나가 나한테 세상을 알려준다고 장담해 놓고, 너무 나한테 의지해 오는 것 같아서."
둘 밖에 없는 데 서로 의지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 그게 싫으면 그냥 혼자 고민하고 끙끙대다가 폭주해 버릴까?
누나의 눈에 광기가 깃들었다.
당장이라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은 그 모습에 일단 몸을 움직였다.
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 지 모르지만 이수현의 기억은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미안해, 나 어디 안갈 테니까. 진정해."
누나를 꼭 끌어 안으니 곧 끅끅 대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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