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2화 〉 이현수­7 (102/265)

〈 102화 〉 이현수­7

* * *

근데 왜 여기에 군고구마를 파는 트럭이 있는 거지?

이런 트럭은 아주 가끔 한 번씩 우리 도시를 지나가는 거지 아무리 봐도 외국인 이런 곳에 있을 법한 게 아니잖아?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심을 일단은 눌러 앉고 트럭에 앉았다.

'기름이 있는데?'

차를 몰아본 적은 없지만 빨간색과 하얀색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름이 어느 정도 차있다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일단 시동을 걸고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닌 것 처럼 보이는 부품들을 마구 건드렸다.

­이이이이이이이잉!!!!

높은 주파수의 기계음이 트럭에서 시작해서 주변에 퍼져나갔다.

좀비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앞쪽에 보이는 좀비들이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꺾는 걸 보면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좋아. 됐어!'

좀비들이 내쪽으로 뛰기 시작하기도 전에 나에게 다가온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강력한 힘으로 나를 낙아챈 뒤 트럭에서 빼냈다.

­너 지금 뭐하는거야!

"뭐하긴 좀비들을 유인하려고 수를 쓴 거지. 어차피 모여봤자 처리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아닌데 일일이 찾아가서 죽이는 것 보다는 좀비가 우리에게 찾아오게 하는 게 훨씬 낫잖아?"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야!

리우잉은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은 채 내 멱살을 잡고 짤짤이를 쳐댔다.

한 번 흔들릴때마다 골이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나름 단련된 육체다 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이이이이이이잉!!

내가 리우잉에게 멱살을 잡혀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도 트럭들은 열심히 일을 해주었고 좀비들은 착실하게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쯧...

리우잉이 혀를 한 번 차고 높게 점프하더니 근처의 3층 건물 위로 올라갔다.

­아직 화가 풀린 건 아닌데, 일단 일어난 일이니까. 최대한 이용해 보자고!

"아니, 왜 화가나? 좀비를 끌어들이는 데 이렇게 효율적인 방법도 없잖아."

­근처에 변종좀비가 있어서 내가 오기 전에 네가 죽었으면 어떡할려고 그래? 실수로 건드려서 소리가 난 거면 이해하겠는데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누나가 빡이 치겠어요. 안치겠어요?

"누나가 오기 전까지는 살 자신이 있!"

­퍽!!

"커흡!"

리우잉이 내배를 두드렸다.

내장이 뒤틀리듯 커다란 충격에 순식간에 몸이 무너졌다.

­네가 약하다는 소리는 아닌데, 제발 네 실력에 자신을 가지지 마. 봐바. 이번에도 반응도 못하고 당했잖아. 제발 안전 부터 생각하라고, 정 빠르게 좀비를 처리하고 싶었으면 일단 나를 먼저 부르고 같이 했어도 됐잖아.

이번엔 진짜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하고 싶었던 건지 리우잉의 주먹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일어나려고 해도 배가 아파서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고 조금이라도 꼼지락 거리면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정신이 아릿해 왔다.

­... 그렇게 아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여유도 없어서 눈만 미친듯이 깜빡거렸다.

고작 그정도로 몸에 진동이 전해지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조금씩 더 아파오는 듯 했다.

­미안, 내가 흥분을 주체 못해네...

"아냐... 내가 자꾸 나대서 그렇지."

시발... 의식이...

천천히 시야가 흐려졌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땐 제발 이수현이 몸을 조종하고 있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배가 미친듯이 아팠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두번 째로 든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일단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이수현이 몸을 조종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리우잉의 얼굴이 보였다.

앉아있는 것 처럼 보이고 리우잉의 얼굴이 가로로 꺾여 있는 걸 보아하니 내가 무릎배게라도 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어났어?

"어, 일어났어."

허리를 들고 일어나려 할 때 다시끔 배에서 고통이 밀려 왔다.

다행이 처음 맞았을 때만큼 아픈 건 아니라서 겨우 일어나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세게 때린거야.'

의식을 잃고 다시 깨어날 정도면 꽤 시간이 지난 시점일 텐데...

­미안, 누나가 흥분해서 너무 아프게 때린 것 같아.

"괜찮아. 지금은 좀 괜찮아 졌고, 누나 마음도 이해 되니까."

머릿속에 새겨넣도록 하자. 나는 좆밥이다.

평소에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지만 지금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강자의 말을 듣도록 하자.

'내가 잘못 생각하긴 했어.'

변종좀비가 나타날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혹여나 나타나더라도 내가 죽을 확률은 낮다고 판단해서 일을 진행 한건데 리우잉 입장에선 굳이 지지 않아도 되는 위험부담을 진 것 처럼 보였겠지.

리우잉의 말처럼 그녀를 불러서 상의를 하고 일을 진행했으면 위험요소는 완전히 배제한 채 시간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좀비들은 다 잡았어?"

­일단 몰려든 애들은 다 잡았지. 그 상황에서 좀비들을 안 잡아 버리면 내가 우리 동생을 때린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잖아.

서먹한 공기가 우리 사이를 채웠다.

"여긴 어디야?"

­멀쩡해 보이는 건물이 보여서 들어왔는데 너를 눞힐만한 데가 마땅히 없더라고, 배게 같은 것도 안보이고, 그래서 일단 내 무릎에 올려놓고 네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얼마나 이러고 있었는데?"

­12시간 정도? 네가 하도 안 일어나니까. 이러다 영영 안 잃어 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도 많이 했어.

그냥 때리지를 말지...

"누나도 좀 자. 지금까지 못 잤을 거 아니야."

­어? 그래 별로 못 잤지. 그리고 별로 안 피곤해. 누나는 동생이랑 달라서 일주일 정도는 잠을 안 자도 성격이 예민해지는 선에서 끝난 단다.

"어차피 밤이고, 나도 못 움직이잖아. 지금 자두는 게 어떻게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지금 안잔 잠은 결국 나중에 자야하는 거니까."

­동생이 그렇게 자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리우잉이 내 허벅지를 배고 누웠다.

­자다가 졸면서 침흘리지 마.

왜 이렇게 구체적인데? 설마 자기가 그랬나?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닦아봤지만 묻어나는 건 없었다.

­얼굴에 안 흘렸어!

흘리긴 흘렸다는 거구나?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셔. 내가 졸려서 졸기 시작하면 꾸벅꾸벅졸면서 침을 흘리는 게 아니라 뒤로 넘어갈 테니까."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 들리면 바로 나 깨우고.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면 누나가 먼저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러면 난 잔다!

리우잉의 눈을 꾹 감았다.

나처럼 쓰러진 게 아니라서 이렇게 불편한 잠자리에선 쉽게 잠이 들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피로가 많이 차있던 건지 누운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호흡이 안정됐다.

굳이 자는 척을 할 필요도 없었으니 진짜로 잠든 거겠지.

'쯧,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나도 삶에 미련이 남을 것 같긴하네.'

리우잉과 짧은 시간에 친해져, 이제는 리우잉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 됐으니까.

이 짧은 순간에 뭔 정을 그렇게 많이 쌓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태어나서 제대로 대화한 사람이 이수현 밖에 없었던 신생아란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처음이란 말이야...

'근데 이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천마랑 이수현이 손을 잡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두 년놈들의 작전에 휘말려서 인생에 대한 미련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느낌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그 둘이 장난을 쳤을 확률을 90퍼센트 이상으로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시험을 해볼 수는 없어.'

자살 시도 한 번이면 천마가 나타나서 구해주겠지만 진짜 만에 하나라도 그 둘의 장난이 아니라면? 그대로 모든 게 끝나는 거다.

리우잉은 내 죽음에 슬퍼하며 미쳐 날뛰게 될테고 이 몸의 주인인 이수현은 영문도 모른채 죽어버리겠지.

목숨을 건 도박은 아무리 확률이 높아도 하면 안되는 거다.

­히히... 우리 동생...

리우잉급 되는 강자도 피곤할 때 자면 잠꼬대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누나가 처음 정을 준 사람이라 그렇다쳐도 왜 누나는 나한테 그렇게 정을 주는데?'

처음 만날 때 부터 그랬다.

스스럼 없이 먼저 다가와서는 나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서로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초면에 말이다.

'아마 누나도 누군가 자신에게 정을 줬으면 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겠지.'

그리고 자기가 정을 줄 사람도...

내가 그녀의 인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검마나 권마 외에는 달리 친한 사람이 없는 듯 보였다.

그녀의 성격 상 다른 친구가 있었다면 나를 끌고서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같이 놀려고 했을 테니까.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결핍된 부분이 있었고, 나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면서 스스로 그 결핍을 채워나가고자 했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폭주한다라...'

그건 좀 무섭네. 내가 이수현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폭주하게 된다는 소리니까.

'괜찮겠지. 내가 이수현의 정신으로 돌아갈 땐 천마도 있고, 검마, 권마도 있을 테니까.'

나 없어도 괜찮지 누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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