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리우잉3
* * *
아이를 따라서 밖으로 나오니 하티아와 아연이가 엄청난 규모로 싸우고 있었어.
내가 아무리 강해도 A급 각성자들의 싸움에 끼면 절대로 좋을 건 없으니까. 일단 현수를 구한다음에 아연이와 다른 각성자들에 의해 쓰러져 있을 하티아를 밟아주는 걸로 하자.
'현수가 어디있으려나?'
일단 하티아의 집으로 보이는 가장 큰 건물로 달려가서 이곳저곳을 마구 뒤졌어.
경비병들이 조금 있었는데 전부 주먹 한 방에 기절시키고 집안을 뒤지다 보니 누가 봐도 하티아가 살 것 같은 방이 보였어.
쾅!!!
게이트의 지배자가 사는 공간이라고 해도 문이 그렇게 강하게 만들어져 있지는 않았나봐. 가볍게 쿵! 하고 차니까 문이 산산조각 나더라.
"으읍!"
현수야!!
빠르게 달려가서 묶여있는 현수를 풀어줬어.
어디 다친데는 없는지, 혹시라도 이상한 짓을 당하진 않았는지 걱정하며 몸을 더듬어 봐도 딱히 이상한 곳은 없었다.
'휴우 다행이다.'
다행이 현수의 팔다리를 자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누나, 고마워."
현수가 울먹이며 나에게 안겨왔어.
진짜 진짜 다행이야... 영원히 현수랑 헤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근데 왜... 잠이... 오...
***
눈을 뜨니 천마와 검마, 권마가 침대를 둘러서 서있었다.
'뭐야 시밤.'
최선을 다해 울먹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수마가 몰려와서 잠들었는데 눈 뜨니까 이상태다.
으우, 뭐야.
잠시 얼타고 있을 때 누나가 옆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 현수다 하이!
나에게 인사를 한 누나가 고개를 들어서 3마를 보자 눈이 땡그래 졌다.
스승님? 언니? 오빠? 왜 여기 계세요?
"다행이 무사히 깨어난 것 같군."
깨어나다뇨?
"다 설명해 줄 터이니 잠시 기다려 봐라."
천마가 차근차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확인 되지 않은 몬스터가 천마신교를 침공했다.
그 몬스터는 천마신교의 수많은 사람 중 굳이 우리 둘을 공격했는데 천마가 재빨리 몬스터를 처리하긴 했지만 너희 둘이 깨어나지는 않았다.
너희의 꿈이 공유되며 시련의 형식으로 악몽이 진행되는 걸 보았고 너희가 시련을 이겨내기를 기다리며 걱정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아 시발 꿈 엔딩이네.'
아무리 우리 누나가 단순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유치한 내용에 속을리가 없잖아.
다행이다... 이 세상에 저랑 현수랑 둘밖에 남지 않아서 스승님이랑 언니 오빠를 평생 못 볼게 될까봐 엄청 걱정했다고요...
'이걸 속네.'
그래, 단순한 게 때로는 도움이 될 때도 있지.
즐겁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누나를 바라보니 세세한 불편함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랑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응! 지금까지는 내가 일부러 피해왔는데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라운 불러올까?
... 걔는 좀...
누나가 땀을 뻘뻘흘리면서 시선을 피했다.
왜? 친해질 자신이 있다면서?
걔는 아직 허들이 너무 높아.
라운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저런 반응을 보여?
'전 남친이라도 되나?'
왠지 모르게 질투가 차올랐다.
"라운이라는 사람이 누구에요?"
옛날에 리우잉 밑에서 수학했던 제자 이름이야.
권마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제자들이 자기를 엄청 무서워했다고 했지?'
리우이의 수련이 엄청 빡센데다가 그 시기의 리우잉은 엄청 예민해서 말이야. 고된 훈련과 핍박을 받아온 라운은 결국...
천마신교를 탈퇴했다. 뭐 그런 얘기인가?
옆 도시 지부장으로 발령받았지. 리우잉의 굴림이 견디긴 어려워도 효과는 끝내주거든.
쾌활하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일부러 빌드업을 한 거 구만?
자기는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데 리우잉이 피하지. 자기가 잘못한 걸 잘 알기도 하고, 라운이 리우잉 밑에 있었을 땐 엄청 울고 리우잉을 향해 원망도 많이 들어내고 했거든, 지금이야 잘 풀렸으니 괜찮다고 하는 거지. 아마 그렇게 맞고 실력도 못 쌓았다면 아직도 리우잉을 원망하고 있을걸? 그래서 리우잉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거고.
"여러모로 복잡한 관계인가 보네요."
그렇게 복잡하진 않아. 사과 한방에 진실된 대화 몇번 하면 금방 회복될 관계니까 말이야.
내가 권마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동안 권마와 리우잉의 이야기가 다 끝났는지 리우잉이 나를 바라보고 소리쳤다.
동생! 애들 보러 가자!
"애들?"
천마신교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훈련하는 걸 보러 가자는 거지.
슬그머니 천마의 눈치를 보았다.
아마 그동안 이수현 보고 싶어서 반쯤 미쳐있을 텐데, 더 시간을 끌었다가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 다녀 오거라. 어차피 그대가 오랜시간동안 몸을 조종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아해가 온전히 책임질 것이니."
그러면 상관없지. 내가 괴로운 게 아니라 이수현이 괴로운거잖아? 나는 오히려 좋다 이말이야.
"좋아 같이가자."
내 손을 잡아오는 누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꼭 잡고 움직였다.
"그런데 왜 굳이 어린애들을 찾아가는 거야?"
어린애들은 나에 대한 선입견은 어른 들이 많한 소문 정도로 끝날 테니까 말이야. 선입견을 풀고 친해지는 것도 빠를 것 같기도 하고 꿈에서도 어린애랑은 꽤 쉽게 친해졌거든.
마지막에 같이 들어왔던 여자애를 말하는 건가?
'아마 걔도 천마신교에 있는 애를 데려다가 연기를 시킨 걸테니까 아마 천마신교내에 있겠지.'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왜,진?'
이게 왜 진짜냐?
누나의 손을 따라서 이동한 어린이 수련소에는 유사 꿈에서 봤던 아이가 남자아이랑 대련을 하고 있었다.
아니... 대련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인 것 같긴한데, 표정이 화난 표정이 아니라 즐거운 표정인 걸 보면 진짜로 싸우는 건 아니겠지. 아마 대련 중에 일어난 장난일 거다.
유사꿈에선 외국인 처럼 보이기 위한 분장을 해서 그런지 겉모습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조금만 유심히 보면 그 아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에 괜히 내가 긴장해서 누나의 눈치를 보았다.
외부인이 갑자기 들어오자 애들의 관심이 우리에게 쏠렸는데 애들끼리 쑥덕쑥덕 거리더니 금새 경계하는 눈빛 반, 두려워하는 눈빛 반으로 리우잉 누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업보를 쌓은 거야...'
무슨 호랑이도 아니고 애들이 정체만 알았는데 이렇게 떨어?
도시전설 같은 건가? 천마신교의 귀신 같은 걸로 알려져 있는 거지.
"리우잉님, 이곳에는 왠일이신지..."
머릿속에 있는 모든 중국어들을 짜집어서 어린이 훈련소장이 하는 말을 알아 들었다.
중국어를 배운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누나가 말을 할 때는 입으로는 중국어를 하고 전음으로는 한국어를 했거든, 본의 아니게 중국어 공부를 한 것과 다름이 없는 셈이돼서 듣고 20초 정도 생각하니까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애들이야 소문을 듣고 무서워할 수 있다고 쳐도 도대체 뭔짓을 하고 다녔기에 어른까지 이렇게 무서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누나의 과거가 점점 궁금해 졌다.
별일은 아니고, 어린 애들 수련하는 거 도와주려고 왔지.
"...도와주신다고요?"
남성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아마 라운이라는 사람을 굴린 것 처럼 애들을 굴릴 까봐 걱정하는 거겠지.
너무 걱정하지마! 예전에 나랑은 다르다고! 애들이 알아듣기 쉽게! 절대 폭력 사용 안하고 가르쳐 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래, 한낮 유아부 선생이 무슨 힘이 있다고 천마의 직속제자의 명을 거부하겠어?
자기 입으로 폭력도 안쓴다고 하니 걱정되는 마음으로 일단 비켜줄 수 밖에 없겠지.
얘들아 안뇽!
누나가 굉장히 우스꽝 스러운 모양세로 인사했다.
애들은 누나를 소문으로만 들었을 테니 면전에서 선입견을 깨는 게 통할 거라고 생각해서 저런 자세를 취한 것 같은데 그 전략은 아주 멋들어지게 들어맞았다.
처음엔 경계를 하던 아이들도 누나가 계속 친절하게 나오자. 천천히 경계를 풀어갔다.
그 과정중에 유사꿈에 출현했던 아이가 누나와 다른 아이들을 이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겠지.
애들이랑 어울리며 즐겁게 수련을 하는 누나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했는데도 시간이 훅훅 지나가서, 어느새 노을이 진 저녁이 찾아와 버렸다.
으으! 오늘은 즐거웠어!
"나버리고 혼자만 놀아서 좋았겠다 누나?"
누나가 기지개 펴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혀...현수야? 혹시 삐졌어?
"에이, 삐지긴 무슨, 그냥 좀 섭섭하다는 거지."
보폭을 넓혀 빠르게 걸으니 누나가 재빠르게 달라 붙는게 느껴졌다.
현수야 미안해, 다음에는 너랑도 같이 놀게 응? 화 좀 풀어라?
"화 안났다니까 그러네."
가볍게 웃으면서 누나와 함께 걸었다.
이게 인생이지. 안그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