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치안대2
* * *
신입 두 명과 그 신입을 데리고 다니는 사수 2명, 총 4명이 같이 밥을 먹었는데 천마는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나랑은 말도 섞지 않겠다는 듯 고개만 홱 돌리고 있었다.
"마천아씨? 혹시 저한테 화나신 거 있으신가요?"
"그런 거 없다."
없긴 뭘 없어! 누가 봐도 나 화났어! 하고 단단히 티를 내고 있구만!
우리 사이의 어색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내 사수님이 조심히 입을 여셨다.
"치안대 밥이 게이트 관리부보다는 맛이 없죠?"
"괜찮아요."
"괜찮다."
1티어 급 밥은 아니어도 적당한 맛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말이 부족하지는 않지.
"절대로 맛있다는 소리는 안 하시네요."
"실제로 맛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하..."
내 사수님이 멋쩍게 웃으셨다.
"저희 치안대는 점심을 세 타임으로 나눠서 먹어요. 점심시간이라고 순찰을 쉴 수는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순찰을 돌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것 같아요. 식당의 크기도 인원수에 비해 작아 보이고요."
밥을 다 먹으니 30분 가량의 점심시간이 남았다.
천마의 화를 풀어 주려면 지금 시간밖에 없으므로 적당한 핑계를 대고 천마와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사수님이 말을 거시면서 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오후는 둘이서 같이 다녀보실래요? 순찰로는 다 알려 드렸고,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잖아요? 게이트 관리 부서랑은 다르게 금방 익숙해 지는 일이니까 둘이서 같이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게다가 마천아씨는 A급 각성자시잖아요? 빌런이 나타나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실 테니까 두 분이서 같이 다니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천마가 눈에 띄게 좋은 티를 냈다.
내가 생각과는 상관없이 일단 둘이서 간다고 해야겠지?
"알았어요. 둘이서 가 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무전 하세요. 빌런이 나타나면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일반 시민이 난동을 부리면 무력만 써서 해결이 안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천마가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굳이 점심시간에 해결하려고 덤비지 않아도 되겠지.
이따가 같이 순찰할 때 승부를 보도록 하자.
시각은 빨리 흘러 갔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때우니 어느새 순찰 시간이 됐다.
"여기 지도 잘 보시고 지도만 잘 따라다니시면 돼요. 알겠죠?"
"알겠습니다!"
지도는 외우긴 했는데 지도에 적혀 있는 대로 잘 이동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지도 그대로 다니려고 안 하셔도 돼요. 마천아씨가 기감을 발휘하시면 조금 틀리게 다니셔도 충분히 넓은 범위를 커버 할 수 있으실 테니까요."
"길만 잃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시간이 되자마자 마천아와 함께 6번 순찰로로 출발했다.
초행길이다 보니 가장 짧은 루트로 우릴 보낸 것 같은데 나한테는 꽤 익숙한 길이었다.
치안대 근처의 지리는 잘 몰랐지만 암흑가 근처의 지리는 잘 알았으니까.
"마천아씨?"
"마천아씨?"
천마가 표정을 찡그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여기 저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허, 맘대로 해라."
천마가 고개를 휙 돌렸다.
'밖에 있는데 천마, 이수현 거리면서 꽁냥댈 순 없잖아...'
하지만 꽁냥댈 수 없는 건 아니지.
천마야, 우리는 썸이라는 걸 타본 적이 없지 않아?
"마천아씨는 진짜 강하신거 같아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부끄러우신 거예요?"
천마의 옆구리를 톡하고 치니 천마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이제 내가 원하는 바를 눈치챈 건가?'
"크흠, A급 각성자니까 강한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A급 각성자라고 해도 강하신 건 강하신 거잖아요. 어제 골렘을 잡으실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주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워요."
"과찬이다."
천마의 걸음이 빨라졌다.
도망가고 싶은 거야?
"마천아씨."
"빨리 따라와라."
"순찰은 너무 빨리 돌면 안 된대요. 일정 속도를 계속 유지해야 해요. 그러니까 옆으로 붙어요."
최대한 귀여운 목소리로 간지러지듯 말하니 천마의 귀가 아주 새빨개졌다.
"빨리 붙으시라니까요?"
"아... 알았다."
천마가 다시 걸음을 늦춰서 내 바로 옆에 붙었다.
"이렇게 둘이 나란히 걷고 있으니 꼭 데이트라도 하는 거 같아요. 안 그래요?"
"데이트라니, 우리가 연인이라도 된다는 듯이냐?"
굳이 말로 대답하지 않고 천마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내가 말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자 천마의 발걸음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빨리 가면 안 된다니까요!"
이번엔 천마의 등을 잡고 속도를 늦췄다.
천마의 반사신경이라면 내가 천마의 등을 잡자마자 속도를 늦출 수 있었겠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아니면 일부러 속도를 줄이지 않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마저 도달하지 못했는지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툭!
천마의 속도를 따라서 내가 끌려갔고 자연스럽게 천마의 등을 잡아당겨서 등에 머리를 기댔다.
"뭐... 뭐 하는 거냐!"
"뭘 하긴요? 마천아씨 막으려고 잡았는데 마천아씨가 속도를 안 줄여서 부딪혀 버린 것뿐인걸요."
"그럼..."
천마가 할 말이 없는 지 입을 다물었다.
"다시는 속도 내지 마세요. 일정 속도로 쭉 가야 한다니까요? 왜 자꾸 먼저 가려고 하세요?"
"후우... 알았다..."
"그러면 다시는 먼저 가지 말라는 의미로."
천마의 손을 잡았다.
천마의 온기가 내 손으로 전달됐다.
"이렇게 잡고 있으면 먼저 가실 생각은 못하시겠죠?"
"... 그래, 이러면 먼저 갈 생각은 안 하겠군."
그대로 일정한 속도로 순찰을 계속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상한 일은 안 생겼다.
평화로운 도시에 갑자기 빌런이 등장하지도 않았고, 시민들이 갑자기 난동을 피우지도 않았다. 진짜로 데이트를 하는 느낌으로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암흑가 근처까지 도착했다.
"이제 절반 돌았는데 회는 풀렸어요?"
"내가 언제 화가 났다고 그러나."
"누가 봐도 나 화났어요. 하면서 삐진티 팍팍 냈잖아요."
"그런 적 없다."
뻔뻔한 거봐.
어떻게 표정 하나 안 바뀌냐?
'그게 천마의 매력이기도 하지.'
"그러면 화 안 풀렸다고 생각해도 돼요?"
"화 안났다고 분명 말하지 않았는가."
"화가 안 났다는 선택지는 없어요. 화 풀렸어요? 아니면 안 풀렸어요?"
"... 풀렸다 됐나?"
"됐어요."
이렇게 보면 천마 만큼 귀여운 애도 많이 없다니까.
'사실 전부 연기 아니야? 일부러 갭모에를 강조하고 삐진척을 하고 삐진 걸 풀면서 나는 귀엽다! 라는 걸 강조하는 거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재밌겠다.'
실없는 생각하면서 걸으니 어느새 4분의 3지점까지 순찰을 진행했다. 즉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이 고작 7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었다.
"아까는 빨리 걷더니 이제는 천천히 걷고 싶으시죠?"
"아예 이곳에서 영원히 멈춰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군."
"하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요? 계속 걷긴 해야죠."
맞잡은 손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계속해서 걸었다.
"마천아씨한테 궁금한 점이 있어요."
"무언가."
"본명이 뭐예요."
천마가 잠시 멈춰 섰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니까.'
자연스럽게 천마의 손을 잡아 끄니 다시 나를 따라왔다.
"본명 말인가?"
"네, 본명이요. 한 번도 못 들어 본 것 같아서 말이예요."
"나도 너의 이름을 불러 본적이 없다. 서로 진실된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니 피장 파장 아닌가?"
"저는 알고 싶은 걸요."
"...하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이런 곳에서는 말해주고 싶지 않으니."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거지? 알았어.
그렇게 남은 거리를 조용히 걸었다.
치안대의 건물이 눈에 보이자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손을 출었다.
천마의 손이 내 손등을 간지럽히는 게 느껴졌지만 천마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들키는 건 바라지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손을 때뗐다.
"잘 다녀오셨어요."
"네, 딱히 별일 없던데요?"
"별일 없었다."
천마가 왠지 우울해진 말투로 말했다.
내가 뭔가를 잘못 건드린 걸까?
그 뒤부터는 각자의 사수와 함께 순찰을 계속했다.
8개의 순찰로를 전부 돈 후 치안대의 건물로 들어오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아요."
"네, 그러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암흑가에 있는 월하의 집으로 가는걸 들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모자 쓰고 로브를 입은 후 천마와 거리를 벌리고 각자 월하의 집으로 갔다.
"다녀오셨어요?"
왜 경비대장이라는 애가 늘 경비대원보다 먼저 끝나는 걸까.
"어, 다녀왔다."
"치안대는 어떠셨어요?"
"일이 편하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니더라."
"그래요? 그러면 내일은 다른 데로 데려다 드릴까요?"
"아니, 경비대 가는 건 이제 그만하려고."
"왜요?"
"이제 할게 생겨서 말이야."
천마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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