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3화 〉 닫히지 않는 게이트­1 (163/265)

〈 163화 〉 닫히지 않는 게이트­1

* * *

"아해야, 할 말이 있다."

다른 애들이 모두 출근한 평일 오전 편안하게 앉아있던 화련이가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인데?"

얼굴만 봐도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할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몸을 굳히고 화련이를 바라봤다.

"잠깐 천마신교에 갔다와야 할것 같다. 어쩌면 좀 오래 걸릴 수도 있다."

"... 무슨 일 생겼어?"

화련이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말 해 줄 수 없는 이야기야?"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좀 복잡하다."

"시간이 모자란게 아니면 설명해 줄 수 있어?"

화련이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게이트가 발생한 모양이다."

"이상 게이트?"

이상 게이트라... 요즘들어서 평범하지 않은 게이트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었지?

천마가 나를 두고 천마신교로 돌아갈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특이한 게이트인 걸까?

"무슨 게이트인데?"

"닫히지 않는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한다."

"뭐?"

게이트는 원래 하루 정도 기다리면 닫힌다. 왜 열리는지도, 왜 닫히는 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게이트 였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모든 게이트는 하루 안에 닫힌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닫히지 않는다고?

"심각한 거 아니야?"

"심각한 문제다. 그러니까 내가 가려고 하는 것이고."

화련이가 굳은 얼굴로 내 얼굴을 주시했다.

"어쩌면 대격변에 준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말한 닫히지 않는 게이트는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내부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존재한다. 환경도 다양하지. 게이트가 열리자 마자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들이 뛰쳐 나오는 기존의 게이트와는 궤를 달리하는 게이트가 나타난 것이다."

"천마 너는 그 게이트를 탐사하려고 천마신교로 돌아가는 거고?"

"그렇다. 아해를 남겨 놓고 떠나는 것이 불안하긴 하지만, 나는 다른 여자들도 믿는다. 분명 나 없이도 아해를 잘 지켜낼 거라고 믿는다."

"나는 괜찮지만... 넌 괜찮겠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이냐. 이 몸은 천마다. 어느 게이트로 들어가든,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든 위험할 일은 없다."

화련이가 내 불안을 풀어주려는 듯 밝게 웃었다.

"바로 갈 거야?"

"바로 갈듯 하다. 검마도 기다리고 있고,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야 아해도 다시 볼 수 있으니."

"절대 다치지 마."

"내가 어디가서 다칠 사람으로 보이나? 그리고 일이 길어질 것 같으면 일정 주기로 다시 돌아올테니 너무 걱정하지마라."

갑작스러운 헤어짐이라 그럴까? 슬픈 마음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가슴은 먹먹한데 눈물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다녀오겠다. 내가 왜 떠나는 지에 대해선 다른 애들에게도 말해주길 바란다."

"알았어. 잘 다녀와."

"아해도 잘 있어라."

그러고는 바로 사라졌다.

조금 더 뜸을 들여도 될 텐데, 헤어짐은 짧을 수록 좋다는 명언을 그대로 실현하듯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사라졌다.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얼마나 바쁜 일이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바로 움직일 정도라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출장을 갔다 오는 거라고 생각하자.'

저번에도 천마신교에 가서 일을 하고 왔던 적이 있잖아? 잠깐 사라지는 것 뿐이야...

혼자서 거실에 앉아있자니 마음이 너무 적적해 져서 현수에게 몸의 통제권을 넘겨줬다.

다른 애들은 집에 없지만, 리우잉은 건물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으니까.

현수가 몸을 조종하는 동안 아무 생각없이 잠을 잤다.

'야! 일어나, 애들 다 모였어.'

'아, 그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어느새 몸의 통제권은 내가 차지한 상태가 되었고, 다른 애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가 1차적인 설명은 다 했나본데?'

"천마언니는 어디가셨어요?"

'아, 하나도 설명 안했나보구나?'

이왕이면 천마가 어디 갔고, 왜 떠났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아.

"천마신교에 갔어."

"저번처럼 쌓인 일 처리하러 가신거에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 갑자기 급한일이 생겨서 갔어. 특이한 게이트가 생겼다는 모양이야."

"특이한 게이트요?"

하연이가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게이트가 열렸는데 몬스터가 나오지도 않고 24시간이 지나도 닫히지도 않는다나 봐. 검마가 천마 한테 그 이야기를 전해주러 온 모양인데 심각한 일인건지 바로 검마 따라서 갔어."

"저희한테 인사도 안하고요?"

연하가 서운하다는 투로 말했다.

"일이 늦어질 것 같으면 일정 주기로 돌아온데."

화련이의 성격을 생각하면 1주에서 2주 정도마다 오지 않을까?

"그래도... 너무 당황스럽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다른 애들이 서운함에 찬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하연이만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있었다.

"하연아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몬스터가 나오지 않고, 24시간이 넘게 유지 되는 게이트라고 했죠?"

'설마, 우리 도시에도 그런 게이트가 있는거야?'

"응, 그렇다고 했는데, 설마 우리도시에도 그런 게이트가 있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오늘 오후에 나타난 게이트인데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몬스터가 게이트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것 마냥 평화롭게 지내는 곳이 나왔거든요.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이 지나야 자세히 알 수 있겠죠."

아직 확실히 밝혀진 건 없었지만 나는 하연이가 말한 게이트가 천마신교에서 나온 게이트와 동일한 계열의 게이트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게이트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어?"

"30분 정도 정찰을 했다가 몬스터들이 게이트로 움직일 기색이 아예 안 보여서 일단 지켜보고 있으라고 했어요. 저번에 골렘 사건처럼 특정 이유로 게이트 밖으로 잘 안나오는 애들도 있는데 이번엔 모든 몬스터가 게이트 근처를 지나가며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어요. 어차피 24시간이 지나면 닫힐 게이트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안 닫힐 확률도 있는 거네?"

"그렇죠. 계속 게이트가 닫히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면 저희도 선택을 해야할 거에요. 내부로 들어가서 탐색을 진행하느냐, 아니면 게이트 주변만 관리하고 게이트 내부에는 신경을 끄고 사느냐."

분위기가 추욱 하고 늘어졌다.

"하연이는 어떻게 하고 싶어?"

"만약 게이트가 닫히지 않는다면 무조건 탐색을 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이트가 중국에서도 나왔고, 저희 도시에서도 나왔어요. 앞으로 이런 유형의 게이트가 다시 나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닫히지 않는 게이트가 나타날 때마다 인력을 소모해서 감시를 맡길 수도 없고 갑자기 몬스터들이 돌아버려서 게이트로 돌진해 나와도 문제니까 무조건 탐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어요."

엄숙한 분위기로 변한 거실, 연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천마언니가 닫히지 않는 게이트를 파악 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돌아가신 거잖아요? 천마 언니라면 분명히 닫히지 않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오실테니까 천마언니가 돌아오신 다음에 여쭤보는 건 어때요?"

"연하야, 우리 일은 우리가 풀어나가야지."

하연이가 연하의 머리를 토닥토닥 만졌다.

"그리고 천마님이 이상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언제 알게 되실지 알 수 없는데 그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

"언니..."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런 상황도 우리끼리 헤쳐내지 못하고 천마님한테 기대면 안돼, 여긴 우리 도시잖아."

"... 알았어요. 일단 길드장님한테도 보고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좋겠지? 솔에서도 비슷한 게이트가 나타났을지도 모르니까."

하연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솔에 다녀올게요. 저녁은 저 빼고 드세요. 길드장 성격상 지금 시간에 가면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고 할 확률이 높거든요."

"그래, 잘 다녀와."

"오늘 안에 안 올 수도 있으니까 늦게들어온다고 기다리지 마시고 먼저 주무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 바로 사라져 버렸다.

"... 말세네요 말세야... 사라지지 않는 게이트라니..."

연하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게 그렇게 심각한 거야?

"심각하다기 보다는 낯선 거지, 지금까지 잘 막아왔던 다른 게이트들이랑은 다르게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까 말이야. 진짜 영원히 열려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오래 열려 있는건지, 조건을 만족해야 닫히는 건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고 있는게 없는 거니까, 아마 한동안은 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엄청 바쁠거야."

­맘편히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대격변때도 난리였다지만 지금은 잘 살잖아. 아무리 심각한 게이트여도 설마 대격변 보다 심각한 사건이겠어?

"그래, 이번에도 잘 이겨내겠지."

늘 밝던 연하가 축 쳐져 있어서 일까? 왠지 집안 분위기가 우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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