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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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라면이라는 정말 단순한 상호를 가진 이 가게는 나에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하연이와 데이트를 할 때 왔던 곳이면서도 내가 솔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밥을 먹었던 곳이기도 했으니까.
'아영씨도 자신있게 이 라면집으로 올 정도면 나름 유명한 곳 인가봐?'
거리가 꽤 멈에도 굳이 이곳을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이 가게의 맛을 믿고 있다는 뜻이겠지
"라면 먹으러 자주 오세요?"
"자주 오는 편이지.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고 맛도 좋으니까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으러 와. 오늘이 그 날이고."
자기가 끌려서 라면 먹으러 오자고 했구만?
"너도 여기서 먹은 적 있었다고 했지?"
"네, 저번에 한 번 와서 먹었어요."
"잠깐만요. 수현씨가 솔에 와서 라면을 먹은 날이면... 설마..."
미나씨가 경악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네, 붉은 달이 테러를 일으킨 날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꼬맹이가 그 때 백하연이 구해야 한다면서 노발대발했던 그 놈이었구나? 그 땐 분위기 진짜 심각했지 아무리 의동생이어도 자기 동생 멱살 부여잡고 협박까지 했었으니까."
"멱살이 아니라 목잡았어. 진짜 죽이려는 기세던데?"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어, 길드장도 없는 데 도시에 존재하는 유일한 S급 각성자가 날뛴다고 지랄을 하는 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었겠니. 너 찾으려고 솔 전체를 다 뒤지고 다녔는데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열이 확 오르더라... 아, 지금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아영씨가 나를 슬쩍 내려다 봤다.
"역시 아까 분수대에 처박아 넣어야 했어... 너도 동의하지?"
"살짝은?"
아무래도 하연이한테 쌓인 게 상당히 많으신 모양이다.
"혹시 하연이랑 사이 안 좋으세요?"
"좋냐 나쁘냐를 따지고 보면 좋은 편이긴 하지? 일단 둘 다 경비대원 출신이라서 사석에서는 되게 격의 없이 지냈거든 근데 우리가 동생들이고 직급도 낮다보니 늘 당하는 역할만 해서 친했던 거랑은 별개로 앙금은 많이 남아있어."
"미나씨도요?"
"저도 얘랑 비슷합니다. 악우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대장님이 훨씬 높으신 분이라서 제쪽에서는 반격을 거의 못 가했죠."
"이 꼬맹이로 인질극아니 해볼까?"
"아서라. 그러다가 우리 진짜로 죽는다."
미나씨의 만류에도 아영씨의 얼굴에 상당한 진심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일단 말 부터 돌리기로 했다.
이 상태로 계속 대화를 나누다가는 장난 삼아서라도 납치 인질극 같은 걸 할 것 같았으니까.
"일단 가게로 들어가죠. 가서 시키고 나오는 데도 시간이 걸릴텐데 계속 서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바로 들어가죠."
미나씨가 내가 말한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가게 안으로 직행했다.
"그래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지뭐."
매장안에는 상당한 숫자의 사람이 있었는 데 적당히 빈 자리에 앉아서 라면 3개를 시켰다.
"꼬맹아 너 한 그릇 다 못 먹지? 남기면 내가 다 먹을 거니까 눈치껏 남겨라?"
"다 먹을 건데요? 왜 멋대로 남길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국물정도는 남기지 않겠어?"
"아뇨, 다 먹을거에요."
오랜만에 맛집찾아와서 먹는 건데 아무리 국물이라도 양보할 수 없지.
"야, 소리 좀 차단 시켜라."
"진작 하고있었거든? 네가 워낙 튀는 년이니까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 지 몰라서 소리 정도는 진작에 막아놨어. 효율이 드럽게 나쁘긴 하지만 우리 모습도 어느정도 가려놨고."
"눈치 빠르네."
아영씨가 히죽하고 웃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소리부터 체크해?"
"별 얘기 아니야. 그냥 우리끼리 말하고 있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이슈가 되잖니? 굳이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소리 정도는 막아두는 게 현명한 일이지."
아영씨가 불길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대화를 주도해 나가고자 했다.
"회의는 어느정도 진행됐어요?"
"지진부진하게 늘어지고 있어요. 등반형 게이트라는 것 자체가 처음 나타나는 게이트이기도 하고 알려진게 너무 없어서 등반형 게이트는 무언인가에 대한 추측부터 미래예측까지 진행이 된 다음에 제대로된 회의가 진행될 것 같은데 이제 미래 예측 파트가 시작됐으니까 앞으로 몇 시간은 더 할거에요."
"회의를 그렇게 오래해요?"
태양길드라고 하면 솔에서 가장 뛰어난 각성자들만 모아놓은 곳일텐데 회의가 그렇게 질질 끌릴일이 있나?
"다 파벌 싸움 때문에 그렇지."
아영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파벌싸움이라니 그냥 다들 시간이 많아서 각자 할얘기 다 해서그런 것뿐이야."
"지랄을 해요. 시간이 많으면 무조건 회의 늘어지겠냐? 다 파벌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아영씨와 미나씨 사이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갔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사건이 태양길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고위 각성자들을 다 불러모아서 말해야 할 정도의 일인지 모르겠어. 아무리 고위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너무 과하잖아."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니까. 태양길드의 중진들을 모아서 회의를 할 필요성 정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일 처리하는 전담 부서가 있잖아. 사회의 이변에 대비하고 위기를 예측하고 막아내는 기관이 버젓이 존재하는 데 왜 고위 길드원들을 모아서 회의하게 만드냐고 그냥 백하연, 백연하 둘이서 가져온 정보를 그쪽에 전달하고 필요하면 같이 작업하면서 정보만 나누는 정도면 충분한데 왜 멀쩡히 쉬고 있는 사람들을 다 불러모으냐고."
"걔네들도 회의 참여 했잖아."
아영씨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어루만졌다.
"걔네들 취급 못 봤냐? 무슨 말 한 번 꺼내려고 하면 다른 각성자들이 '너희는 고위 각성자도 아니면서 어딜 끼어들어.' 라는 표정이랑 말투로 무시를 때려버리는 데 걔네가 제대로 말을 꺼낼 수 있겠냐고."
"그건 맞는 말이잖아, 걔네들 보다 우리가 게이트에 훨씬 잘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형식상 불렀어도 그냥 입닫고 있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웃기지마, 그놈들은 전문가야 우리보다 게이트는 덜 들어가고 능력도 약하더라도 길드내의 여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조절하는 데에는 가장 특화된 놈들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못 열고 몬스터 죽이는 것만 알지 정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놈들이 고위 각성자라고 파벌 나눠서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 것만 계속 보고 있는데 회의할 맛이 나겠어? 계속 있어봤자 싸움만 계속 될 것 같아서 그냥 튄거지."
아영씨가 탁자 위에 올라와 있던 물컵을 들어서 시원하게 원샷을 때리셨다.
"너도 가끔 보면 선민 의식이 있단 말이지. 아무리 A급 각성자여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고 다니자. 우리보다 걔네가 훨씬 더 잘 아는 건 명확한 사실인데 자기보다 낮은 각성자가 너를 다루는 건 죽기보다 싫다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백연하 가고 나서 새로운 경비대장을 세울 때 B등급 각성자를 세우려는 길드장의 계획에 가장 반대했던 게 너라면서?"
"경비대장은 최소한의 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자리야. A급정도면 괜찮아도 B등급 각성자로는 무력이 부족해."
"그 무력을 채울 정도의 능력이 있으니까 길드장이 그 년을 그 자리에 올리려고 했던 거겠지. 그 정도도 생각못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정치얘기랑 종교얘기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던데 대화가 점점 정치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큼큼, 그래서 회의는 언제쯤 끝날 것 같아요?"
"5시간 정도만 더 기다리면 끝나려나? 길드장이 애들 파벌싸움 실컷 시키고 요즘 나대는 파벌들 좀 기를 죽인 다음에 전문가애들의 말을 인용해서 제대로된 계획을 세우겠지. 늘 그래왔어, 등반형 게이트가 처음 나오고 백하연이 그 게이트에 대해 알리러 왔을 때도 지금이랑 똑같이 흘러갔거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도 생각 없이 회의를 빠져나온 게 아니란 말이야. 내가 있어봤자 할 이야기도 없고 결국 최종적인 방안은 내가 있든 없든 똑같이 날태니까 그냥 나온 거야."
"아영씨는 파벌이 없으세요?"
"있긴 한데... 파벌이라기 보다는 모임이지. 나를 따르는 동생들이랑 친목 정도만 다지는 정도?"
좋아 무사히 무거운 분위기를 넘긴 것 같네.
그렇게 한 시름 놓고 있을 때 라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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