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각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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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마나는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해가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마나는 내 마나와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았고 내가 마나를 움직여 그 마나를 움직이려 해봐도 내 마나는 그 마나를 통과해 지나갈 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니까.
'신기한 일일세.'
아무리 마나를 움직여 봐도 그 마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으니 거슬린다는 것만 빼면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마나였다.
문제는 저 마나가 왜 내 심장 부근에 자리 잡고 있냐는 것이었다.
'흡혈귀가 주고 간 거아니야?'
현수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게이트의 마나는 내 기존마나와 거의 융화되어 잘 지내고 있으니 다른 곳에서 들어온 마나라는 의미였는데 다른 곳에서 마나가 들어올 만한 대가 흡혈귀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를 도와준다면서 박아놓고 간거니까 너한테 해가 되진 않겠지. 어차피 당장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자.'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이곳까지 오는 것은 흡혈귀가 도와줘서 무난히 올 수 있었지만 정작 나가는 방법을 몰랐다.
아까와는 다르게 공간이 꼬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나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공간이 꼬이기 전의 이곳지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무작정 움직여 봤자 긴 지하도에서 길을 잃고 사라질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진지하게 천장을 부수고 나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 쯤 공간이 살짝 일그러지면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구하러 왔구나!'
현수의 드립성 말투는 무시하고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을 바라봤다.
"기사님? 왜 여기계세요?"
월하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여기 있을 리 없다는 감정부터 시작해서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누가 장난질을 친건가? 하는 생각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명확하게 보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나왔다.
"웃지 마시고요! 왜 여기계시냐고요!"
월하가 날카롭고 사나운 어투로 물어봤다.
거친 말투가 발생한 원인 자체는 나에게 행하는 걱정이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너무나도 격해서 나도 모르게 뒤로 한발자국 물러날 정도로 박력이 있었다.
"으음... 설명하자면 긴데..."
"말해주세요."
월하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일만해서 그런 거겠지만 저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진실을 밝히길 요구하는 모습에 오금이 저릿해 질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일단 집안에 나타난 게이트에 끌려갔어."
"... 그건 불가항력이겠군요."
월하의 그 말이, 일단 기사님의 잘못은 아니네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나한테 화가 나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들었지."
"그러면 저희한테 말씀해 주시고 상황을 안전하게 해결하면 되지 왜 혼자서 이곳까지 오신거죠?"
"나 혼자서도 충분히 깰 수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나 혼자서 깨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했으니까."
두번째로 말한건 사실상진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보스 몬스터가 낸 시험 중 하나인 나와의 싸움에서 무난하게 이길 수 있던 것은 내가 아닌 현수를 복사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월하를 데려갔다면 월하가 자신과 싸우다가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그냥 믿고 가시는게 어딨어요. 그것도 저희한테 말도 안하시고!"
월하가 내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진심으로 화난 건지 손에는 나름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어깨가 으스러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그냥 납짝 업드려서 미안하다고 비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네.'
어찌됐든 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한것이고 그 결과도 좋았잖아? 물론 약간의 위험성은 있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언제든 위험을 배제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월하도 자신의 위험을 배제하고 움직일 때가 있는 데 나라고 그러면 안돼?
"너희한테 말했으면 안 보내줬을 거잖아."
오랜만에 목소리 톤을 낮추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말하니 월하의 팔이 멈췄다.
내가 진지해지는 건 아주 가끔있는 일이기 때문에 흥분한 월하한테도 상당한 효과가 있는 걸로 보였다.
"너희, 나 안 믿잖아. 안 그래? 내가 가서 혼자서 해결해 온 다고했으면, 보내 줄거였어?"
"... 안 보내드렸겠죠."
"그래서 너희한테 말 안하고 혼자갔어.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 가는 게 상황을 해결하는 데 좋아보였으니까."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너희랑 같이 가는 게 더 위험하다니까? 나도 생각이란 게 있는 인간이란 말이야. 너희랑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았으면 나도 내 고집 버리고 너희랑 같이 갔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나 혼자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런거야. 그리고, 너희랑 같이 가면 너희도 위험을 공유하게 되는 데 내가 그꼴을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저는 기사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어요."
이야. 월하 참 멋진 말하네.
감동 먹겠어 아주.
"월하야."
"네."
"나도 그래."
"네?"
당황해 하는 월하를 꼬옥 하고 안았다.
월하는 하연이와 다르게 나보다 체격이 작았기 때문에 내 품안에 쏘옥하고 안을 수 있었다.
"나도 그렇다고. 나도 너희를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어. 나는 너희에게 지킴 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방금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제 나도 각성자고 어느 정도 힘을 가지게 됐어. 그러니까 나를 너무 애 취급하지마."
"하지만... 불안한걸요... 만약 일이 잘못 돌아가서 기사님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제가 죽는 게 훨씬 나을 거라면서 후회했을 거에요!"
월하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래, 그녀도 많이 불안했겠지.
나는 그녀에 비해서 명백히 약자인게 사실이고 그녀의 입장에서 내가 없는 인생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을테니까.
이건 결국 내 문제다.
내가 약하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거잖아? 누구보다 빨리 강해져서 월하보다도 강해지면 얘가 나를 걱정할 일은 없겠지.
"이번엔 미안해. 하지만 이제 너도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어. 나는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결국 내가 증명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 일단 이번일은 기사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 내가 미안하다."
월하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상당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나도 쿨하게 인정했다.
결국 가족같이 가까운 사이인 그녀한테 아무말도 없이 위험한 곳으로 향한 건 확실하게 내 잘못이 맞았으니까.
더 이상 보호만 받고 싶지 않다는 내 의사도 잘 전달된 것 같으니 이 쯤에서 서로에 대한 앙금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아보였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게이트 처리하느라 바빠서 나 나간것도 눈치 못채더니만..."
"갑자기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져 버려서 한숨 돌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집을 한번 훑어봤는데 기사님이 안보이지 뭐에요? 바로 전 도시 전체를 뒤져서 기사님이 있는 곳을 찾아냈죠."
집념 한 번 대단하네.
"... 이제 돌아갈까?"
"네..."
주변의 시야가 가볍게 바뀌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흡혈귀의 인생을 너무 감명깊게 본 탓일까? 시간으로 따지면 한 시간도 안 지났을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우리 집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월하의 몸에서 떨어져서 소파에 앉아 쉬려고 할 때 나에게는 아직 작은 산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라버니? 어디 갔다 오셨어요?"
소파에는 이미 연하가 아주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
다행이 연하의 화는 안전하게 풀 수 있었다.
월하에게 했던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니 오히려 지금까지 나를 너무 과보호한 것 같다면서 역으로 사과를 해왔다.
얼추 화해를 진행한 다음에 지하에 이번에 발생한 게이트 사건의 중추가 박혀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연하가 입을 쩍 벌리면서 어딘가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솔에 연락을 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그 이후로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솔에서 온 하연이가 연하와 나를 데리고 솔로 이동했고 솔에서 가장 게이트를 숨기기 쉬울 것 같은 곳을 찾아다녔다. S급 각성자가 작정하고 게이트를 뒤지기 시작하니 곧 공간이 뒤틀린 곳이 나왔고 하연이가 바로 그곳에 들어가서 게이트를 클리어 하고 나왔다.
분명 그녀도 나와 같은 미션들을 클리어 했을 텐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사랑의 힘?'
현수의 개소리가 지나간 후 솔과 우리 도시를 안정화 시킬 때 까지 대충 3일 정도 걸렸다.
"... 오라버니가 게이트에 들어가셨다고요?"
차갑게 굳은 하연이의 표정을 보자 아직 넘어야 하는 큰 산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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