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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화 〉 하연이랑 다퉜다... (199/265)

〈 199화 〉 하연이랑 다퉜다...

* * *

"오라버니가 게이트에 들어가셨다고요?"

그리 말하는 하연이의 얼굴을 아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차가운 분노라는 것이 이런것일까?

그 표정이 너무나 냉막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내가 각성하지 못해서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상태였다면 내 몸을 내리누르는 하연이의 기만으로도 기절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강한 압박감이었다.

"어..."

겨우겨우 힘을 짜내 대답하니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차가웠다.

"왜요? 저희가 있는데 왜 굳이 오라버니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내가 들어가는 게 제일 효율이 좋았으니까."

하연이가 차가운 표정으로 턱짓했다.

그 제스쳐가 어디 한 번 읇어보라는 표시로 받아들인 월하에게 했던 말고 똑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게이트에 빨려들어갔고 그곳에서 흡혈귀의 말을 들었고 다른 애들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 보다 내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훨씬 쉬울 거라는 말에 내가 가서 해결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늘어놨음에도 하연이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일단 첫번째. 그 흡혈귀의 말은 무슨 근거로 믿었어요?"

"게이트에서 나온 보스 몬스터였으니까. 저번에 미르에 가서 게이트 안에 빨려들어갔을 때랑 완벽하게 동일한 방식의 게이트가 날 데려갔으니 그녀가 나를 엿먹이기 위해서 나를 데려왔을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몬스터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없애고 싶기도 했고."

"그렇다고 해도 저는 오라버니가 혼자서 게이트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어요. 월하 정도는 데려가도 됐잖아요."

"흡혈귀가 나 혼자 가는 게 낫다고 했어."

"흡혈귀의 말이 100% 맞는 건 아니잔항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월하를 데려가는 게 흡혈귀의 말이 맞았을 때의 리턴은 줄어들지만 흡혈귀의 말이 거짓말일때의 리스크가 훨씬 줄어들 텐데요?"

"미안해. 그건 내 판단미스였네."

하연이가 워낙 까칠하고 차가운 태도로 나를 대하다 보니 하연이를 대하는 나의 말투도 점점 차가워 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남매의 연을 맺은 후 발생한 가장 큰 남매 싸움에 연하와 월하또한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다.

"하연아. 이미 지나간 일이야."

"그건 저도 알아요. 저는 그냥 화가 날 뿐이에요. 오라버니는 오라버니의 약함을 더 자각하실 필요가 있어요. 만약 게이트가 흡혈귀의 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면 어쩔 뻔했어요?"

"그런 경우라면 내가 이겨냈어야 했겠지. 내 선택에 따른 결과니까. 나 스스로 내 선택을 책임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움직인거야."

하연이가 옅은 비소를 지었다.

"오라버니의 선택에 따른 책임은 게이트에대한 문제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성공이라는 결론이 나온 지금도 저의 분노, 걱정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한단 말이에요."

하연이의 얼굴을 풀릴 줄을 몰랐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에 대해선 더 이야기 하지 않을게요. 결론적으로 일은 잘 풀렸고 오라버니는 무사히 돌아오셨으니까요. 하지만."

하연이가 말을 딱딱하게 끊으며 나를 내려다 봤다.

"앞으로는 절대로 오라버니가 혼자서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어요... 아니, 저희 중 그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으면 어느곳에도 못가게 할거에요."

"뭐?"

"오라버니의 안전을 위한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하연이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비록 아직 화가 다 가시지 않아서 냉막한 인상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틀림 없이 걱정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내 행동에 화가 나서 앞으로 함부로 움직이지마 빼액!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나도 이제 각성했어."

하지만 나도 이제 비각성자가 아니었다.

싸울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보호받아야만 할 정도로 약한 존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F급 이실 뿐이죠."

"등급은 F급 이지만 C급 몬스터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어. 조금만 더 수련하면 B급도 잡을 수 있을 거야."

일반적인 상황에서 B급 정도 되는 각성자를 보호의대상으로 놓진 않는다.

나는 아무리 마나가 F급이라고 해도 내 모든 힘을 다 쏟아내면 B급 수준의 힘을 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과잉보호 하는 걸까?

"제 입장에서 오라버니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에요. 더 이상 오라버니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요."

"나는 너희한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지금까지 쌓여있던 게 터진 탓일까?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하연이도 설마 내가 화낼 줄을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는데 그 순간 아차 싶긴 했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더 밀고 들어가지 않으면 진짜로 하연이한테 평생 보호받는 신세가 될거라는 불안감이 닥쳐왔으니까.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뚝심있게 밀고나가야지.

"나도 이제 힘이 있어. 나도 너희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보호받는 인생은 이제 싫어."

"보호받는 인생이 싫다고요?"

하연이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 불안했다.

왠지모를 하찮음이 그 미소에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입을 열려고 할 때쯤 하연이의 주먹이 나에게 다가왔다.

온몸의 마나를 활성화 해서 그녀의 주먹을 느리게 보는 것 까지는 가능했지만 절대로 피할 각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담겨 있는 힘은 막대한 것이라서 저 주먹이 내 몸에 다았다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을 것이 명확해 보였다.

설마 진짜로 때리려는 건가 싶어서 하연이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하연이는 절대로 주먹을 멈출 것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왜지? 아무리 하연이가 화났어도 나를 진심으로 때리려고 하진 않을텐데?

내 의문은 곧 풀렸다.

­쾅!!

그녀의 주먹이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나와 그녀의 사이로 끼어든 존재가 그녀의 주먹을 막아냈으니까.

하연이의 주먹을 막은 존재의 정체는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월하였다.

하연이가 나를 때리려 했다고 해도 그 힘이 전력도 아니었기 때문에 월하가 나와 하연이 사이에서 주먹을 막으니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월하가 나를 향한 공격을 막을 걸 상정하고 공격한 거겠지.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보호받는 인생이 싫다시면서요? 그런데 이번에 월하가 보호해 주지 않았으면 죽으셨겠네요?"

하연이가 빈정이는 어투로 나에게 이야기 했다.

"월하가 막을 걸 알고 강하게 주먹을 휘두른 거 아니야?"

"그건 맞지만 그렇다고 오라버니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리진 않아요."

그 위험을 자기가 조장해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나도 사람인지라 일관되게 나에게 적의를 들어내는 하연이를 보고 같이 적의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저는 오라버니가 절대로 혼자 다니게 두지 않을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방으로 사라져버렸다.

"... 언니도 참..."

연하의 한 숨 섞인 말만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무래도 화해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듯 보였다.

***

나는 지금 바다위를 날고 있었다.

제대로 바다를 보면서 이동한 건 이번에 3번째인가?

비행 능력도 없는 내가 바다위를 날 수 있는 이유는 내 뒤에서 월하가 나를 잡고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이동했다.'

S급의 순간이동에는 제한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에 중국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비행능력을 사용해야 했다.

'나혼자 갈 수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몰라.'

우리쪽에서 알아낸 해결법을 화련이는 아직 알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중국은 한 번 갔어야 했는데 내가 혼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서 혼자 간다고 했다가 하연이랑 또 싸웠으면 아마 서로 상처만 입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연이랑 싸운지도 벌써 3일이 됐지만 우리 둘 사이의 냉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서로 말도 제대로 안 섞고 어쩌다가 말을 섞으면 평소의 부드러운 말이 아니라 서로를 찔러 죽일 것 마냥 날카로운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과같은 걸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뜻을 전혀 굽힐 생각이 없었으니까.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어느정도 나아질까?'

제발 나아지길 바란다. 나는 하연이와 평생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으니까.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내 친동생과 다름 없는 아이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은 유대가 얼마나 깊은데...

'모르겠다... 일단 당분간은 하연이에 대해서는 잊자.'

어차피 한동안은 중국에서 있을 것 같은데 긴 시간동안 머리를 식히면 충분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걱정은 미래로 넘겨 버리고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멍하니 명상이나 하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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