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피의 마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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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마자 일단 하연이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흡혈귀의 말에 따르면 이제 적 진영도 우리를 공격해 오기 시작할테니 이상한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해서 등반형 게이트의 변종이나 평범한 특수 게이트라고 생각해선 안되는 시기가 되었다.
또한 게이트가 발생하자마자 몬스터가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다거나 게이트가 펑 하고 폭발해 버리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꽤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하연이에게 이 내용을 전달해야 했다.
"언젠간 이럴 때가 올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의 게이트와는 다르게 저희들에게 피해를 일으키기 위한 게이트가 열린다는 거죠?"
하연이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등반형 게이트 이전의 게이트는 마치 몬스터가 사는 곳을 우리 세계에 바로 연결해 놓은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게이트 내부에 특수한 현상이 가해진 건지, 아니면 몬스터의 본능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많은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기 때문에 아무리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게이트라고 해도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침공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제대로된 침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단순히 잘 살고 있는 몬스터를 밖으로 밀어낸 것에 불과했으니까.
등반형 게이트의 보스몬슽터와 비슷한 수준을 가지고 있는 보스 몬스터가 이번엔 우리를 파괴하기 위해서 게이트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의 게이트가 만들어질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내릴 게요. 이제야 막 경제가 살아나는 와중에 취하기에는 과감한 수기는 하지만, 괜히 풀어놨다가 더 많은 사람이 죽으면 오히려 상황이 나빠질테니까요."
하연이가 어딘가에 연락해서 연하를 불렀다.
"네, 언니 무슨 일이세요?"
연하는 뭘하고 있던 건지 입가에 생크림을 묻히고 올라왔는데 그 모습을 본 하연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라버니가 오늘 흡혈귀한테 끌려가서 정보를 얻어오셨다. 곧 적들이 침공용 게이트를 만들어서 우리 세계를 공격한덴다."
"계엄령 부터 때리고 시작할까요? 적어도 상황 파악이 될 때 까지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 통제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하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니 연하가 주머니에서 버튼을 꺼내 눌렀다.
연하가 버튼을 누르자 하연이의 책상에서 수납장하나가 튀어 나왔는데 그 수납장에서 가방을 꺼내든 하연이가 자기 지문을 인식해서 가방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방금 뭐한거야?"
"계엄령 버튼 누른 거에요. 워낙 중요한 사안이다보니 서로의 독단으로 누르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두 사람 모두의 허가가 있어야 누를 수 있게 설계했어요."
"하연이가 탁자째로 부숴버리면 아무런 의미 없는 거 아니야?"
"진짜 급한 상황에서는 언니혼자서 누를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잖아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대처하진 않았어요."
"그러면 지금 계엄령이 선포된거야?"
"네, 일차적으로 전 도시에 안내방송이 울려퍼지고 경비대가 온 도시에 배치 될 거에요. 이 전에는 경비대 인원이 딸려서 도시 전체를 동시에 케어하는 게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거든요."
경비대 발전 시킨다고 하연이가 열나게 돌아다닌 보람은 있구나.
"당분간은 오라버니도 저희랑 같이 지내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지금 정도면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봐도 되죠?"
"알았어. 혼자서 안 다닐테니까 걱정하지 마."
***
끄르르륽.
도시의 지하, 넓게 만들어진 길에서 초록색 피부를 가진 고블린이 나타났다.
주변에 게이트도 없는 데 갑자기 나타난 고블린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딱딱해보이며 매우 매끈 한 바닥, 다 꺼져가는 조명, 막혀 있는 하늘.
그 무엇도 자신이 원래 살던 곳 같지는 않았다.
크르르르륵
고블린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한가지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블린이 손을 휘두르자 인간이 보기에는 이전의 고블린과 크게 차이 나지 않게 생간 고블린이 나타났다.
크르르륵?
새로 생겨난 고블린은 자신을 소환한 고블린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평화롭게 사냥하다가 갑자기 소환된 고블린은 이 존재가 자신이 따라야 할 고블린이라는 것을 알았다.
크르르륵...
고블린을 소환한 고블린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소환된 고블린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적당히 주변을 뒤지니 먹을 것 들이 보관되어 있는 식량창고가 보였고 고블린은 거기서 식량을 가져와 자신을 소환한 이에게 가져다 주었다.
고기를 먹은 고블린은 빠른 속도로 상처를 회복하기 시작해고 금세 멀쩡해 져서는 고블린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고블린을 소환할 수록 그 고블린은 더욱 강해졌으며 그에 따라 더 많은 고블린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평번한 고블린이었던 그가 수 천 규모의 고블린을 부리는 고블린 킹의 자리에 올라설 때 까지는 고작 1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
흡혈귀가 나한테 경고하고 단 하루만에 신형 게이트가 튀어나왔다.
침공형 게이트라는 임시 이름만 지어진 게이트는 짧은 시간동안 총 2개가 나타났는데 둘 모두 지금까지 나타난 게이트들 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나타난 게이트는 게이트 안에 이상한 원이 그러져 있는 게이트였는데 몬스터를 내뿜지 않고 원 안에 마나를 모아서 기공포를 날려대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위력이 약한 것은 아니어서 3번 정도 쏘면 단층 건물 정도는 무너져 내릴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는 데 자유롭게 움직이는 몬스터를 쏟아내는 게 아니라 주변범위만 파괴할 수 있는 게이트여서 그런지 경미한 부상자 2명만 발생시키고 방치되고 있었다.
인력을 조금만 투자한다면 바로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 연하 선생님께서 무방비 상태인 게이트가 있으니 당연히 묶어놓고 연구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셔서 일단 주변에 안전 라인 쳐놓고 방치 중이다.
물론 진짜 주변에 아무도 없이 방치하는 건 아니고 최소한의 경비 인력은 배치하고 있다.
경비 인력은 하연이에게 바로 통할 수 있는 무전기를 들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하연이에게 연락해서 게이트를 닫을 준비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이렇게 처음 나타난 게이트는 상당히 골 때리는 데다가 주변 상가를 파괴하는 등 재산적인 피해는 많이 입혔지만 그래도 제어가 나름 잘 되는 편이었다면 두 번 째로 나타난 게이트는 첫 번째로 나타난 게이트와는 반대적인 의미로 아주 골 때리는 놈이었다.
게이트는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국룰이었는데 이 미친 게이트는 자리를 이동하면서 몬스터를 쏟아내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기능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건지 정작 몬스터는 한 마리씩 밖에 못 소화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른데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순간이동 까지 하던 와중이라 하연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잡지 못하는 게이트였다.
'우리 하연 선생님은 자기 없어도 이런 게이트를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경비대원들을 굴리고 계시는 중이지만 말이야.'
몬스터가 나오긴 하지만 그 수도 적은 편이라 피해가 가기 전에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데다가 텔레포트도 완전히 동떨어진데 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다가 하고 텔레포트 직후에는 몬스터를 내 뱉지도 못했기 때문에 인명피해 없이도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두 게이트 모두 골 때리는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게이트였지만 결국 하나는 연하의 연구대상이 되어서 탐색당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경비대원들의 훈련 기구로 쓰이는 와중이니 차라리 일반적인 게이트가 더 나을 것처럼 보였다.
'게이트를 만든 놈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건가?'
완벽한 인간은 아니겠지만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는 지성체인 만큼 처음 보낸 게이트가 어디 하나 나사빠진 것 마냥 맛탱이가 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빛의 정령이 만들어 놓은 게이트 생각나네.'
본인딴에는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만든 게이트였지만 깨는 데 정말 말도 안될정도로 긴 시간을 요구했지.
만약 등반형 게이트에 모두가 약속한 표준이 없었더라면 모든 등반형 게이트 들이 저렇게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만들어 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등반형 게이트들의 표준을 만들어 준 존재에게 감사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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