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고블린 킹2
* * *
몬스터가 게이트가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
몬스터는 하나의 몬스터일 뿐이다.
많은 게이트에서 그 게이트의 리더격으로 존재하는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이는 단순히 하나의 무리를 통솔하는 몬스터일 뿐이지 몬스터를 소환해 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 고블린 킹을 보라.
손짓한 번에 수많은 고블린들을 생성해 내고 있지 않는가.
"위험한 놈이네요."
연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화련이랑 같이 왔으니 게이트에 대해서 실컷 연구하려는 듯 밝아졌던 그녀의 눈빛이 담담해 지고 눈빛만으로도 풍선을 뚫을 수 있을 정도의 날카로운 시선만 남았다.
"어지간하면 연구를 하고 싶지만... 저 놈은 너무 위험해요. 스스로 S급 몬스터면서 몬스터를 끊임없이 생산해 낸다니... 저런 변수 높은 놈은 연구대상으로 삼으면 큰일날게 분명해요."
"잡아 죽이면 되나?"
"네."
연하가 이례적으로 좋은 연구거리를 포기했다.
그녀의 눈빛이 너무 진중했기 때문에 화련이도 군말하지 않고 검을 꺼내 들었다.
저번에 화련이랑 데이트했을 때 샀던 그 검이었는데 화련이가 잡고 있으니 분위기가 엄청났다.
S급 몬스터는 아무리 화련이라도 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S급 몬스터를 단 일격에 잡기 위해서 무기를 꺼낸 걸지도 모른다.
고블린 킹과의 싸움을 질질 끌었다가는 도시에 무슨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으니까.
"흡."
눈 앞에서 화련이가 사라지더니 어느새 고블린 킹의 바로 앞에 있었다.
화련이가 고블린킹의 몸을 단숨에 베어 버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고블린 킹은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화련이의 공격을 막아냈다.
네가 그 년이군, 이쪽세계의 인간중에선 네가 제일 강하다지?
고블린킹의 말을 듣는 순간 그가 보스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보스 몬스터가 될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거지?
"강신계열의 능력을 가진 고블린인가 본데요?"
"짐작가는 게 있어?"
연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도 등급이 올라가면 능력을 각성하게 돼요. 홉 고블린만 되도 그능력이 그럭저럭 쓸만한 편인데 상대는 고블린 킹이니까 그 능력이 훨씬 강하겠죠... 제 예상이지만 아마 보스 몬스터가 강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일반 고블린 한테 고블린을 소환할 수 있는 게이트의 능력은 준체로 저희 세계에 보낸 것 같아요."
"일반 고블린?"
"네, 지금까지 저희 도시에 나타나던 침공형 게이트들이 있잖아요? 그 게이트들의 정도를 분석해 보면 고블린 킹에게 강신한 존재가 다른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은 이상 시작은 일반 고블린, 내지는 약간 더 강한 고블린 정도일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지금은 고블린 킹인데?"
"고블린은 자신을 따르는 이가 많은 수록 강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자연상태의 고블린은 어느 정도 크기가 커지만 내부분열이 일어나서 새 리더가 생기고, 다시 커지면 쪼개지고를 반복해서 많은 수의 고블린을 하나의 발 밑에 묶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쟤네 같은 경우는 다른 고블린들은 단 하나의 고블린이 소환한 거잖아요? 소환수는 기본적으로 소환자의 명령을 들으니까 수많은 고블린들을 하나로 묶고, 고블린 킹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거에요."
"그렇게 만들어진 고블린 킹의 육신에 보스 몬스터가 강신했다는 거지?"
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마 월하언니랑 하연이 언니 둘이 동시에 덤벼도 쉽지 않은 상대일거에요. 만약 천마언니가 없었더라면... 진짜 상상도 하기 싫네요."
고블린 킹은 화련이를 상대로 대단히 잘 싸우고 있었다.
빠르게 공격해 가는 화련이의 일격일격을 지팡이만 가지고 흘려내는 데다가 자신들의 심복인 고블린들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만 일반 고블린 킹이 아니라 보스몬스터의 의식이 들어온 고블린 킹이라서 조금 더 잘 버티는 느낌이 들 뿐이지 그녀의 공격에 끊임 없이 밀려났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결과였는데 그녀는 자신과 같은 신체능력 맞춘 안숭을 상대로도 가볍게 승리를 쟁취하였다.
그런 그녀가 자기보다 신체능력이 약한 고블린 킹을 상대하고 있는 데 당연히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밀리던 고블린킹의 몸이 환하게 빛났다.
비켜봐, 내가 해보게.
고블린 킹에게서 나왔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깔끔하게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하얀 백색을 연상시키는 목소리가 들린 것도 잠시 고블린 킹의 움직임이 격변했다.
캉! 카칵!
방금전까지 화련이에게 밀리던 이는 어디갔다는 듯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화련이를 농락하기 시작하는 데 검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 조차 화련이가 고블린킹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화련이는 고블린 킹 보다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고 더 많고 강한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련이가 당황했는지 모습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고블린 킹은 그 틈을 노려 화련이를 몰아 붙였고 결국 화련이가 구석까지 몰린 상태로 고블린 킹의 지팡이에 얻어맞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
일단 뛰어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화련이가 저렇게 당하고 있는데 내가 가서 뭘할 수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시간이라도 끌어서 화련이가 죽지 않게끔 해야했다.
"멈춰!!"
단검을 들고 내려가며 고블린 킹을 공격하자 가볍게 튕겨나갔다.
흐음, 네가 걔구나? 우리 귀여운 박쥐가 선택한 애.
나를 아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고블린 킹의 몸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스읍, 오래 버티기는 힘든가?
고블린 킹의 몸이 하얗게 빛나더니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고블린 킹이 주변의 고블린들을 빨아들이면서 균열이 커지는 속도는 유의미할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매초당 수백마리의 고블린들이 그의 몸에 빨려들어가 사라졌기 때문에 효율이 높은 행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신... 누구야."
내가 누구냐고?
고블린 킹이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알 필요 없어. 어차피 언전가는 알게 될테니까 말이야.
고블린 킹이 화련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얘를 죽이면 네가 어떻게 반응하려나...
"화련이 죽이기 전에 나 부터 죽여야 할걸?"
내가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니 고블린 킹이 크게 웃었다.
파하! 그래 알았어. 안 죽일게. 이 정도 되는 인재를 상대로는 지금 싸우는 것보다 나중에 상대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 테니까 말이야.
벌써 고블린들이 모두 흡수된걸까?
멀리서 날아오는 고블린의 숫자도 점점 줄기 시작했고 고블린 킹의 몸에 균열이 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스읍, 알았어. 이제 넘겨줄게. 너무 보채지 좀 마.
고블린 킹, 아니, 그 안에 있는 여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다음에 보자 꼬맹아.
크르륵, 이 년은 갑자기 나타나서...
원래 고블린 킹으로 돌아온 걸까?
아까 들었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고블린 킹이 나를 노려봤다.
온몸에 균열이 가득한대다가 주변의 고블린들을 모두 잃어버린 고블린 킹은 순식간에 그 크기가 작아졌다.
고블린의 수많은 진화체계를 거치고 결국 일반 고블린으로 변해버린 고블린 킹은 스스로의 몸에 가해져 있는 균열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히 조각나 버렸다.
"오라버니!"
위에서 연하가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손에는 흰색의 에너지가 강하게 뭉쳐 있었는데 그녀의 특기인 정보 계열이 아니라 공격용으로 사용하려고 만든듯 강렬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어구나.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아."
사라져 버린 고블린 킹을 뒤로 하고 화련이가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듯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년이 정신계 능력이라도 사용한 건가?'
당장 월하한테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 때 화련이가 작게 웃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로 시작된 웃음 순식간에 박장대소로 바뀌었으며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우물안의 개구리일 뿐이란 말인가"
그렇게 웃어댄 것이 환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고 바닥을 내려다 봤다.
굳은 얼굴이긴 했지만 얼굴에 왠지 모를 기쁨도 엿 보였고 미약한 흥분감도 보였기 때문에 걱정을 크게 덜 수 있었다.
"나보다 높은 수준의 무예를 가지고 있는 자를 만나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어. 그래... 나도 정신할 게 남아있다는 뜻이겠지."
그녀가 천천히 일어났다.
"뭘 그리 보나. 이제 돌아가야지."
"어어..."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화련이는 아까의 화련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