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0화 〉 휴식­1 (220/265)

〈 220화 〉 휴식­1

* * *

"애들이 쓰러졌다고?"

"응."

"피를 뽑은 것 만으로 쓰러질 애들은 아니니 아해의 능력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능력이 숨어져 있던 모양이군."

"마나 통 전체가 줄어들었었다는데? 천천히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야."

"전체마나가?"

화련이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도 실시간으로 회복되고 있는 중이거든요."

"실험할게 생겼군."

화련이가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실험이라니?"

"아무리 회복이 된다고 해도 마나의 그릇 자체가 작아진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아해의 능력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기 전까진 아해가 흡혈하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화련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마나의 그릇이 줄어드는 현상이 다량의 피를 흡혈해야만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지금까지도 약하게 반응했는데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는지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아해가 직접 흡혈했을 때에는 마나의 그릇이 줄거나 하는 걸 느끼지 못했거든,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아마 소량 정도로는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제대로 된 실험없이 확신 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다량의 피를 흡혈 할 때만 마나의 그릇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다면 그 현상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지도 알아봐야 되겠죠."

월하또한 나를 바라보면서 혀를 핥았다.

'응? 왜 혀를 핥어?'

쟤가 연하면 이해를 한다.

자기 입으로는 실험 안좋아한다고 말하는 연하였지만 그녀가 얼마나 실험을 좋아하는 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월하가 저러는 건 의외였다.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바로 실험하러 이동하지."

화련이에게 옷깃이 잡혀 바로 순간이동 당했다.

주변에 있는 등반형 게이트로 끌려온 나는 반항할 세도 없이 등반형게이트 안으로 밀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자 일단 어느 정도로 피를 흡혈해야 마나의 그릇이 줄어드는지 부터 확인하도록 하지."

그렇게 수 시간 동안 화련이에게 괴롭힘 당하면서 실험을 진행했다.

"그렇게 심각한 현상은 아니군."

나에게 수차례 피를 빨린 화련이가 낸 결론은 별거 아니다. 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마나의 그릇이 줄어든 것은 실제로 마나의 그릇이 줄어들어서 발생한 현상이 아니었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마나로 가득찬 그릇이 안쪽으로 부풀어 올랐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릇이 부풀면서 내부의 공간이 줄어들었으니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나가 줄어든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거지. 부푼 마나그릇은 금세 다시 회복되니 걱정할 것이 못된다."

"왜 내가 흡혈하면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귀납적으로 아해가 흡혈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통해 이런일이 일어나는 건지 물어도 해줄말이 없다."

하긴 화련이라고 내 능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아해가 일반적인 알파 몬스터 보다 더 강한 적을 일격에 처지할 수 있다는 얘기는 신기하긴 하군. 아무리 다른 애들이 쓰러질 때까지 흡혈해서 강제로 올린 능력이라고 해도 말이야."

"알파 몬스터라니?"

"이번에 대삼림에서 나타난 몬스터 있지 않는가. 마땅히 부를 말이 없어서 알파몬스터라고 부르고 있는데 참 적당한 이름인 것 같아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

"그래?"

알파 몬스터라... 나쁘지 않은 이름이긴 하다.

"그런데 리우잉씨는 어디 가셨나요? 분명 천마님이랑 같이 중국에 가신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죠."

"리우잉 말이지? 리우잉은 지금 우리 도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서 못 온다."

화련이의 말을 듣자마자 저번에 화련이가 인공각성이 가능하다는 말을 했던것이 기억났다.

나는 흡혈귀 덕분에 각성했기 때문에 인공각성이 필요가 없었지만 리우잉은 인공적으로 각성하게 될 경우 무력의 증가폭이 아주 클 테니 포기할 수 없었겠지.

"리우잉씨가 프로젝트를 맡았다고요? 믿을 수 있는 거에요?"

월하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화련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우잉이니까, 실제로는 굉장히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매일 얼빠진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니 그녀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있으니까 맡긴 거 아니겠는가. 리우잉은 못 믿더라도 내가 리우잉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시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맞는 말이에요. 천마님이 알아서 잘하셨겠죠."

***

짧은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까지는 게이트가 좀 잠잠해 지더라도 이전 게이트가 난리를 펴 놓은 것을 수습하느라 전쟁통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이젠 거의 완벽하게 평화가 찾아왔다.

이번 사건은 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지지 않고 대삼림의 중앙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수습할 일이 없었다.

만약 알파몬스터의 가치가 높아서 그걸 나누는 데 심력을 소모하고 또그걸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상황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바빴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도시 근처에 나타난 알파 몬스터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인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오랜 만에 낮 시간에 전부 거실에 모여 있을 수 있었다.

리우잉이 중국에 있어서 없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여유시간이 나서 한 데 모인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화련이는 늘 여유로운 편이었지만 하연이랑 연하는 도시 관리하느라 바빴고 월하는 암흑가를 관리하느라 바빴으니까.

지금이라고 안 바쁜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여유 시간을 내서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렇게 다같이 앉아있는거 되게 오랜만인거 같아요."

"오랜만 맞아."

"예전에는 다 같이 보드게임도 하고 실 없이 놀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만한 여유도 없네요."

"심심하면 보드게임 할래?"

연하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냥 푹 쉬고 싶어요."

연하가 소파에 앉아있는 내 다리에 기대눕듯이 앉았다.

참고로 나는 오랜만에 작아진 상태였다.

왜 작아졌냐고 묻는 다면 최대한 많은 애들이랑옆에 있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금 화련이의 무릎 위에 올라온 상태로 양 옆에는 하연이랑 월하가, 다리 앞쪽에는 연하가, 그리고 뒤에는 화련이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원래 크기라면 화련이의 품에 안기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로 작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음엔 어떻게 공격해 올까요? 끝은 있는 걸까요?"

연하가 내 다리에 자신의 뺨을 부비작 거리면서 물었다.

"언젠간 끝나긴 하겠지, 필사적으로 버티면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모든 공격을 다 막아내면 이런 일상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겠죠?"

"그렇겠지?"

각성자들간의 전쟁이 시작되지 않는 이상 지금까지 우리의 주적이었던 몬스터가 사라진 것 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히히, 일상이 찾아오면... 오빠 아이를 낳고 싶어요!"

"뭐?"

너무나도 멀리 들리는 소리에 내가 기겁을 해서 대답하니 뒤에 있던 화련이가 나를 더욱 꼬옥 안았다.

"왜 그렇게 당황하지? 우리가 아해를 사랑하는 시점에서 아해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그냥 좀 당황스러워서 그래."

내가 얘들 애를 낳는다고?

아예 다 큰 애들을 상상하면 뭔가 흐뭇해 지는 느낌이 드는 데 여자들 배가 부푼 모습을 생각하면 뭔가 떨떠름했다.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싫으면 말해라. 아해가 싫다는 데도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다."

"싫다는 건 아니야. 그냥 현실성이 없다는 거지...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알 수가 없고."

몬스터가 없는 세상이라.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애초에 난 태어났을 때부터 몬스터가 있는 세상에서 태어났는 걸.

그런 세계에서 자라온 나는 몬스터가 없는 옛시절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살아가는 데로 살아가다보면 결국 정답이 나오겠지요."

연하가 인생에 통달한 사람 처럼 말하자 딱딱하게 뭉쳐 있던 분위기 풀렸다.

"그래, 살아지는 대로 살면 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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