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휴식2
* * *
오늘은 등반형 게이트로 출근하지 않았다.
제대로 게이트를 돌며 수련한 날 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갔던 것이 등반형 게이트였지만 당분간은 푹 쉬기로 했다.
등반형 게이트에 들어가서 내 마나를 키우는 것 보다 그냥 애들 피나 빨면서 피의 마나를 올리는 것이 더 효과가 좋았기 때문에 등반형 게이트에 발이 잘 안가기도 했다.
"이런 평화도 오랜만이군 이상한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느긋했던 일살도 완전히 깨졌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게."
언제부터 시작이었지?
등반형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부터였다?
그 전에는 할 거 없다고 우울증 비슷한 것까지 걸렸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바빠서 등도 제대로 못 펴고 살고 있다.
'역시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니까.'
지금와서 옛날에 애들이랑 보드게임하고 마피아 게임하고 놀았던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그런 과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오라버니, 안아줘요. 오늘은 오라버니 품에 안겨서 푹 쉴거야."
"연하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너만 오라버니 품 안에 안겨서 즐기겠다는 거야? 오라버니 품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막내는 빠지시지."
"왜 제가 빠져야 해요? 지금까지 가장 고생한 게 전데? 물론 언니도 열심히 일하시긴 했지만 언니는 제가 일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셔서 알잖아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일 한자한테는 보상이 필요해요!"
연하가 자기가 일한 걸 언급하면서 말하자 하연이가 할 말이 없어진 듯 고개를 숙였다.
"일한 거 가지고 걸고 넘어지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게임으로 덤벼!"
게임이라...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옛날에 조금 한 것 말고는 너무 오랜만에 하는 것 같은데...
"게임 좋지! 무슨 게임 할 건데!"
오랜만에 노는 느낌이 물씬 풍기자 다들 흥분해서 일어났다.
그녀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처럼 자기들끼리도 굉장히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나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중이더라도 걱정이 거의 되지 않았다.
제대로 싸우는 게 아닌이상 금세 화해할 것 같았으니까.
만약 그녀들이 제대로 싸운다고 해도 우리 화련이가 화해시켜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걱정도 들지 않았다.
화련이가 빡치는 게 아닌 이상 쟤네들끼리 싸울리가 없지.
그리고 화련이 성격상 나를 건드리는 게 아닌 이상 화내지 않을 텐데 다른 애들이 나를 건드릴 일이 없으니 평화는 유지될 수 밖에 없었다.
"이예!"
자기들끼리 결정한 아주 공정한 방법으로 승리한 연하가 내 품에 안겼다.
어제는 작아졌지만 오늘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기 때문에 키가 작은 연하를 꼭 껴안아 줄 수 있었다.
연하가 승자의 표정을 하고 애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애들의 얼굴이 이리저리 구겨지는 것이 아주 볼만했다.
구겨진다가 아니라 꾸겨 진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달까?
"꼬우면 이기셨어야죠. 왜 지시고 그러시나."
연하가 코코콕 웃으면서 내 품안에 꼭 안겼다.
"오랜만에 점심 당번이나 정할까? 한동안 같이 밥 안먹은지도 오래 됐잖아?"
"맞아요. 지금부터 점심 준비하면 딱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점심 당번 정해서 지금부터 만들면 적당한 시간에 딱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연하가 내 품안에 안겨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하를 내 옆에서 떨어뜨리려고 안달이었다.
"저를 떼어내고 싶으신거라면 말을 하세요! 참나, S급 각성자가 돼서 그렇게 쪼잔해서 쓰겠어요? F급 각성자인 우리 오라버니도 그렇게 쪼잔하진 않아요."
"E급이거든!"
도대체 말 한마디에 몇명을 까버린 걸까?
연하특유의 광역 딜링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가 말로 딜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A급 몬스터가 한 번에 열마리 정도 덤벼 들었어도 혼자서 다 죽여버리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겠지.
장난스럽게 말하고 있긴 한데 진심이었다.
얘 말빨 장난 아니야.
"결국 밥을 먹긴 해야 할 거 아니야. 네가 승리함으로서 얻은 건 오라버니 품안에 안겨 있을 수 있는 권리지 점심 만드는 담당에서 빠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 또 할말 없긴 해요. 좋아요. 무슨 승부로 가를까요?"
"흐음... 뭐가 좋을까..."
하연이가 연하를 바라보다가 씨익 미소 지었다.
"엉덩이 씨름 어때. 서로 서서 뒤돌아 보다가 엉덩이로 상대를 밀어서 쓰러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식으로 꼴찌만 딱 정하는 거야."
누가봐도 연하에게 불리한 승부였다.
연하가 표정을 찡그리며 하연이를 노려봤다.
"그건 안돼요. 저희끼리는 문제 없겠지만 저희 오라버니가 같이 참여하면 얼마나 민망하시겠어요?"
"기사님은 당연히 참여 안하시죠. 저희 아주 초기에 했던 말 잊었어요? 기사님한테는 손에 물도 뭍히게 해선 안되죠."
애들이 담합이 잘되네.
어찌 되었든 내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상황은 상당히 좋았다.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 관계였다.
엉덩이 마주대고 치는 건 어린애가 아닌이상에야 부끄러울 수 밖에 없지.
"그러면 연하씨. 일어나세요. 게임하는 도중에는 일어나셔야 할 거 아니에요. 설마 기사님께 안겨서 게임을 하겠다는 못된 심보는 아니시겠죠?"
"알았어요. 일어나면 되잖아요."
연하가 내 품에서 벗어나 바로 섰다.
"자! 덤벼요!"
당당하게 소리친 연하는 이어진 승부에서 연전연패를 하고 말았다.
화련이를 상대를 일격에 날아가 넘어졌으며 월하를 상대로는 철저하게 능욕당했고 하연이를 상대로는 공세를 유지하다가 제대로 친 한 방에 벽까지 날아갔다.
"흐끅... 언니들 나빠요. 제가 뭘 잘 못했다고 이런 신데렐라 신세로 만들어 버리는 거에요."
신데렐라라...
언니가 세명이고 혼자서 밥하고 잘 어울리긴 하네.
연하가 터덜터덜 움직여 주방으로 갔다.
저번에 요리 대결을 했을 때 라면과 삼겹살이라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환상의 조합을 가지고 온 화련이한테 밀리긴 했지만 연하의 요리도 충분히 맛있었다.
"오라버니 어디가세요?"
"연하가 나한테 안겨 있는 건 승리자의 권리잖아? 요리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연하가 힘들게 이겨서 얻은 적합한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
요리하고 있는 연하의 등 뒤에서 그녀를 꼬옥 하고 안았다.
그녀의 작은 등이 내 품안에 쏙 들어왔다.
"키야, 죽인다!"
연하가 술이라도 취한듯한 소리를 내더니 칼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량의 채소들이 채 썰렸다.
그녀가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따라 움직여야 하긴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각성능력으로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 움직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이그읏
뒤에서 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전해져 오긴 하는데 나는 연하가 누려야 할 적합한 권리를 가져다 준 것 뿐이다.
꼬우면 이기셨어야지 안그래?
"키야, 너무 좋다."
내 품에 안겨서 요리를 하는 상황이 좋은 걸가?
연하는 아주 높은 텐션으로 음식을 완성해 갔다.
각종 채소와 고기들을 썰고, 냄비도 여러개를 쓰고 후라이펜도 3개씩이나 써가면서 순식간에 음식들을 완성해 갔다.
"짜잔! 연하의 특제 반찬들입니다!"
"꿀꺽..."
하연이 쪽에서 목이 크게 울리는 속도가 들렸다.
연하가 만든 음식은 딱 봐도 맛있어 보였다.
냄새 없이 보기만해도 맛있을 것 같은 비주얼에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고 있으니 그 만큼 행복할 수가 없었다.
"푸하하하! 어때요? 맛있겠죠? 방금전까지는 그렇게 째려보셨으면서 지금은 완전 넋이 나간 표정이 되셨네요? S급 각성자라는 사람이 음식에 굴복해도 되는 거에요?"
"입 다물어..."
"일단 다들 앉아서 먹죠."
연하가 자기 자리에 털썩 안길래 바로 그녀를 들었다.
"오라버니?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내가 그녀의 자리에 앉고 내 위에 연하를 올렸다.
"꺄아아아아!! 이게 뭐야!"
연하가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꼬면서 기뻐했는데 이 기지배가 영약하게 애들을 바라보면서 혀를 슬쩍 내미는 장면이 그대로 보였다.
"자, 밥 먹자."
후에 듣기를 연하는 천국을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손을 뻗을 때 마다 내 몸이 그녀에게 쓸리는 느낌도 좋았고 밥먹으려고 숟가락을 뻗으면 내가 그녀를 안는 모습이 돼서 좋다는 등 그냥 모든 것이 다 좋았다고 한다.
아주 당연하지만 그 덕분에 다른 애들의 공적이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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