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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화 〉 새 페이즈 (235/265)

〈 235화 〉 새 페이즈

* * *

"저거 봐 현수야! 저게 우리 천마산에서 가장 유명한 천마님의 동상이야."

현수가 왠지 멍한 표정으로 화련이의 동상을 바라봤다.

현수랑 리우잉이 처음 데이트를 나설 때만 해도 중국의 각종 경치 좋은 곳들을 소개시켜 줄줄 알았는데 처음 온 곳이 화련이의 동상이었으니 그만큼 맥이 빠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현수는 화련이를 별로 안좋아하니까.

"다른 곳은 없어?"

"왜? 천마님 동상 구경하는 게 싫어?"

"그건 아닌데... 실물을 매일 보는데 굳이 동상으로 또 볼 필요가 있나 싶어."

리우잉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현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거지 고개를 끄덕 거렸다.

"네 말이 맞아. 하긴 매일 같이 천마님이랑 같이 있는데 굳이 동상을 감상할 필요는 없지."

리우잉이 그렇게 말하고 현수를 잡은 뒤 발 걸음을 내 딛었다.

"그러면 다른데 가자."

리우잉이 빠르게 뛰는 순간 무언가 익숙한 감각이 들었고 그대로 리우잉과 현수는 무언가에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남 이야기 처럼 말하고 있지만 현수와 나는 같은 몸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도 같이 빨려 들어갔다.

­쐐액!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가 뒤쪽에서 쐐액 하고 달려들어왔고 결국 우리와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참 많이도 왔군, 나는 꼬맹이 하나만 부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게 아해만 부르고 싶었으면 타이밍 조절을 잘하지 그랬나."

­자기는 게이트를 열 수조차 없는 주제에 말이 많군 게이트 여는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줄 아나?

화련이와 흡혈귀가 강하게 티격 거리기 시작했다.

"어려우면 어려운 걸 인정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게 여러명이 올 것도 상정해 둬야지, 그걸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툴툴거리는 건 어른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안 드나?"

­너랑은 할 얘기 없다.

흡혈귀가 화련이를 쿨하게 무시하고 현수에게 다가왔다.

­꼬마야, 형 불러라.

"형, 아니야."

현수가 툴툴 대면서도 의식 속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지 저번에 용사랑 만났을 때 한 번 만났잖아.

"얼굴 본 건 오랜만이 맞잖아요."

­그래, 오랜만이 맞지.

흡혈귀가 나타났다는 건 이제 뭔가 일이 생길거라는 뜻이겠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아주 큰 일이 일어날거야.

"그 전에 내 물음 하나에 대답해 줄 수 있겠나?"

­게이트를 만드는 거라면 안 만드는 게 더 좋을거야. 최소한 지금 당장은 말이야.

화련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내 안에 있는 자신의 마나로 확인한걸까?

"알았다. 경험자의 조언이니 새겨 듣도록 하지."

­그러면 지금부터 너희 세계에 찾아올 변화들을 소개시켜 주도록 하지. 지금까지 뒤에서 관조만 하고 있던 용사년이 저번에 너를 자신의 게이트에 소환한 뒤 각성이라도 했는지 적대 진영의 놈들에게 적극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피 몇방울이 흘러 나오더니 순식간에 칠판크기로 커졌다.

어떻게 피로 색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칠판에는 귀염뽀작하게 생겼지만 원래 모습을 알고 있다면 용사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여성의 그림이 그려졌다.

­일단 더 이상 게이트는 나타나지 않는다.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일시적인 현상이니 너무 당황하지 말도록 평생 안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이번 페이즈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칠판에 동그라미가 그려지더니 크게 X자가 쳐졌다.

"게이트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지?"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리가 너희의 세계에 건너가는 게 아니라 너희를 우리가 만든 공간으로 불러오면 되는 일이지. 우리 세계에 너희를 직접 불러오는 것은 불가능과 다름 없는 일이지만 임의로 만든 공간에 강제로 데려오는 방법은 있다.

"지금만 해도 네가 강제로 아해를 게이트 안에 데려 온 상황이니 대충 감이 잡히는군."

흡혈귀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칠판처럼 펼친 피의 장막에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나로 추정되는 남자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로 끌려가는 그림이었는데 쓸 데 없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아서 짜증났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얘기군."

저걸 어떻게 이해하는 거지?

­그래, 모든 인간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저쪽 입장에서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들은 전부 끌려갈거야.

위협이 되는 이들이라는 건 각성자들을 이야기 하는 건가?

"전부 끌려간다고?"

­그래, 전부 끌려간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게이트는 한 동안 나오지 않을 테니 시민들이 위협에 빠질일은 없다.

담담히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흡혈귀를 화련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아무리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수많은 각성자들이 한 번에 사라지는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인데 흡혈귀가 너무 태연히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알았다. 언제 끌려가지? 다른 사람들한테 미리 이야기라도 해두고 싶은데."

­3시간 쯤 후면 끌려가겠군.

화련이가 자신의 이마를 탁하고 쳤다.

"3시간, 그래 3시간이란 말이지?"

화련이가 후, 하 하고 심호흡을 했다.

­늦게 말해줘서 미안하지만 내 사정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에 게이트를 열어서 너희를 데리고 온 거거든.

"그래, 이해한다. 그러면 이제 최대한 빠르게 말해봐. 놈들에게 끌려간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되지?"

­거기까지는 모른다. 우리가 심어둔 정보원도 그렇게 까지 중추에 접근하지 못했어. 너희가 그들에게 끌려간다. 딱 그것만 알고 있을 뿐이야. 대신 버티고 버티다 보면 우리가 도와주러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니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생존에 중점을 두고 움직이면 될 거야.

'생존이라...'

"정확히 어떻게 끌려가는 거에요? 다 같이 같은 장소로가요? 아니면 각자 다른 장소로 가요."

­각자 다르게 끌려갈 확률이 높다.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장소가 100개가 넘는다고 했으니 그 중 하나로 끌려가면 아마 너희들끼리 같이 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군."

화련이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각성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이딴짓을 벌이는 거라고 했지?"

­그렇다.

"마음 준비 단단히 해야겠군. 놈들 입장에서 가장 거슬리는 각성자가 S급 각성자들일텐데 설마 S급 각성자를 죽이는 법을 마련해 두지 않았을리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꼬맹이 근처 애들은 걱정을 덜 해도 되지 않아? 네가 몇 번 지도해 준 것 같은데 말이야.

처음 중국에 갔다 온 이후로 가끔 만나서 뭔가 하는 것 같긴 했는데 화련이가 애들한테 알려준 것도 있었구나.

­그리고 너는 죽을 가능성 없으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있어도 돼. 문제는 이놈이지.

흡혈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마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느 정도 감은 잡은 것 같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성장해 주는 건 고맙지만, 저점이 낮다 보니 위험할 수도 있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그걸 알려주려고 내가 너를 부른거지.

흡혈귀가 씩 하고 웃었다.

­흡혈귀가 가장 빠르게 무력을 올리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피를 마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맞아. 피를 마시는 거지. 일반적인 흡혈귀들은 강한자의 피를 마시면 자신의 근본적인 힘도 같이 올라가.

"저는 안 그러던데요?"

­네 평소에 마시는 피의 소유주들이랑 너의 격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런거야. 너랑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들의 피를 많이 마시면 피로 마나를 늘리기 전의 무력도 빠르게 올릴 수 있을 거야.

S급들의 피가 아니라 오히려 더 낮은 등급의 피를 마셔야 성장할 수 있다니.

­끌려가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피를 마셔. 마시는 양 보다는 사람의 다양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내가 알려줄 건 이 정도가 끝이고 아직 간섭력이 좀 남았으니까.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붉은 보석으로 변했다.

­가지고 있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먹어. 저 년들 피를 마시는 것 보다 이게 훨씬 더 효과가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간섭력을 모두 사용했는지 게이트가 깨어졌다.

게이트가 깨지자 마자 화련이의 제자들한테 사태를 설명하고 우리 도시와 솔에 이 이야기를 알렸다.

모든 각성자한테 겨우 내용이 전달 되었을 때 시야가 어둡게 변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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