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 새 페이즈(2)
* * *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두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짧은 시간동안 시야가 가려졌다 밝아지니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와있었다.
"!@#!@"
"!@#!@%#%@"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정신을 회복한 뒤 주변을 둘러 보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나랑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랑 다른 종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질감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인가?'
외국인이라는 존재를 처음 봐서 그런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근처에서 능력에 의해 머리 색이 변한 케이스는 종종 봤지만 그건 머리 색만 변한거지 골격이나 얼굴형 까지 같이 외국인 처럼 변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먹겠네.'
그나마 화련이한테 유사 전음을 보내는 법을 배워놔서 다행이지 그것도 없으면 아예 답도 없을 법했다.
일단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주변을 돌아봤다.
일단 수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 바닥에 초록색 격자무늬가 끝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은 좀 특이한 일이었지만 그것말고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피를 마시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면식도 없고 말도 안통하는 사람한테 가서 피를 빨 수는 없잖아?
우리를 죽이기 위해 불렀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 피가 튈테니 그 때 몰래 먹던가 하자.
"!@$!#@$"
알 수 없는 언어의 소리가 계속 들리다가 내가 알아 들을락 말락 할 수 있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는 저 말 알아들을 수 있지?'
'누나가 쓰는 말이랑 살짝 다른 것 같은데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들이 쓰는 말은 바로 중국어였다.
듣는거야 리우잉 근처에서 아주 오랫 동안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들으면서 지내온 현수가 있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말하는 건 화련이 한테 전음을 배워왔으니까 또 문제가 없고.
'좋아. 협력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저쪽으로 붙어야지.'
중국인이 인구가 많아서 그런 걸까?
그들 근처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가르키며 손가락질을 했다.
놀라면서도 당황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저 사람이 갑자기 나 한테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뭐라는 거야?'
'너보고 영웅이라는 데?'
'영웅?'
내가 중국에서 뭘 했길래 영웅이라는 소리를 듣지?
라는 생각과 함께 월하와 함께 중국을 돌면서 게이트를 닫고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 많은 도시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화련이가 우리를 많이 띄워주기도 했으니 일반인도 아니도 각성자라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는 것이 그렇게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그래도 되게 신기하긴 했다.
한국인도 나를 모를 텐데 중국인이 나를 알아본 거니까.
적당히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들이랑 함께 돌아다녀도 좋겠지만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피를 마셔야 하는 미션이 있었으니까.
"@#$@#%!"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가르켰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목소리의 높낮이와 바디 랭귀지 만으로도 그가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몬스터다.'
그것도 아주 아주 강한 몬스터였다.
허공에서 갑자기 생성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몬스터는 대충 봐도 A급 정도는 가볍게 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필 골렘이 떨어지네.'
피가흐르지 않는 골렘이라는 건 참 아쉬웠지만 골렘의 몸에 달려 있는 수많은 칼날들이 인간의 피는 많이 떨구어 줄 것 같았다.
'사이코 패스 다 되셨네, 네 이득을 위해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게 좋아?'
'내 이득을 위해 흘려지는 게 아니잖아? 몬스터가 강해서 흘려지는 피를 가지고 내가 이득을 보겠다는 거지. 그리고, 사상자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은 하나도 없어.'
땅으로 떨어지는 몬스터를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각성자라고는 해도 모두 전투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덜덜 떨면서 뒤로 도망가는 사람도 보였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는 사람도 보였다.
A급 몬스터긴 해도 각성자들의 수가 워낙 많으니 힘을 합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
특히 중국인 무리가 가장 앞장서서 몬스터를 대처하는 걸 보면 사람 몇명 죽어나가도 잡을 수는 있겠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천마신교에 소속된 사람까지 있는지 전음으로 모두에게 소리치는 모습에 나는 이번엔 완전히 묻어가기로 결정했다.
품에 간직해 놨던 화련이의피를 꺼내 손으로 땅 한방울 찍어 먹었고 늘어난 마나를 사용해 앞에서 몬스터를 향한 적당한 공격만 가하며 땅에 떨어진 피들을 몰래 흡수했다.
'어질어질 하구만.'
정말 수많은 각성자들이 섞여 있는 곳이었다.
등급이 가장 높은 이가 B급이었는데 대부분은 D급 각성자였다.
질이 높지는 않지만 워낙 많은 종류의 피가 몸으로 흡수되다보니 피의 마나가 근본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피를 머금은 상태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피를 흡수하기 이전의 상태가 성장하고 있었다.
구어어어!
골렘이 땅으로 쓰러졌다.
온 몸이 칼날로 이루어진 골렘이었지만 핵이 파괴되어 쓰러지니 칼날이 주변으로 흩뿌려 졌다.
'생각보다 쉽게 잡았네.'
골렘을 쉽게 잡은 데에는 천마신교 소속으로 보이는 여성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등급으로 따지면 C급 정도로 보였지만 실제 움직임이나 기여도는 다른 B급 각성자들과 맞먹었고 그녀가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처음 본 사람들 끼리 이 정도로 높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피해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천 명이 넘게 있었던 사람들 중 몇십 명이 죽었다.
골렘은 A급 몬스터였으니 그 정도 피해가 나온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지, 옆에서 죽은 사람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입을 열지 않는 거겠지.'
어차피 남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참 좋은 일이었다.
몬스터가 추가적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조를 나눠서 경계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말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대다수는 일단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일단 그녀의 말을 듣겠다는 것 처럼 보았다.
하지만 인원이 천명이었다.
"!@#$@!#!"
어떤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그의 억양에서 그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쿵!
그 남자를 대처하는 여자의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일단 남자를 제압해서 자신의 힘을 보여준 후 대화를 통해서 사람들을 설득해 나간 것이다.
나도 내 말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누군가는 나 보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불만을 표출하는 것 보다는 하나로 완전히 뭉치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녀의 진정성 있는 말에 일단 그녀의 말을 수긍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감시조를 나누는 작업을 했는데 그런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녀가 감시조를 나누는 도중에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크르르르륽!!
거대한 두더지 처럼 보이는 몬스터는 분명히 S급 몬스터였다.
몸을 찌르르 울리는 프레셔.
몸을 납짝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기세로 우리를 누르는 마력까지.
아주 강력한 몬스터임이 틀림 없어 보였다.
말도 안돼...
그녀가 절망할 법했다.
여기 모인 전력으로는 S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리가 없었으니까.
다 같이 죽음을 받아들인 것 처럼 숙연해 졌을 때.
내가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 저 놈을 죽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으니까.
* * *